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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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는 그동안 천여리를 행군해왔다. 천상데기를 떠나서도 옥바위골을 거쳐 압록강줄기를 따라내려가면서 여러곳에 들리였다. 벌써 영안과 로령을 지나 바위산을 넘었다.
통화가 멀지 않았다. 이제 고작해서 하루나 이틀이면 량세봉이 있는 독립군지대에 들어서게 될것이다.
통화를 중심으로 류하, 해룡, 휘남 그리고 더 밑으로 내려가서는 흥경, 청원, 환인에 이르기까지 활동범위를 넓혀야 한다. 그리고 북쪽으로 올라와 몽강, 화전 등지를 포함한다면 그것은 두만강지구전체를 포괄한것만 한 넓은 지역이다. 이미 소사하에서 목표를 세웠지만 이 지대는 독립군들의 영향이 크며 또한 중국인반일구국군의 세력이 적지 않기때문에 그들과의 통일전선을 이룩하는것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로농동맹에 기초하여 각계각층의 반일민족통일전선을 이룩하는데 있어서 독립군들과 손을 잡는것은 유격대를 장성강화하는것과 함께 큰 의의를 가진다. 그와 함께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정책에 대처하여 다른 나라 반일력량과 통일전선을 이룩하는것도 또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차광수는 이런 정치적 제문제들에 대하여 장시간에 걸쳐 해설을 하였고 금후 유격대원들이 독립군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중국인반일구국군들과의 관계에서 류의해야 할 점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특히 차광수가 력점을 둔것은 류하, 흥경, 해룡을 비롯한 여러 지구에는
부대는 우선 독립군들과 만나기 위해 량세봉이 있는 통화에 들어가야 하였다. 통화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원들은 이도강이라는 정서가 그윽한 골짜기에서 하루 푹 쉬게 되였다.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자그마한 내물을 끼고 숙영지를 정하였다.
숲속은 명절처럼 흥성거렸다. 삼삼오오 패를 지어 서늘한 나무밑에 앉아 이야기판을 벌리기도 하고 물밑이 말갛게 들여다보이는 맑은 내물에 나가 빨래도 하고 시원하게 미역도 감았다.
그늘진 나무밑에서는 박흥덕이 리발도구를 펴놓았다. 풀밭을 널다랗게 베버리고 가운데다는 나무토막을 세워 걸상이라는것을 만들었다. 이런 일이 있기만 하면 성수가 나게마련인 그는 나무통우에 최칠성을 앉혀놓고 보자기로 앞을 두르고 절커덕절커덕 소리가 나는 리발기를 대고 올리밀었다.
《깎는게 아니라 뽑지 않습니까?》
기계다리를 놀릴적마다 목을 흠칫흠짓 올리솟구던 최칠성은 참다못해 울상을 하고 한마디 하였다.
《잠자코 있소. 깎든 뽑든 새서방처럼 만들어놓으면 될거 아닌가. 이래뵈두 우리 마을에선 장가가는 신랑은 모두 나한테 찾아왔었다네.》
솜씨도 여간 아니지만 말도 당해낼수가 없다. 박흥덕은 빗을 슬쩍 올려대고는 가위로 썩둑썩둑 잘라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근처를 지나는 동무들을 붙잡고 빠짐없이 잔소리를 하였다.
《박동무! 거 옷을 잘 빨아입어야겠소. 유격대가 너절하게 뵈서는 안되니까. 그리구 등판이 째진거 잘 깁지 못하겠으면 가져오우. 내 녀자들보담 낫게 바느질을 할수 있으니까.》
또 다른 동무에게는 《동문 거 신을 좀 손질해야겠소. 내 배낭에 삼노끈이 있소. 양산살로 만든 송곳도 있구…》 이런 투로 잔소리를 하는것이였지마는 그 누구도 군수관의 지적을 시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하나 할것 없이 모두 적절한 지적인데다가 비록 작은것이라 할지라도 박흥덕의 도움이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것들이기때문이였다. 가뜩이나 동작이 조잡한데다가 이것저것 간참을 하다보니 리발이 잘될리가 만무하였다. 코등에 땀이 송골송골 내돋은 박흥덕이도 그것을 느꼈음인지 한참씩 가위질을 하다가 둬걸음 뒤로 물러서서 고개를 젖히고 머리모양을 살펴보군 하였다. 오른쪽이 너무 올라간것 같아 왼쪽을 올리추니 이번에는 바른쪽이 또 올라간것 같았다.
팔을 걷어올린 박흥덕은 코를 킁킁 울리며 분주히 돌아갔다.
《오래간만에 가위를 드니까 잘 안되는구만…》
정도이상 올리추게 된것을 그는 슬쩍 변명하는것이다.
《어쨌든 빨리 해주십시오. 정 더워죽겠습니다.》
《그럴수 없지. 뭐나 다 맺고끊듯이 철저히 해야 하니까. 잘못하면 독립군친구들이 우릴 보고 웃을거 아니요.》
《독립군을 만나서는 통일전선을 한다지요?》
《그래, 그들에게 영향을 주자는거요. 한마디로 말해서
《걱정입니다, 전 아는것이 없어서.…》
《알고 모르고가 있소? 동무나 내나 다 머슴이였으니까. 유격대에는 우리와 같은 압박과 착취를 누구보다 많이 당한 사람이 들어있다는것과 우리가 끝까지 왜놈들과 싸워이길 각오가 있다는걸 보여주면 되지. 독립군병사들도 우리와 같은 농민이라고
그들은 이제 만나게 될 량세봉부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였다.
《이젠 다되지 않았습니까?》
《가만 좀 있소. 이제 면도를 하면 되오. 독립군들앞에서 규률도 보여주어야 하지만 우리 유격대가 한결같이 외모도 깨끗하고 문화성도 있다는걸 보여야 하니까.》
말이 막힌 최칠성은 목을 잔뜩 뽑아들고 빨리 끝내기를 기다렸다. 그의 이마에도 땀이 솟고 박흥덕의 얼굴도 번들번들해졌다.
한편 개울가에 나앉은 바위등에서는 세걸이 무엇을 하느라고 허리를 굽히고 씨근거렸다. 웃동을 벗어서 벌건 어깨가 드러난 그는 베개통같은 돌을 들어올렸다가 내리치군 하였다. 그러면 가래나무뿌리가 토막이 나기도 하고 찢겨지기도 하였다. 돌등에는 벌거죽죽한 물이 지절지절 흘러 괴였다.
그는 숙영한다는 소식을 듣자 곧 숲을 뒤져서 물곬을 보고 가래나무를 찾았다.
그는 가래나무뿌리를 캐면서 이제 저녁때가 되면 팔뚝같은 산천어를 섬으로 들어내게 된다고 장담하였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와 패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그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더 좋았다. 불의에 《자, 다들 보시오.》하고 놀라게 할 판이였다. 그는 턱밑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문대고는 또 돌을 들어올려 내리치군 하였다. 한번 만나서 몇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곧 너나들이사이로 되는 그였다. 입대하여 불과 며칠 안되는데 벌써 모르는 사람이 없고 또 그만치 자기도 털어놓았다. 어려서부터 로동판에서 찌들은 그는 모르는것이 없었고 거칠면서도 령리한 축이고 과감하였다. 손재주도 대단하였다.
그는 무슨 수로든지 전체 대원들이 세걸이라는 신대원을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도록 기발한짓을 하고싶었다.
《동무는 거기서 무엇을 하고있소?》
그는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저… 고기잡이를 하댔습니다.》
땀이 내돋은 얼굴을 들고 활발하게 대답하면서 웃옷을 주어입고 차렷자세를 하였다.
《고기잡이? 음-가래나무뿌리군. 그런데 그걸 동무 혼자서야 해낼수 있겠소?》
《할수 있습니다. 이제 저 웃목에 가서 동막이를 하면 됩니다. 잡는건 다 달라붙으면 됩니다.》
이렇게 되자 세걸은 한층 더 신이 났다. 진봉남이가 큰소리를 치면서 차광수와 함께 곰을 잡으러 간것이나 또 산삼을 캔다면서 떠난 패들에 비하면 자기 하는 일이 월등 중요하고도 보람찬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물계는 환하지만 덤비는 축인 그는 이것저것 순서를 헛갈리면서 나무가지로 엉성하게 틀어놓은 삼태기에 가래나무뿌리를 주어담기도 하고 또 큰 토막을 도끼로 쪼개기도 하면서 일을 서둘렀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허리를 펴고 발을 모으면서 입을 열었다.
《뭐요?》
《한가지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말인데 그렇게 심각해졌소?》
《별것이 아닙니다.》
《어서 말하시오.》
심각해질 때는 금방 턱밑에 고드름이라도 달릴것처럼 얼어드는 그였다. 고개를 드신
《저에게 열흘만 어데 갔다올것을 허락해주십시오.》
《열흘동안 어데 갔다오겠다?! 그건 어째서?》
《어데 가서 총을 한자루 구해와야 하겠습니다. 저는 입대하면 총을 내주는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왜놈들한테 가서 뺏어와야 한다고 합니다. 박흥덕동지 말은 총이 생길 때까지 작식대원을 하면 된다지만 저는 총이 꼭 있어야겠습니다.》
《그래 열흘이면 구해냄즉 합니까?》
너무 엉뚱한 말을 들으신
《총이 있는것을 보기만 하면 제 손에 넣을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저 슬쩍 들고올수도 있고 제끼고 벗길수도 있습니다.》
《그렇소? 맨손으로 해낼수 있을가?》
《할수 있습니다. 이전에 하나 앗아냈던건데 분질러 내팽개쳤습니다.》
《이전에 총을 얻었댔다?!》
《네! 리명수목재판에서 제가 벌목로동할 때 감독놈이 일을 잘 안한다고 때리길래 그놈을 닁큼 들어 물동에 처넣었던것입니다. 이튿날 왜놈순사가 총을 메고 잡으러 왔습니다. 그래 숲속에 숨었다가 날쌔게 달려들어 총을 뺏어서 돌등에 내리치니 뚝 부러졌습니다. 그걸 숲속에 뿌려던지고 그길로 천상데기로 도망쳐갔댔습니다. 정 구하지 못하면 이제라도 가서 부러진 그걸 찾아서 고쳐올수 있습니다.》
《하하하.》
그런 후에도
대원들은 하던 일을 집어던지고 강으로 달아나갔다. 물방치만 한 산천어들이 희뜩희뜩 뒤넘이치면서 떠내려왔다. 물우가 허옇게 고기로 덮였는데 아직 덜 취한것들은 여울로 꼬리를 치면서 기여나왔다. 박흥덕은 옷을 입은채로 뛰여들어 두손으로 고기를 퍼 언덕에 내쳤다. 웃옷을 벗은 변인철은 련어를 타고 앉았다가 그놈이 푸들쩍하고 용을 쓰는 바람에 뒤로 벌렁 자빠지면서 말새끼만 한것을 놓쳤다고 고아대였다.
매사에 실속이 있는 차기용은 팔뚝만 한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얼쳐서 왔다갔다 하고있는 고기대가리를 닥치는대로 조겨대였다. 한대씩 얻어맞은것들은 자갈밭에 들어내쳐도 맥을 추지 못했다.
《또 잡았다!》
《저기 큰거 내려간다, 저기…》
《몽둥이로 쳐라, 되게 쳐라.》
《들어팽개쳐라.》
《여기 또 있다-》
숲이 떠나갈듯 하였다. 웃동을 벗어 벌건 가슴이 드러내놓이고 다리를 버쩍 걷어올린 세걸이 범이라도 쫓는것처럼 팔을 벌리고 우우 하며 물을 따라 달아내려왔다.
《10분만 지나면 다 깨서 달아난다! 빨리 건져라, 빨리!》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쳤다. 워낙 이런 일에 질군인 그는 고기를 발로 차서 내뜨리기도 하고 미리 준비한 걸이대처럼 생긴 나무막대기로 훌훌 뚱기쳐 팽개치기도 하였다. 한번 훌쩍 들어올리면 허연것이 언덕에 하나씩 나딩굴군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세걸이가 장담한대로 저녁에는 대원들이 생선국을 실컷 먹게 되였다. 십여명이 개울가에 늘어앉아 고기밸을 땄다. 그때 저쪽 숲속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진봉남이와 차광수가 기다란 멜채에 곰 한마리를 잡아 쌍목도를 해메고 물을 건너오고있었다.
《잡았구만!》
《하하하.》
《이거 몸나겠는데, 곰고기에 산천어탕이라, 흐아흐아흐아.》
바지를 적시면서 쩜벙쩜벙 물을 건너간 최칠성이 차광수의 멜채에 어깨를 들이밀었다.
《수고했습니다.》
《약간 좀 고생했지.》
요진통에만 효과있게 롱을 하는 진봉남이 말을 받으면서 멜채가 부러지지 않게 잘 걸으라고 하였다. 중소만 한 곰의 등이 물에 반이나 잠겨 풀언덕으로 올라왔다.
다시한번 환성이 일었다. 그후 진봉남이 최칠성에게 귀띔한데 의하면 차광수는 고기보다도 곰열을 구하자는것이라는데 그것은
저녁식사시간이 되였다. 그릇마다 산천어가 척척 가로놓이였다. 기쁨에 어린 얼굴들이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별맛이구나, 젠장!》
《산천어국은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른다면서?》
《산천어 굽는 냄새엔 나갔던 며느리도 되돌아온다나.》
《누가 이런걸 생각해냈어?》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을 하고 손발이 부지런하면 입이 호강을 한다는 말이 있잖나?》
《그런데 왜 박흥덕동무가 뵈잖나?》
《말마오. 리발을 하다가 그냥 물에 뛰여들어서 빗과 가위를 잃었다는거요.》
제일 점잖은것은 세걸이였다. 그는 말을 하지 않고 벌씬벌씬 웃기만 하면서 동무들이 좋아하는 모양을 바라보고있었다.
《이제 한달만 더 있으면 동무가 어떻게 총을 구해야 하겠는지 알게 될거요. 총을 꺾어버린 사람이 이제 와서 성한 총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는것처럼 말이요.》
올방자를 틀고있는 세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