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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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지난겨울에 땔나무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언제한번 나무를 가려놓고 푸짐히 때본적이 없었지만 철주동생까지 노상 집을 뜨게 된 지난겨울은 정말 고생을 하였다. 그래서 막내동생이 나무를 해오군 했는데 자그마한 나무단을 지게에 올려놓고 산을 내리면 벌써 어머님께서 길가에 나와계셨다가 짐을 받고 입김으로 손을 녹여주시군 하였다.
《산에 흔한건 나무라는데 땔나무가 없어서 너한테 이런 고생을 시키는구나.》
그럴 때면 막내동생은 어른처럼 대답하는것이였다.
《손이 시리지 않다는데두 공연히 먼데까지 나오면서 그러시네. 어머니, 감기드시겠어요.》
그러면 어머님께서는 더 마음이 괴로와져서 눈물이 글썽해진 얼굴을 외면하군 하시였다.
온기를 전혀 잡아두지 못하기마련인 엉성한 귀틀집은 어린 등으로 두축이나 져날라온것을 하루면 다 삼켜버리군 하였다. 그래도 어린것은 아동단생활을 하면서도 매일 꼭꼭 나무를 해오군 하였다.
그 정상이 너무 보기 딱해서 언젠가는 마을청년들이 며칠동안 이 마당으로 나무를 실어들였다. 어머님께서는 청년들을 붙잡고 조직의 일이 바쁜데 그러지 말라고 오래도록 타일러보내시였다.
집의 일도 그렇고 또 혁명투쟁도 그렇고 모두 건느기 어려운 커다란 심연을 앞에 놓고있다. 오늘이나 기껏해야 래일, 하루이틀 나무를 했대야 그것을 몇달이나 몇해를 땔것도 못된다. 나무도 나무려니와 끓일것도 문제다. 이제부터는 따뜻한 철이니 땔것은 그럭저럭 견딜수 있다쳐도 무엇으로 빈 솥을 얼려 여름의 긴긴 해를 넘길것인가. 좁쌀 한말이래야 세식구가 기껏 한달가량의 량식밖에는 안되는것이다. 번거로운 생각을 쫓으며 걸음을 옮기노라니 벌써 뒤산 중턱에 이르시였다. 동생은 지게를 내려놓고 잠간 나무밭을 살피더니 낫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거루야 어디 땔나무가 되겠니? 철주야, 이런것 말구 더 분한이 있는게 없겠니?》
《아무거나 한짐 해가지고 내려가자요. 어머니가 알면 꾸중하시겠어요.》
형제간이 의논하던 끝에 쉬땅나무를 하기로 하였다.
빼곡이 앞을 막아섰던 덩굴이 한쪽으로 턱턱 드러눕는다. 그러면 그늘에 숨었던 야들야들한 이름모를 풀들이 해볕에 드러난다. 그것들은 검고 눅눅한 묵은잎들을 헤집고 머리를 올리밀었는데 아직은 몇장 되지 않는 잎들을 가까스로 떠받들고있다. 혹간 젖먹이들 주먹같은 고사리도 있고 생으로라도 뜯어 입에 넣고싶을만치 만만한 제비초리, 호리호리하게 올라만 간 삽주싹 그리고 망울이 금방 툭 틜것 같은 두릅순, 또 제 고장을 헛갈려 아무데나 돋아난 취싹들, 마타리들 하여튼 별것이 다 나타난다.
청초하고 싱그러운것들, 다만 초여름의 산향기라고밖에 표현할수 없는 그윽한것이 땅에서도 풀숲에서도 풍겨나온다.
간혹 가다가 나타나군 하는 찔레꽃덩굴이나 쉬땅나무에 감겨올라간 메꽃에서는 꿀내가 진하게 풍기였다. 털이 보르르한것들, 허리가 유독 잘룩한것들, 가지각색 벌들이 꿀을 날라가노라고 온몸에 꽃가루를 뒤집어쓰고 돌아간다. 어떤 놈은 힘에 겹게 걸머져 그런지 그렇지 않으면 꿀내에 취했는지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져 디굴디굴 굴고있다. 장바 둬기장이나 될만치 후리고나시자 이마에 땀이 흘렀다. 허리를 펴시고 뒤를 돌아보면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에 찌른 낫이 건들거리였다.
《철주야, 여기 어데 샘물이라도 없니?》
《저너머에 있어요. 내 곧 떠올게요.》
《샘물이야 가서 마셔야 제맛이 나지.》
등을 넘어 얼마 안 가 큰 바위가 삐여져나왔는데 그밑에 옹달샘이 괴여있었다. 쪽박을 하나 겨우 들여놓을만 한 샘밑에는 손가락 하나만 밀어넣어도 금방 물이 막혀버릴것 같은 작은 구멍이 있었다. 바위짬에서 솟아오른 물은 남실남실 주름을 일구면서 한쪽흠타기로 졸졸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말하는데 이 샘물은
《그래?!》
얼핏 물우에 무슨 그림자가 비끼는듯 하였다. 분명히 아버님의 모습이였다. 그것은 착각이였다. 하지만 한순간이나마 매우 뚜렷한
철주동생의 눈가에 추억의 빛이 짙게 흘렀다. 그도 아마
《야! 한번
문득 터치는 동생의 말이였다. 소박한 소원이였지만 그밑에는 실로 불덩이같은 그리움이 깔려있는것이였다.
《그래 조국으로 가자. 이제 왜놈들을 다 내쫓고 가자. 가서 어머님을 고향에 모시고 살자. 그러면 어머님께서도 한결 병이 나아지실게다.》
형님의 말씀을 들어 가슴이 더 달아나 그런지 동생은 넙적 땅에 엎드리더니 샘물을 말려버리기라도 할것처럼 입을 대고 벌떡벌떡 물을 마시였다.
《아! 시원하다!》
손등으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턱을 쑥 문대고난 동생은 벌씬 웃으며 웨쳤다.
발밑을 굽어보시니 보기 좋게 릉선이 지고 골짜기를 이룬 청청한 산들이 물결쳐 아득히 뻗어나갔고 그사이로는 푸른 띠를 둘러놓은것 같은 내물이 마을과 산기슭을 휘감고 돌아갔다. 머리우에는 오리알빛하늘이 몇점의 흰구름을 둥실 띄워놓고있다. 구름장사이로 수리개 한마리가 깃을 펴고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쨋쨋한 초여름 해볕은 온 누리에 금빛을 뿌리면서 바야흐로 신록이 무르익어가는 나무가지들과 잎들을 번지르르하게 물들이고있다. 귀가 재릴만치 정적이 깃들었다. 어데선가 풀벌레소리가 들려오긴 하지만 그것은 정적을 깨뜨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보태주는듯 하였다. 언제나 맑고 시원한 공기가 감미롭게 안겨오는 산속에 앉으니 잠시나마 시름이 덜리는듯 하시였다.
집들이 내려다보인다. 자그마한 궤짝같은것들이 물길을 따라 아무렇게나 널리였다. 집앞마당에는 몇가지의 빨래가 널리고 그밑에서 한 녀인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서성거리고있다.
혹시 어머님께서 저렇게 기다리지나 않으시는지 모르겠다.
중낮이 지나서 낫을 놓고 단을 묶으시였다. 동생은 연방 안아오고
나무는 열다섯단이 되였다. 한지게에 넉단을 짊어놓으니 그 키가 대단히 높았다. 나무지게를 지고 등판을 내려 자그마한 언덕에 이르셨는데 유독 홀로 나앉은 느릅나무 한그루가 눈에 띄웠다. 집 한채가 앉을만한 고르로운 잔디판에 외로이 나무가 서있다. 이상한 충격을 받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득히 뻗어올라간 우듬지를 바라보시였다. 쓸쓸하고 적막한 기운이 서린것 같은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치였다. 그곳을 지나 단숨에 마을로 들어서시였다.
아니나다를가 어머님께서는 한길까지 마중을 나오셔서 동생의 짐을 받들어주시였다. 때마침 개울에서 빨래함지를 이고 들어오는 녀인이 있었다. 그는 이미 송강에서부터 잘 아는 김봉애아주머니였다. 그는 짬만 있으면 찾아와서 빨래도 해주고 부엌도 손질해주었고 약심부름도 들어주군 하였다. 김봉애아주머니는 함지를 내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