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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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까드라진 잎을 몇개 매달고있는 묵은 쑥대사이로 그보다 훨씬 작아보이는 전선대 한대가 내다보이였다. 이쪽에는 그리 크지 않은 내물을 따라 감겨돌아간 신작로가 누워있었다. 맞은쪽은 내물을 지나 민틋한 밭이 있었고 그다음은 역시 가파로운 산이 가로막혀있었다. 차광수는 땅에 가슴을 붙이고 엎드려있었다.
땅은 차고 눅눅하였다. 손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따금씩 옷소매에 문대건만 곧 권총손잡이가 질쩍질쩍해나군 하였다.
이제 적이 나타나면 총을 발사하게 된다. 그러면 적도 마주쏠것이다. 차광수는 대격전장을 상상해보았다.
하늘에 폭격기편대가 떠가고 땅크들이 기여간다. 장거리포들이 울부짖으며 포연이 공간을 채우고 땅이 지릉지릉 울린다. 벌겋게 단 철선같은것이 하늘에서 교차되고 불꽃이 공중에서 번쩍인다. 혼전이다. 총창을 들고 맞받아나간다. 쓰러진다. 뭉개진다. 땅바닥이 사처에서 튕겨오른다. 만세소리가 요란하고 기폭이 날리고.
그것은 실로 장엄한 환상이였다.
바위짬에 엎드린 대원들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둘둘 굴러내리였다. 복수심에 불타는 그들의 눈은 푸른빛을 띠고있었다.
차광수는 고개를 돌려
고작해서 이제 5분 아니면 10분내에 적들이 나타날것이였다. 적들의 기동속도와 시간과 거리를 타산해서 날이 어두워질무렵을 선택하신것이다. 사전에 다짐을 주기는 하였지만 흥분해서 선후차를 혼동할수 있었다.
전광식은 가슴이 척척해서 모로 돌아누웠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어금이가 다 저릿저릿하였다. 문득 리광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에
《두고봐라! 이놈들!》
그는 손을 뻗쳐서 쑥대를 몇대 휘여눕혔다. 눈앞이 활짝 열리였다. 웬일인지 적이 당장 나타날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가슴에서 방망이가 쿵당쿵당 벽을 두드리고 관자노리에서는 피줄이 풀떡풀떡 뛰였다. 그는 흥분을 누르기 위해 몇번 심호흡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 효과도 없었다. 울대뼈가 울릴 정도로 군침을 삼키고나서 자리를 고쳐앉았다. 발을 돌부리에 걸고 당장 뛰여나가기 편리하게 자세를 잡았다.
다음순간 그는 불시에 평온함을 느끼였다. 모든것이 죄다 자기와 같이 안정된것 같이 보이였다. 풀 한대 흔들리지 않았다.
약 150메터 상거한 길모퉁이에서 반디불같은것이 뱅글뱅글 원을 그리였다. 적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2~3분후에 말발굽소리가 들리였다. 가맣게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검은 점이 하나둘 나타났다. 몇분후에 열두대의 마차가 매복구역에 들어서자 산코숭이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리였다.
맨 선두와 중간 그리고 꼬리에서 돌을 굴리였다.
최진동이가 데려온 량강구의 반제동맹원들이였다. 그들은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돌을 내리던졌다.
상자들이 깨지고 판장이 부서져 튕겨났다.
마차 한대에 마부 하나와 호송병 한두놈씩이였다. 놈들은 총을 안은채 발을 늘어뜨리고 건들건들 졸고있다가 봉변을 당하게 되였다. 불의에 벼락을 들쓰게 된 놈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떤 놈은 얼이 빠져 벼랑으로 기여오르다가 돌에 맞아 굴러떨어졌고 어떤 놈들은 강물로 뛰여들어 허우적이고있다.
이윽해서 얼마간 사태를 수습한 놈들이 대항해나섰다.
무어라고 꿰꿱 소리를 치더니 길옆에 있는 도랑에 의지해서 횡대를 지어 엎드렸다. 사격이 시작되였다. 벼랑에서 불꽃이 튕기고 골짜기가 떠나갈듯 한 총성이 울리였다.
전광식을 비롯한 매복조는 놈들의 바로 뒤에 위치하고있었다. 거리는 불과 10메터 되나마나하였다. 다시 신호가 있어야 달려나가겠는데 소식이 없다. 전광식은 자기가 착각을 일으킨줄 알고 허리를 펴며 무릎을 일으켜세웠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재차 착각을 일으켜 자기가 뒤늦은줄 알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때에야 신호가 울리였다.
불의에 뒤에서 총소리가 몰방으로 나는 바람에 적들은 재차 혼란에 빠졌다. 전광식은 총을 쏘는데
가까이 있는 놈을 묘준해서 단방에 쓸어눕히고 달려나가면서 또 한놈의 뒤통수에 대고 갈기였다. 다음 웅뎅이아래로 뛰여내리니 왈칵 발밑이 들리고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그 순간 그는 앞에 얼씬하는 놈을 붙잡고 휘둘러메치였다.
박흥덕이가 달려나간것은 신호가 울린 다음에도 몇초 지난 후였다. 워낙 동작이 굼뜬 그는 오래동안 쪼그리고 앉아있어서 몸을 빨리 일으켜세울수 없었던것이였다.
박흥덕은 두방만에야 한놈을 꺼꾸러뜨렸다. 그다음은 다시 쏠 생각을 못하고 총을 든채로 혼전속에 뛰여들어갔다.
적들은 인차 소멸되였다. 성난 사자처럼 달려드는 유격대앞에서 변변히 대항도 못해보고 녹아났다.
차광수는 전광식과 함께 투항한 두놈을 묶었다. 그런 다음 홰불을 켜들고 전장을 수색하였다.
바퀴가 떨어진 마차며 나딩굴어진 궤짝들이며 쓰러진 적의 시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한군데 이르시여 보총탄알이 흩어져있는것을 발견하시였다. 뚜껑이 깨여져나간 상자가 풀숲에 처박혀있었다.
《여기 총이 있소.》
《네?!》
차광수는 궤짝에서 총을 꺼내더니 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을 질렀다.
《총이다!》
유격대원들이 달려왔다. 모두 하나씩 집어들고 껑충껑충 뛰였다.
《총!》
《아! 총!》
박흥덕은 격발기를 몇번 제껴보고나서 한번 쏴볼 생각을 하였다.
《또 한번 쏴보우.》
《땅!》
《또 한번.》
《땅!》
《또!》
《땅!》
《하하하하, 좋은 선물이요.》
전장을 수습하게 되였다. 두상자에서 열일곱자루의 보총과 한정의 권총이 나왔다. 그중 세자루는 가목이 부러졌거나 총신이 휘였다. 적들이 쓰던것은 14정밖에 얻어내지 못하였다. 마차에 실었던것은 피복과 통졸임 그리고 많은 량의 밀가루였다. 박흥덕이와 최진동이게 뒤수습을 하게 하고 차광수와 전광식이
차광수는 사로잡은 두놈을 앞세우고 먼저 걸었다.
오솔길에 접어들었을 때
《좀 쉬여갑시다.》
우중충하게 일어선 가래나무밑에 우등불을 일궈놓았다.
불이 활짝 피여오르자 젖은 옷에서는 김이 문문 피여올랐다.
《차광수동무! 기분이 어떻습니까?》
무심히 하시는것 같은
차광수는
《리광동무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차광수는 리광의 모습이 눈앞에 환히 떠올랐다.
원래 나서자란 그대로 끝없이 선량하고 소박하던 리광은 이 며칠사이에 놀랄만큼 엄청나게 달라졌다.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고 또한 정들인 마을사람들을 잃은 후 그는 더욱 과묵해졌고 수척해졌었다. 눈에서는 언제나 푸른빛이 뿜어져나왔다. 그러던 그가 이 전투에 참가했다면 어머니와 동생의 복수를 하고 가슴속에 맺힌 원한의 일부를 풀었을수도 있었다.
차광수는 생각했다. 원쑤를 천배, 만배로 복수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침략자들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살아갈수 없다는것을 알게 하고 조선사람앞에서 몸서리치게 해야 한다. 이 길이 철천의 원쑤를 치는 복수의 길이며 침략자를 물리치는 해방의 길이다.
첫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그로 하여 최후승리의 그날까지 그렇게 나아가리라는 굳은 신념과 투지가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고있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심리를 읽어주듯이
《우리는 오늘 시작했지만 이 첫걸음은 침략자들을 타도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연것과 같습니다. 비록 몇명의 적들을 섬멸하였고 많지 않은 전투기재를 파괴하고 로획했지만 어쨌든 이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무장으로 일제에게 안겨준 첫 타격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크게, 더 자주, 더 결정적으로 칠것입니다. 제국주의아성이 땅을 울리며 꺼꾸러질 때까지 타격을 가할것입니다.》
차광수는 확신에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