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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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밤이 깊어서야 끝났다.
옆에 섰던 차광수가 나직이 말씀드렸다.
《고맙습니다. 한데 저 동무들 잠자리는 마련되였습니까?》
《예! 여러명씩 조를 무어 집들마다 분숙하게 조직했습니다.》
《덮을것들이 충분히 있는지 모르겠군. 5월이라지만 아직 새벽녘이면 날이 찬데 탈이 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제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차광수가 대답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차동무는 리광동무네 집사정을 들었습니까?》
차광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였다. 리광은 자기 집 참사에 대하여
《예, 대체…》
그는 말끝을 흐려버렸다.
《하루밤 잠자리라도 같이합시다. 하기야 그게 무슨 위로가 되겠소만…》
차광수는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급히 대문을 나섰다.
달이 밝았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올적마다 마당에 서있는 백양나무의 작은 잎이 한들한들 흔들리면서 달빛을 아름답게 반사하였다. 차광수의 뒤를 따라 리광이와 리혁이가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까지도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던
《리광동무! 그 밭에 금년에는 무엇을 심었습니까?》
《어느 밭 말입니까?》
리광은 큰골에 있는 자기 집 둔덕밭을 두고 말씀하시지 않나 짐작이 갔지만 딱히 몰라 되물을수밖에 없었다.
《내가 갔을 그때 원두막이 있던 그 밭 말입니다.》
《네! 올해에도 강냉이를 심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때도 밤이였다. 바람이 개꼬리가 한벌 올리솟은 강낭밭을 설렁설렁 흔들며 지나가면 싱그러운 한여름의 풀냄새가 진하게 풍기던 때였다. 연길, 화룡지방을 돌아오신
새날이 잡혔을무렵에 강냉이 바르는 소리가 나서 리광이 내려가보았다. 뒤따라
《어머니, 무엇을 하고계십니까?》
《별것이 아니웨다. 밤이 깊었길래…》
《이거 강냉이가 아닙니까?》
《알이 잘 들지 않아서…》
주름이 한벌 덮인 어머니의 얼굴에는 가벼운 웃음이 깃들었다.
숯이 벌겋게 진 불무지우에 두이삭의 강냉이가 익어가고있다. 이따금씩 강낭알이 탁탁 튕기면서 재가루를 약간씩 날려놓군 하였다. 노르끼레하니 익은 알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였다.
어머니는 다 구워진 이삭을 나무꼬챙이로 굴러내렸다.
《시장하시겠는데 한이삭 들어보시우.》
《잘 구워졌습니다, 어머니.》
《불이 좀 세서 탔나봅니다.》
《밭머리에서 풋강냉이구이란 참 좋은거지요.》
이런것을 좋아하시겠는가 해서 망설이던 어머니의 얼굴에 금시 기쁨이 어리였다. 강냉이이삭을 받아드신
고깔불을 가운데 놓고 세사람이 마주앉아 강냉이를 뜯으며
《별맛입니다. 어머니, 풋강냉이를 먹으니 고향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허두를 떼신
북두칠성의 기다란 꼬리가 마반산마루 저쪽으로 기울어들무렵
《지금은 천리타향에 오셔서 어머니들이 고생하시지만 반드시 우리들이 빼앗긴 나라를 찾아 고향에서 옛말하시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몸성히 앉아계십시오.》
그때 어머니의 눈굽에 눈물이 솟아올라 달빛에 빛나던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
《이제 여름이 오면 또 그렇게 풋강냉이를 한번 구워봅시다.》
회상에 잠겨 묵묵히 서있던 리광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때 그 맛이 나겠는지…》
나직한
《리광동무!》
《어찌겠소. 참고 견디여야지.》
그 순간 리광의 몸은 밑둥이 끊긴 나무통처럼
울음섞인 리광의 웨침소리가 정적이 깃든 밤하늘가에 울리였다.
《그래, 우리는 해방이 된다 하더라도 살아계신 어머님을 고향에 모실수 없게 되였지.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소, 마음을 굳게 먹고 용기를 내야지…》
높이 들먹거리는 리광의 어깨를 꽉 부둥켜안으신
잠시후
잠들수 없는 밤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수 없게 되였을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