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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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래 독재를 먹였소?》

리광이 웃으며 물었다.

《꽁지가 빳빳해 달아나는통에 미처 먹일새가 없었습니다.》

하하하.》

리광은 고개를 젖히며 웃어댔다. 좀체로 이렇게 웃지 않는 리광이 너무 우스워 머리를 잡고 돌아간다.

리동천이도 뒤덜미를 긁적거리며 따라웃었다.

《이걸 동무손으로 만들었소?》

학춘아저씨가 벼려주었습니다.》

《어쨌든 대단하오. 38식보총 날창보다 훨씬 낫소.》

리광은 남의 총을 빌려서라도 보초근무때는 실총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려다가 리동천이 너무 날창에 애착을 가져서 그 말을 끝내 하지 못하였다.

달이 밝았다. 오리나무와 물박달이 한벌 뒤덮인 산등성이가 은백색으로 물들었다. 밤은 교교하였다. 마을에서 두홰째 닭이 울었다. 몇마디 이야기를 더 주고받다가 서쪽보초선으로 떠나려는데 리동천이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리광동지, 혁명이 끝나면 날 학교에 좀 보내주겠습니까?》

《학교?》

《네!》

《무슨 학교에 가고싶소?》

《아무 학교두 좋습니다. 너무 배운것이 없어서 답답해 그럽니다. 내가 아까 최덕만령감을 만나서도 으르기만 했지 말재주가 없어서 하고싶은 말을 못했거던요.》

《그래 말을 잘하기 위해 공부하겠다. 그 말이요?》

《아닙니다. 사실은 농사를 잘 짓는걸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 사람이 잘먹고 잘살게 하고싶습니다. 콩알 하나가 주먹같은것을 연구해낼 생각도 있습니다.》

《대단히 좋소. 그렇지만 지금은 우선 창을 총으로 바꿔잡을 생각부터 하는게 어떨가?》

리동천은 또 뒤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사흘만 시간을 주면 어데 가서 하나 공작해올수 있습니다.》

《며칠만 기다리우. 곧 떠나겠소.》

《정말입니까?》

《정말이요.》

《야, 가슴부터 뛴다.》

순찰을 끝낸 리광은 산릉선을 따라 서쪽초소로 가고 리동천이 혼자 남게 되였다. 그는 담배를 말아물고 돌등에 앉았다. 푸르스름한 담배연기가 어깨우로 훌훌 날아넘어간다.

두루두루 바쁘기도 하고 복잡하게 지낸 하루일이 회상되였다. 일찌기 일어나 사격훈련을 하고 개울에 내려가 산등에까지 물을 길어올리고 《혁명이란 무엇인가?》하는 학습토론을 하고 박기남이 있는데 련락을 갔다가 프로독재가 무엇인가 하는것을 오래동안 신나게 들었다. 야장간의 학춘아저씨 그리고 미안해 쩔쩔매던 삼촌네, 성남이 아주머니, 골살을 찌프린 최덕만이, 그것들이 엇바뀌여 나타났다. 그는 담배불을 꺼버리고 산밑을 내려다보았다. 들판은 그냥 잠들어있다.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창을 내들고 달빛에 비쳐보았다.

이것이 이제 오래지 않아 총으로 바뀔것이다. 묵직한 총가목, 반들거리는 총대, 방아쇠를 당기면 어깨가 얼얼하니 충격이 오면서 총알이 튀여나갈것이다. 그러면 코가 매캐하니 화약내가 풍길것이고 원쑤놈들은 팔을 벌리고 악 소리를 지르며 나가넘어질것이다. 그는 홀연 자기 손에 잡힌 그 창이 그 어떤 신비스러운 요술몽둥이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휘휘 두르기만 하면 산봉우리건 바위벽이건 모두 평평하니 밀어제껴질수 있을것 같고 꺼꾸로 잡고 벌판에 금을 쭉 그어내치면 어마어마한 나락이 생기기도 하고 강이 생기기도 하고 또는 막힐것도 같았다.

리동천은 담배를 또 한대 붙여물었다.

꿈같은 생각이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고 무엇이나 마음먹은대로 될것같았다. 리광은 아까 학교에 가겠다니까 크게 웃었지만 그도 실은 엉터리없는 소리라는 그런 뜻에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무막대기에 쇠꼬챙이를 달아맨 창을 들고 나타났을 때 어머니는 얼마나 놀랐던가? 그런 내가 진짜 총을 메고 나타난다면 아니, 학생이 되여 나타난다면 어떠할것인가? 혹시 자기 아들을 몰라볼수도 있지 않을가.

으흠!》

환상에 도취된 리동천은 가슴이 뻐근해져서 군기침을 한번 하였다.

다음순간 그는 장군님을 만나뵙고싶은 생각이 부쩍 일어났다. 총을 메고 장군님앞에 차렷자세를 하고 서서 경례를 붙이면 장군님께서는 그때 나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실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장하다고 하실수도 있지.…

자리에서 일어난 리동천은 어느새 발을 모으고 꼿꼿이 섰다. 생각만해도 기뻐진 그는 빙그레 웃음을 짓고 또 사위를 살피였다.

그때 《덜커덕. 덜커덕.》 달구지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리동천이 있는데서 한참 내려가야 달구지길이 있었다. 그는 귀를 강구고 숨소리를 죽이고 들어보았지만 역시 달구지소리가 틀림없었다. 그는 대번에 정신이 긴장되면서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에 그는 마을뒤에서 난데없는 불길이 일어나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나가면서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였다.

《어! 저게 우리 집 밀밭이 아니야?》

발돋움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닌게아니라 동천이네 밀밭에 불이 달리였다.

《불! 불이야!》

그는 고함을 지르며 소대병실이 있는쪽으로 올리달았다. 대원들이 달려나왔을 때는 벌써 마을에서도 떨쳐나와 《불이야! 불이야!》하며 밭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고있었다.

유격대원들이 밭으로 달려내려갔다. 리동천은 다른 동무들과 같이 강낭밭으로 가지 않고 귀밀밭을 꿰질러 지름길로 내달았다.

그가 달구지길을 건느려고 하였을 때 검은 그림자가 눈에 띄였다. 그것은 짐을 실은 달구지였다.

《누구요?》

그가 벽력같은 고함을 질렀지만 너무 갑자기 부닥친 일이여서 저편에서도 한동안 대답을 못한다.

리동천은 한걸음 더 다가서며 재차 고함을 질렀다.

누구얏! 손들엇!》

그는 창을 비껴들면서 아무것이나 내찌를 기세로 허리를 굽혔다. 그때 《꽝!》하고 총소리가 나면서 눈에서 불이 번쩍하였다.

검은 그림자가 콩밭으로 껑충껑충 내뛰면서 계속 총을 갈기였다. 리동천은 언덕에 비켜서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귀가 앵앵 울고 정신이 아찔하였지만 아무데도 다친데는 없었다.

그는 내뛰는 놈은 버려두고 달구지옆에서 얼른거리는 놈의 멱다시를 잡아휘둘렀다.

《나요, 나.》

《나가 누구야?》

《성남이요, 이거 동천이 아닌가?》

《뛰는 놈은 누구야?》

최덕만의 둘째아들놈이 밀밭에 붙을 지르고 총을 쏘고…》

《오! 그래, 넌 그래 어디 가니?》

그때 조짚을 잔뜩 가려올린 달구지우에서 부시럭부시럭 소리가 났다.

덕만령감이 이우에 탔소. 총을 내대고 그놈들이 앞서라고 해서 내가…》

최덕만이네 머슴 성남은 징징 우는소리를 하며 제딴에 귀띔을 해주느라고 낮게 말하였다.

《판국이 이렇게 됐었구나.》

리동천은 성남이에게 조짚을 다 내려놓으라고 명령하였다.

엉성하니 우만 가리웠던 조짚을 끌어내리자 담요를 뒤집어쓴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잘한다. 다 먹게 된 밀밭에 불을 지르고 도망을 빼자구, 흥. 너 죽어봐라. 귀신같이 그러고 앉았지 말고 빨리 내려오지 못해!》

총소리를 듣고 세명의 유격대원들이 급히 달려왔다. 짚단을 헤치고 최덕만이 온몸을 덜덜 떨며 담요를 쓴채로 기여내려왔다.

달구지우에는 트렁크며 고리짝이며 보따리가 잔뜩 실려있었다.

동무들이 달구지우에 올라가 짚단을 뒤지였지만 사람은 더 숨어있지 않았다.

《그래 넌 이런 귀신같은 모양을 하고 어데로 내빼는가? !》

리동천이 발을 벌려디디고 고함을 지르자 최덕만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어데로 가느냐 말야?》

《동두천에 가오.》

최덕만은 적외에 찬 눈을 번뜩이며 태연히 대답한다.

《가는데 왜 밭에 불을 지르는가?》

《그 땅의 주인은 나거던요. 내 맘대로 하는거지요.…》

《뭐야?》

나무등걸같은 동천의 주먹이 최덕만의 볼을 지끈 후려갈겼다.

《아이구!》

땅에 쓰러진 그놈을 발로 냅다 차굴리였다.

《그 땅이 누구 땅이야? 이놈! 그래 네가 그 밭에 밀을 심었느냐?》

리광이 달려왔다. 사태를 보고 대번에 판단한 그는 리동천이더러 그만 손을 대고 최덕만을 묶으라고 하였다.

리동천은 달구지바를 끊어서 최덕만의 팔을 뒤로 묶었다.

《반혁명을 하는 너는 우리 유격대한테 체포됐다. 내가 어제 낮에 독재를 먹이자고 했었는데 좀 늦었다. 하긴 이제라도 늦지 않지.》

리동천은 퍼런 불이 번뜩이는 눈으로 쏘아보며 씹어뱉듯이 한마디 던졌다. 성남이를 시켜 달구지를 돌려세우고 리광의 지시에 따라 최덕만을 끌고 동굴로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다가 리동천은 뒤에 오는 리광을 돌아보았다.

《분합니다. 오늘 저녁에 내가 날파람있게 달려들었더라면 권총 하나를 쉽사리 앗아내는건데 영문을 모르고 멍청했거던요.》

그만하기두 다행이요. 자칫했더라면 동문 그놈의 총알을 받을번 했소.》

나무뿌리에 걸려서 넘어진채 일어나지 않는 최덕만을 리동천은 들어 일구었다.

《그러니 령감, 내가 이런 험한 길에서 하루에 나무를 두지개씩 해올 때 얼마나 맥이 빠졌겠는가 알만 하지? 빨리 걸어, 빨리. 엄살은 젠장!》

동굴에 이르렀을 때 웃동도 미처 입지 못한채 불끄러 내려갔던 박기남이 씨근거리며 달려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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