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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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찌기 전광식은 차광수와 마주앉았다.
전광식은 자기가 마을을 돌아본데 대하여서와 영희를 위해서
《우리가 지금 급히 처리해야 할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부모를 잃고 매일 울고있다는 영희와 같은 어린것을 두고 어떻게 걸음이 떨어지겠습니까?》
좀체로 흥분을 나타내지 않던 전광식이건만 이때는 얼굴이 상기되여 씨근거리였다.
《그렇다면 전동무 생각에는 관동군놈들에게 끌려간 이 마을사람들을 찾아와야겠다는것이겠지요?》
허리를 꼿꼿이 일궈세운 차광수의 미간은 팽팽히 발려졌다.
《그렇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세걸이의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였고 한개 중대인원을 파견해서 마을사람들을 탈환해올데 대한 작전을 짜게 되였다.
아침식사가 끝난 후에 예정했던대로 식량과 의약품을 구하기 위해 공작조들이 떠나갔다. 차광수와 전광식이 물방아간이 있는 개울을 따라 가지런히 서서 걸었다. 물가에는 흡사 남방식물같이 잎이 크고 윤택한 빛을 띤 옻나무며 구리대며 또 그와 비슷한 초목들이 잔뜩 자라고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걷고있던 전광식이 구리대잎을 뜯어 훌쩍훌쩍 부치면서 나직이 말을 떼였다.
《내가 부탁할것은
《나도 역시 동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길을 걷지 않는다면
차광수는 손을 들어올려 공연히 코등을 문질렀다. 평소에는 말이 적던 전광식이 일단 말을 떼기만 하면 어떤 수로든지 이렇게 심금을 울려놓고야만다. 앞서가는 대오가 산모퉁이를 돌아서게 되자 전광식은 손을 내밀었다.
《갔다오겠습니다.》
《좀더 걸읍시다.》
《아니요. 지체됩니다. 한가지 부탁할것이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굶고있는 소식을 들은 때로부터
《나도 알고있습니다. 그럼 떠나시오. 이걸 가지고 가시오.》
《뭡니까?》
잠시동안에 그들사이가 멀어졌다. 재빨리 산모퉁이를 돌아선 전광식이 자그마한 개울을 훌쩍 건너뛰였다. 그때 보자기에서 미시가루냄새가 확 풍겨나왔다. 언덕에 올라선 전광식은 보자기를 안은채 오도가도 못하고 서버렸다. 되돌아가서 미시가루를 돌려주고 올것인가 이대로 가지고 가야 할것인가. 한홉의 식량이 금싸라기처럼 귀한데 이렇게 념려하시다니… 그는 전혀 기미를 알수 없게 한 차광수마저 야속스럽게 생각되였다. 전광식은 보자기를 부둥킨채 멍청히 서있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글썽해진 그는 열마디, 백마디의 당부보다 더 무겁고 뜨거운 보자기를 안고 맹세를 다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