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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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아버님을 바라보시면서 결연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아버님 말씀대로 꼭 나라를 찾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고개를 두번 끄덕이시였다. 그리고 눈가에 가볍게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는것이였다.

침묵이 흘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땅이 꺼지고 하늘이 뒤집히는것 같으시였다. 그저 앞이 캄캄하고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것 같으시였다.

그로부터 어느덧 여섯해가 흘렀다.

그때도 봄이였다.

그이께서는 어머님앞에 앉으시였다. 아버님께서 남기신 두자루의 권총이 그이의 앞에 놓여있었다.

《이 총은 아버님께서 네게 주신것이다. 아버님께서는 네가 이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는 알거라고 말씀하시였다.》

어머님의 음성은 약간 떨리는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총을 받는 순간 그것을 가슴에다 꼭 그러안으시였다. 가슴이 후둑후둑 뛰시였다.

이때 그이께서는 이불밑으로 잡아주시던 아버님의 손길이 지금에도 와닿아있음을 확연히 감각할수 있었다.

《아버님! 이 총으로 나라를 꼭 찾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눈을 감으시였다.

환상은 나래쳐 창공을 날았다. 수천수만의 청년들이 정렬해섰는데 모두다 총을 메였다. 힘차게 땅을 구르며 무장대렬이 행진하고있다. 우렁찬 환호성도 일어나고 행렬은 끝없이 물결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이 선포되고 5. 1절을 맞으며 안도현성이 들썩하게 열병식을 하고났을 때 어머님을 부대에 모시였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그날 그이께서는 어머님의 눈가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와 강렬한 빛을 발산하며 구울러내리던 눈물을 보시였었다. 순간 그이께서도 가슴에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하여 천천히 고개를 돌리시였다.

그렇게도 눈물 많다는 이 나라 어머니들, 풍성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도 너무나 가난하여 사랑조차 자식들에게 줄길이 없는 불쌍한 이 나라의 어머니들, 그 사랑이 통채로 눈물이 되여 울어도 울어도 끝이 없는 이 나라 어머니들의 눈물.

그러나 어머님의 눈물을 단 한번도 보신적 없는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우실 사연으로 말하면 너무나 많은 어머님이시였다.

평양감옥에서 이전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상한 아버님을 뵙고오시던 날 어머님께서는 그 눈물을 어데다 감추시였을가, 하늘같이 믿던 그 아버님을 한창나이에 잃으시고 막막한 이국산천에 홀로 남으셨을 때 어머님께서는 그 피눈물을 어데다 감추시였을가.

총을 잡고 일어선 이 나라 청년들을 한번 보고 저렇게도 눈물을 걷잡지 못하는 어머님께서 그때는 어찌하여 한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으셨을가.

청명날에도 추석날에도 아버님의 산소에 홀로 가시면 가셨지 아들들과 함께는 가지 않던 어머님이시다. 아들들에게 약한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도 억눌러오신 그 눈물이 맺히고 맺혀서 어머님의 손마디를 저렇게 거칠게 만들었고 설음이 얽혀서 어머님의 눈귀에 저렇게 주름을 새겼는지도 모른다.

어머님의 눈물, 단 한방울만 가지고도 능히 자식들의 가슴을 천만갈래로 찢어놓을수 있는 어머님의 눈물, 그 눈물을 누구보다도 풍성히 타고나신 다정다감한 어머님이시기에, 누구보다도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고 남편과 자식들을 사랑하는 어머님이시기에 아끼고 감추고 억눌러오던 그 많고많은 눈물을 오직 조국을 위하여서만, 오직 혁명을 위하여서만 그렇게도 아낌없이, 하염없이 흘려주신것이였다.

지금 아드님과의 작별을 앞두고있는 이 시각에도 역시 어머님께서는 쏟고싶은 끝없는 눈물을 가슴속에 강잉히 고여놓으실뿐 오직 미소만으로, 아드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어머니로서의 정찬 미소만을 나타내고계시였다.

새 군복을 입으신 그이께서는 모자를 집어들고 토방에 나서시였다. 어머님께서 따라나오시려는것을 끝내 말려 앉히시였다.

그이께서는 발을 모으고 서서 어머님을 바라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문지방을 잡고 내다보시였다.

《어머님!》

다시한번 그이께서는 어머님의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어머님도 아드님의 얼굴모습을 익혀두실양으로 마주보시였다.

《떠나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그이께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시였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떠나서 혁명사업을 잘하여라. 네 일이 잘되면 내 병이 나을수도 있다. 집걱정은 아예 말아라.》

《안녕히 계십시오, 어머님!》

그이께서는 토방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시였다. 어머님께서 따라나오실것 같아 걱정되시였다. 문을 닫아드리려고 문설주를 잡으셨지만 차마 문을 닫을수 없으시였다. 그래서 한참 망설이시였다.

《어서 문을 닫고 떠나거라, 기왕 가야 할 길인데.…》

어머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것을 보이기 위해 웃으신다. 그이께서는 성큼 문을 닫고 돌아서시였는데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장도에 오르는 아드님을 위해서 10리나 20리 아니, 그보다 더 멀리라도 따라갈수 있는 어머님이였지만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문밖도 내다보지 않으신다.

그것은 만리 앞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어수선한 기분을 던져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기는 그 길이 영광의 길이며 설사 몸은 헤여지나 넋은 늘 같이 있는데야 그것을 리별이라 생각할수 없는 어머님이시다. 아드님을 위해서라면 사막에서도 물을 구하며 바다물을 퍼옮기고 바늘을 찾아낼수 있으며 폭풍우속에서도 능히 잠재워낼수 있는 어머님의 지성이 이때라고 변할수 있으랴만 그저 심상하게 아드님을 떠나보내시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을 닫고 토방에 그대로 잠시 서계시다가 드디여 걸음을 떼여 앞으로 옮기시였다. 그러나 걸음은 보도랑이 째진 벌판쪽으로가 아니라 집두리를 향해 옮겨졌다. 집주위를 한바퀴 천천히 돌면서 생각에 잠기시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가? 이대로 떠나갈것인가? 며칠 더 어머님의 병세를 지켜볼것인가?

이번 떠나는 길은 다른 때와 달랐다. 화전에서 돌아와서 길림으로 떠날 때나 카륜에서 왔다가 명월구로 갈 때와 다른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것은 오늘을 위한 하나하나의 준비였다고 할수 있다. 총을 들고 떠나는 이 길은 몇해가 되는지 혹은 몇십년이 될는지 모른다. 첫걸음을 내디딘 이 지점에서 일제를 종국적으로 구축하고 조국을 해방한다는 그 대안까지는 실로 멀고도 험난한 길이 놓여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야 하며 가기로 결심했으며 또 가지 않을수 없는 길이였다. 바로 그 걸음을 방금 내뗀것이다. 전인미답의 길이며 아직은 그 누구도 그것을 믿기 어려울만치 간고한 길이다. 그 자욱마다에는 피가 고일것이다. 만리, 십만리, 그보다 더할수 있는 그 자욱마다, 이 나라 그 모든 땅에 찍혀질 그 자욱마다에 젊은이들의 피가 흐를것이다.

그중에서도 이 한해, 첫걸음을 내뗀 이 한해에 그 이후의 전부를 합친것보다 더 엄청나게 많을수 있는 희생을 낼수도 있다. 어린 싹은 폭풍에 쓰러질수도 있고 사태에 밀릴수 있으며 얼어버릴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위를 떠밀고 솟아올라야 하며 설혹 가지가 부러지고 언다 하더라도 머리를 들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 시대가 간고하고 피를 많이 흘린다 하더라도 망국노로 살아남은 단 하루의 겨레의 고통과 눈물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피를 흘려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민족에게 강요한 희생을 막아설것이며 온 세상사람들에게 제국주의는 악독하지만 그래도 능히 때려엎을수 있다는것을 보여줄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제 어머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나라 어머니들이 웃으며 살 그날을 당겨올것이다. 그리하여 억눌린 자식을 두었으며 그래서 울며 살아야 했던 잠자는 대륙의 그 많은 어머니들께도 기쁨을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그렇지만 앓고계신 어머님은 이제 어떻게 될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을가? 어머님께서는 이제 더는 삯바느질도 하실수 없을것이다. 좁쌀 한말이 가면 며칠 가겠는가.

어린 동생의 등에 실려오는 그 나무로 불을 때고 누워계실 어머님의 심정이 어떠하실가?

그이께서는 끝없이 일어나는 생각에 사로잡히시였다. 집두리를 벌써 몇바퀴나 도시는지 모른다. 그이께서는 그냥 고개를 수그리고 뚜벅뚜벅 집주위를 도시였다. 발밑에서는 검불들과 잔돌들이 밟히였다. 다시 몇바퀴를 도시였을 때 방문이 덜컥 열리였다.

《상기두 무엇이 걱정이 돼서 그렇게 떠나지 못하구 우물쭈물하느냐?》

어머님의 음성은 떨리시였다.

《나라를 찾겠다구 결심품구 나선 사람이 그렇게도 마음이 예리고 집걱정이 많아서야 어떻게 대사를 치르겠니? 너는 집안일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감옥에 계시는 삼촌을 생각하구 외삼촌을 생각해야 한다. 빼앗긴 나라를 생각하구 백성들을 생각해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시였다.

어머님께 구구한 설명을 올릴 필요도 없고 그럴 경황도 못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처음보다 한결 더 엄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왜놈들이 나라를 강탈한지도 벌써 스물일곱해가 되여오는데 너두 조선의 사내라면 맘을 크게 먹구 걸음을 크게 떼야 할게 아니냐. 그런데 나라를 찾자고 하는 사람이 집근심을 하고서야 어떻게 큰일을 하겠니. 너는 더 큰 부대를 만들어가지고 싸워야 한다. 그런데 내 생각같아서는 네가 하는 행동이 잘못된것 같다. 네가 장차로도 이 에미 걱정때문에 집으로 찾아올 생각이라면 아예 이 문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나는 그런 아들을 만나지 않겠다.》

어머님께서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시였다. 하지만 김일성동지의 가슴속에서는 천둥우뢰마냥 어머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울리고있었다.

《알았습니다. 어머님, 안녕히 계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인사를 올리고 발길을 돌리시였다. 뒤를 다시 돌아다보지 않고 논두렁길을 성큼성큼 걸으시였다. 걸음이 차차 더 빨라졌다. 산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언제 나오셨는지 두렁길머리까지 나와서서 손을 들어보이시였다.

걸음을 멈추고 서계시던 그이께서도 손을 들어 인사를 하시였다. 형이 가는 길로 앞질러나간 두 동생은 언덕에 올라 형을 부르며 손짓을 했건만 그이께서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시였다.

동생들의 고함소리가 넓은 하늘로 메아리쳐가는데 그를 맞받아 바야흐로 비끼기 시작한 석양이 온 우주를 금빛으로 물들이며 다가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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