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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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둡자 철삼이네 마당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세걸은 신바람이 나서 허리를 굽히고 돌아갔다. 이미 모아다놓았던 멍석을 마당에 깔았다. 멍석이 모자람직해서 한쪽에다는 귀밀짚을 폈다. 그리고 토방 오른쪽에다는 우등불을 일구었다. 초여름이긴 하지만 밤이면 쌀쌀해졌고 또한 회의장을 밝히기도 해야 하였다. 세걸이만 못지 않게 흥이 나서 뛰여다니는 청년들이 여러명 있었다. 어떤 친구는 벌써 자기가 유격대가 다 되기나 한것처럼 대원들속에 섭쓸려서 같이 행동하려들었다. 세걸은 장작을 메다 내려놓고 부시를 쳐서 불쏘시개에 불을 달고 장작을 올려놓았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타래를 지어 외양간추녀를 향해 솟아올랐다.

한편 철삼이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을을 돌아가고있었다. 이미 아침에 한바퀴 돌면서 저녁에 일찍 모이라고 일렀고 낮에 또다시 다짐을 두었건만 저녁을 끝내는 참 다시 독촉을 떠난것이다.

마을을 다 돌고난 철삼은 혼자 중얼거렸다.

《대단한 일이지. 옛사람들은 기쁨을 〈칠년대한에 봉감우요, 천리 타향에 견고인이라〉했지만 기실 그런것에 비길수도 없지. 뭐라고 하면 될가? 그저 〈이젠 살았다.〉 그러면 될가. 그래, 이젠 살아도 산보람이 있고 죽어도 죽은 보람이 있게 됐지.…》

그는 코허리가 저릿해와서 손등으로 몇번 문지르고 사람들이 모인 마당으로 작대기를 옮겨짚으며 들어섰다.

동네사람들 역시 몰라보게 달라졌다. 보짐을 꾸렸던 사람들이 짐을 풀었고 몸져누웠던 사람들이 기운을 내서 밭으로 나갔었다. 나라를 빼앗긴 불행속에 찾아온 혁명이 주는 이 환희로 하여 불과 며칠사이에 모두 딴사람처럼 변해버렸다. 군중들이 대체로 모이였을 때 차광수가 유격대원들을 인솔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장내는 순식간에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모두 유격대원들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유격대원들은 구령에 따라 하나같이 착착 절도있는 동작으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군중들을 되도록 앞에 앉히고 대원들은 둘레에 원을 이루고 앉았다.

우등불이 활활 타올랐다. 불길은 그믐밤의 어둠을 떠받들고 일어났다. 사위가 낮처럼 밝아졌다. 집과 마당과 얼굴들이 번들거렸다. 철삼이와 말씀을 나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토방을 내려서시였다.

일제히 박수를 쳤다.

모두들 장군님을 향해 한 반쯤 몸을 일으키고 손벽을 두드렸다. 한참 그렇게 박수를 치다가 옆사람들과 서로 마주보고 그러다가는 또 힘주어 박수를 쳤다.

세걸은 오늘밤에도 차기용이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거리가 좀 멀어서 장군님의 존안을 똑똑히 볼수 없는것이 매우 유감스러웠지만 앞자리에 로인들이 앉았기때문에 나앉을수가 없었다.

그는 허리를 엉거주춤하니 일궈세우고 힘껏 손벽을 쳤다.

박수가 멎지 않자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첫마디는 박수소리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하늘아래 첫동네라고 해서 이 마을을 천상데기라고 불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그대로 하늘아래 첫동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때문에 정든 조국땅을 버리고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와서 세상과 동떨어져 살고있는것입니까? 고향산천이 싫증났거나 고향사람들이 그립지 않아 그렇습니까? 농사를 지을 땅이 없었습니까? 논밭을 추길 강물이 없었습니까? 무엇때문입니까? 전라도, 경상도에서, 강원도, 황해도에서 수천리 타향인 여기에 무엇때문에 왔습니까? 어제 어느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지만 밤마다 고향의 꿈을 꾼다고 합니다. 고향에는 눈이 모자라게 아득히 뻗어나간 사래긴 밭도 있었고 벼이삭이 발목을 휘여잡는 논들도 있었습니다. 오막살이일망정 감나무, 배나무가 몇그루 서있는 아늑한 집도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정답고 화목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까? 누구때문입니까? 그것은 일본제국주의강도들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국을 빼앗겼습니다. 선조의 유골이 묻혀있고 대를 이어 살아온 우리 조국강토는 왜놈들에게 무참히 짓밟혀 신음하고있습니다. 왜놈들은 우리의 살림을 사정없이 짓밟아놓았습니다. 땅도 빼앗고 집도 빼앗고 인심도 야박하게 만들고 끝내는 정든 땅의 그 모든것을 앗아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반항을 하였습니다. 참다못해 들고일어난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소여물작두에 목을 잘리우고 산채로 땅에 묻히거나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러분들은 행여나 어데가 나을가 해서 늙은 부모와 여러 자식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백두산기슭, 하늘아래 첫동네에 와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되였습니까?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등지고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과는 담을 쌓고 그래도 왜놈의 등쌀만 없으면 살리라던 여러분의 소망은 과연 어떻게 되였습니까? 듣자니 모두 이사짐을 꾸려놓았다는데 가면 이제 어데로 가자는것입니까? 이제 다시 갈데가 어데입니까?…》

그이께서는 사려깊으신 시선으로 청중을 둘러보시였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이를 우러르고있었는데 이때 그 눈들에는 그 어떤 강렬한 욕망과 호소가 깃들어있음을 알수 있었다. 처절한 감정에 싸인 사람들과 활활 타번지고있는 우등불을 번갈아 보고계시던 그이의 안광에 홀연 조선이라는 하나의 축도가 나타났다. 그것은 붉은 피에 물든채 꿈틀꿈틀 뛰는 형상으로 느껴지시였다. 번개치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그이의 사색은 눈물이 가랑가랑한 영희의 얼굴에 가 멎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간 숨을 돌리시고나서 되도록 알기 쉽게 그리고 간절하게 표현하려고 애쓰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고는 놈들의 만행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알았을것입니다. 놈들이 이 땅에 남아있는 한 왜놈들은 어디 가나 따라올것입니다. 누군가는 간도로 넘어가던 관동군이 우연히 길을 헛들어 그렇게 행패를 하고 갔다고 말했다지만 결코 그놈들은 길을 헛갈리지 않았습니다. 놈들은 조선사람이 살고있다는 여길 찾아왔고 처음부터 작정한짓을 서슴없이 감행하였습니다. 여기 앉아계시는 윤로인의 아들과 며느리가 어째서 총에 맞아 쓰러졌고 또 무엇때문에 로인자신이 총에 맞았습니까? 숱한 사람들이 짐을 지고 끌려가서 왜 돌아오지 못합니까? 그리고 저 아주머니 무릎에 앉아있는 영희는 왜 매일 울고있습니까. 모두가 일본제국주의야수들때문입니다.

그놈들은 조선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와서 그런 만행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떠나서는 어데로 간다는것입니까? 20여년간 줄곧 뒤로 물러선 조선민족의 운명은 이제 낭떠러지 한끝에 와닿았습니다. 더는 한걸음도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묻기도 하고 또 대답하기도 하시면서 일제통치하에 짓밟히고있는 조선인민의 운명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시였다. 때로는 청중들앞으로 몇걸음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뒤로 물러서기도 하시면서 적절한 비유와 속담을 써서 사람들의 정신을 하나의 초점을 향해 집중시켜나가시였다. 나무를 들어 숲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하늘아래 첫동네 사정을 뒤지면서 온 조선의 운명을 갈피갈피 펼쳐보기도 하시였다.

그토록 거창한 민족문제와 계급투쟁에 대한 원리가 손금보듯이 사람들 눈앞에 뚜렷이 펼쳐졌다.

여보게들, 모두 명심해서 들어야 하네. 장군님의 말씀을 가슴에 속속들이 새겨야 해. 이제부터라도 사람처럼 살자면 장군님말씀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단 말이야.》

60평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온갖 고초를 온종일 그이께 말씀드리고도 시간이 모자란 철삼이였다.

《새기고 말고요, 이제는 우리도 살길이 열렸심더. 우리 백의동포가 이제는 살게 됐심더.》

무릎을 일으켜세우고 귀를 강구고있던 중늙은이가 목메인 경상도사투리로 받았다. 장군님의 말씀과 청중의 감격과 그리고 이따금씩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탄성들이 하나로 어울려 마당안은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후덥게 달아올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한걸음도 물러서지 마십시오. 조상들이 물려준 땅을 꽉 부둥켜안고 뻗쳐야 합니다. 이제부터 내딛는 우리의 걸음은 조국으로 되돌아가는 걸음으로 되여야 합니다. 벌써 그 행진은 시작되였습니다. 쫓기고 흩어지던 우리 민족의 쓰라린 과거는 뒤로 물러가고 제땅으로 돌아가는 장엄한 걸음이 시작되였습니다. 판가리싸움이 시작된것입니다. 이싸움은 어느 편이 하나 멸망하지 않고는 끝장나지 않을 그런 싸움입니다. 고통받고 압박받는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인 우리 유격대는 목숨을 걸고 제 나라를 되찾는 혈전에 나섰습니다. 우리의 자국마다에 질퍽하게 피가 고일수도 있습니다. 형제들의 시체를 뛰여넘게 되리라는것도 우리는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당신들의 무릎에 앉은 그 어린것들, 젖가슴에 안긴 귀여운것들에게 우리가 겪은것과 같은 그런 망국노의 고통을 물려줄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기 앉은 우리 유격대원들에게도 집에는 여러분들과 같은 늙으신 부모님들과 어린 동생들과 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여러분들과 꼭 마찬가지로 왜놈들과 그 앞잡이들인 지주, 자본가들의 착취와 압박밑에서 고생을 하고있습니다. 그들도 보짐을 이고지고 쫓겨다녀도 보았고 혀를 깨물며 고통을 참아보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쑤들은 가는 곳마다 따라와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래 끝내는 아들과 남편을 떠나보내여 나라찾는 성전에 나서게 한것입니다. 우리 반일인민유격대는 지난 4월 25일에 창건되였습니다. 우리는 첫걸음을 떼면서 우선 암혹에 짓눌려 허덕이고있는 우리 인민들을 찾아 함께 싸우자는 호소도 하고 의논도 하자고 행군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천상데기마을로 찾아온것도 그런 목적에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중단하고 청중을 둘러보시며 만면에 웃음을 띠우시였다. 사람들의 머리속엔 그날 유격대를 맞이하던 광경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그러자 모두 고개를 폭 수그렸다. 철삼은 우는것인지 웃는것인지 알수 없게 잔뜩 얼굴을 찌프렸다. 이윽고 고개를 들고 눈치를 살피던 마을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며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띠웠다. 어리석었던 자신들을 스스로들 비웃는 웃음이였다. 그중에도 키가 크고 목이 긴 세걸의 웃음이 제일 볼만하였다. 처음에는 기침을 할것처럼 입을 싸쥐고 어깨를 서너번 들먹들먹하더니 이마살을 찌프리고 컥컥 숨을 톺아올리였다. 뒤이어 눈을 찔끔 내리감는데 해빛에 그슬려 꺼멓게 된 눈굽에서 굵다란 눈물방울이 드르르 굴러떨어졌다. 때마침 우등불이 활짝 피여올라 두볼의 눈물자국이 은실을 내리드린것처럼 뚜렷이 그어졌다. 그는 사람들이 볼가봐 얼른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목을 움츠리였다.

차동무! 저 친구가 우누만.》

등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에야 세걸이자신도 자기가 울고있다는것을 알았다. 한편 어깨를 구부정하고 앉은 차기용은 쇠스랑이며 걸이대며 몽둥이가 땅에 떨어지는 그 장면을 회상하였다.

연설을 중단하고 청중을 둘러보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도 차기용이가 생각하고있던 바로 그 장면을 상상하고계시였다. 쇠스랑을 떨군 그 감자밭에서의 그 순간에 이곳 천상데기사람들의 새 생활의 출발점이 그어졌다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들은 누구도 그것이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리던 그 시각이 다가왔다는것을 알지 못하였다.

차기용이, 그다음에는 세걸이, 또 그다음에는 철삼이, 그뒤에 빽빽이 붙어있는 아낙네들, 젊은이들, 늙은이들, 아이들 그모두를 둘러보신 그이께서는 입가에 너그러운 미소를 그리면서 다시 연설을 계속하시였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만치 뜻밖이였던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총을 멘 사람들을 보자 즉시에 종을 치고 피난도 가고 혹은 달려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옳게 행동하였습니다. 원쑤를 향해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쇠스랑이건 걸이대건 닥치는대로 들고 목숨바쳐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조선민족의 기개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원쑤들이 온줄 알면서도 아무런 반항이 없었다면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을것입니다. 여러분! 당신들은 지금부터 맨주먹이 아닙니다. 우리 인민들에게는 반일인민유격대라는 믿음직한 자기의 무력이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연설을 막 끝마치시려 할무렵이였다. 갑자기 동구앞이 떠들썩해졌다. 마당끝에 서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웅성거렸다. 집 네귀에 서있던 보초들이 달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골목에서 《영희 아버지가 온다-》 하는 고함이 울렸다. 뒤미처 《모두 온다, 세걸이 삼촌도 온다-》하고 문가에서 웨쳤다. 장내가 웅성거렸다. 모든 눈길이 김일성동지께 쏠리였다. 그이께서는 인차 사태를 짐작하시였다. 참혹한 재난을 겪은 인민들을 앞에 두고 안타깝게 생각하시던 그이의 가슴은 기쁨의 예감으로 설레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군중들사이를 헤치고 성큼 마당가로 나서시였다.

그이의 뒤로 마을사람들이 우줄우줄 따라섰다. 희미한 달빛아래 들것이 먼저 들어서고 그옆에 군복을 입은 전광식이 따라섰다. 뒤따라 10여명의 동네사람들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맨뒤에 총을 멘 유격대원들이 대렬을 호위해왔다.

일행은 마당가에 이르자 우뚝 멈추어섰다. 순간 소란스럽던 발소리도, 가쁘던 숨소리도 그리고 웅성거리던 속삭임도 모든것이 숨을 들이긋듯 가뭇없이 잦아들고 천길물속처럼 조용해졌다. 이 상봉이 가지는 그처럼 크고 깊은 뜻을 말보다도 심장으로 먼저 느끼는 모든 사람들은 가슴에 불을 뿜듯 솟구치는 감동을 안은채 이 상봉을 마련해주신 그이-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볼뿐이였다.

들것은 멎어섰다. 그뒤로 끌려갔다돌아오는 마을사람들도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여 사민답지 않게 줄을 맞추어섰다.

전광식이 허리에 찬 권총을 눌러잡고 대렬앞으로 나섰다.

《사령관동지.》

그는 경례를 붙이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하였다.

《중대는 명령대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그래 전원이 다 돌아왔습니까? 영희 아버지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그이께서는 한걸음 앞으로 나서시여 전광식의 손을 잡으며 물으시였다.

《다 오기는 했습니다만 탈환과정에 두사람이 부상 당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전광식은 자책감에 못이겨 목소리를 죽이고 잠시 서있더니 간단히 경위를 보고하였다. 중대는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고 떠난지 사흘만에 겨우 마을사람들이 끌려간 공사장에 도착하였다. 당초에 사령관동지께서 중대를 파견하신 의도를 아는만큼 전광식은 그 자리에서 인민들을 구원할 대책을 세웠다. 보매 공사를 급하게 다그치기는 하나 왜놈들의 기본무력은 이미 통과한 뒤였고 공사는 앞으로 올 후속부대들을 위한것이라 한개 중대가량의 무력이 인민들을 감독하고있었다. 세명의 정찰조원들이 인부로 가장하고 들어가서 끌려온 인민들을 선동하고 교양하였다. 천상데기마을사람들도 만나서 유격대가 김일성장군님의 친솔하에 마을에 왔다는 소식도 전하고 놈들과 싸워서 탈주해야 한다는것을 가르쳤다. 공사에 끌려나온 인민들은 유격대소식에 힘을 얻고 싸울 결의를 다졌다.

기습전투는 밤에 단행되였다. 불의에 습격을 당한 놈들은 꼼짝 못하고 녹아났고 군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흩어져 달아났다. 이튿날 예정한 지점에 모인 군중들앞에서 전광식은 선동연설을 하고 그들을 모두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였다. 전광식은 천상데기사람들과 함께 영희 아버지를 찾았다. 절벽밑에 가보았으나 그곳에는 다리와 목이 부러진 왜놈의 시체 둘이 있을뿐 영희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때문에 다시 하루를 보내서 다리와 팔이 부러진채 바위굴에 누워 앓고있는것을 찾아 들것에 눕혀왔다.

《…사령관동지, 제가 조직사업을 더 면밀하게 짜지 못했기때문에 부상자가 났습니다.》

전광식은 꺼져들어가는듯 한 목소리로 자기 말을 맺었다.

《그 문제는 따로 이야기합시다. 어쨌든 수고를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탈환해온 사람들앞으로 한걸음 나서시였다.

《여러분, 참으로 용감하게 잘 싸웠습니다. 우리 동무들이 일을 잘못하여 부상당한분들이 있다는데 내가 대신하여 사과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가족들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자, 만나들 보시지요. 영희야, 아버지 오셨다. 아버지를 만나보아라.》

그이께서는 손을 뻗치며 영희를 찾으시였다. 영희는 철삼의 앞자락에 안기여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철없는 영희조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가쁜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들것우에서 흑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다음순간 길우와 마당에서 《장군님!》하는 목메인 웨침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흐느낌소리가 터져올랐다.

우등불 타오르는 마당은 마침내 울음바다로 화하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을 맞는 혈육들이 서로 얼싸안고 돌아갈 생각도 잊어버리고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볼뿐이였다.

아무리 짓밟히고 억눌려도 하소할데 없던 그들이였다. 아무리 억울하게 매를 맞고 목숨을 빼앗겨도 편들어줄 사람이 없는 고아와도 같이 외로운 조선사람들이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는 그들의 모든 설음, 모든 기쁨, 모든 아픔과 근심걱정을 한품에 품어주는 어버이가 계시는것이다.

《장군님!》

《장군님!》

여기저기서 계속 목메인 소리가 울리였다.

심장속에서 우러나오는 이 부르짖음가운데는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자기들을 건져준 끝없는 감사의 정과 동시에 온 겨레의 운명이 그이께 의탁되여있다는 절절한 호소가 깃들어있었다. 또한 그것은 그이에 대한 끓어넘치는 충성심의 폭발이며 그이에 대한 존경과 신임과 자랑의 표시이기도 하였다. 그 크나큰 기쁨을 의식할 때 마을사람들은 목전의 상봉을 기뻐할 경황조차 없었다. 우등불의 불길은 어두운 밤하늘을 불태우고 뜨거운 눈물은 수십년 가슴에 맺혔던 원한을 녹이는데 윤철삼이 불쑥 마당 한가운데 일어서서 두손을 번쩍 쳐들고 웨쳤다.

김일성장군 만세!-》

그러자 산이 떠나갈듯 한 함성이 천상데기의 밤하늘을 뒤흔들어놓았다.

《만세! 만세!》

발돋움을 하고 두손을 쳐든 세걸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볼을 흔들며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들것에 누운채 웃몸만 일으키고있던 영회 아버지도 팔을 들어 흔든다.

김일성장군 만세!》

목청껏 부르는 이 웨침가운데는 굴욕과 오뇌에 서린 과거를 불사르고 희망과 투쟁에 충만된 미래에 대한 높은 긍지와 환회가 깃들어있었다.

영희가 장군님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더니 군복자락을 잡아당기였다. 그것을 알아보신 그이께서는 영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군중들의 환호에 계속 답례하고계시였다.

영희는 그이의 손을 잡고 들것이 있는쪽으로 내끌었다.

《우리 아빠야, 아빠 왔어!》

턱을 들고 새별같은 눈으로 올려다보면서 영희는 아버지가 왔노라고 자랑을 하였다.

《그래, 아버지가 오셨다. 영희야, 아버지가 오셨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영희를 닁큼 들어올리시였다. 가슴에 안긴 영희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쌍까풀진 눈을 치켜올리며 방긋 웃었다. 끝없이 순결한 그 어린것의 웃는 얼굴을 보신 그 순간 그이께서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몇걸음 떼여 영희를 아버지의 품에 안겨주시였다. 딸애를 받아안은 영희 아버지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철부지야, 장군님께 인사를 드려야지.》

영희는 말끄러미 올려다만 보는데 얼굴이 꺼멓게 그슬린 사나이는 고개를 돌리며 꺽꺽 숨을 모두어쉬다가 드디여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울기 시작하였다.

그날밤 날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있던 철삼은 동쪽하늘이 훤해지자 대야에 물을 떠들고 마당 한끝으로 나왔다. 물그릇을 내려놓고 세면을 하였다. 두세번 물을 떠내다 얼굴과 손과 발을 따로 씻고 고무신도 깨끗이 닦았다. 방안에 들어서자 그는 농밑에서 토스레잠뱅이와 두루마기를 꺼내였다. 그는 옷을 다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바야흐로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진회색하늘이 차차 엷어지면서 희끄무레해지더니 그것이 차차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마당 한끝에 나서서 동쪽하늘을 바라보고있던 철삼은 발을 모으고 두루마기자락을 다시 여며놓았다. 잠시후 그는 두팔을 머리우로 들어올리며 앞을 내다보았다. 백두산마루에 해빛이 와닿았다. 노을빛을 휘감은 봉우리가 거연히 솟아있다.

철삼은 천천히 허리를 굽히면서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김일성장군님, 만수무강하옵소서.》

땅우에 두손을 짚고 그 손등에 이마를 내리대였다.

《장군님! 칠성판에 오른 나라를 건지시고 불쌍한 저희들 백의민족을 위해서 부디 만수무강하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비옵니다.》

무엇인가 그는 더 크고 중요한 말을 많이 할수 있을것 같았지만 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정은 끓어넘치기만 하고 그것을 나타낼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큰절을 세번 하고나서도 엎드린채 오래오래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한참후에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다시 마당 한켠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해살이 쫙 퍼졌다. 온 하늘이 붉은 장막에 뒤덮이고 그 복판에서 백두의 봉우리가 은백색빛을 찬란히 뿌리고있다.

해돋이를 넋없이 바라보고있던 철삼은 그길로 앞집으로 나갔다.

어서들 나오게.》

그는 작대기를 디디고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날이 다 밝자 유격대원들이 옥바위골로 떠나기 위해 길차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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