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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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덕의 보고를 다 듣고난 차광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느다란 눈섭이 일자로 곧아지고 빛나던 눈이 초점을 잃었다.

고개를 맥없이 떨군 박흥덕은 자기 과오에 대한 사리정연한 분석을 기다리면서 숨을 죽이고 앉아있었다.

예상했던대로 몇분후에 역시 차광수는 침착한 어조로 《첫째로 동무의 과오는…》 하고 허두를 떼였다. 그는 어떤 복잡한 현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첫째, 둘째 하고 순서를 꼽아가며 분석하였는데 항상 그의 판단은 정확하였고 론리에 빈틈이 없었다.

박흥덕은 자기 과오라는것이 너무나 상상외의 일이여서 온몸을 긴장시켜 비판을 받아들이였다.

첫째로 차광수가 꼽은것은 임무를 준대로 하지 않았다는것이였다. 우선 크게 소문을 내지 않으면서 식량을 구해와야 하였다. 아무런 사전료해와 준비도 없이 군중선전공작을 펴면 그 후과로 적들을 불의에 끌어들일수도 있는것이라고 하였다.

둘째로는 사전토의 없이 옥바위골 군중을 이곳에 오도록 한것이다. 부대의 행동계획을 모르면서 숱한 군중을 오도록 했으니 사정에 의해 래일이라도 부대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음은 역시 채용증사건이였다.

차광수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은 일종의 《유쾌한 기만》이라고 하였다. 군중에게는 물론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기만이라는것이다. 혁명군대가 군중과의 관계에서 채용증을 운운한다는것자체부터가 장사치들이나 할수 있는 야박한 거래관계를 맺은것과 같은것이며 동시에 그 누구도 규정한적이 없는 《3년》과 《독립된 우리 조선정부》라는것은 또 무엇인가?

매사에 치밀한 차광수는 이 몇가지 문제를 놓고 오래동안 갈피갈피 뒤져가며 분석을 하였다. 한 반은 해석과 추궁이 겸해있었고 다른 절반은 과오를 저지른 박흥덕이에게가 아니라 그런 실수를 사전에 방지할 대책을 세우지 못한 자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다. 구름노전이 깔린 귀틀집 웃방에 단둘이 마주앉아 시간을 끌었다. 무릎에 올려놓인 박흥덕의 손바닥에 땀이 질척하니 내배였다.

박흥덕에게 있어서 그것은 실로 천만뜻밖의 일이였다. 듣고보니 차광수의 말은 반박할 여지없이 다 옳았다. 그러나 그때는 전혀 그런것을 느끼지 못했으며 반대로 일이 예상외로 썩 잘되여가는줄로만 알았었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는 인민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뜻을 동무는 란폭하게 어겼소. 만약 우리들이 인민과의 관계에서 그 어떤 리유에서든지 사이를 약간이라도 벌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최대의 죄악이요. 우리들의 최고의 원칙은 인민에게 복무하는것이요.》

차광수는 말을 끝내고 박흥덕의 답변을 기다렸다.

박흥덕은 고개를 떨군채로 자기비판을 하였다. 유격대에 들어오기 몇해전부터 혁명사업에 참가하였지만 그때는 규률이 매우 단순하였다. 어데까지 련락을 간다든지 언제까지 누구를 만나 무엇을 전한다든지 혹은 제시간에 삐라를 붙이거나 주구를 청산하는 그런것 등이였다. 이를테면 좁다란 강물우로 배를 몰면서 이쪽저쪽의 기슭을 떠받지 않도록 몰아가면 되는 그런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망망한 대해에 떠서 길을 잡아야 하는것이다. 인민의 리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시초에는 종이 한장의 편차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은 잘못된 견해가 량극으로 달아나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시간이 흘러서 눈이 벌개진 박흥덕은 고개를 들었다.

문제가 군중과의 관계인것만큼 차광수는 박흥덕이와 함께 사령관동지께 보고를 올려야 하였다.

얼마후 그들은 사령관동지앞에 앉아있게 되였다.

전혀 다른 립장으로 돌아간 차광수는 박흥덕을 더욱 괴롭혔다. 개별적으로 준절하게 비판을 하고난 차광수는 사령관동지앞에 이르자 과오의 모든것이 자기때문에 일어난것이라고 맡아나섰다. 지시를 줄 때 사전에 어떤 일이 있으리라는것을 예견해서 준비시키지 못했다는것과 그런 중요한 사업에 지휘관이 따라가지 않은것이 과오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글을 쓰다말고 돌아앉으시였다. 노전 세잎이 깔린 좁다란 방아래목에 두사람을 마주하고 앉으신 그이께서는 오늘 저녁에 마을사람들을 상대로 선전사업을 할데 대한 구상을 익히고계시였다.

박홍덕동무, 다시한번 공작정형을 말해보시오.》 

그이께서는 책상우에 놓인 물잔과 책을 밀어놓으며 박흥덕을 바라보시였다. 박흥덕은 겁이 많게 생긴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떠나서 돌아올 때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말씀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고를 들으시다가 자주 박흥덕의 말을 중단시키시였다. 일제경찰의 지지를 받는 자위단이 무기를 가지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얼씬 나타나지도 못했다는 보고를 들으시다가는 통쾌하게 웃으시였다. 이마에 손을 짚고 그이께서는 차광수를 쳐다보시였다.

《어떻소? 차동무, 이것은 분명히 놈들에게 가해진 타격이지? 그다음 또 그가 무엇이라고 말했소?》

얼마간 속이 누그러진 박흥덕은 원식이란 농민이 팔을 벌리고 어리벙벙해서 한참이나 서있다가 장하다고 고함을 지르던 시늉을 해보이였다.

《좋습니다. 그다음엔 래일이나 모레 옥바위골 농민들이 여기로 오게 되였다는것이 정말입니까?》

박흥덕은 고개를 떨구고 다시 굳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은 매우 잘못되였다고 지적하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참모장동무가 지적한것 외에 동무의 또 하나의 과오가 있습니다. 그것은 옥바위골 농민들이 우리를 찾아올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데 사태를 꺼꾸로 서게 한것입니다.》

박흥덕은 고개를 들며 그런것을 전혀 생각할수도 없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무는 지금 이렇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부대를 어떻게 한 대원이 오라가라 해낼수 있겠는가, 더구나 사령관을 어떻게 그곳으로 부를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동무들은 큰 잘못입니다. 나는 동무들이 군중앞에서 그런 약속쯤은 능히 할수 있는 대담한 대원이기를 바랐습니다. 인민의 요구라면 우리모두가 즉 대원이건 사령관이건 관계없이 목숨까지 바쳐서 응해야 한다는것을 동무들은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인민들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백리가까운 길을 걸어올수 있다면 우리는 인민을 만나기 위해 천리가 아니라 만리라도 가야 합니다.

우리의 이번 행군의 목적이 과연 무엇이요? 떠날 때도 거듭 말했지만 우리는 인민들에게 우리 반일인민유격대를 보이는것이요. 망국노의 비운에 눌리고 희망을 잃은 그들에게 서광을 주자는거요.》 ·

말씀을 중단하시고 잠간 무엇을 생각하더니 다시 계속하시였다.

박흥덕동무! 어떻습니까. 동무가 그곳에 다시 가서 〈우리 부대를 여기 데려오겠습니다.〉하고 약속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박흥덕은 고개를 뒤로 젖히였다.

《제가 말입니까?》

두툼한 입술이 한 반쯤 열린채 말끝을 채 맺지 못한 그의 눈굽에 금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고통스러운 때나 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나 혹시 눈물을 흘려야 할 슬픈 일이 생겼을 때에도 그저 웃음으로 그 모든것을 대해버리던 락천적인 그도 이때만은 자기의 감정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는 이때 유격대원과 사령관, 인민과 수령에 대한 깊은 사색을 거치지는 못했지만 그이의 짧고 평범한 말씀에서 더구나 방금 하신 그 한마디 말씀으로써 인민을 위한 그이의 가장 숭고한 감정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으며 그로 해서 가슴속깊이 간직된 심금이 부르르 떨렸던것이다.

《왜 말이 없습니까, 박동무! 그렇게 할수 있지요?》

가슴을 들먹이고있던 그는 얼른 자세를 바로하며 고개를 들었다.

《알았습니다, 사령관동지!》

차광수가 보기에 그의 대답은 적중하지 않은것이였다.

그렇지만 이때 박흥덕은 자기의 과오의 성질이 어떤것이며 무엇에 뿌리를 두고있다는것 즉 인민을 위한다는 그 짧은 한마디 말속에 포함되는 그 숭고하고 위대한 사상의 참뜻을 얼마간이라도 깨달았다는것과 그리고 사령관동지께서 항상 바라시는것이 바로 무엇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수 있었다는 그것을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박흥덕의 대답이 가슴속 깊은데서 울려나오고있으며 약간 떨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확신에 차있었다는것을 느끼시고 더 오래 말씀하려 하지 않으시였다.

차동무! 그렇게 합시다. 그곳 농민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곳으로 갑시다. 진봉남동무한테 련락을 띄워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시오. 전광식동무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누구 한사람을 떨구어두었다가 련계를 가지도록 하고 부대의 차후행동은 그 동무들의 보고를 듣고 결정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채용증문제는 돈으로 갚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곳에서 떠나기 전에 옥바위골에 누구를 보내서 중지시킵시다.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인민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있습니까?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자기 조국을 하루빨리 되찾지 못하는것도 빚이고 우리 인민을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회주의사회에 하루빨리 들여세우지 못하는것도 또 하나 우리의 큰 빚입니다.》

그이께서는 석양이 비껴든 창문을 밀어놓으시였다.

시원한 바깥바람이 훅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산허리로 저녁안개가 흘렀다. 부드러운 입김같기도 하고 하르르한 두메양귀비꽃잎같기도 한 그런것이 서서히 골짜기로 흘러내렸다.

차광수와 박흥덕은 밖으로 나왔다. 얼굴에 시원한 바람이 스치였다.

마당앞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어린애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아저씨!》

《오! 영희 왔냐?》

사령관동지께서 문밖으로 나와 처녀애를 들어안으신다. 그것을 보고있던 박흥덕은 공연히 가슴이 또 찌르르해나는것을 느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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