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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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혁은 나무등걸에 기대앉아 귀틀집마당에서 벌어진 정경을 바라보고있었다. 저편 부엌문앞에서는 리광이 웃동을 벗어붙이고 장작을 패고있다. 도끼날이 번쩍하고 내려칠 때마다 통나무가 쩍쩍 갈라져나간다. 대접이 푸짐한 귀틀집주인 박흥덕이는 무슨 일인지 분주하게 부엌으로 드나들고있다.
마당 건너편 골짜기로 내려가는 숲속의 오솔길로 군복차림에 물지게를 진 최기갑이 올라오고있었다. 우람한 그의 체구에 물초롱은 장난감처럼 매달리여 데룽거린다.
키가 크고 목이 기름하며 손마디가 굵은 리혁은 어느모로 보나 농사군처럼 생기였다. 얼핏 보건대는 어수룩하였지만 예지로 빛나는 눈이며 약간 내밀린듯한 입술이며 밑이 밭은 턱들이 소박하면서도 완강한 성품을 잘 나타내였다.
리혁은 지난 가을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성진에서 30리 떨어진 골짜기에서 나서자란 그는 고학을 하면서 서울, 평양을 거쳐 간도에 이르렀다가 공산주의운동에 뛰여들자마자 체포되였던것이다.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그는 고향에도 들리지 않고 곧장 간도로 넘어왔다. 몇달만에야 겨우 밀정을 떼버리고 변성명을 하게 된 그는 길림으로, 할빈으로, 심양으로 돌아다녔다. 이전에 관계했던 선을 찾자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것이였지만 그는 기어이 과거와 결별할 결심을 하고 몇해전에 있은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관계자들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감옥에서 1928년에 있은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과 일본상품배척투쟁에 대한 소식을 들었었다. 넉달만에 교하에서 한 공청원을 만나게 되였고 그 인줄로 한흥권이와 줄을 잇게 되였으며 드디여 오늘과 같은 날을 맞이하게 되였던것이다.
그에게는 모든것이 새롭고 정다왔다. 심지어 지금 마당에서 벌어지고있는 정경,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생활세태의 한 단면마저도 그의 심중에서는 류다른 감회를 자아내는것이였다.
좋다, 모든것이 좋다. 모든 동지들이 생신하고 발랄하고 믿음직하고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도 현사태에 대한 자기의 견해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지만 구태여 그는 론쟁의 어느 편에 가담하고싶지 않았다. 그의 온넋을 그러쥔것은 론쟁의 내용 그자체가 아니라 론쟁하고있는 이 집단의 건전하고 열정적이며 혁명적인 분위기이며 아름다운 정신세계였다.
오늘 저 귀틀집을 달아오르게 한 론쟁에는 《나》가 없으며 일편단심
하루동안의 체험속에서 리혁은 아직 뵙지는 못하였으나 이러한 집단, 이러한 참다운 청년공산주의세대를 키워내신
《여기 앉아계셨군요.》
누군가 옆에서 이렇게 말하는바람에 리혁은 명상에서 깨여났다. 차광수가 미소를 짓고 그의 앞에 서있었다. 리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먼길을 오신데다 종일 앉아계셔서 피곤하실텐데 방안에 들어가 푹 쉬십시오.》
《피곤하다니요? 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기운이 솟습니다.》
두사람은 리혁이 앉았던 나무등걸에 나란히 앉았다.
《그래 건강은 어떠십니까? 아직 혈색이 좋지 않으신것 같은데…》
차광수가 조심스러운 빛으로 리혁을 쳐다보았다.
《원, 별말씀을. 난 요즘 동지들을 만나서 소년으로 다시 태여난것 같이 심신이 약동합니다. 하하하…》
차광수도 함께 웃고나서 계속하였다.
《
《저도 전달받았습니다. 저같은것을 그처럼 념려하여주시니 정말 어떻게 말씀드렸으면 좋을지…》
두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고있는데 귀틀집주인 박흥덕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농군같은 검실검실한 얼굴과 큼직한 입은 언제보나 인상이 좋았다.
두사람은 이야기를 중단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하는데 안됐습니다. 참모장동지, 내 한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박흥덕은 리혁을 곁눈질하며 망설인다.
《어서 말씀하시오.》
《저, 다른게 아니라
뜻밖의 질문이라 차광수는 어리둥절하였다.
《그건 왜 묻소?》
《저, 다름이 아니라 언젠가 여기서 묵고간 동무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적이 있기에 혹 오시면 국수를 대접할가 해서…》
《국수를?… 아니, 그래 녹말이 있습니까?》
《녹말이 아니라 저, 메밀이 좀…》
《메밀이요? 대단합니다. 그 메밀을 어디서 구하였습니까?》
《뭐… 거저 좀 구해둔것입니다.》
박흥덕은 우물쭈물 얼버무린다.
《잘되였습니다.
그렇게 심중하고 사려깊어보이던 차광수도 꼭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그래요? 자, 내가 이러고있을새가 없지.》
박흥덕이 허둥지둥 귀틀집쪽으로 달려간다.
그는
《좋은 동무지요.》
《정말 모두 좋은 동무들입니다.》
두사람은 각기 자기나름의 감동에 잠겨 이렇게 말하며 장작을 한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박흥덕이를 바라보고있었다.
《저게 누구야, 전령병이 아닌가?》
골짜기쪽의 오솔길로 총을 멘 대원 한사람이 달려올라오고있었다. 차광수는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내려섰다.
《참모장동지,
차광수와 마주선 나어린 전령병이 또박또박 보고하였다. 어느새 마당에 있던 동무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모두들 왔구만요!》
진일만, 한흥권, 송덕형, 최진동, 차광수… 여러 사람들의 손을 차례로 잡아주시며 얼마나 고생했느냐? 그곳 동지들은 잘있느냐? 집에 어른들은 무고하신가? 짧게 한마디씩 물어보시였다.
리광의 손을 잡으신
리광은
《마음을 굳게 가져야 합니다.…》
리광은 끝내 눈물방울이 맺혀지는 얼굴을 외로 돌리였다. 그러면서도 가슴속은 불안하였다. 혹시
끝으로 따로 서있던 리혁이와 박기남이에 대하여 차광수가 소개말씀을 드렸다.
《두 동무가 모두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통신처를 자리도 잘 잡고 꾸리기도 잘 꾸렸습니다. 여기 책임자가 박흥덕이라는 동무지요?》
《예, 그렇습니다.》
마침 부엌문이 덜컹하고 열리더니 흰김이 몽몽하게 피여나오는 속에서 바지우에 앞치마를 두른 사나이가 버치를 안고 나오다가 우뚝 멈추어서며 눈이 둥그래졌다.
《저 동무입니다.》
차광수는 얼결에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렇소? 박동무, 수고를 합니다.》
《한번 들린다 하면서도 오늘에야 왔습니다. 사실은 이번에도 소사하로 내처 가려다가 여기 들린 동무들이 모두 신세를 졌다고 칭찬들이 자자하여 한번 직접 만나보려고 온 걸음입니다.》
《예, 제가 저… 사실은…》
입담좋기로 이름난 박흥덕이건만 두서없이 중얼거린다.
《방안이 루추하지만 어서 들어가십시다.》
《방안이 밝고 아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