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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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설경성은 홍자번과 마주할 때면 백성살이에 대한 론쟁을 해오고있었다.

그때마다 설경성이 백성들속에서 군사도 나오고 쌀도, 천도 나오니만치 백성살이를 돌볼 때 부국강병을 이룰수 있다고 하였지만 나라가 있고야 백성도 있다고 주장하는 홍자번은 그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청렴하다는 홍자번이조차도 이런 관점이니 백성을 먹이감으로 여기는 탐관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옛적에 큰 나라에게 먹히웠던 어느 한 작은 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아뢰일가 하오이다.

큰 나라에 먹히운 작은 나라 왕은 속국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로는 민심을 모으는 길이라고 생각했소이다.

그래서 왕은 삼년세월 백성들에게서 조세를 받지 않았소이다.

이렇게 해서 민심을 모은 왕은 불의에 백성들속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큰 나라를 들이쳤소이다.

군사들은 자기들을 잘살게 해준 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소이다. 결국 왕은 큰 나라를 쳐이기고 패전의 한을 풀수 있었소이다.》

심중해진 임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마음을 알겠노라. 그다음은 또 뭔가?》

정말이지 헐치 않은 말을 하였는데 임금이 너그러이 받아주니 설경성이로서는 용기가 나지 않을수 없었다.

달아오른 심정같아서는 큰 나라에 굽신거리는 얼빠진짓이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탐욕의 괴수인 강윤소를 조정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아뢰이고싶었다.

그러나 임금이 원나라조정과 친한 까닭에 강윤소를 크게 쓰고있다니 머리를 써야 했다.

《페하, 밀직부사 강윤소가 몇달밖에 살것 같지 못하오이다.》

임금이 놀라서 물었다.

《짐도 그가 간적에 들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렇게 빨리? 그대의 재주로 고칠수는 없는고?》

설경성은 나쁜 세력을 만들어놓고 알면서 죄를 범한자는 가차없이 처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것을 꾹 눌러버렸다.

크게 간사한자는 충신인것 같고 크게 속이는자는 진실한것 같다는 말이 강윤소와 같은 놈을 두고 생겨난 말이 아니겠는가.

설경성이 나직이 대꾸했다.

《옛말에도 나라일에는 모두가 힘쓰려 하지만 사사일에는 천갈래만갈래로 갈라진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아무리 의술이 좋아도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은 고칠수 없소이다.》

임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경성의 말뜻을 알고도 남기때문이였다.

강윤소가 어떤 사람인지 짐도 모르는바가 아니지. 처음은 그가 고려를 위해서 이웃나라를 드나들며 애쓴건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우리에게 감놓아라, 배놓아라 참견하려드는 후비라이를 끼고 조정에 자기 세력을 늘여놓았지. 탐욕도 부리고…

그런데도 그를 떼버릴대신 더 크게 써준것은 생각이 있기때문이다.

원나라에 빼앗긴 강토를 되찾는 싸움을 일으킬 때까지는 그런자들을 잠시 내버려두는것이 유익하니까.

강윤소가 벼슬을 내놓을 나이도 되였고 또 불치의 병으로 오래 살것같지 못하다고 하니 이런 명분으로 조정에서 내보내면 원나라것들도 할말이 없을것이다.

임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노라. 골병든 사람이야 쉬게 하는것이 도리이지.》

설경성은 가슴이 은근히 들뛰였다.

탐욕의 괴수, 친원의 괴수를 벼슬길에서 끌어내리게 되였으니 이런게 경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기회에 이루어야 할것들이 많고많은 설경성이로서는 이것으로 만족해할수 없었다.

《페하, 소신에게 제자들이 있사온데 그들을 동서대비원과 혜민국, 제위보들에 받아주셨으면 하오이다.》

동서대비원과 혜민국, 제위보는 주로 백성들을 의술로 구제하는 사명을 지닌 관청이였다.

《그리고 그 관청들에 의원수를 늘였으면 하오이다. 각 고을들에 있는 약점들에도 의원을 늘였으면 하오이다. 지금 약점들에는 보통 네명의 의원을 두고있는데 그들로서는 고을의 병자들을 다 돌볼수 없소이다.

군진들과 경군에도 군후사(군의), 용약원(군의로서 주로 약제사)의 수를 곱으로 늘였으면 하오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역병이 돌때마다 지체없이 구제도감을 내옴으로써 즉시 병을 막게 하였으면 좋겠소이다.

그리고 향교들에서는 그 고을에서 의술이 제일 높은 의원들을 교수로 받아들여 제자들을 키우게 하였으면 좋겠소이다. 동시에 태의감과 혜민국에는 의원들을 전업으로 길러내는 의생방을 내왔으면 하오이다.》

임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나라를 위한건데 어찌 짐이 모른다 하겠소. 그런데 그대의 제자들을 어찌 그런데만 보내겠소? 의술이 높은 제자들을 우선 태의감과 상약국, 동궁과 다방에 보내야겠소. 그대가 천거한 보옥이를 식의(임금과 그 식솔의 식사를 관할하는 의원)로 쓴것처럼 말이요.》

태의감이 임금과 그 식솔의 병치료도 맡아했다면 상약국과 다방은 그들이 쓰는 약을 짓는 관청이였다.

《짐은 의과시도 그대에게 맡기겠노라. 그리고 의과급제자들을 재주에 따라서 7품이 아니라 그보다 높은 벼슬에도 오르도록 하겠소.》

임금이 그런 말을 한것은 백여년전에 의과급제자들의 벼슬을 7품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그때뿐이고 리상로와 같은 의원들은 재상으로까지 출세하였었다.

사실 임금은 설경성에게도 리상로처럼 크게 써주겠다는것을 암시한것이였다.

그를 모르지 않았으나 설경성은 벼슬에 마음이 없는 사람이였다.

《성상페하, 왕후마마의 병시중을 드는 을나는 탐라태생이오이다.》

설경성의 두눈에 눈물이 고여올랐다.

몇해전 을나의 고향마을에 달려든 원나라 목자(말을 키우는 목자라고 하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군사들이였다.)들이 집들을 불지르고 마을을 양마장으로 만들었다.

한지에 나앉은 마을사람들이 산골짜기로 쫓겨들어가 죽지 못해 살고있다는 소식에 설경성도 을나도 눈물을 흘리였다.

탐라에서 원나라 목자들이 우리의 백성들을 해치고있소이다. 나라에서 그놈들을 엄히 다스렸으면 하나이다.》

그 말에 임금도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서북면과 동북면의 강토를 차지하고도 모자라 탐라까지도 빼앗아가지려고 악을 쓰는게 원나라조정이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강토수복의 령을 내려 군력으로 원나라침략군을 쳐몰아내고싶다만 전란의 피해를 가실 때까지 참아야 했다.

때를 기다리는 임금은 수차에 걸쳐 대도에 사신을 보내여 원나라의 강토인듯 동녕부를 설치한 서북면과 동북면을 내놓을것과 탐라에서도 그들의 말목장을 끌어내갈것을 요구했었다.

목소리가 높아지면 주먹이 오가기마련이다.

고려라는 나라만은 힘으로도 굴복시킬수 없는 강적이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얼마전 원나라조정은 탐라의 말목장을 고려에서 관할하라는 국서를 보내여왔다.

하지만 서북면과 동북면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손탁이 세고 용맹한 장수를 탐라에 보내리라 결심한 임금이 입을 열었다.

《다음은 또 뭔가?》

《예, 탐라에는 문둥병을 앓는 병자들이 많소이다. 나라에서 그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돌봐주면 병도 고치기 헐하고 병이 퍼지는것도 막아낼수 있소이다.》

《그건 념려말라. 나라에서 문둥병자들을 돌봐주라는 어지를 내리겠노라.》

설경성은 그렇게도 암담하게 여기던 골치거리가 쉽게 풀리는 바람에 기분이 붕 떴다.

이제 어지가 떨어지면 그 즉시 제자들을 탐라에 보낼 생각이였다.

탐라에 보낼 적임자로는 그곳에 대풍자를 가지고 갔던 김석이 좋을것이였다.

앉아있기가 갑갑한지 임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설경성도 따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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