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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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용이네가 숙소로 정한 집은 식구가 여덟명이나 되는 소작농이였다. 50이 채 되지 않은 원기왕성한 이 집 주인 독고령감은 작년까지 독립군에 있었는데 판국이 시시해진다고 본데다가 여기 있는 황참모와 의견충돌이 생겨서 뛰쳐나와 농사를 짓고있는중이였다. 그는 패기도 있고 경험이 있는 소대장이였다.

맏아들은 3년전에 공사판에 돈벌러 간 뒤로 소식이 없고 둘째아들은 여기 독립군병사로 있었다. 아들 하나를 독립군에 그냥 두고있는것은 해마다 두차례에 걸쳐 내야 하는 군자금부담에서 면제되기 위하여서이며 한편 독립군에 대한 일종의 미련과도 관련되여있었다. 그는 두 며느리가 있는 여덟식구의 가정을 강한 봉건적륜리로 얽어놓고 꼼짝 못하게 하였다.

유격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먼발치에서 독립군과 비교가 되지 않을만치 째인 대렬을 보고 대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지만 그뒤 공산주의자들의 군대가 틀림없을것이라는 풍문을 듣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 그건 아라사군대지 조선군대는 아니라는거겠지.…》

최칠성이 사랑방에 배낭을 들여놓는데 맏웃방에서 독고령감의 맞갖잖은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뜩이나 마음이 용한 칠성은 당황해서 굴뚝모퉁이로 달려나왔다.

기용동무, 우릴 보구 아라사군대지 조선군대가 아니라누만.》

《누가 그따위 소리 해?》

《쉬! 맏웃방에 이렇게 생긴 아바이가 앉았다.》

칠성이가 손가락으로 코밑에서부터 귀뿌리까지 쭉 메기수염을 그려보이였다.

《다른 집으로 갈가?》

《그런 못난 소리 하지도 마오. 우리 이렇게 하자. 이리들 오라구.》

어딘가 모르게 덜렁거릴사 하는 기용이는 옷매무시를 보고나서 부엌으로 들어가 주인어머니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맨웃방으로 올라갔다.

칠성이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세걸의 손을 끌고 그의 뒤를 따랐다.

《아버님, 인사 받으십시오.》

기용은 군모를 벗어놓고 조상례법대로 큰절을 하였다. 두무릎을 꿇고 벌렸던 손을 모으며 머리를 깊이 숙이는 모양이 어떻게나 정중한지 칠성이와 세걸이도 눈이 둥그래졌다. 뜻밖에 인사를 받게 된 독고령감은 고개를 숙일사 하고 두걸음이나 뒤로 물러나앉았다.

《아, 이런. 이거 원. 수고스레, 하!》

기용이 다음에는 칠성이와 세걸이가 같이 올라가 차례로 또 그렇게 절을 하였다. 그들이 건넌방으로 나왔을 때 랭수 한사발 보내라는 거쉰 고함소리가 또 울리였다. 주인어머니가 떠온 물대접을 받아들고 기용이가 또 올라갔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들이 호미를 들고 터밭에 나가 강낭밭 김을 맬 때 독고령감은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내다보았다.

공산당인데두 사람들은 점잖은게 례절도 밝구만.》

《아니, 저 사람들이 아라사는 무슨 아라사라그럽네까? 난 여직 살면서 조선절하는 아라사군대가 있단 소린 들어보질 못했수다.》

몸집이 실한 그의 안해 밀양박씨의 불만이다.

《허! 김매는 솜씨두 한다하는 농군보다 나아. 강낭밭 김은 저렇게 북을 우쩍우쩍 춰올려야 해.》

칠성이의 실농군다운 호미질솜씨에 혀를 두르던 독고령감은 대통을 뽑고 공연히 몇번 기침을 하였다.

기용이가 호미질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언제나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기마련인 세걸이도 밝은 목청으로 노래를 받았다.

널다란 터밭 한뙈기를 한참동안에 다 매버린 그들은 그 건너편 밭으로 옮겨갔다. 독고령감이 늘 범이 새끼치게 됐다고 하던 그 강낭밭에서는 다섯명이 이랑을 타고 호미질을 하고있었다. 자성집이라는 가호를 가진 그 집에서는 별러오다가 오늘에야 품앗이군을 대였는데 세명은 젊은 아주머니이고 두명은 중년사나이였다.

능쟁이, 바랭이, 조뱅이, 메싹들이 두손으로 잡아뽑아야 할만치 크게 자랐다. 유격대원들은 김을 걸싸게 매였다. 그중에서도 칠성이가 제일 솜씨가 빠르고 뒤자리가 민틋하였다. 북을 올리는것도 그렇고 풀을 뽑아서 거꾸로 묻어나가는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들은 또 노래를 불렀다. 같이 김매던 사람들이 호미질을 멈추고 한참씩 노래소리를 듣군 하였다. 딱히 알수는 없지만 류성기에서 나오는 소리나 륙자배기 따위와는 전혀 다른것이였다.


자본가와 지주는 고대광실에 누워 먹고

로동자와 농민은 피땀 흘려 일하고


건넌밭에서도 허리를 펴고 넘겨다보았고 길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들었다.

그날 저녁 독고령감의 둘째아들 관욱이가 집에 들렸다.

《야, 너 유격대를 봤니?》

마루에 나앉았던 그는 호박덩굴이 기여올라기기 시작한 바자를 등지고 서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보다뿐입니까. 같이 이야기도 했는데요.》

《그래, 보니 어떻더냐? 너희 독립군보담…》

키가 크고 몸이 실한 관욱이는 화승대를 벗어서 마루에 세우며 벌씬 웃는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친구들이 유격대가 부러워 야단났다는겁니다.》

공산당인데두?》

독고령감은 진한 눈섭을 치켜올렸다.

글쎄말입니다. 우리 황참모는 입을 열면 밤낮 〈공산당은 나쁜 놈들이다. 리완용이는 나라를 왜놈한테 팔아먹었지만 공산당은 아라사에 팔아먹자고 한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척 보자 대번에 모두 눈이 둥그래지고말았습니다. 아버진 늘 말씀하셨지요. 겉볼 안이라구요. 깨끗하게 군복을 입고 허리를 질끈 동이고 교련을 하고 얼마나 볼만 한지 모릅니다. 총두 우리처럼 화승대가 아니고 왜놈들이 가진 38식입니다. 거지반 다 새거지요. 우리 량사령좌하는 늘 군자금을 걷어서 아라사에서 사온다, 체코에서 사온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이런 화승대나 토퉁, 양포따위뿐 아닙니까?》

《그래 유격대에선 그런 좋은 총이 어데서 생긴다더냐?》

《이야기만 들어도 막 가슴이 두근두근해집니다. 왜놈들을 치구 앗아냈다는겁니다.》

《그래! 그게 정말이냐?》

독고령감의 커다란 눈이 번쩍번쩍 빛을 내였다.

정말이다뿐인가요. 저기 뒤마을에 든 변인철이라는 제일 나이어린 대원을 내가 친했거던요. 그의 말을 들으면 참 유격대는 우리처럼 좌하요 뭐요 없이 모두 평등하게 동무라고 한다는겁니다. 유격대에서는 그들이 멘 매 자루의 총에는 동무들의 붉은 피가 스며있다고 한답니다.》

《그럼 유격대 있는데서는 여기처럼 군자금을 봄, 가을에 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여부가 있나요.》

《그러면 유격대가 공산당이라는건 필시 헛소문이겠다.》

《공산주의를 하긴 한대요.》

《그래? 그것 참 알수 없는노릇이다. 공산당이면야 그럴수 없겠는데…》

그때 칠성이가 호미를 들고 울바자모퉁이를 돌아섰다.

《유격대가 한달만 와있으면 우리 농사는 허리를 펴겠네요.》

《부하들이 이쯤하니 웃어른들이야 더 말할것 없겠지. 이러쯤 하구서 독립을 시킨다, 나라를 찾는다 해야 누구나 곧이듣지. 하기야 너희들도 사람이야 못나지 않았지. 웃대가리에 썩은것들이 잔뜩 들어앉았으니 그렇지. 하긴 그런것들을 데리고 독립을 찾겠다는 량사령이 골치를 앓게 됐다.》

독고령감은 큼직한 구리대통에 담배를 또 무드기 쟁이며 물었다.

《그래 대관절 유격대가 여기에 왜들 왔다더냐?》

《우리와 손을 잡고 왜놈을 같이 치자고 왔다고 합니다. 그래야 독립을 빨리 가져올수 있다는겁니다.》

《그런데 누가 대장이라더냐?》

김일성장군님이시라고 합니다.》

독고령감은 다시한번 눈이 커져서 장군님의 존함을 두세번 입속으로 외워두었다.

《그대 장군님을 네가 뵈웠느냐?》

《못 봤습니다.》

《환영하러 동구밖까지 갔었다면서?》

《그렇지만 장군님 같으신분을 못 봤습니다.》

《눈에 띄는 좋은 말이나 금술이 달린 가마가 오지 않았어?》

《모두 걸어왔습니다.》

《그중에 나이 잡수신 어른이 안계셔?》

《다 청년입니다.》

그거 참 이상하구나. 장군님이야 나이도 드셨을게고 몸차림도 다 비범하실테니 선뜻 눈에 뜨이겠는데…》

《하기야 모르지요. 우리 량사령두 몸집이 그렇게 큰 축은 아니잖습니까?》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렇게 주접이 들어 몰리고있는거다. 무슨 일을 하자면 남 보기에도 그럴상싶은 틀이 좀 있어야 한다.》

아들은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그대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저녁상을 물리고나서 독고령감은 마루에 나앉아 유격대원 셋을 다 좀 만나자고 하였다.

기용이가 마루에 나앉고 뒤에 둘이 붙어앉았다.

《다름이 아니라 내 좀 알고싶은 일이 있어서 그러니 량해하시오.》

독고령감은 목을 꿋꿋이 세우고 대통에 담배를 쟁이며 점잖게 입을 버렸다.

《군대어른들의 대장이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데 그분에 대해서 좀 자상히 말씀해주시오. 본은 어데고 고향은 어데인가, 년세는 어떻게 되였으며 부모님들은 무엇을 하시는가. 그리고 학식, 경력 같은것을 다 좀 들려주시오.》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칠성이가 말을 떼였다. 말재주로 보면 기용이가 훨씬 나았지만 장군님의 래력에 대해서는 칠성이가 셋중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칠성은 박흥덕에게서 들은 이야기며 여러 지휘성원들에게서 들은것과 자기가 글을 배우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길림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야기는 기용이가 보태였다.

묵묵히 앉아 담배만 빨고있던 로인은 이야기가 다 끝나자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다.

됐소이다. 말만 들어도 흐뭇하웨다. 조선을 건질 훌륭한분이 나신가보웨다. 그런데 내 좀 그분을 만나뵈올수 있을가요?》

《네! 장군님께 곧 말씀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이 밝자 그들은 길 떠날 차비를 하였다.

전광식이 세밀하게 짠 계획에 따라 네댓명씩 조로 갈리워 이 근방 수십리 지역에 군중정치공작을 떠나는것이다.

세명의 대원들은 각각 딴 방향으로 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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