(제 65 회)

7

(6)


량선생님!》 하고 그이께서는 친근히 부르신 다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급투쟁에 대한 준엄한 진리를 활짝 펼치고 그가운데 위치한 민족주의운동을 지적하고 그에서 놀고있는 량세봉의 역할을 분석하시였다. 그리고 공산주의운동만이 빼앗긴 조국을 찾을수 있게 할것이며 부강한 앞날을 약속할것이라고 론리정연하게 풀어나가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현재와 미래의 조국과 우리 인민의 운명을 낱낱이 살피기도 하고 때로는 량세봉의 가슴속을 사정없이 파고들어 그가 바라는것, 그가 우려하는것, 그가 모대기고있는것, 지어는 그가 아직은 무엇이라고 딱히 말할수 없는 이러저러한 느낌에 이르기까지 죄다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 특히 주의를 돌리신것은 량세봉이 말한 《내가 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좋지 못한 견해였다. 그이께서는 공산주의운동 일반에 대하여 설명하는 한편 요람기에 놓인 조선에서의 공산주의운동이 가혹한 일제의 탄압속에서 본의아니게 겪어야 했던 불행과 오유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는것을 실례를 들어 말씀하시였다. 《5. 30폭동》도 그렇고 무슨 파, 무슨 파 하고 세력다툼을 하고있는 종파쟁이들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폭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장시간에 걸쳐 여태까지의 조선민족주의운동 전반을 개괄하셨고 그것을 총화하면서 종당에는 반일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고 반일투쟁에 모두 나서야 할 절실한 요구를 내놓으시였다.

량세봉은 그이의 빛나는 시선이 자기에게로 옮겨질 때마다 얼른 눈길을 딴데로 돌리군 하였다. 공연히 부채와 담배서랍 같은것을 만지면서 태연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그는 그 무슨 새짬에 끼워서 옴짝할수 없는것 같은 괴로움을 받았고 또 그런가 하면 가슴에 무직이 자리잡았던 오뇌의 덩어리들이 훌훌 빠져나가 경쾌한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는 지금 모진 흥분에 잠겨서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탄성같기도 한 소리를 가끔 지르면서 앉아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럽고 조용한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일제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할것이라고 봅니다. 일제의 압박과 착취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고통을 당하고있는 로동자, 농민을 기둥으로 해서 중소상공업자도, 지식인들도 그리고 애국적인 자본가들, 종교인들, 더구나 선생님처럼 한몸을 조국광복을 위해 바쳐 싸우는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는 반일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할것을 주장합니다. 당면하게는 우선 먼저 우리 유격대와 독립군이 손을 잡고 일제를 치는데 앞장서야 할것입니다. 힘을 모아 협동작전도 하고 지역을 분담해서 적의 각을 뜯어낼수도 있을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찾아왔습니다. 일제가 지금 총칼을 휘두르며 강한것처럼 날뛰고있지만 조선인민이 하나로 뭉쳐서 싸운다면 우리는 능히 우리 손으로 일제를 우리 강토에서 쫓아낼수 있습니다. 총을 든 무장부대는 놈들의 군대를 때려엎고 공장과 거리에서는 로동자들이 들고일어나고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들고일어나고 이렇게 청년들, 녀성들, 지식인들, 종교인들, 상인들이 다 일어나야 할것입니다. 여기서 기둥은 우리들입니다. 무장을 든 우리들이 이 엄숙한 사명을 다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조국이 광복되느냐, 영원히 망국의 신세에 떨어지느냐가 결정될것입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끝내고 밖을 내다보시였다. 널바자그늘이 마당을 아주 채워버리고 하늘에는 노을이 한창이다. 량세봉은 담배를 또 붙여물고 약간 어색한 낯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장군의 뜻을 잘 알겠소. 이미 내가 최참모에게도 말했지만 김형직선생님께서도 늘 그런 말씀을 하셨소. 그렇지만 현실은…》 하고 계속해서 량세봉은 한참동안이나 자기 견해를 내놓았다.

때로는 침중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또 때로는 호방하게 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속심에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못하였다.

외로 돌고 바로 돌고 하는 그의 종잡을수 없는 심정의 밑바닥에는 이자리에서 터놓을수 없는 사정이 집요하게 매달려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라면 대개 다 독립군을 반대하는 립장에 서있다는 지울수 없는 적의를 품고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흑하사변이요, 《5. 30폭동》이요 또 뭐요 하는것에 대하여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악의를 가지고 대하지는 않았다. 또 《상해파》가 《서울파 치건 《엠엘파》가 《화요파》 치건 상관할바가 아니라고 보았다.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세파가운데 그런 정도의 오유와 희생도 있을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그는 그자신을 희생으로 하는 때에는 비록 적은것이라 할지라도 참지 못하였다. 벌써 석달인가 되였다. 서울에 있다가 북간도를 거쳐서 왔다는 박아무개라는 공산주의자가 이곳에 있는 부대에 끼여들어 한달만에 20여명의 사병을 추동해 끌고 달아나려다가 적발되였다. 이전에도 이런 사건을 한두번 당한적이 있었던 그는 박가를 단호하게 자기 손으로 처단해버렸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신 그 모든것에 대하여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전적인 동의를 표시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싶었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종시 입밖에 내지 못하고말았다. 그는 당장에 그렇게 못한다하더라도 차츰 기탄없이 토론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고 무심중에 훌 떠오르는 왕청같은 문제를 꺼내게 되였다.

《한가지 묻겠습니다. 유격대에서는 군자금을 어데서 장만하십니까? 경제모연을 하시는지 그렇지 않으면 딴 방도가 있으신지?》 ·

《우리는 군자금 없이 싸웁니다.》

《그럼 무기는 어데서 구하십니까?》

《총은 일본군대한테서 뺏어냅니다.》

《아! 그렇습니까.》

량세봉이도 최참모도 동시에 옳다는 기색을 보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말씀을 돌리여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민족분렬책동과 그에 발맞추는 변절자나 밀정들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경각성을 높여야 한단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량세봉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적들은 졸고있지 않습니다.》

그럴테지요.》

량세봉은 가슴이 텅 빈 소리로 웃었다. 이미 알고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뜻밖이라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그때 대문을 바삐 열고 독립군병사 한명이 넋없이 허둥지둥 달아들어왔다.

《저게 3소대 사병인 엄치환이 아닌가?》

황참모가 고개를 들고 내다보았다.

《강계방면에 갔다가 돌아오는가봅니다. 아! 저 사람이, 저런!》

최참모가 마루로 뛰여나갔다. 키가 크고 눈이 시꺼먼 청년은 문밖에서 최참모를 불러놓고도 숨이 차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바지가랭이가 째지고 가슴에 피가 꺼멓게 게발렸다. 최참모는 뜰에 내려서서 와들와들 떨고있는 엄치환의 팔을 잡으며 다우쳐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서 말해라!》

《네! 저…》

화승대를 멘 병사는 숨을 돌리느라고 어깨를 헐썩거리며 서있다.

《어서!》

《강계까지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는데 적의 추격을 받아 피상수가 총에 맞아…》

《그래 죽었느냐?》

《아닙니다. 적이 자꾸 따라와 뛰다가 앞에서도 총소리가 나구 뒤에서도 나구 해서 죽었구나 했는데 글쎄 유격대가 우릴 살려줬지요. 유격대가 피상수를 업고 저기 3소대집에 왔습니다.》

《그래 위급하냐?》

거쉰 량세봉의 음성이 최참모의 등뒤에서 울렸다.

《지금 유격대원들이 달라붙어 약을 붙이고 싸매고 합니다.》

최참모는 한숨을 지으며 엄치환을 돌려보냈다.

황황해진 분위기로 보아 이야기를 계속할 계제가 못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작별인사를 하시자 량세봉과 최참모는 미안해 어쩔줄 몰라하였으나 저들도 부상당한 사람이 누워있다는 곳에 가봐야 할 형편이였으므로 함께 집을 나섰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