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6

(6)


그날밤 그들은 예정했던대로 길을 떠났다. 80리를 가서 경찰서를 치고 무기를 앗아내게 되여있었다. 사복차림을 한 다섯사람이 산발을 타고 행군해나갔다. 돌재경찰서가 바로 턱밑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전투준비를 갖추기 위해 잠간 휴식하였다. 전투조직은 리광이 직접 하게 되였다.

쑥대가 우거진 등판에 무릎을 꿇고앉아 전등불이 유리창을 환하게 밝힌 경찰서를 내려다보았다. 박기남이가 수집한 정찰자료에 의하면 경찰서에는 모두 순찰을 떠나고 10여명의 무장경관이 남아있을뿐인데 밤에는 2~3명이 당직을 선다고 하였다. 무기고는 복도를 거쳐 류치장옆으로 꺾어돌아 마주치는 곳에 있는데 철문이 달려있는 무기고열쇠는 당직경관이 보관하고있다고 하였다. 줄잡아서 무기는 20여정이 될것이였다. 중요한것은 은밀성을 보장하는것이며 주의를 해야 할것은 경찰서앞에 높다랗게 일어선 비상소집을 일으킬수 있는 전화선이였다.

전투조직을 하다가 문득 리광은 몇가지 의문에 불안해졌다.

첫째는 24시라는 그것이 가장 적당한 시간이겠는가 하는것이며 다른 하나는 두자루의 권총에 6발의 탄환을 가진 그것으로 경찰서에 달려들어도 괜찮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딱 짚어서 말할수는 없지만 또 하나 께름직한것은 정찰자료가 얼마나 정확한것이겠는가 하는 그 점이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제 와서 문제로 삼았댔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감각이 예민한 박기남이 이것을 눈치채고 무엇인가 말하려고 리광을 쳐다보았으나 태연해진 그의 얼굴을 보자 그만두었다. 때로는 너무 지나친 설명때문에 역효과를 내는 수가 있었다. 리광은 언제나 겸손하여서 다른 동무들의 제기를 존중했지만 때로는 《그 의견은 반대요.》한다든지 《그것은 공담이요.》하는 투로 단호하게 거부해버리는 수가 있었다. 박기남은 그런 경우를 종종 당하는것이였다.

박기남이 알고있는 리광은 우는 잔잔하지만 밑이 소용돌고있는 그런 강물과 같은 성격이였던것이다.

리광은 침착하게 앉아 하나하나 전투과정을 미리 타산하였다.

거리에 들어서면 그곳에서 공작하고있는 《땜쟁이》가 길을 안내할것이고 그가 철조망과 전화선을 끊는 집게를 줄것이였다. 신호는 담배불로 하게 되여있고 가장 중요한 대목인 보초를 처리하는것을 그자신이 직접 담당하여야 하였다. 총을 꺼내오면 즉시에 받아메고 산으로 오를것도 약속되여있었다. 그는 미심쩍은 문제를 하나하나 따져보고 허리춤에 찬 단도와 권총을 만져보고야 마음을 놓았다.

박동무는 창문을 뛰여넘어 들어가서 수직서는 놈한테서 열쇠를 뺏어내야 하겠소.》

《알았습니다.》

박기남은 권총을 꺼내서 격철을 절커덕 제끼였다.

리동천을 데리고 리광이 먼저 거리에 들어섰다. 담배불로 신호를 하자 술집모퉁이에서 땡강종이 울리더니 짐을 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리광은 나는듯이 달려가 《땜쟁이》 만났다. 그후 몇분사이에 리동천은 전보대에 올라가 전화줄을 끊었고 리광은 담장우에 전기를 통하게 만든 철조망을 끊어제끼였다. 담장안으로 뛰여들어간 리광은 현관벽에 붙어서 몇초동안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장총을 멘 보초놈이 무어라고 웅얼거리며 발을 탁탁 구르고있었는데 그는 방금 순찰을 하고 돌아와 신의 흙을 터는 모양이다.

촉수 높은 전등빛이 활짝 열어제낀 창문으로 눈부시게 내비쳐 아근을 대낮처럼 밝혀놓았다. 마음이 켕겼던 포대에서는 요행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박기남이가 비호처럼 창문으로 뛰여넘어가는것과 동시에 리광은 현관문을 밀어제끼고 장총을 멘 키가 늘씬한 놈에게 달려들었다.

기겁해서 돌아선 그놈은 총창을 내대였다.

리광은 총신을 잡아채는것과 동시에 앞으로 숙어드는 그놈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질렀다. 끽 하면서 모로 쓰러지는것을 동천이가 타고앉아 목을 내리눌렀다. 한편 박기남은 창문을 넘어서는 참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있던 놈에게 권총을 내대였다. 안경을 낀 그 젊은 놈은 넋없이 손을 들었다.

《총을 내놔라! 목숨은 살려준다.》

박기남은 류창하게 일본말을 번졌다.

《무기고의 열쇠를 내놔!》

동천이는 보초에게서 앗아낸 보총을 들고 전화통이 걸린 벽을 등지고 섰고 리광은 밖을 감시하며 창문턱에 나섰다.

박기남은 또 다그쳤다.

《빨리 열쇠를 내놔!》

안경쟁이는 손을 든채로 현관에 자빠진 놈이 열쇠를 가지고있다고 하였다. 리광이 콩크리트바닥에 코를 박고 자빠진 놈의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내 무기고의 철문을 열어제끼였다. 10여정의 보총이 정연하게 벽에 세워져있었다.

리동천이 달려와 그것을 한아름으로 걷어안고 복도로 나왔다.

그때 《꽝.》하고 총소리가 울렸다. 리광이 고개를 획 돌리니 안경쟁이놈이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지르고있다.

박기남이 쏜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마루밑에서 총소리가 났다. 사태는 돌변하였다. 박기남은 안경쟁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졌다. 동천이가 총을 안은채 천천히 모로 기울어지더니 전화통에 어깨를 찧고 털썩 쓰러졌다.

널마루밑에서 연방 총소리가 울렸다.

《뒤로 빠져!》

리광의 눈에서는 번개가 일었다. 그는 동천이를 일으켜세워보았으나 또 쓰러졌다. 앞가슴에 피가 내배였다.

리광은 동천을 둘쳐업고 현관밖으로 뛰쳐나왔다.

《내 총!》

의식을 아직 잃지 않은 동천은 자기가 방금 앗아들었던 총을 찾았다.

리광은 지동무에게 동천이를 맡기고 되돌아들어가 마루바닥에 널린 총을 몽땅 걷어안고 돌아나왔다. 박기남은 널마루밑에다 대고 세발의 탄알을 다 쏘고나서 창문으로 빠져 담장을 넘어뛰였다.

거리가 발칵 뒤집히였다.

포대망루에서 비상신호고동이 울었다. 골목마다에서 호각소리가 나고 헌병대쪽 포대에서 불을 내뿜었다. 사처에서 개가 짖고 골목들에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리광은 지동무와 함께 동천이를 번갈아 업으며 논판을 질러나갔다. 다른 동무들은 열네자루의 총을 나누어안고 달리였다. 논을 지나자 개울물이 나졌다. 그는 동천이를 안고 물을 건넜다.

동천은 신음소리 한마디 내지 않고 등에 업혀있었다.

한 5리 사이뜬 산등 풀숲에 동천을 내려놓고 구급처치를 시작하였다. 속옷을 찢어서 상처를 두텁게 싸매였지만 잠시동안에 피가 올려배군 하였다.

박기남이들이 올라왔다. 적들이 추격해올것 같다고 하여 그들은 다시 동천을 둘쳐업고 길을 떠났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