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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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광은 한발이나 되는 도끼자루를 힘있게 거머쥐고 머리우로 높이 들어올렸다가 낑 하고 기운을 쓰며 이깔나무밑둥을 향해 내리쳤다. 퍼런 도끼날이 나무그루에 푹 들이박힐 때마다 손벽같은 나무쪽이 어깨우로 날아넘어간다. 반나마 끊어진 이깔나무는 온 숲을 지르릉지르릉 울리면서 신음소리를 친다.
웃동을 벗어팽개친 리광의 이마와 쩍 벌어진 앞가슴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도끼를 내리칠 때마다 입에서 더운 김이 훅훅 내불리였다. 그는 이렇게 벌써 밤낮 닷새째 나무를 찍고 메나르고 하였다. 고된 일에 지친 그의 눈은 푹 꺼져들어갔으며 볼이 쑥 삐여져 가뜩이나 과묵한 그의 얼굴을 한층 더 침울하게 만들어놓았다. 발이 미끄러지거나 팔맥이 없어 도끼가 빗나가는 때에는 한참씩 비칠비칠하다가 겨우 몸의 중심을 잡군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입술을 사려물고 억척스럽게 도끼를 휘둘러대였다.
나무를 찍는 사람은 10여명이 넘었다. 여기저기서 도끼소리가 울리였다.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동천이의 고함소리가 들리였다.
《넘어간다!》
나무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고 뒤미처 《텅.》하고 땅이 울리였다. 리광은 도끼를 세워짚고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앞을 내다보았다. 그가 있는 언덕밑에서 리동천이 범이라도 잡아메친 포수처럼 입을 벌리고 웃으며 좌우를 둘러본다.
《몇대짼가?》
리광의 갈린 목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천이가 겨우 알아들을 정도였다.
《다섯대쨉니다.》
《빠른데…》
《이젠 메보지 않겠습니까?》
《이것까지 찍고.》
동천이도 도끼자루끝을 쥐고 대강 가지를 툭툭 쳐갈기면서 초리쪽으로 나가 우듬지를 훌 따내쳤다.
리광이 다시 도끼를 들어올리려 할 때 눈앞이 아뜩해지고 별찌가 가로세로 나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는 얼른 나무통을 짚고 몸을 일으켜세웠다. 현기증을 또 일으킨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져갈무렵에 둘씩 짝을 지어 대여섯패로 찍은 나무를 메나르게 되였다. 리광은 동천이와 패가 되였다.
그가 밑둥쪽을 메고 앞서서 언덕을 내리였다. 여기저기서 나무통을 멘 동무들이 무어라고 고아대면서 집짓기가 한창인 마을쪽으로 내려갔다. 왜놈들의 《토벌》에 집을 불태운 농민들이 다시 그 자리에다 집을 짓는것이다. 소사하에서 돌아온 리광은 우선 큰골에서 20리 남짓이 떨어진 영평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모로 보나 왕청지구에서는 영평이 그중 근거지를 만들기에 유리하였다.
그는 어느때나
첫째는 이 여름에 지구중대를 내오고 그것을 대대의 력량으로 장성시킬것과 둘째는 될수록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유격근거지를 확보하는것이였다. 이를 위해 처음으로 사업에 착수한것은 몇명씩으로 이루어졌던 무장소조들을 집결하면서 그것을 소대로 편성하고 무기를 획득하는것이였다. 다음으로 흩어진 군중들을 모으는것이였는데 사방 100리지경에 널린 군중들을 모아들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며칠씩 집중해서 한가지 사업을 처리하고는 다음고리를 풀군 하였다.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무장대의 훈련을 하였으며 날이 샐녘에는 사오십리 아근에 대원으로 인입할 동무를 찾아갔고 그렇지 않으면 회의를 하군 하였다.
걸음을 옮겨놓을적마다 길다란 통나무가 흥청흥청하였다.
리광이 두덩을 넘어서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이, 어른 할것없이 모두 떨쳐나서 괭이로 흙을 파기도 하고 돌을 안아나르기도 하였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몇걸음 못 가 다리를 빗디디며 앞으로 푹 쓰러지고말았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리동천이 나무통을 내려놓고 급히 달려와 팔을 잡아일으켜 앉히였다.
《왜 그럽니까?》
리동천은 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다리를 꼬아디디며 비칠비칠하는것을 보았던것이다.
몇분후에야 리광은 차차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었다.
《동천동무! 손을 놓소. 아무 일도 없소.》
기진해서 앉아있는 리광을 지켜보고있던 동천은 울상을 하고있었다.
《나무등걸에 발이 걸려 꼼짝 못하고 그만, 허참.》
리광은 혼자소리처럼 응얼응얼하면서 흙이 묻은 손을 툭룩 털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우정 웃어보이면서 고개를 들었는데 그 표정은 리동천의 가슴을 몹시 아프게 긁어내리였다.
《어데도 나무등걸은 없지 않습니까.》
사실 나무등걸은 없었다.
《동천동무, 한대 피울가? 엎어진김에 쉬여간다는 말도 있지 않나. 허허허.》
《아무래도 좀 쉬여야겠습니다.》
리동천은 나무통을 발로 밀어놓고 옆에 앉아 담배쌈지를 꺼내였다. 리광은 어깨를 들어올리면서 담배를 기껏 빨아올렸다가 길게 내불었다. 푸릿한 담배연기가 꺼멓게 그슬린 그의 이마를 스치고 보라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리광은 여느때처럼 동천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 딴전을 피웠다.
《동천동무! 자꾸 속을 썩이지 마오. 이제 짬을 내서 총을 뺏으러 멀찍이 한번 갔다오자구. 돌재경찰서쯤 하나 치면 동무한테도 괜찮은것이 차례질거요. 그때까진 다른 동무들것을 빌려서 훈련을 하면 돼.》
《그때가 언제 될지 몰라 답답해 그러지요. 그렇지만 난 참을테니 내 걱정은 마십시오. 그런데 한가지 말씀드릴것이 있습니다.》
《뭔데 그렇게 정색해 그러우?》
《다른게 아니라 좀 푹 쉬여야겠습니다. 몸이 말이 아닙니다.》
《쉰다?》
《네!》
《내 몸이 어쨌다고 그러우?》
한쪽눈을 내리감으면서 리광은 빙그레 웃었다. 그때 그의 시선은 건넌산기슭에 가 멎었다. 강 하나를 사이둔 산기슭에는 새로 생긴 무덤이 한벌 널려있었다. 리광은 그 산기슭을 바라볼 때마다 어머니와 동생 생각을 하였다. 잠시나마 그런것을 생각하고나면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온몸에 땀이 쭉 내솟군 하였다.
《동천동무! 우린 말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쉬염쉬염 할수 없소. 어떻게 우리가 쉴수 있겠소? 그렇지 않소?》
《뜻은 알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몸도 돌봐야 하잖겠습니까?》
《걱정해줘 고맙긴 하지만 내가 어떻게 쉴수 있겠소.》
이때 리광은 작은데기에서의 그날밤을 문득 회상하였다.
《동천동무!
불쑥 맡을 해놓고도 그는 눈굽이 뜨거워나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걸 생각하면야, 에참… 말을 다 해 뭘하겠습니까.》
리동천은 담배를 또 한대 불여물고 연기를 긴 한숨처럼 후- 내불었다.
《그런데 리광동진
《그래, 가끔 만나뵙지.》
《몇번이나 뵈왔습니까?》
《글쎄! 이전에 혁명군에 참가한 그때부터 뵈왔으니까.》
《영광입니다. 난 이제 총을 하나 얻어메고
《좋은 생각을 하였소.》
《난 요새 그런 꿈을 자꾸 꿉니다.》
《꼭 그렇게 될거요. 자, 그럼 또 가볼가?》
그들은 다시 나무통을 메고 일어섰다.
집짓는데서는 박기남이 한몫 하고있었다. 그는 룡마루에 올라가서 꺾쇠를 치면서 서까래감을 되도록 굵직굵직한것을 골라 올려보내라고 고함을 쳤다.
《〈토벌〉을 맞을것이라고 해서 대강대강 지으면 안됩니다. 자, 저기 저것 보내우.》
아래서 귀틀집방틀우에 서까래감을 들어올려놓았다.
리광이 나무통을 흙무지곁에 메치고 돌아서자 몇사람이 그를 둘러쌌다. 농립모를 눌러쓴 키큰 사나이는 큰골에서 급한 일이 있으니 빨리 와달라고 련락을 가져왔고 각반을 치고 오른편에 선 청년은 군사훈련을 위해 산중에 대원들이 다 모여 기다린다고 하였다. 맞은편에 수건을 쓰고 선 곱단이라는 녀성은 오늘밤에 부녀회원모임이 있는데 나와 연설을 좀 해달라고 하였다. 용무를 하나하나 듣고난 그는 껄껄 웃고나서 쾌활하게 대답하였다.
《다 가겠소. 그런데 큰골엔 새벽녘에야 도착할것 같다고 일러주시오.》
련락원들을 다 돌려보내고난 그는 톱을 들고 나무통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발을 내디디고 톱을 북 잡아당기자 톱밥이 땅우에 허옇게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