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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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걸이를 만나 마을형편을 자세히 료해한 전광식이 고개를 숙이고 불탄 집터를 지나 철삼이네 집앞에 이르렀을 때
마을형편을 친히 돌아보고 오시는 길이였다.
철삼이네 집모퉁이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네댓살났을가 한 계집애가 댑싸리가 다문다문 자란 언덕밑에서 소꿉놀이를 하고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시던
《너 혼자서 재미나게 놀고있구나.》
장난에 정신이 팔렸던 계집애는 고개를 들고 코를 훌쩍 들이그으며 방긋 웃었다.
《나 세간놀이해요.》
《이건 뭐지?》
《그거? 그건 김치담근거지.》
아닌게아니라 능쟁이잎을 뜯어 올려놓은것이 제법 김치라고도 할만하였다.
《이건?》
《그건 밥이야, 밥. 이제 풀래.》
《이건 물사발이구나.》
《아니, 그건 물독이야.》
《오! 물독, 그것 참 대단하구나.》
《아저씬 물독도 모르구.》 ·
계집애는 물이 날고 팔굽이 나간 색동저고리소매를 들어 동이깨비를 옮겨놓으며 눈을 할기죽히였다. 그 모양이 어떻게나 귀염성스러운지
《네 이름이 뭐지?》
《내 이름?》
《오냐, 네 이름이 뭐냐?》
《나 영희야.》
《영희! 오, 용타!》
영희는 사발깨비를 오지랖에 싸안으며 쌍까풀진 눈을 깜박깜박하는데 언제 울었는지 눈에서부터 턱으로 눈물이랑이 생겼다.
《영희, 너 몇살이냐?》
벌써부터 영희는 안아달라고
《세면을 해야겠다. 고운 얼굴에 이게 뭐냐? 그래 몇살이지?》
《요렇게 났어.》
고사리같은 손가락을 짝 펴보인다.
《다섯살이냐?》
《응!》
《아빠엄마는 뭘하나요?》
《아빠엄마?》
《그래.》
영희의 눈은 갑자기 겁에 질린것처럼 올롱해졌다가 차차 긴장이 풀리면서 시선이 파르르 떨었다.
《영희야! 영희! 왜 그러니, 응?》
《엄마! 엄마야!》
《하! 이거 야단났군. 영희야, 내 업어줄가?》
《엄마!》
《내 이거 줄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 찾으시지만 아이에게 줄만 한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자! 이거 주지. 이거 곱구나.》
만년필을 뽑아 영희에게 내보이시였다. 그러나 어린것은 그냥 울었다. 안았던 그릇깨비를 뿌려던지며 몸을 흔든다.
《하하, 이런…》
사위를 둘러보셨지만 사람 하나 띄지 않았다.
구슬같은 물이 돌등으로 굴러내리는데서 수건을 적시여 영희의 눈물을 닦아주시였다. 한참 울고난 영희는 촉촉히 젖은 눈을 뜨고
《영희야! 울면 안돼요. 이름두 알구 나이두 아는 착한 애가 울면 되나요. 얼굴을 닦자. 참 이쁘다. 자, 턱을 요렇게 들구.》
겨우 바쁜 모퉁이를 면하신
맞은편에서 물동이를 든 아주머니가 오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영희야, 너 또 울었구나.》
녀인은 물동이를 길바닥우에 내려놓고 영희를 받아안았다.
《어머니십니까?》
《아, 아닙니다.》
《애가 놀다가 그만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애가 글쎄 하루에도 몇차례씩 그렇게 울면서 애간장을 말리지 않습니까.》
졸지에 고아가 된 철삼의 손녀 영희는 날이 저물어 어슬어슬해질무렵이면 어머니가 그리워 섧게 운다는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세걸의 숙모에게서 사연을 다 들으신
《영희야, 내려서 걸을가? 그럼 여기 섰거라, 내 곧 물을 길어가지고 올라올게.》
녀인은 동이를 들고 급히 언덕아래로 내려갔다.
《영희야!》
얼마후 영희가 잔디우를 걸어나갔다.
《자! 여기서 우리 꽃을 뜯자. 저기 고운 꽃이 있다.》
어린것의 정서라는것은 실로 여름날의 번개와 같은것이여서 금시 울던것이 방글방글 웃으며 민들레를 향해 두팔을 벌리고 달아나간다. 이제 보니 아이의 발에는 아무것도 신은것이 없다. 치마는 토스레여서 대패밥처럼 꽛꽛하니 들리웠다.
어느땐가 엄마가 손끝으로 한뜸한뜸 떠서 해입힌 색동저고리도 이제는 색이 다 날고 소매가 짧아졌다.
석양이 곱게 비꼈다. 하늘과 땅이 감빛으로 물들었다.
영희는
《뭘 그리 보고있습니까?》
《저걸 좀 보시우.》
전광식이 고개를 돌리니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서 하늘과 땅에 붉은 빛을 찬란하게 뿌려던지고있다.
《에미애비 다 잃고 밤낮 울고있던 계집애가 지금 저렇게 깔깔 웃고있습니다.》
《그래요?》
전광식은 세걸의 숙모에게서 그 사연을 자세히 들었다.
노을이 져서 어둠이 내릴 때까지 전광식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린것의 손목을 끌고
어떻게 하면
처음에는 영희가 울었지만 결국
우선 어떻게 하면 영희에게서 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