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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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열린 집은 소사하의 구당본부였다. 수수하지만 방이 두개 있었는데 어간에 있는 미닫이문짝만 떼여내면 마당처럼 널직하여 장정 수십명은 능히 들어앉을수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김일성동지의 지도하에 당과 공청의 지도핵심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있었다.
《그럼 각 지구 형편부터 좀 들어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오른편에 앉은 리광, 진일만동무들을 바라보시였다. 리혁은 이때에 그이의 소탈한 한마디 말씀이 중대한 회합의 시작을 의미한다는것을 긴장되는 다른 동지들의 표정으로 미루어 알수 있었다. 이 모임에서 결국 혁명에서 절박하고 중대한 문제에 대한 그이의 결론을 듣게 될것이였다.
한흥권이로부터 시작하여 진일만, 송덕형, 리광 등 보고가 진행되였다. 그이께서는 물끄러미 등잔불을 바라보기도 하시고 때로는 가볍게 끄덕이기도 하시였으며 혹은 보고하는 동무를 유심히 바라보기도 하시였다. 간혹 그이께서는 보고자가 스쳐지나가거나 빼놓고 지나가는 대목이 있으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라고 한마디 하군 하시였다. 리혁은 모든 보고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간명하게 그러나 그 지구의 복잡다단한 형편을 아주 선명하게 개괄하는데 대하여 자못 감탄하였다. 그들의 보고를 들을수록 조선혁명의 전면모가 차차 뚜렷이 안겨오는것이였다. 두만강연안의 광활한 지대 곳곳에 별처럼 총총히 박힌 붉은 점들, 유격대의 소조들과 공청, 반제동맹, 농민협회, 부녀회, 아동단 등 무수한 군중조직들과 혁명화된 마을들, 그 별빛들을 삼키려고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불바다… 불바다에 휩싸여들어가고있는 그 무수한 어린 별들이 모두 이밤 안도땅의 크지 않은 이 초가집창가의 등불을 바라고 갈망과 초조에 타는 시선을 보내고있는듯 하였다.
《다들 이야기하였습니까? 듣자니까 동무들은 현정세와 관련해서 토론을 많이 했다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김일성동지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을 듣고서야 리혁은 눈앞에 떠오른 환각을 지워버리고 그이를 우러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좋습니다. 그럼 내 좀 이야기합시다. 동무들이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전례없는 가혹한 조건하에서 모두 헌신적으로 그리고 슬기있게 투쟁하였으며 명월구회의에서 토의된 방침을 관철하는 길에서 큰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리혁은 긴장되였다. 어제오늘 계속 론쟁을 해도 풀수 없었던 문제가 바야흐로 풀리려 하고있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오늘 모임에서는 실제적인 대책만 몇가지 의논할 작정이였는데 방금 동무들의 보고를 들어봐도 그렇고 오늘 론쟁했다는 경위를 들어봐도 그렇고 또 내가 직접 두만강중부지구를 돌아본데 의하더라도 동무들에게 현사태와 우리의 전략전술에 대한 분석, 평가와 관련하여 좀 이야기해야 될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반응을 살피듯 동지들을 둘러보시였다. 그이의 안광에는 모든것을 꿰뚫고 헤아려보시는듯 큰 예지와 깊은 사색이 흐르고있었다.
《동무들이 말한것처럼 사태는 매우 준엄하고 절박합니다. 일제의 조선인민에 대한 학살만행은 전대미문의 악랄성을 띠고있습니다. 말그대로 우리 조국은 피바다에 잠기고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현상을 우리에게 불리한것으로만 볼것인가! 그것으로 해서 우리가 당황해야 할것인가?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사실상 일제의 발광은 저들의 강한것을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궁지에 빠져 단말마적으로 발악하고있다는것을 반증하고있는것입니다. 동무들이 잘 알고있는바와 같이 현재 지구상에는 인류에게 커다란 불행을 가져올수 있는 두개의 흑점이 생겨나고있습니다. 하나는 유럽의 도이췰란드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와 직접 맞선 일본군국주의입니다. 그들은 더욱더 맹렬한 기세로 군국화되여가고있으며 침략의 마수를 광대한 지역으로 뻗치고있습니다. 자본주의 대공황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려들어간 이 두 지점은 아무때나 불꽃을 튕길수 있는 발화점을 이루고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일본이 지난해에 만주를 강점하는것으로써 저들의 본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놓았습니다. 일본은 중국의 령토에 날마다, 시간마다 더욱더 깊이 침투해들어가고있습니다. 여기서 오늘 일제가 자기의 식민지로 전변시킨 우리 조선에 부여하고있는 의의는 어떤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조선이 저들의 공고한 후방으로, 대륙침략의 견고한 교두보로 될것을 바라고있는 그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일제는 조선을 피바다에 잠가놓고있습니다. 일체 반일력량에 대한 잔인한 탄압을 위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동무들이 토론했다는 큰골〈토벌〉도 그의 일단인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가 무장을 들고 자기 조국과 인민을 구원하며 나아가서는 아시아와 세계인민의 안전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 일어섰다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일제는 자기들의 발판이 안전하지 못하다는것을 알고 대륙진출을 일시 중지하더라도 항일무장력량부터 섬멸해야겠다는 시도를 하게 되였습니다. 일제는 이른바 상해사건을 계속 소란스럽게 떠들면서 조선내에서의 무력이동을 다그치고있습니다. 라남 제19보병사단의 일부는 이미 두만강을 건넜고 다른 일부는 수백리 강기슭에 빈틈없이 포치되여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미 만주전역을 강점한 관동군은 최소한도의 무력을 몇군데 남겨놓고 슬금슬금 장학량군대를 〈토벌〉하면서 상당한 수를 역시 두만강지구로 이동시키고있습니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칼을 물고 맹렬하게 달려나가던 일제는 뒤에서 올가미를 걸어채자 곧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벗어보려는 시도를 하고있는것과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마치 명의가 해부도를 들고 서슴없이 종처를 쩍쩍 갈라서 발가내고 도려내버리듯이 심오하고도 통쾌하게 단칼로 복잡한 내외정세의 밑바닥을 쩍 갈라 헤쳐보여주시였다.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들은 더욱 불타는 시선으로 엄숙해진 그이의 존안을 우러르고있었다.
《그런데 동무들의 토론을 직접 들어보지 못해 자세한것은 알수 없지만 론의의 초점은 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그에 대처할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즉 〈토벌〉을 어떻게 막아내며 동시에 혁명력량을 어떻게 강화할것인가 하는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송동무?》
송덕형을 바라보며 물으시는 그이의 안광이 강하게 빛을 뿌렸다. 송덕형은 성큼 일어서며 《그렇습니다. 사령관동지!》하고 활달하게 대답하였다.그이께서는 미소를 띠우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렇다면 인제 그 문제에 대하여 좀 이야기해봅시다.》
그이께서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시자 여러 사람들의 표정에는 일시에 변화가 일어났다. 진일만, 최진동 등 일제의 《토벌》에 대한 군사적정면대결을 주장하던 동무들의 얼굴은 대번에 활기를 띠였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동무들이 이미 잘 알고있는 카륜회의로선과 그를 구체화한 명월구회의방침을 다시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당면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자체가 바로 그 로선과 방침을 실천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아야 하기때문입니다. 동무들이 간략해서 표현하는것처럼 카륜회의에서는 이미 전략적방침이 제기되였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당면하게 수행해야 할 혁명의 성격이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 있다는것을 규정한것이며 다음으로는 그것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상비적이며 조직적무력에 의한 항일무장투쟁을 진행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리고 로농동맹에 기초한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을 이룩하며 앞으로 조직사상적준비를 충분히 갖춘 조건에서 새형의 맑스-레닌주의당을 창건할데 대하여 일치한 합의를 본것입니다. 그후 우리는 명월구회의에서 변화된 정세에 따라 그 방침을 구체화하여 반일인민유격대를 곧 내오도록 하였으며 지난달 4월 25일에는 드디여 그 창건을 보게 되였던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동무들에게 강조하고싶은것은 여러가지 문제가운데서 특히 항일무장투쟁을 앞으로 어떻게 강화발전시킬것인가 하는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명월구회의때에 기본방침이 제기되였습니다. 〈군사적정면대결〉을 할것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길을 택할것인가 하는 문제도 결국은 이 문제해명에 귀결되는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첫걸음을 내디딘 항일무장투쟁은 아직 그 어디서도 전례를 보지 못한 자기의 특성을 가지고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당이 먼저 나오고 그가 채택한 혁명전략에 의해서 폭력투쟁 즉 전인민적폭동을 일으킬것인가 아니면 혁명전쟁을 통해서 주권을 쟁취할것인가 하는 등 방침문제가 제기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침략무력에 의해 완전히 강점당한 식민지라는 조건 그리고 맑스-레닌주의당을 아직 가지지 못했다는 사정 등으로써 무장투쟁이 하나의 방법문제로서가 아니라 전체 혁명전략을 자기 품에 안고 나가는 전면적이며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되였다는 그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무장투쟁을 통해서만 당도 가질수 있고 애국적반일통일전선도 이룩할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제기한 혁명전략을 하나하나 달성해나갈수 있는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한 실정과 우리 인민의 요구이며 동시에 달리는 될수 없는 필연적인 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동무들이 토론에 제기한 문제는 혁명전반에 관한 문제이며 항일무장투쟁 전행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문제입니다. 이미 말한바 있지만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이것은 우리 혁명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온 대사변입니다. 앞으로 날이 갈수록 더욱더 그 의의가 명백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리해될것이지만 이 하나의 사변은 조선인민의 민족해방운동사상에서 실로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는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일제는 반일인민유격대를 그 첫걸음에서 영영 압살해버리기 위해 발광하고있는것입니다. 이런 정세밑에서 우리들은 일제의 반혁명적전략을 파탄시키고 자기들이 내세운 혁명로정을 따라 최후의 승리를 위해 나아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 주저앉느냐 하는 준엄한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습니다. 그러면 당면하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명월구회의에서 제기한 방침을 더욱 철저히 관철하는 그것입니다. 우리의 구호는 변함없이 첫째도 무장, 둘째도 무장, 셋째도 무장입니다. 이 정신에 따라서 유격대를 끊임없이 확대강화해야 합니다. 모든것을 이 하나의 초점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유격투쟁을 확대강화하는데서 혁명무력의 보루이며 지탱점이며 혁명의 책원지로 될 혁명근거지를 창설하는 문제와 적들을 최대한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 일제의 침략을 받고있는 이웃나라 인민들과 반제공동전선을 이룩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방침을 확고히 견지해나갈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동무들가운데서 누가 주장했다는 군사정면대결이 어떠한가를 보기로 합시다. 이것은 적들의 만행에 격분한 일시적흥분에서 온 정서상태로는 리해되지만 실제행동을 위해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모한 견해입니다. 정면대결을 주장하는 동무들은 카륜회의로선과 명월구회의방침을 들고있다는데 그것으로써 그릇된 길로 나가려는 견해를 정당화할순 없습니다. 카륜회의에서는 무장투쟁로선을 제기하였고 명월구회의에서는 그것을 위해서 유격대를 창건할것과 혁명전쟁을 유격전의 형식으로 할데 대하여 규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창건된 유격대를 강화하는 다음과정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며 우리가 제기하였고 우리가 관철하여야 할 확고한 자주적인 립장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정세의 변화나 일제의 준동여하에 따라 변동시킬 그런 성질의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이 과정, 이 로선을 집어치우고 정면대결을 한다면 카륜회의로선이나 명월구회의방침을 사실상 포기하는것으로 되며 결국은 혁명을 망치는 길로 나가는것을 의미합니다. 정면대결을 지금 누가 바라고있는가? 그것은 일제입니다. 우리는 일제의 잔꾀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일제의 야수적〈토벌〉의 목적은 첫째로 조선인민의 반일기세를 좌절시켜보려는것이며 둘째로는 첫걸음을 내뗀 반일인민유격대를 자기들 면전에 끌어내서 그 싹으로부터 무찔러버리자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어리석은 꾀에 절대로 속을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동무들, 그렇다면 심중히 생각만 하면서 피를 흘리며 참고 견딜것인가? 그렇게 할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총을 잡게 된 목적과 우선 맞지 않을뿐만아니라 우리 인민의 운명을 책임지지 않는 반인민적길로 스스로 들어서게 되는것입니다. 전광식동무와 함께 여기로 오던 길에 우리는 〈토벌〉을 당한 왕청지구 주민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그들은…》
거침없이 흘러내려가던 그이의 말씀은 갑자기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안색은 퍽 긴장해졌으며 무엇인가 강렬한 음성이 터져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그이께서는 불에 탄 아이의 팔소매, 재티묻은 머리를 쳐들며 처량하게 바라보던 녀인의 눈물고인 얼굴, 사람 살리라는 고함소리가 골짜기를 울렸다는 불타는 마을을 지금 눈앞에 그려보시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