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3

(11)


저녁상에 좁쌀이 절반나마 섞인 밥에다 된장국과 찌개 그리고 버들치 구운것이 한접시 올랐다.

버들치가 색다른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몇술 뜨시다가 버들치가 어데서 났느냐고 물으시였다. 한참동안 어머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별게 아니다. 물을 말아서 다 먹어라.》

이윽고 외면을 하신채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신 어머님께서는 잠시 말씀을 중단하시였다가 다시 이으시였다.

아이들두 어떻게나 형 생각을 하는지 내가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니까. 그 고기가 아마 한달은 실히 걸려서 잡았을거다.》

《한달이라구요?》

《그렇단다. 두 애가 형이 나다니면서 고생한다고 얼음이 녹은담부터 인차 낚시질을 했단다. 형이 오면 아무것도 내놓을게 없는데 물고기라두 잡아야겠다고 그러잖겠느냐. 그래서 한두마리씩 버들가지에 꿰여들고 들어왔는데 어떤 날은 나갔다 빈손으로 들어오기도 했지.… 그런 날은 어찌나 락심해있는지 내 속이 다 안됐더라니까. 그 애들두 짬이 없다보니 한 사날에 한번, 댓새에 한번 나가나마나했단다. 그런것이 아마 손가락만 한것까지 합쳐서 한 열댓마리 되는걸 말려두었던거란다. 어서 동생들 지성을 봐서라두 다 먹어라.》

어머님께서는 대범하게 말씀하였지만 그 말끝은 떨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밥술을 뜨시다말고 물끄러미 동생들을 내려다보시였다.

동생들은 별로 다른 기색이 없이 물말이를 한 밥을 탐스럽게 떠먹고있다. 이미부터 동생들의 극진한 정을 느끼고계셨지만 날이 감에 따라 가슴을 저리게 하는 일이 더 자주 생기는것이였다.

《자! 기왕 너희들이 수고한것이니까 다 함께 먹자.》

그이께서는 동생들앞으로 접시를 밀어놓으시였다. 그러자 얼른 접시를 되밀어놓는다.

《우린 그때그때 맛을 봤어요.》

《그래, 네 말이 옳다.》 하고 받으시는 어머님의 눈굽에는 물기가 어리는것 같더니 얼른 일어서서 물사발을 들고 부엌으로 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끝내 버들치 구운것을 다 들지 못하시였다.

상을 물리고 얼마 안 있어 뒤집 김정룡이 찾아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이 지구의 열성적인 조직원이였다. 그 집이 좀 따로 떨어진 산기슭에 있어서 유격대조직을 위한 회의도 그 집에서 여러번 했고 통신련락소로도 쓴 일이 있었다.

그와는 서로 잘 알고있던 사이였으므로 허물없이 인사를 나누시였다. 30이 다된 김정룡은 침착하고 정열이 있으며 포부가 크고 아량이 있는 동지였다. 그는 그렇게도 바라던 반일인민유격대가 여기서 얼마 멀지않은 언덕에서 선포될 때 병으로 참가 못한것을 매우 유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나서 오늘 나무해오시는것을 보았는데 집을 잘 돌보아드리지 못해 큰죄를 진것 같다고 여간 미안해하지 않았다. 말이 그렇지 그도 공작임무가 바빠서 그럴 사이가 없는 사람이였다.

이야기는 옮겨져서 곧 유격대원호를 위한 앞으로의 사업을 토의하게 되였다. 몇마디 말을 주고받으시는중인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동생이 나갔다오더니 어제 말씀드린 백선생님이 찾아왔다고 하였다.

김정룡이와의 담화는 뒤로 미루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김정룡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안경을 낀 사나이가 토방에 올라섰다.

《좀 뵈올수 있겠습니까?》

그이께서는 문밖으로 나서서 손을 잡아 그를 끌어들이시였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불의에 이렇게 찾아와서 매우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백광명은 안경을 벗어들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자리에 앉게 되자 백광명은 자기소개와 함께 찾아온 경위를 말하였다. 백광명은 자기자신을 부농이라고 서슴없이 규정하면서 땅과 과수원이 얼마간 있다는것과 아버지가 룡정거리에서 그리 크지 않은 양주공장을 경영하고있다고 하였다. 부유한 가정의 덕택으로 서울에 가서 문과를 전문하였는데 차차 시체의 물이 들어 사회주의를 동경하게 되였으며 지금은 그 길로 나가기로 결심하였다는것이다. 우선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면서 삼사십명의 촌아이들을 모아놓고 사립학교를 만들었으며 짬이 있는대로 맑스주의서적을 탐독하면서 자기 세계관을 쌓아올리고있다고 하였다.

자기소개를 대체로 끝내자 그는 창촌에서 철주동지를 만났고 그후에 여기에 찾아와 몇번 만난적이 있다고 하였다.

사실 백광명은 철주동지의 적극적인 영향에 의해서 차차 혁명의 편으로 기울기 시작한것이였다. 그러다가 뜻밖에 철주동지의 친형님이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김일성동지이시라는것을 알고 그는 기어이 한번 만나뵈올 결심으로 200리가 넘는 이곳까지 한달에 한두번씩 찾아오군 하였던것이다.

《담배를 피워도 괜찮겠습니까?》

백광명은 속심을 털어놓아야 할 중요한 대목에 이르자 좀체로 입이 떨어지지 않아 주저주저하면서 주머니에서 마꼬갑을 꺼내였다. 그이께서는 너그럽게 웃으면서 어서 피우라고 재털이를 내놓아주시였다. 은테안경을 끼고 홑섶 흰 모직양복을 입은 백광명은 목이 좀 긴편이고 얼굴은 홀쭉하였다. 생김새는 매우 신경질적일것 같았지만 성품은 점잖고 의젓하였다. 두툼한 안경알속에서 잔잔히 움직이는 사색적인 눈은 지성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고있었다. 담배를 피워물고 시름없이 몇모금 빨고나서 그는 천천히 말을 시작하였다.

《제가 철주네 형님을 이렇게 돌연히 찾아뵙게 된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갈림길에 서서 방황하고있는 저를 옳게 인도해주시기를 바라서입니다. 성급히 용건을 두서없이 늘어놓아 안됐습니다만 저로서는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것이라고 보기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 뭘 그러십니까? 대략 들어보아도 백선생님은 지금 옳바른 길로 가고계시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처음부터 흥분이 느껴지는 백광명의 심정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가셨으므로 호탕하게 웃으며 가볍게 말씀하시였다. 그럼으로써 어덴가 절박하게 느껴지는 그의 마음을 풀어주자는것이였다. 백광명은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밀어올리고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오. 이것은 한 인간에 대한 운명문제입니다. 저는 치명적인 답변을 받는 경우에도 그것이 확고하고 결정적이기를 원하는것입니다. 좀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사람의 피땀을 착취해먹고 사는 부농의 자식입니다. 대학을 나왔습니다. 한데 저는 빼앗긴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하고싶어 어린것들을 모아놓고 글을 가르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 자모도 가르쳐주고 수자도 배워줍니다. 그러나 저의 처지는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넋,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조선의 넋을 키워줄수는 도저히 없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까. 어째 그럴수 있는가고 반문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그렇습니다. 저의 흥분된 감정을 리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백광명은 말을 중단하고 몇번 기침을 하더니 수건으로 입을 닦고나서 계속하였다.

《저는 이 시각에도 나라고 할 때 즉 백광명이라 할 때 어느 나를 지적하는지 저자신도 모르는 인간입니다. 좀 현학적으로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비근한 례로 얼마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전번에 일제놈들이 큰골마을에 대〈토벌〉 들이대서 수백명의 무고한 우리 동포가 학살되였습니다. 거기에 부모를 잃은 첫째라는 열한살난 아이가 불무지에서 기여나와 우리 마을에 있는 외켠친척집에 와있었습니다. 그 애가 글배우러 왔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며칠전에 그 애를 채찍으로 때려서 모진 처벌을 주었습니다. 그 리유는 그 애가 상훈이라는 학생을 주먹으로 쳐서 코피를 터뜨렸기때문이였습니다. 한살 어린 상훈이라는 학생은 흐르는 코피를 손등으로 문대며 그 너머편 마을 비석거리까지 쫓아갔다는것입니다. 마을에 들어가자 첫째는 또 때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싸움이 어찌나 모질게 되였던지 비석거리 구장이 주재박순사의 말이라면서 전하는데 아이들 버릇을 똑똑히 가르치라는게 아니겠습니까? 화가 꼭두까지 치민 저는 우선 첫째를 잡아놓고 사연을 캐물었습니다. 첫째의 말에 의하면 상훈이가 자꾸 까불기때문에 한대 친것이 발단이라고 합니다. 그래 저는 채찍이 다섯개나 부러질 때까지 그 애의 종아리를 쳤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첫째라는 학생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매를 맞는데 절대로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굴복하지 않는데 분개한 저는 더 매질을 하였습니다. 저는 종아리를 치며 네 아버지나 엄마가 왜 큰골 〈토벌〉에서 불에 타 돌아가셨는지 아느냐? 너는 무엇이 되려고 동무를 그렇게 치느냐, 야만같이. … 했습니다. 첫째는 나중에 매에 못이겨 쓰러지면서 〈선생은 부르죠아야. 우리 아버지, 엄만 부르죠아때문에 죽었어.〉하더니 〈엄마!〉하고 울음을 터뜨리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은 부르죠아야.〉 그 애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한마디 말이 제가 그 애를 친것보다 몇배나 더 강한 타격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저는 채찍으로 종아리를 쳤지만 그 애는 몽둥이로 저의 정수리를 쳤습니다. 그다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아이들가운데 명기라는 아동단원이 있었는데 그 애 귀띔에 의하면 반제동맹에서 급한 련락을 비석거리에 보낼 일이 있어서 첫째와 상훈에게 과업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애들은 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랬다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 애들을 치고 그 애들은 나를 속이고…》

백광명은 안경을 벗어놓고 수건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관자노리에 파랗게 일어선 피줄이 신경질적으로 팔딱팔딱 뛰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할만치 흥분을 일으킨것이다. 그러나 백광명자신은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계기에 놓여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으므로 자기 주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흥분을 털어놓았다. 백광명은 그이앞에서 아무것도 주저할것이 없었다.

《저는 생각하기를 교원이라는 사람은 마땅히 후대들에게 넋을 배워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구나 나라를 빼앗긴 우리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더 절박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넋을 배워줄수 없는 교원, 그것은 심지가 없는 등잔, 뢰관이 없는 총알 같은것입니다. 아니, 차라리 위선자라고 해야 마땅할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여태 망국을 통탄했고 애국주의를 설교했으며 조선독립을 고창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넋을 상실한 애국주의, 독립, 조국 그것은 저를 한갖 시대착오를 일으킨 미치광이로 만들었을뿐입니다. 〈너는 부르죠아다.〉 첫째의 말이 옳습니다. 저는 부르죠아입니다. 〈너는 망국노다.〉 그것도 또한 옳습니다. 저는 부르죠아이며 망국노입니다. 이 두 백광명이가 매일 피투성이가 되여 결투를 하고있습니다. 이 시각에도 저의 가슴속에서는 서로 상용될수 없는 두 자아가 칼을 휘두르며 싸우고있습니다. 하나는 얼음덩이, 다른 하나는 불덩이. 그것이 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고있습니다. 불은 얼음을 녹이려 하고 얼음은 불을 끄려고 합니다. 이런 형편에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무서운 모순을 안고 살아있다는 이자체가 모질고 허무하고 지어는 전률을 일으킬만치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는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그 누구를 향한것인지 알지 못할 저주와 규탄을 내리는가 하면 비애와 원한이 맺힌 탄식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것은 백광명 한사람에 대한 문제인것이 아니라 수다한 조선인테리들에 대한 문제라고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중하면서도 친근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백선생!》

그이의 웅글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자 백광명은 담배불을 끄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백선생의 말씀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복잡한 심경도 리해됩니다. 기로에서 헤매인다는 선생자신의 평가가 아마 정확할것 같습니다. 나는 이와 같은 평가를 어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선생자신이 하였다는것이 매우 의의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왜 그러냐 할것 같으면 이미 모순은 발견되였고 선생자신은 어떻게나 그 모순을 해결해야겠다는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고있기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모순의 해결이 괴로운 진통을 동반한다는것은 부인할수 없습니다. 선생자신이 말한것처럼 피투성이싸움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괴롭더라도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은 선생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것이고 또 우리 혁명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와 같은 문제는 백선생뿐만아니라 적지 않은 조선의 인테리들앞에 일반적으로 제기되고있는 엄숙한 문제이기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피차 터놓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봅시다. 흥분을 좀 가라앉히십시오. 선생이 헤쳐가야 할 길은 준엄한 진리의 길입니다. 이 길은 어떤 흥분이나 일시적인 기분으로는 한걸음도 나갈수 없습니다. 필요한것은 랭철성과 용감성입니다. 치렬한 계급투쟁의 환경속에 대담하게 자기를 내세우고 썩은 부분이 있다면 제 손으로 무자비하게 잘라버릴만큼 용감하고 랭철해야 합니다. 자, 그러니 우리 서로 생각하는 점을 서슴없이 나누어봅시다. 이리 좀 나앉으십시오, 담배랑 피우시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와 류사한 문제를 안고 찾아왔던 수많은 얼굴들을 백광명의 희고 선량해보이는 얼굴우에 그려보면서 아직도 가냘프게 떨리고있는 백광명의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끄시였다.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