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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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덕의 최초의 계획은 걷잡을수없이 무너져나갔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이 잘되는것으로 알았다.
예상외로 식량공작이 잘된데다가 한탕 연설까지 하고 군중들의 요청으로
그는 자기 구상을 동무들의 토의에 붙였다.
《언제 여기에 또 와서 꾼것을 돌려주겠습니까?》
무슨 일에나 대체로 찬성하기마련이였던 진봉남이도 이런 투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자, 이 답답한 친구 봤나!》
잔디판에 꿇어앉았던 박흥덕은 쑥대를 와락 쥐여뽑으며 한심하다는듯이 대들었다.
《우리가 이제 유격투쟁을 하자면 조선 13도를 온통 무른 메주 밟듯 해야 하겠는데 여기 다시 오지 못한다는것이 무슨 소리요?》
《꾸었다가는 틀림없이 갚아주어야겠길래 걱정이 되여 그럽니다.》
《하긴 동무 생각도 일리가 있긴 하지. 그러기에 내가 이렇게 동무들과 의논하는것이 아니요. 그럼 언제쯤 갚아줄수 있을가?》
박흥덕은 앞이 약간 솟아오른 이마를 손바닥으로 슬슬 쓸면서 이미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고말았다.
《그걸 언제라고 날자를 찍어서 기약하기가 어렵지 않을가요?》
봉남이가 다시 딱한 표정을 지었다.
《넉넉히 잡아서 한 3년후에 갚는다고 채용증에 적어두지.》
《채용증을 쓴단 말입니까?》
진봉남이 또 고개를 기웃거렸다.
《물론 써야지. 이런 일은 말루 해서는 안되오.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된단 말이요.》
한층 더 심각해진 박흥덕의 말에 모두 얼떠름해졌다.
잠시동안 말이 없게 되였을 때 박흥덕은 다그쳤다.
《반대없소? 반대없다면 그렇게 합시다.》
그는 수첩을 꺼내 무릎우에 올려놓고 이쪽저쪽 주머니를 한참 들추어 무드러진 연필꽁다리를 하나 꺼내였다.
《뭐라고 쓴다?》
머리를 기웃거리며 잠시 생각하고난 그는 《채용증》이라고 웃머리에 크게 쓰고 그밑으로 품명, 수량을 밝히고 3년후에 독립된 조선정부에서 반환하겠음 하고 적었다. 밑에다는 년월일과 반일인민유격대 군수관 박흥덕 하고 비교적 순탄한 글씨로 써놓았다.
《대서방에서 꾸민것보다 못지 않군.》
심각해졌던 박흥덕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도장은 뭘루 찍는다?》
《지장을 찍지요.》
《그렇지.》
박흥덕은 뭉툭한 엄지손가락을 일궈세워 입에다 대고 훅 불었다. 일이 착착 순조롭게 되였다. 우선 넷이서 짐을 지고 먼저 떠나고 진봉남이 혼자 남아
70리나 되는 길을 그들은 한겻에 들이대였다.
천상데기어구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가 박흥덕이 온다 하고 고함을 질렀다. 아닌게아니라 짐을 잔뜩 지고 언덕을 톺아올라오면서 손짓을 해보이는것은 과연 박흥덕이였다. 뒤따라 상선이, 칠성이가 올라왔고 소바리도 두짝 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