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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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용은 다리를 절뚝거리였다.
벌써 사흘이나 그렇게 걸었다. 진한 눈섭은 이마귀를 향해 치달아오르고 량미간에는 깊은 고랑이 패이였다. 코에서는 더운 김이 확확 내불리였다. 물에 젖어 쿨쩍거리는 발을 옮겨놓을적마다 온몸을 부서뜨리는것 같은 아픔이 일어나군 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렬 맨 앞장에 서서 완강하게 걸어나갔다.
피나무껍질로 칭칭 동인 로동화는 갑절이나 커보였다. 게다가 코가 째져서 발가락이 내놓이였다. 해질대로 해진 육중한 신이 옮겨놓일적마다 들쭉나무가 와삭와삭 뭉개지고 부석바닥이 푹푹 패이였다. 량쪽어깨에다 보총을 하나씩 메고 배낭우에 또 배낭이 얹히였다. 배낭우에다는 총 한자루를 또 올려놓았다. 군복가랭이는 두군데나 째지고 앞가슴이 화락하니 젖었다. 군모채양은 약간 한쪽귀가 처져내렸고 웃옷은 단추를 두개나 터놓아 땀이 흐르는 앞가슴이 들내놓이였다. 그래도 그는 덩굴을 헤치고 잡목을 헤가르며 앞으로만 걸어나갔다.
그의 뒤에는 박흥덕이며 봉남이, 인철이, 키가 큰 상선이, 그런 순서로 렬을 지어 따라섰다. 워낙 과묵한 전광식은 맨 뒤에서 수걱수걱 걸었다.
그에게도 배낭이 하나 더 차례졌다. 무릎이 꺾이여 한걸음 내짚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약간이라도 발이 걸채면 맥없이 쓰러지군 한다. 그러나 전광식은 대원들이 볼가봐 당황해서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걸음을 내떼군 하였다.
그중 걸음을 잘 걷는것은 박흥덕이였다. 실소리인지 거짓말인지 알수 없으나 자기 발은 하늘소발통같아서 몇천리를 걸어도 부르트지 않는다고 장담하였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묵묵히 땅을 내려다보며 아픔을 이겨내고있다.
차기용은 휴식시간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그러나 구령이 떨어질 때까지 걸어야 하였다. 한 5백메터앞에 민틋한 언덕이 보이자 그는 그곳에 이르면 꼭 휴식명령이 내릴것으로 짐작하였다. 그래 그는 입술을 사려물고 그 언덕을 목표로 곧추 질러나갔다.
잠시후 그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휴식하기에 알맞춤한 펑퍼짐한 언덕이 나졌음에도 불구하고 차광수는 종시 휴식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두번은 쉬였을 거리를 정복하였다.
들쭉밭을 지나자 이번에는 푸석푸석한 부석층이 나졌다. 발이 빠져서 걸음이 나가지 않았다. 대렬은 형용할수 없는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그냥 앞으로 흘러나갔다.
차기용은 거의 본능적으로 다리를 옮겨놓고있었는데 턱밑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진대통을 만나면 기여넘지 못하고 멀리 돌아가야 하였다. 숲에서 빠져 한참씩 개활지대를 걸을 때면 해볕이 내리쬐여 갈증을 일으켰다. 목에서 겨불내가 확확 났다.
16시쯤 되였을 때 휴식하게 되였다.
모두다 배낭을 진채로 풀밭에 드러누웠다. 다리가 얼벌벌해서 한걸음도 옮겨디딜수 없었다.
잠시후 전령병 변인철이 휴식이 아니라 숙영을 한다는것을 알렸다. 차기용은 이깔나무그루밑에 번뜩 나가누운채로 팔을 내두르며 환성을 올리였다.
《정말이야? 하하하.》
이마에 난 흠집이 번쩍 빛나더니 부러진 앞이가 드러내놓이였다. 그는 재작년에 탄광막장에서 쇠줄을 물어끊다가 이를 부러뜨렸던것이다.
《봉남동무! 왜 그렇게 꼼짝 못하나. 철도인부야 해볕에서두 곧잘 괭이질을 하잖나.》
박흥덕이가 풀밭에 누운채 몸을 돌리며 바로 앞에 쓰러져 누운 봉남이를 집적거렸다. 얼굴이 기름하고 어깨가 좀 찌글싸해보이는 스물한살났다는 봉남이는 무산에서 철도선로 로동자로 일했었다.
《농사나 지어먹던 우리하구는 다르지. 하기는 저 차기용의 말을 들으니 탄군들도 난장에 나오면 꼼짝 못한다네. 그리구 점심고동소리만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는거야. 신신히 일을 하다가도 고동이 울면 갑자기 허기가 져서 맥을 못 춘다더군.》
차기용은 박흥덕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며 하늘만 쳐다보고있다.
《박동문 그래두 말할 기운이 다 있잖나. 그런데 차동무는 정말 대단하더군. 아까 수렁탕을 헤치고 나갈 때 보니 땅크같더구만. 고개를 수굿하구 나가는데 그 모양이 볼만 했어.》
《그러나저러나간에 배낭을 몇개씩 올려놔두 거뿐하던데. 그건 그렇구 군수관동무, 무슨 수가 좀 있소?》
차기용이 천천히 고개를 박흥덕이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식량이 있느냐는것이다.
《비상용미시가루를 쓰게 되는게 아니요?》
봉남이도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하면서 박흥덕의 태평스러운 얼굴을 살펴보았다.
《이러루하면 비상용을 쓰게쯤 됐다고 봐야 할가?》
박흥덕은 시치미를 뻑 따고 남의 말하듯 중얼거렸다.
《그거야 군수관이 더 잘 알거 아니요? 그런데 어째서 오늘은 이렇게 강행군을 했는가.》
봉남이가 새삼스럽게 다리를 주물러보며 두사람을 번갈아보았다.
《늑장을 부리는것보담 와닥닥 하는게 좋긴 해.》
《그러게 동무는 천상 일공일을 못한단 말야. 타고난 도급쟁이지.》
박흥덕은 이렇게 말하며 신문지장에다 한웅큼이나 되는 담배를 얹어놓고 혀끝으로 침을 발랐다.
한대씩 피우고난 대원들은 한결 팔팔하게 움직이였다. 익숙해진 솜씨로 숙영지를 마련하고 작식준비를 하였다. 차기용은 도끼를 들고 또 굵다란 통나무를 찍어메쳤다.
《그만하면 일행천리 할수 있지? 어떻습니까? 차동무.》
《120리구간을 중간휴식 한번으로 들이댔습니다.》
《습지대와 부석지대를 고려에 넣는다면 보통길 200리를 행군한셈입니다.》
전광식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마디 보태였다.
《가방을 좀 보내시오. 거기 지도가 있을겁니다.》
가방을 받아드신
《오늘 행군은 차기용동무가 잘 끌고나갔습니다.》
지도가 놓인 통나무쪽으로 허리를 굽히며 차광수가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동무들의 평가는 그 완강성이 꼭 땅크같다는겁니다.》
전광식이 단추를 터놓고 손으로 바람을 부치면서 담배를 빨았다.
《땅크보다 기관차와 같다고 해야 적절할것 같습니다.》
전광식이 내민 담배갑을 손을 들어 가볍게 거절하고나서 차광수는 지도에서 오늘 행군로정을 찾았다.
《로동계급답습니다. 난 그 동무가 숲을 헤치고나갈 때 한참씩 쳐다보군 했습니다. 그런 정도라면 큰길로 내달리는 발동기도 문제가 되지 않을겁니다. 일본의 그 신문기자가 있었더라면 좀 보여줄걸 그랬습니다.》
《좋은 동무들입니다. 차기용동무나 명월구회의소식을 듣고 찾아온 최칠성동무들은 다 순결하고 믿음직한 새 세대입니다. 그들은 20년대의 종파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 등의 일체 오염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우리가 창건하게 될 새형의 당의 믿음직한 기둥감이 될 토대와 기질을 가지고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장투쟁을 통해서 그들을 인내성있게 꾸준히 교양해야 할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의 행군로정을 좀 토론합시다.》
전광식은 의자에 앉아서도 방금
《우리는 안도에서 유격대창건을 선포했고 뒤이어 곧 공개적으로 5. 1절시위를 하였습니다. 그에 뒤이어 소영자령에서 첫 전투를 하였습니다. 그후 우리는 은밀히 이
어느새 날이 어두웠다. 변인철이 몇번 왔다갔다하더니 우등불을 일구어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신
《여기서 한 7키로 가로질러가면 천상데기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내가 이전에 무송에 있을 때도 하늘아래 첫동네인
《그 근방에는 〈새날〉이 이미 침투된 곳이 아닙니까?》
전광식이 차광수를 쳐다보며 한마디 하였다. 그는 새날소년동맹을 중심으로 한
《벌써 5~6년전인데 아직 뭐가 남았겠습니까? 하긴 약간한 싹이 있다고나 보겠는지. 어쨌든 천상데기에 들어갑시다. 산간치고는 전형적인 곳이고 그곳에 가면 그 일대를 장악할수 있습니다. 밀림의 자연요새와 아주 접근한 지대를 택합시다. 특히 고려할 점은 최근에 관동군부대가 이곳을 통과해서 두만강지구로 이동하고있다는 정보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밀림에 붙는것이 좋습니다. 다음에는 로령을 넘어 바위산근방에 가서 압록강지구일대에 널린 독립군부대들과의 통일전선을 이룩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기로 하고 우선 오늘은 목표를 이 점에 찍읍시다.》
차광수와 전광식이 수첩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가만 차동무, 식량이 어떻게 되고있는지 알아봤습니까?》
《네! 비상미까지 써서 래일이나 모레까지 겨우 댈것 같다고 합니다.》
《그럴겁니다. 그것도 천상데기에 가서 해결하도록 합시다. 군수관 박흥덕동무의 근심이 대단하겠습니다. 그 동문 식사를 자주 건는다는 말이 있는데 잘 돌보아줍시다.》
《알았습니다.》
차광수와 전광식은 동시에 대답을 올리면서 역시 동시에 얼굴들을 붉히였다. 전광식이 정치학습도 별로 밀린것이 없기때문에 오늘 밤은 대원들을 푹 쉬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아무때나 장황한 설명이 없는 전광식은 한단계 생략된 다음문제의 승인을 청하였다.
《좋소. 푹 쉬웁시다. 식사후에 내가 어제 말하던 그 동무들을 잠간 만나게 해주시오. 그외의 나의 일과는 동무들에게 묻지 않아도 될것들입니다. 그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