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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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토기점골쪽으로 통하는 동구밖길로 차광수와 나란히 걸어가고계시였다. 오늘에야 드디여 어머님께서 계시는 토기점골집에 들려오기로 결심하신것이였다. 차광수는 바삐 지내시는 그이께 여러차례나 집에 들리실것을 말씀드렸었다.

소사하에서 각 지구에 공작원들을 떠나보내신 후에도 그이께서는 밤을 새며 그 뒤받침을 위한 여러가지 사업들을 포치하시였다. 이미 안도에서 준비되였던 유격대원들을 각 지구에 보내시였는데 밑천이 전혀 없는데서 시작하는것보다 다문 얼마간이라도 부대생활을 했고 훈련을 받은 동무들을 핵심으로 각 지구 유격대를 점차 불려나가는것이 좋을것이라고 보시였던것이다.

한편 남만일대로 나갈 대원들을 각 지방에서 부르기도 하시였다. 전혀 유격대생활을 모르는 동무들을 몇달 함께 데리고다니며 훈련을 주실 계획이였다. 그와 함께 반일군중단체들인 반제동맹, 부녀회, 농민협회, 또는 청년 및 소년단체들의 상급조직을 구단위로 내올 대책도 세우시였다. 이렇듯 사업 한면만을 생각한다면 잠시도 자리를 뜨실수 없었지만 벌써 두달전부터 중환에 계신다는 어머님의 병세를 알게 된 차광수는 소사하에 들리실것을 하루 한번씩 말씀드렸다. 차광수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머님의 병세를 알아보았고 좋다는 약을 애써 구해보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 모든것이 그이께서 한번 들리시는것보다 나을수는 없을것이였다. 예정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떠나면 혹시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게 될는지 모를 걸음인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부대를 어디에 집결시킬것인가를 토의하게 되였을 때 차광수가 기왕이면 토기점골이 가까운 이 소사하로 하자는것을 그렇게도 고집한 까닭이 거기에 있었던것이다.

번번이 생각해보겠다고만 하시는 그이께 오늘 아침 차광수는 단단히 결심하고 의견을 내놓았다.

《사령관동지! 짬이 없으셔서 못 가시겠다면 저라도 갔다오는 수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뭐요? 차동무가 가겠단 말입니까?》

《제가 대신이라도…》

막다른 제의는 사령관동지께서 꼭 가셔야겠다는 강한 권고로도 되였지만 그만 못지 않게 그자신의 진정이 담겨있는 실토정이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시다가 지나치게 정색해진 차광수를 쳐다보며 말씀하시였다.

《정 그렇다면 내가 잠간 다녀오겠습니다. 차동무! 동무들에게 그렇게 걱정을 끼쳐 미안합니다.》

그런 후에 간단한 차비를 하고 그이께서는 길을 떠나시였던것이다. 그이의 손에는 크지 않은 약 한꾸레미와 좁쌀 한말이 들려있었다. 차광수는 동구밖 멀리까지 따라나갔다.

《어머님께 저의 안부를 꼭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찾아뵙지 못한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려주십시오. 아마 제가 어데서 앓고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면 어머님께서는 천리길도 멀다 않으시고 단숨에 달려오시여 머리를 짚어주시고 약을 떠넣어주셨을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무심합니다.》

눈물이 글썽해진 차광수의 눈길과 그이의 시선이 마주치자 그이께서는 얼른 고개를 딴데로 돌리시는것이였다.

얼마후 헤여진 차광수는 그이께서 산굽이를 다 돌아가실 때까지 발을 모으고 언덕에 서있었다.

지난 초봄이였다.

지방공작을 하다가 독감에 걸려서 눕게 되였을 때 차광수는 어머님께서 계시는 소사하집으로 찾아갔었다. 열이 심했던 그는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고 방바닥에 쓰러져 사흘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가 의식을 회복하여 눈을 떴을 때는 한밤중이였는데 어머님께서는 그의 머리맡에 앉아계시였다.

《어머님!》

그는 수건을 들고계시는 어머님의 손을 더듬어잡아 가슴에다 대고 꾹 내리눌렀다. 육친의 정이 뜨겁게 흐르는 그 손길에서 그는 자기를 낳아 키워주신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무한한 행복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높뛰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고있었다.

그때 그는 남양집 아래목에 있는줄 알았지 강반석어머님의 무릎아래 누워있는줄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한참만에야 눈을 떠보니 그분은 강반석어머님이시였다.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그를 보고 어머님께서는 이불밑에 손을 넣어 그의 주먹을 꼭 싸쥐며 나직이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정신이 좀 드나?》

《어머님!》

차광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정신을 차렸으니 이제는 됐네. 내가 자네 친어머니만이야 못할테지. 그렇지만 여기를 제 집으로 알고…》

어머님께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눈물이 글썽한 얼굴을 문켠으로 돌리시는것이였다. 차광수는 이때 다른 손을 뻗쳐 어머님의 껄껄한 손등을 쓸어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머님, 미안합니다.》

《어머니라면서 그런 소릴 하나?》

어머님께서는 부드러운 눈길로 그의 수척해진 얼굴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면서 정성을 다하지 못한탓이라고 못내 아쉬워하는 빛을 보이시였다. 어머님의 자애로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있던 차광수는 무슨 사과의 말씀을 올리려 하였으나 종시 그것을 입밖에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곧 그의 눈굽으로는 굵다란 눈물방울이 드르르 굴러내려 베개우에 떨어졌다.

열흘만에 차광수는 몸을 추세워가지고 푸르허에 계시는 사령관동지께 두만강 하부지구의 실정을 빨리 보고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어머님께서는 밤을 새며 옷을 빨아 다려주었고 터진데를 바늘로 한뜸한뜸 꿰매 입혀주시였다. 그날 하루종일 길을 걷다가 산등에서 쉬면서 어머님께서 도중에 펴보라고 하시던 보자기를 끌러놓았다. 조꼬장떡 네개가 나왔다. 차광수는 그것을 두손으로 움켜잡고 몸을 떨면서 소사하쪽을 향해 《어머님, 어머님.》하고 몇번이고 목메이게 불러보았던것이다.…

회상에서 깨여난 차광수는 사령관동지께서 돌아나가신 그 산모퉁이를 향해 자기도 막 달려가고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였지만 지그시 참고 견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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