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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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거 프로레타리아궁전에 이렇게 물이 새서야 되겠나.》

박기남은 담배를 문채 낯을 찡그리며 손바닥으로 물이 떨어진 목덜미를 훔치였다. 웃동을 벗어서 따진 소매혼솔을 꿰매고있던 리광이 그것을 보고 허허 웃었다.

《장마철이니까요.》

그들은 영평뒤산의 이 자연동굴에 자리잡고있었다. 여기서 산모퉁이를 하나 돌아가면 귀틀집이 세채 있었는데 거기에 16명이 한개 소대를 이루고 생활하였다.

왕청지구에 이러한 무장소조가 벌써 여덟군데나 나왔다.

벽에 기름등잔을 걸어놓고 그밑에 석유상자를 엎어놓았는데 그들은 여기에 마주앉아 사업토의를 하였고 그옆에 깔개를 편데서 잠을 잤다. 그들은 몇시간동안 무기획득공작을 할데 대한 토의를 방금 끝냈던것이다.

리광동무, 며칠후에 마을에 내려가지 않겠습니까? 이쯤하면 우리가 지역을 공개적으로 차지할 때가 되였다고 보는데요.》

다른 때는 롱담도 잘했지만 사업에 들어서면 박기남은 자기보다 두살 아래인 리광에게 그의 방조자답게 꼭 존대해 말하였다.

《반대없소. 그러나 적들이 당장에 또 〈토벌〉해들어오지 않을가?》

《조심하는것도 좋지만 대담하지 못한것은 더 손실을 보지요.》

《무모한것은 대담성하구 촌수가 매우 멀지 않소. 내 생각엔 경찰이 쳐오는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 라남련대의 움직임이 어떤지 알수 없어 그러오. 래일쯤 몇명 정찰을 띄웁시다.》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저 악질주구놈들을 언제 친다? 독재를 먹이면서 우리가 들어앉아야겠는데…》

《〈토벌대〉가 쏠리지 않는다면 아무때고 공세를 취합시다.》

리광은 옷을 다 손질해입고 동굴밖으로 나왔다. 소대가 들어있는 귀틀집을 돌아보려고 그쪽으로 내려가는데 리동천이 허리를 구불사하고 마주 걸어왔다.

동천동무, 어데 가우?》

리광이 먼저 소리쳐서야 리동천은 고개를 들고 황황히 경례를 붙이였다. 올해 스무살인 그는 나이에 비해 네댓은 더 나보이였다.

《야장간에 좀 갔다오려구 그럽니다.》

《야장간엔 뭣하러 가오?》

《저, 이 창을 좀 든든히 손질해오자고 그럽니다.》

리동천은 가죽으로 멜띠를 한 창을 벗어서 앞으로 돌려잡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긴 그걸룬 아무것도 해낼수 없을것 같소, 짧기도 하지만 끝이 무디여서.》

리광은 장대끝에 꽂은 날창을 만져보았다.

《총이 차례질 때까지야 그런대루 가지고 다녀야지 어찌겠소. 언제쯤 오겠소?》

《둬시간쯤 걸려서 오겠습니다.》

리동천은 고개를 들어 해가늠을 해보았다.

《오늘밤에 보초를 서야겠으니까 늦지 않게 돌아오시오.》

《알고있습니다.》

리동천이가 언덕을 내려설 때까지 리광은 한자리에 서서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리동천은 아직 총이 차례지지 않은 다섯명 대원중의 한사람이였다.

리광이와 헤여진 리동천은 유독 길어뵈는 다리를 겅정겅정 옮겨놓으며 마을 한켠에 있는 야장간으로 급히 걸어갔다.

《아저씨 계십니까?》

그는 거적문을 들치고 야장간안으로 쑥 들어갔다. 더운 김이 확 안겨오고 숯내가 물씬 풍기였다.

《왜 왔나?》

웃동을 벗어붙이고 벼림질을 하던 야장쟁이 학춘이는 망치를 든채로 리동천을 흘끔 쳐다보았다. 모루우에는 벌겋게 단 호미가락이 놓여있었다.

《신세를 좀 지려구 왔습니다.》

동천이가 나한테 신세를 질 일이 있나.…》

망치자루에 침을 뱉어쥔 학춘이는 힘줄이 울근불근한 팔을 휘둘러 망치질을 계속하였다. 호미날을 눌궈놓고난 학춘이는 호미가락을 숯불속에 다시 밀어넣고나서 자리에서 일었다.

《되게 불어라!》

학춘은 랭수동이가 놓인 구석쪽으로 가며 열덧살난 아들애한테 지시를 하였다. 풍구질을 하고있던 아이는 풍구채를 두손으로 거머쥐고 연신 허리를 폈다굽혔다하였다. 풀더럭풀더럭 풍구통에서 소리가 나면서 숯불에서 불꽃이 확확 튕겨났다. 리동천은 어깨에서 창을 벗어서 풍구통에 걸쳐놓고 아이 앉은데로 갔다.

《내 좀 해보자.》

아이는 요행 잘됐다는 식으로 풍구채를 넘겨주고나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학춘은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서 턱에 맺힌 물방울과 목덜미의 땀을 훔치였다.

《아저씨! 날창을 하나 멋있게 벼려주세요!》

《유격대가 됐으면 총을 메야지 막대기끝에 쇠꼬쟁이나 달아가지고야 일을 치겠나? 내 이전에 듣자니까 독립군들은 소 한짝을 팔아서 총 한대씩 사메구 다녔다는데…》

《우린 사지 않고 왜놈한테서 뺏습니다.》

뻣는다? 어떻게?》

《닥치는대로 해야지요. 주먹으로 면상을 후려갈기기도 하고 돌로 까기도 하고 메치고 타고앉아 닭잡듯도 하고…》

《야 이것 봐라, 동천이가 아주 대단하다. 하하하하, 그래 너두 날창으로 이제 한놈 잡자는거냐?》

《그렇지요. 그런데 왜 야장간이 이렇게 적적합니까?》

《그러기 말이다. 숯값도 건지지 못할것 같다. 그래 유격대에선 어떻게 하자는거냐? 혁명을 하면 농사는 아예 집어치우는거냐?》

《그럴리야 있습니까? 혁명을 해두 먹고야 하잖습니까?》

《그런것 같지도 않아. 자네 어머닌 어제 날 만나 동천이가 줄창 나다녀 농사는 밀어놨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 최덕만이란 놈이 만나기만 하면 아들을 잡아 앉혀놓고 톡톡히 일러 농사를 짓게 하라고 야단이라고 하데.》

《그런 놈의 말 들어볼거 있습니까? 그놈은 날 아직 저희 머슴인가 해서 그따위 소리를 줴치는거지요.》

《야, 이거 동천이가 정말 달라졌다.》

《달라진것이 있습니까? 혁명이야 우리같은 못사는 사람이 주인이 되자는건데요.》

《하긴 혁명이 좋긴 좋다. 그런데 혁명은 나같은 야장쟁이는 어떻게 한다더냐?》

아저씨두 혁명을 위해서 벼림질을 해야지요. 그러지 않아도 유격대에선 아저씨신세를 져야겠다고 말이 많았습니다.》

《유격대가 나한테 신세를 져?》

《이렇게 창도 벼려주셔야 하구요, 총도 고쳐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래? 하긴 나두 노상 쓸모가 없는 인간이야 아니지. 무슨 일에나 쇠를 달구어야 일이 되는 법이니까.》

학춘이는 누런 이를 드러내놓으며 웃었다. 리동천은 풍구질을 하고 학춘이는 집게로 호미를 집어다 두드렸다.

《그래 날창은 어떻게 만든다는거냐?》

《창날이 장뽐 둬개나 되게 길게 만들어주시우. 왜놈들 가슴팍을 찌르면 잔등까지 꿰창이 나게 말입니다. 그리고 좀 굵직하게 만들어야겠어요.》

호미를 다 벼리고나서 학춘이는 쇠붙이가 들어있는 궤짝을 왱강쟁강 들추어 알맞춤한것을 골라 불에 달구었다. 쇠가 달자 그는 모루에 집어내놓고 소리쳤다.

《빨리 쳐라!》

리동천은 메를 휘둘러쳤다. 불꽃이 탁탁 튕기면서 쇠가 늘어났다.

《되게 쳐라! 되게.》

리동천은 학춘이가 섬기는대로 망치를 높이 들어올렸다가 힘있게 내리치군 하였다. 네축이나 메질을 해서 늘구고 다음부터는 학춘이 혼자서 모를 죽이고 날을 세워나갔다.

피지직- 학춘이는 다 벼려진 날창을 물통에 꾹 잠가내서 모루앞에 훌 집어내던지였다.

《됐다! 가져가라!》

리동천은 식기를 기다렸다가 본래날을 뽑아던지고 새것으로 갈아 맞추었다. 물푸레자루에다 가락지까지 해끼우고 숫돌에다 번들번들하니 갈았다.

《멋있습니다. 단번에 세놈은 꿰겠습니다.》

리동천은 창을 비껴들고 내찌르는 동작을 해보았다.

《허허, 이거 큰일나겠다. 저쪽 대구 하라구.》

학춘은 재티가 하얗게 오른 머리를 뒤로 제끼며 창날을 피하였다. 그바람에 동천은 땀이 번지르르한 가슴을 슬슬 쓸면서 웃었다.

《내가 아무리 우둔한들 아저씨를 다치게 하겠습니까?》

《모르는 소리, 쇠붙이엔 눈이 없어!》

학춘은 주먹같은 고불통에서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나게 담배를 빨며 웃었다.

동천은 후에 신세를 단단히 갚겠다고 하고 야장간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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