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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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이 누운 들것은 산마루와 골짜기를 빠져 줄곧 북쪽으로 흘러나갔다. 리동천은 깜박깜박 의식이 잃어지군 하는것을 겨우 참아나갔다. 눈을 뜨면 별이 총총한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반나마 이지러진 그믐달이 소나무사이를 헤염쳐갔다.
숨이 차서 가슴이 높이 오르내렸지만 동천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식하지 못하였다. 들것이 흔들리는대로 몸을 실어버린 그는 매우 평온한 마음으로 이제 멀지 않아 영평에 이르게 되고 거기 가기만하면 약도 바르고 치료도 할수 있을것으로 알았다.
그의 생각은 그것이 전부였다.
동천이의 침묵은 리광에게 오히려 더 큰 불안을 일으켰다. 실성한 사람처럼 된 그는 들것을 메고 가면서 이따금씩 동천의 동정을 살폈다. 너무 조용해지면 발을 흔들어 깨워보군 하였다.
《동천이! 동천이!》
《왜 그러세요? 난 아무렇지 않은데…》
《정신 차리라구, 응?》
《내 걱정은 말어요. 그런데 나 물…》
《참소. 이제 좀 가면 돼!》
그런 다음에는 또 조용해지군 하였다. 리광은 마치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된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얼굴에서 땀이 철철 흘렀다.
돌과 나무그루에 걸려 걸음이 되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걸채이지 않는 때도 오금이 꺾여 걸음을 똑똑히 옮겨놓을수 없었다.
박기남은 계속 들것 앞쪽을 메고 숲을 가르며 급히 걸어나갔다. 바지가 찢어져 무릎이 들내놓이고 돌부리를 차서 신바닥에 피가 내배였다. 지동무도 역시 말이 없었다. 들것을 교대해서 메고나가는 때가 아니면 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형편이였다. 들것에 말없이 누운 동천이가 이미 숨이 진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 앞서 그는 양동무와 마주서서 들것을 부축해나가면서 계속 눈물을 떨구었다. 한날 한시에 리광을 찾아가 유격대에 입대한 그들이였다. 리동천은 본래 회령에서 살았다. 두만강기슭에서 부대기를 일구던 그의 아버지는 산림간수들에게 붙잡혀가서 매를 맞고 나와 1주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모시고 세형제가 이곳 영평에 온것은 두해전이다. 그럭저럭 머슴도 살고 농사도 지은 그는 머리가 영민한탓으로 국문을 빨리 깨치고 공청에도 남먼저 들었다. 무슨 일에나 이악했고 끝을 맺고야마는 성미였다.
《동천이!》
대답이 없다. 가슴이 철렁한 리광이 손을 뻗쳐 동천이의 발목을 쥐여보았다.
《동천이!》
《왜 그러세요?》
《좀 참으라구. 이젠 거의다 왔어!》
이제 고개를 두개 넘고 골짜기를 빠져나가면 영평지역에 들어서게 된다. 날이 환히 밝아 나무우듬지들이 하늘과 뚜렷한 계선을 이루며 드러나고 골짜기에 안개 흐르는것이 보이였다.
모두다 입을 다물고 묵묵히 걸음을 빨리 내뗐다.
《리광동지!》
리광은 전기에 닿은것처럼 흠칫 놀랐다. 동천이가 부른것 같아 고개를 들고 내려다보았지만 동천이는 그린듯이 누워만 있다.
이윽해서 또 《리광동지!》 하고 불렀다.
분명히 동천이의 입이 움직이였다.
《좀 놓읍시다.》
리광은 들것을 풀숲에 놓고나서 무릎을 꿇고 얼굴을 동천에게 가져갔다.
《동천이, 왜 그래?》
《리광동지지요? 내가 뺏은 총이 있습니까?》
눈을 감은채로 손을 내들었다.
《있소. 여기 있소. 동무가 앗아낸 총이 여기 있소.》
지동무가 어깨에 메였던 총을 벗어서 리광에게 넘겨주었다. 리광은 그 총을 가로세워 동천이의 가슴우에 갖다대였다.
《자, 여기 있소. 동천동무, 여기 있다니까.》
손을 끌어다 총가목에 대주자 동천이는 약간 부어오른것 같은 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다. 총가목을 그러쥔 동천이는 빛나는 시선으로 잠시동안 그것을 쳐다보더니 닁큼 허공에 들어올리는것이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동천이를 내려다보았다. 동천이의 눈은 초점을 잃고 방황하더니 드디여 하늘을 향해 추켜올린 총신에 가멎었다. 그의 입술은 바르르 떨고 눈은 날카로운 빛을 뿌렸다.
《야! 분하구나. 이 총을 메고
목안으로 기여드는것 같은 숨을 겨우 톺아올리고나서 그는 나직이 한마디 더하였다.
《리광동지! 리광동지는
총이 털썩 가슴우에 떨어지고 동천이는 눈을 스르르 내리감았다. 다음은 몸을 한번 떨더니 다시 잠든듯이 침묵해버리고말았다.
《동천이!》 리광에 뒤이어 박기남이 또 동천이를 불렀다.
동천이는 대답이 없다. 지동무도 양동무도 불러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동천이는 갔다. 리광은 동천의 몸을 부둥켜안고 와들와들 떨었다.
《동천아!》
《동천이!》
급격히 체온을 잃기 시작한 동천이를 네사람이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었다. 울음소리는 려명이 물들기 시작한 골짜기를 흔들었다. 리광은 금방 눈을 뜨고 《내 총!》하고 손을 내밀것 같은 동천의 얼굴을 만지면서 눈물이 흐르는 볼을 문대였다.
《야, 동천아! 네가 죽느냐? 어? 네가 왜 죽어?》
가슴을 흔들어도 보고 팔을 들어도 보고 눈을 비집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표정을 잃은 해쓱한 그의 얼굴이 푸르러가는 하늘을 쳐다보고있을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