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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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갱핏하고 성미가 날카로와보이는 최참모는 팔로 턱을 고이고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예전처럼 마당으로 독립군사병들이 분주히 왔다갔다 하였다. 눈에 익은 그들의 모습이건만 이날따라 유독 그의 시선을 자극하였다. 유격대의 외모와 대조를 이루어 자기 사병들이 매우 초라해보이였는데 차림새도 그렇지만 우선 사병들의 행동에 활기가 없었다. 이 사태를 놓고 량세봉은 어떻게 평가를 내릴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다소 우울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시기심이 일어날 정도로 유격대는 훌륭하였다. 규률이 있고 정신이 높고 투지가 왕성하다. 마을사람들은 유격대를 환영하여 저마다 저희 집으로 데려가지 못해 야단을 한다.

유격대는 가는데마다 군중들과 혼연일체가 된다. 뜨락을 쓸고 물을 긷고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 김을 맨다. 병자가 있으면 밤을 새며 간호를 하고 약을 구하러 먼길을 떠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아침저녁으로 높이 구령을 치며 교련을 하고 나팔을 불고 말을 달리고 층층좌하들이 분주히 오고가고 하지만 하나같이 신심이 적고 무엇엔가 지친듯 하고 인민들은 그들이 나타나면 피하고 꺼려하는것이 완연하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는데 이것은 벌써 대세가 기울어졌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청년들을 대오에 부르고 간데마다 군자금거출을 호소하며 무기구입에 나서고 계몽도 하고 불의를 치기 위해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등 쉴새없이 그 무엇인가 하고는 있건만 대오는 불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줄고 규률은 탕개가 늦춰지고 사람들은 주눅이 들었다.

최참모는 간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였다. 황참모는 처음부터 유격대를 달가와하지 않았다. 부대에는 참모가 두명이 있었는데 사실 등급에서의 차이는 없었지만 황참모는 공공장소에서 자기가 최참모보다 반급 높은 사람처럼 행세하였다. 례하여 회의장소에 나갈 때면 황참모는 항상 량사령의 뒤에 딱 붙어서서 나갔으며 또 거의 모든 회의의 사회는 그가 집행하였다. 하여 주둔지 백성들은 물론이고 부대의 병사들속에서도 그를 부사령처럼 생각하는 흐름이 생기였다.

최참모는 나이도 자기보다 썩 우이고 또 총을 들고 싸운 년한도 퍽 오랜 황참모여서 될수록 그런것을 못 본적, 못 들은척 했지만 일단 로선이나 전략과 같은 문제에서 의견상이가 돌출될 때면 같은 참모의 자격으로 맞부딪치군 하였다. 하여 황참모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량사령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쁜 소리를 여쭌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 황참모가 자기보다 더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공산주의자들이였다. 그는 공산주의라고 하면 닭의 살이 되여 채머리를 떨었다. 그것은 마치 옻을 잘 타는 사람이 옻나무란 말만 들어도 펄쩍 뛰는것과 같았다. 그는 반일인민유격대도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이라는 그것때문에 아예 머리를 저었다. 실태가 어떻게 되여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는 방안에 들어앉아 큰소리만 탕탕 친다.

량세봉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두고보자고 한다. 도량이 크고 드놀지 않는 주견이 있으니까 두고보아야 알겠지만 이 기회에 유격대와 손을 잡느냐 마느냐 하는데 따라 독립군의 운명이 좌우될수도 있는것이였다.

생각다못해 최참모는 자기 집을 나서서 량세봉을 찾아 떠났다.

최참모가 대문안에 들어서자 황참모와 함께 마루에 나앉아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있던 량세봉이 마침 잘 왔다고 하였다.

몇마디 말이 오고간 다음에 최참모는 황참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직방 들이대였다. 그는 약간 앞으로 내밀려 고집스러워보이는 턱을 들고 실정을 조리있게 말한 다음 자기 의향을 덧붙였다.

《저는 사령께서 이런 하정을 참작하시여 유격대와 손을 잡을뿐만아니라 튼튼히 잡을 결심을 가지실 필요가 있다고 보는것입니다. 이대로 끌면 우리는 서리를 기다리는 마가을 초목이나 같은것이 될것입니다.》

최참모! 사령좌하앞에서 그 무슨 말씀을 그렇게 경솔하게 하시오? 아무리 자아를 혹평하기로서니 서리맞은 초목에 비기는건 너무하잖소? 우린 다 죽은것이나 다름없다 그 소리요? 천만에요. 우리는 건재해있지 않소. 최참모는 우리가 최근에 몇번 실패를 거듭했다는걸 념두에 두고 매우 울적해진 모양인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력사에는 나라의 흥망성쇠도 저 앞산줄기같이 곡절이 많고많다는걸 보여주는데 나라의 대사를 이루자는 사람이 어찌 그 정도의 실패에 의지를 잃겠소.》

몸이 실하고 앉음새부터 듬직한 황참모는 량세봉의 기분을 살펴가며 기분과 억양을 조절해나간다.

그는 일단 최참모를 눌러놓고 자기 견해를 내놓았다.

사령좌하께서 이번 공산군대와 만나셔서 사업을 처리하실 때 꼭 참고로 하여주실것은 온 거리를 피로 물들인 흑하사변을 잊지 말아줍시사 하는 그것입니다. 재작년에 있은 〈5. 30폭동〉이라는것도 기억하실 필요가 있고. 공산당치고 우리 민족주의자를 반대하지 않은적이 없다는것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령께서도 아시지만 공산주의라는것은 원래 민족주의와 반대됩니다. 그들은 마치 민족주의자들때문에 혁명이 안되는것처럼 말하고있습니다만 그들은 국제주의를 주장합니다. 자기 겨레, 자기 민족, 자기 동포와는 관계없이 만국의 프로레타리아만 주장합니다. 우리 조선이야 어디 프로레타리아가 그리 많습니까? 그것이 다 자본주의에서 하는 소리고 우리 봉건제도하에서는 맞지도 않는 소리입니다. 구체적으로 례를 들어도 그렇습니다. 1925년에 나왔던 조선의 공산당이 왜 없어졌습니까? 국제당은 그래도 역시 현명합니다. 조선에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가 적합하다는걸 반중하는거지요. 여태까지의 조선공산주의운동은 우리 민족주의보다 더 어지러운 종파싸움입니다. 〈당재건〉이요, 〈당복구〉요 하며 살판치는것을 보십시오. 장황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의 의견이 좌하께 다소라도 참고가 된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황참모는 한뽐이나 되는 상아물부리에 담배를 갈아대며 입가에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마귀가 벗어져올라간 량세봉은 고개를 들고 너털웃음을 한참 웃었다.

최참모나 황참모의 말씀을 충분히 참작하겠소. 그러나…》

량세봉은 《그러나》 해놓고 뒤말을 인차 이어대지 못했다. 량편의 말이 다 옳다. 그러나 어느 편에도 전적인 동의를 표시할수 없는것이 그의 립장이였다.

량세봉은 담배를 빨면서 되도록 대범해지려고 하였다.

《손을 잡아야 하지요. 우리가 무엇때문에 그것을 주저하겠소? 어쨌든 지금 우리의 형편이 이대로는 그냥 버티게 못되지 않았소. 내가 오직 하나 믿는바는 김형직선생님의 자제분이 우리가 알고있는 그런 공산주의자는 아닐것이라는 그 점이요. 이제 당신네들이 만나보면 내 말이 옳다는걸 당장 믿게 될거요.》

대문밖을 내다보며 그는 긴숨을 내쉬였다.

《마침 저기 김일성장군이 오시는구만.》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밖으로 달려나갔다. 뒤따라 최참모와 황참모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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