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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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용이 군중들에게 끌려 철삼이네 마당에 들어섰을 때 전광식은 토방에 올라서서 두손을 흔들며 열렬히 웨치고있었다.
《여러분! 우리는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해 왜놈들과 싸우는 반일인민유격대입니다. 조선인민의 군대입니다.…》
마당에 모여들었던 군중들이 눈이 둥그래져서 서로 마주보았다.
그럴수록 전광식은 더욱더 높은 목소리를 내였다. 흥분된 그의 목소리는 군중들의 정서를 단꺼번에 휘몰아가지고 그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할 판이한 세계에로 끌어갔다. 믿자니 너무 엄청나고 믿지 말자니 그것은 또 너무나 절통한것이였다.
작대기를 짚은 철삼이 군중들속에서 절뚝절뚝 걸어나가더니 전광식의 팔을 잡고 물었다.
《당신네들이 끌고오는것이 일본군대가 아니고 조선군대란 말이요?》
이때 그 이그러뜨린 얼굴에는 한평생 기만당하고 짓밟히고 뜯기우기만 하던
《여러분!
그때 세걸이가 전광식이 움켜쥔 군모에서 붉은 별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결코 노란 별로 표시된 왜놈의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였다. 전광식의 말과 함께 그것이 모든것을 말해준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세걸이 철삼의 팔을 잡아끌며 난처한 얼굴을 보이였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들은 서로 울상이 된것을 볼수 있었다.
《쟁기들을 놓아라!》
철삼은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웨치고는 전광식에게로 다가가 그를 덥석 그러안았다.
《용서해주오.》
마당의 여기저기서 괭이며 걸이대가 땅에 맥없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바로 그때 군중들의 뒤에 섰던 차기용이 산등을 넘어서는 대렬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기 옵니다.》
뒤따라 전광식이 마당으로 내려서며 군중들을 불렀다.
《여러분!
마을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길가로 나섰을 때 아득히 올려다보이는 산발에 장사진을 이룬 유격대행렬이 나타났다.
《어서 올라들 가십시다.》
전광식은 유격대행렬이 보이는쪽으로 철삼의 등을 떠밀었다.
한껏 격해진 철삼은 잠시 어리둥절해있다가 둘러선 마을사람들을 향해 어서 마중가자고 손짓을 하였다.
군중들이 팔을 들어 흔들며 괭이며 낫이며 걸이대들이 너저분하게 널린 밭머리를 지나 등성이로 올리달았다.
산기슭에서 유격대와 군중들이 마주쳤다.
다리를 쓸수 없어 뒤늦게 올라간 철삼이와 너무 뜻밖이여서 얼떨떨해진 세걸이 유격대원들앞에 멈춰서서 잠시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럴 때 최칠성이, 진봉남이들이 달려내려와 그들을 부둥켜안았다. 변인철이 철삼에게 경례를 붙이고나서 산골에서 고생 많으시겠다고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박흥덕은 젊은이들의 어깨를 툭툭 쳐가며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유격대원들은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데 이곳 사람들은 모두 울상이 되여있다.
얼마후 널다란 마당에 짚단을 깔고 유격대원들과 군중들이 빙 둘러앉았다. 숲속에 피신했던 아낙네들, 아이들이 급히 마을로 들어오고 여기저기서는 아무개야, 아무개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뒤에 도착하시게 될
드디여 숲속에서 나오신
군중들은 제각기
군중들에게 에워싸인
그는 외마디소리를 지르고는 그만
어둠이 짙은 봉당우에 수염이 드리워 흔들흔들하였다.
《저는 대역무도한 놈이올시다. 백번 죽어 마땅하니 뭇사람이 보는 앞에서 릉지처참을 하여 징계를 삼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깊숙이 패인 주름으로 눈물방울이 흘러내리였다. 전광식으로부터 간단한 사연을 들으신
《할아버지, 그런 말씀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모진 세월을 이기시노라고 얼마나들 고생하셨습니까?》
철삼은 고개를 숙인채 말이 없이 앉았다.
《할아버지! 우리 젊은이들의 잘못이 큽니다. 벌써 찾아뵈웠어야 할걸 늦었습니다.》
철삼은 후들후들 떨리는 턱을 한쪽손으로 붙잡고 고개를 다시 숙이였다. 이윽해서 철삼은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허두를 떼고나서 그는 자기
그가 온 뒤에 일제와 지주의 등쌀에 못이겨 고향을 뜨게 된 농민들이 츠름츠름 모여들어 이곳에 마을을 이루었다. 1년내내 가야 외지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았고 한당대 왜놈은 보지 않고 살수 있을것 같았다. 왜놈의 꼴을 직접 보지 않고 산다는 그것이 세상을 등지고 사는 이 산골사람들의 오직 하나의 락이였다. 하던것이 스무날전에 그 마지막 락마저 산산이 부서져 달아나고말았다.
《그때도 아마 해질녘이였던가봅니다.》
철삼은 질쩍한 눈굽을 팔소매로 훔쳐내고 마을이 당한 참상을 설명하였다.
철삼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였다.
벌써 캄캄해진 마당 한켠에 누가 우등불을 일궈놓았다. 불빛은 방금 내리덮이기 시작한 검은 장막을 뚫고 키낮은 귀틀집추녀와 통나무벽을 드러내놓으면서 사위를 환하게 밝혀놓았다.
《그것이 다 나라를 빼앗긴탓입니다. 조선사람들치고 어느 누가 할아버지와 같은 신세에 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만 진정하십시오. 어디 상처나 좀 보십시다. 뼈를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철삼은 고개를 들고 입을 약간 벌린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어서 보십시다.》
《여깁니까?》
《보시지 않아도 이제는 아프지 않습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어서 방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총에 맞은 자리가 아무리 아프단들 가슴에 맺힌 원한보다 더하겠습니까? 저는 이제는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어서 상처를 푸십시오.》
잠시후 변인철이 구급약이 든 꾸레미를 가지고 나타났다. 이렇게까지 되자 철삼은 하는수없이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였다.
변인철이 장작불을 들어 밝히고
철삼은 상처를 붙잡고 비스듬히 누운채 약을 바르고계시는
그는 약을 바르고계시는
철삼의 가슴속에서는 걷잡을수 없이 큰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3천만겨레가 망국노의 운명에서 허덕이고있으며 그로 인해 받은 우리 인민의 상처를 가시는데
철삼은 북받치는 격정을 누르기 위해 눈을 내리감았다.
《여기가 아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