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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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덕은 신바람이 났다.
여느때는 느린것 같다가도 성수가 나면 누구보다도 동작이 빠르고 민첩해진다. 그러나 결코 침착한 축은 아니였다.
《최칠성동무! 단추가 다 달려있는가 보라구. 우리가 괴죄죄한 꼴을 보이면 유격대망신을 시키게 되는거요. 그리구 그거 좀 보내우. 이걸 좀 추겨서 밟아야겠소. 어서 그걸 좀…》
최칠성은 그것을 좀 보내라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걸 좀 달라니까그래, 최동무.》
《그거 그거 하는데 뭘 그러는겁니까?》
《자, 이 친구. 그거 있잖나. 손에 들구두 몰라?》
《이 물그릇 말이요?》
최칠성은 웃입술을 들어올리며 어이없어 웃었다. 그는 물통을 넘겨주고나서 군복을 차곡차곡 개여놓고 발로 밟기 시작했다.
《이거 뭐 큰 나들이차림 같은데.》
《하기야 큰 나들이지.》
박흥덕은 군복을 개면서 머리를 흔들어 턱에 맺힌 땀방울을 털어버렸다. 그는 이런 투로 서둘러대면서 대원들의 몸단장을 빈틈없이 시켰다.
농민차림으로 사복을 했던것보다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럴듯해. 역시 우리들에겐 군복이 제일이거던. 인끔이 두갑절이나 올라간단 말이야.》
물이 약간 날기는 했지만 비비고 털고 잠재웠다가 척 입고 나서니 모두 몸매가 름름해보이였다. 눈이 좀 크고 이마가 두드러진 최칠성이, 그다음은 목이 길고 얼굴이 갸름한 상선이, 그다음이 좀 고집스럽게 생기고 몸이 통통한 봉남이, 그런 순서로 렬을 지었다. 박흥덕은 주름이 채 펴지지 않은 팔소매를 둬번 잡아당겨놓고 이제 들어갈 옥바위골을 내려다보았다.
천상데기마을에서 70리가량 떨어진 곳에 100여호나 되는 옥바위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오늘아침 박흥덕은 대원들을 산중에 있게 하고 단신으로 마을에 들어가 식량공작을 시작하였다.
머리수건을 동이고 잠맹이에 망태를 멘 그는 길가던 사람인데 물 한모금 얻어먹자고 말을 시작해서부터 공작을 벌려놓았다. 토방에서 물사발을 돌려주고 다음에는 마루에 올라앉고 그다음에는 방안에 들어앉아 점심을 시켜 먹고 다시 그다음에는 좁쌀 닷말을 사게 되고 몇시간후에 드디여 《조선군대가 정말 있다면 좀 보자.》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옥바위골이라는 이 마을에는 지주가 서너집 있고 모두 소작농이거나 화전민들이였다. 일본경찰은 15리밖에서 때때로 순찰을 오는 정도이고 마을에는 보총을 몇자루 가진 자위단이 얼마간 있을뿐이였다.
40살 되나마나한 이 집 주인 박원식은 적에 대해서는 걱정말라고 장담을 하였다. 구레나릇이 꺼멓게 자란 그는 홍범도를 비롯해서 한다한 독립군인사들을 거의다 만나보았노라고 자랑하였다. 그런데 독립군과는 달리 반일인민유격대라는 조선의 새로운 군대가 생겼다는것이 사실이라면 온 동네가 떨쳐나서 춤을 출만 한 경사라고 하였다. 허줄한 초가삼간집 널마루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 하고난 박흥덕은 한달음으로 뛰여올라와 동무들에게 그렇게 몸단장을 요구했던것이다.
몸치장에서는 최칠성이 하나만 나무랄데가 없고 봉남은 군모가 아직 약간 구겨지고 상선이는 신에 발렸던 진탕이 채 떨어지지 않았으나 그런 정도로 참을수 있었다. 그의 성미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깐깐해진 박흥덕은 사소한것까지 거듭 잔소리를 해가며 외모를 바로잡고 드디여 《앞으로 갓!》 하였다.
일행이 원식이네 마당에 들어설무렵에 원식은 부락자위단이 있는데를 한바퀴 순회하고 왔다. 그는 팔이 빠져나갈만치 활개를 내저으며 마을을 한바퀴 돌면서 소문을 쫙 폈다.
《조선군대 보겠거든 우리 마당으로 빨리 오시오.》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소리로 알려주었다.
《하아!》
유격대원들이 마당에 들어선것을 보자 그는 팔을 벌리고 달려나와 부둥켜안았다.
《아까 망태를 메고왔던분이 아니요?…》
원식은 연방 감탄을 하며 대원 한명한명을 다 안아보았다.
《장하웨다, 장해요.》
박원식이 연방 감탄을 하고있을 때 마을사람들이 마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김을 매던 젊은이들이 호미를 든채 달려드는가 하면 서당에서 글을 읽던 아이들이 맨발로 뛰쳐나왔다. 뒤미처 장죽을 휘두르는 늙은이도 십여명 나타났다. 널다란 뜰안에 삽시간에 백여명군중이 모이였다. 원식은 마당에 멍석을 내다펴고 둘러앉히였다.
늙은이들은 긴 담배대들을 물고 연방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추녀밑에 네명이 주런이 서고 그앞에 마을사람들이 마주앉았다.
박흥덕은 그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바쁠 때일수록 머리가 잘 돌아가는 축인 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였다.
《최칠성동무! 한마디 하오. 내처 이러구 서있겠소?》
그는 목을 꿋꿋이 세워 차렷자세를 하고있는 최칠성을 툭 다치며 지시를 하였다.
《난 못해요.》
얼굴이 붉다못해 자주빛이 된 최칠성은 신통히도 작은데기 바위등에서 보던 그 모양 그대로였다. 하는수없이 박흥덕은 킁킁 코를 몇번 구르고나서 고개를 들었다. 입이 한 반쯤 열렸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군중들이 그에게로 일제히 시선을 모았다.
분위기에 압도된 박흥덕은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황황한 눈길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잠시후 그는 땀이 쭉 내솟은 번들거리는 얼굴을 쳐들고 입을 떼였다.
《여러 할아버님들, 아버님들, 형님네들, 우리는
마당만이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얼결에 한마디 하고난 박흥덕은 크게 씩씩거리는 자기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눈만 껍적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잠간 숨을 돌리고있는 그때
박흥덕은 온몸에 힘을 모아 다시 말을 떼였다. 반일인민유격대창건에 대한 의의와 그를 인민들이 원호할데 대하여 말한 후에 천상데기에서 겪고있는 참상과 고통을 본대로 설명하였다. 군중들은 유격대를 돕기 위해 우선 천상데기사람들을 구원해야겠다고 궐기해나섰다. 저마다 쌀을 내겠다고 하였다.
박흥덕의 연설이 끝나고 이야기판이 벌어졌을 때 희게 바랜 꽛꽛한 베두루마기를 입은 한 로인이 군중들을 향해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