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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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원들은 보무당당히 걸어들어갔다.
맨 선두에는 차기용이 붉은기를 들고 활기있게 걸었다. 기폭이 날리면서 그뒤에 붙어선 차광수의 어깨를 스치였다. 차광수뒤에 대원들이 두줄로 늘어서서 활개를 쳤다. 하나같은 군복차림에 모두다 보총을 메였다. 박흥덕이 어떻게나 잔소리를 하였는지 어느 누구도 흠잡을데 없이 외모가 단정하고 끌끌하였다. 스무나문살 안팎의 청년들인 그들은 얼굴이 모두 불깃불깃하였고 눈에서는 밝은 빛을 내였다. 온몸에서는 청춘의 정열이 흘러넘치였다. 정보로 걷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막 가는것도 아닌 알맞춤한 걸음걸이였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발걸음이 맞고 렬이 보기 좋게 잡혀있었다. 대렬에서 약간 뒤떨어져서
유격대원들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보내였다.
거리의 널바자에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조선독립 만세!》 등 구호를 써붙였다.
량세봉은
《여보!
량세봉은 대문에 들어서면서 안에다 대고 고함을 쳤다.
부엌문이 열리더니 머리를 쪽진 중년녀인이 달려나왔다.
《먼길을 오시기 수고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랑 다 무고하십니까?》
오래전부터
그리 크지 않은 정갈한 3간집인데 살림이 검소하고 단출하였다. 웃벽에는 그의 수수한 군복 한벌이 단정하게 걸리고 벽장에는 남이장군의 시 한수가 쓰인 족자가 보기 알맞춤한 높이로 걸려있었다.
량세봉은
《세월이 류수같다는걸 이를 두고 하는 말인것 같소. 내가 무송에 아버님상고를 치르러 갔던것이 어제인듯 한데 벌써 해수로 7년세월이 흘렀구만. 아무튼 이렇게
량세봉은 감회깊게 옛일을 회상하면서
량세봉은
그는
《아버님께서 계셨던들 우리의 독립운동이 이렇게까지 만신창이 되지 않았을거요. 보오, 지사들은 제뿔내기로 흩어져가고 독립세력은 차차 쇠잔해가고있소. 그런가 하면 종잡을수 없는 무슨 주의자들이 가는 곳마다 떠들어대기만 하지. 이런 판국인데 독립운동이 어떻게 잘되겠소.》
수심에 잠긴 그의 얼굴이 창문으로 비쳐든 해빛을 받아 누렇게 빛났다. 창끝같이 기다란 눈섭이 꽉 다물린 입과 어울려서 험난한 생활을 이겨내고있는 그의 의지를 잘 나타내였다.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량세봉은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아버님께서는 항상 우리들에게 지원(志遠)에 대하여 말씀하셨소. 그때는 미처 다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그 말씀이 천금같은 교훈을 주고있다는것을 다시 느끼게 하오. 선생님께서는 조국광복을 하자면 전민족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늘쌍 말씀하셨소.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직접 조선국민회도 내오셨고 그밖에 우리 백의민족이 하나로 뭉칠 많은 조치를 취하셨는데 지금은 선생님의 뜻을 이었다고 할만 한 아무것도 없소. 무슨 〈부〉요, 무슨 〈단〉이요 하는것들이 발길에 채울만치 사처에 널리고 그것들이 합친다 어쩐다 하는것도 명색뿐이지 유야무야요. 이런데다 왜놈들은 더욱 악착하고 간교해졌지. 슬픈 일이요. 나는 지난달 초여드레날 심양에 둥지를 튼 관동군 〈토벌〉대에 맞다들어 부득이 퇴각을 하였소. 왜적은 비행기와 장갑차를 들이몰고 속사포를 쏘는데 하는수 있소? 강약이 부동이거던. 앞으로 밀고나가도 독립이 될지말지 하는 판에 뒤걸음질해야 했던 이 가슴이 어떠했겠소? 눈에서 피가 솟을 지경이요. 전장에서야 승이 아니면 패가 아니요. 패한자는 요행 적의 칼을 면했다 하더라도 마땅히 제 손으로라도 제 목을 베야 옳은것이지. 그러나 나는 그렇게도 못하였소. 이런것이 다 우리가 아버님의 령솔을 받지 못하기때문이요. 선생님께서 우리곁을 떠나시자 우리 독립운동자들은 부모를 잃고 의지가지할데 없는 고아처럼 돼버렸소. 누구도 돌보는 사람이 없지. 참으로 천도가 무심하오. 우리같은 용렬한것들은 이렇게 허다히 살아있는데 유독 선생님께서 그렇게도 일찍 돌아가실 일이 무엇이란 말이요? 천하사를 사람의 뜻대로는 못한다고하는 소리가 바로 이런데 있을것이요.》
방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쉬는 량세봉의 눈굽에는 맑은것이 번쩍하였다. 잠시후 그는 자기로서도 너무 흥분했다는것을 알았는지 자세를 고치고나서 장지문을 열었다.
《여보! 뭘 좀 들여오구려.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이 자리가 이렇게 맹숭맹숭해서야 되겠소?》
부엌에서는 그릇소리와 함께 량세봉의 안해가 잠간만 기다려달라고 사정을 한다. 량세봉은 그 무엇인가 공허를 느끼고있는 이지러진 성품으로 변한것 같았다.
그들을 구원해서 반일의 길에 힘있게 들여세워야 한다.
저녁상을 물리신 후
《과시 옳은 말씀입니다. 아버님의 유지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 손을 잡아야지요.》
덧붙여서 량세봉은
하기는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량세봉은
손을 잡아야 한다는데 대하여 흔연히 동의는 하였지만 무엇인가 자기와 다른것이 뒤를 잡아당기는것을 느끼였다.
《손을 잡읍시다. 그런데 자상한것은 래일 또 만나 의논하기로 합시다. 나도 더 생각해보고 또 나로서도 경솔하게 단독으로 처결할 일이 못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