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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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귀틀집의 분위기는 박흥덕이가 상상한것보다 몇갑절로 긴장되여있었다. 론쟁은 담밑에서도 붙고 마루우에서도 붙고 문을 열어젖힌 방안에서도 붙었다. 론쟁의 테두리밖에 있는 사람은 마당 한구석에 놓인 도끼모태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떨구고있는 리광뿐이였다. 《토벌》때 그슬린 군복웃도리를 그냥 걸치고 온 그는 그자신이 타다남은 고목등걸처럼 시꺼멓게 그슬린 인상인데 이따금 얼굴을 들 때면 어찌나 눈빛이 번쩍거리는지 함부로 범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실상 담밑에 쪼그리고앉은 최진동이와 차광수도 그렇고 연방 토방을 두들겨대는 진일만이, 한흥권이, 송덕형이 같은 리론가들도 그렇고 방안에 둘러앉아 웨치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들모두의 론의의 초점은 큰골《토벌》에 대한 문제였으며 따라서 많은 말들이 직접 그를 념두에 둔것이였다.
론쟁의 시초는 역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개별적으로 나가 공작하는 기간에 해명하기 어려웠거나 불명확한것들을 내놓고 토론들을 시작하였는데 그중에도 지방정치공작때문에 사령부와 오래 떨어져있었던 진일만, 송덕형동무들이 해명할것이 많았다.
일제《토벌》에 어떻게 혁명력량이 대처할것인가를 토론하다가 큰골《토벌》을 직접 체험한 리광이 도착하자 론쟁은 한결 더 격화되였다. 큰골을 비롯한 두만강류역에 대한 일제의 《토벌》은 실로 형용키 어려울만치 잔인하고 악착한것이였으며 또 그 규모에 있어서 일찌기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놈들의 동향으로 보아 앞으로 그 규모가 더 확대되고 열을 띨것만은 틀림없었다.
이렇듯 급격히 변화되는 현사태를 두고 그들은 진지한 토론을 하게되였던것이다. 이제
지금 적들의 동향으로 보아 유격대가 어디에 있다는것을 알기만 하면 대비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의 무력을 투하해서 유격대를 당장에 무찔러버리려고 할것이며 단 한두개의 마을이라도 유격대의 활동근거지로 되고있다는것을 알기만 하면 서까래 하나 남지 않게 불태워버릴것은 명백한것이였다. 어떤 동무들은 이미 이런것을 다 예견하고 유격대가 창건된것이기때문에 응당 현재 준비된 무장력량을 총집결하여 전면적인 대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다른 동무들은 그런것은 심히 무모한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반박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이런 정황에서 《토벌》을 물리치고 인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반일인민유격대를 장성강화하여 혁명의 종국적승리의 길을 열어놓을 방도는 과연 어떤것이겠는가?
《인류의 최초의 혁명적진출은 압제를 참는다는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깨달았을 때에 비로소 있게 되였습니다.》하고 얼굴이 길고 근시안경을 낀 진일만이 주먹을 휘두르며 말했다.
《동무들, 생각해보시오. 조선의 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시체를 안고 불속으로 끌려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원쑤를 갚아달라고 목터지게 웨쳤습니다. 대체 이것을 참는다면 무엇을 못 참겠습니까? 우리가 계속 참고 신중해있을바에야 무엇때문에 총을 잡았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사태를 신중하게 보는것도 중요하지만 혁명적으로 보는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것입니다. 리광동무, 동무는 왜 말이 없소? 말 좀 해보란 말이요.》
리광은 얼굴에 피가 번져 웨쳐대는 진일만을 침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있다. 그의 입에서는 당장 그 어떤 분노가 폭발할것 같았지만 아직은 내뿜기 직전의 화산마냥 아무런 기척없이 랭랭한 표정을 지키고있다. 두툼한 그의 입술은 종시 벌어지지 않았다.
《가만, 내 한마디 이야기합시다.》
박흥덕이가 주어다놓은 뚱딴지재털이를 끌어안다싶이하고 앉아 연방 담배를 빨아대던 박기남이가 방안에서 상반신을 토방쪽으로 내밀며 약간 느린 어조로 말했다.
《미리 량해를 구합니다만 난 워낙 리론적준비가 부족한데다가 몇해동안 감옥에 갇혀있다나니 대단히 암둔해졌습니다. 혹 오유나 탈선이 있더라도 그쯤 량해해주십시오. 한데 이제 진일만동무 주장을 듣고보니 한흥권동무가 마치 신중성을 주장한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나는 전혀 그런것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쉽게 견해의 일치를 볼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되는것입니다. 혁명은 언제나 완성된 기성품으로 공중에서 떨어지는것은 결코 아니라고 레닌은 지적한바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완전히 이 대결의 전망을 다 내다본 다음에야 행동한다는것은 론리에 불과했지 실제상 있을수 없는 일이 아닐가요? 또 대결의 전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것이겠습니까. 앞서 말씀한 동무들의 견해를 추려보면 결국 무장력량에 대한 대비라고 보아집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단과 군단에 대한 산술적대비로 추리를 끌어가는 방법이 과연 옳겠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정의적성격과 립장에 있는것이지 침략군대에 대한 수효에 있는것이 아니라고 보는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갓 태여난 유격대들을 총집결하여 적과 정면대결을 하자는것과 같은 그런 식의 주장은 반대요.》
한흥권이가 둥그런 얼굴을 쳐들면서 불쑥 내쏘았다. 방금 그를 변명해나섰던 박기남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러자 실한 몸집에 로동복을 팽팽히 입은 송덕형이가 천천히 일어났다. 광대뼈가 두드러지고 이마가 좁은 그의 큰 눈이 정열적으로 빛을 뿌리였다.
《한흥권동무가 반대하는것은 정면대결자체에 있는것이 아니라 나와 진일만동무가 주장하는 일제 〈토벌〉에 대한 적극적반공격을 반대한것입니다. 즉 우리의 민족해방투쟁에 있어서 오늘의 력사적단계를 완전히 새롭게, 종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기로 보는 우리의 견해를 반대하는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론거는 어데 있으며 한흥권동무의 론거는 어데 있는가?
《내 주장의 근거는 내가 말하겠소.》
한흥권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일단 송덕형의 말허리를 꺾어놓았을뿐 서뿔리 입을 벌리려 하지 않았다.
한흥권이 잠자코 있는 바람에 리광도 그를 피뜩 돌아보았다. 두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두사람 다 서로 괴로와하고있다는것을 그 눈길에서 력력히 느낄수 있었다. 리광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한흥권은 평소의 그 침착한 어조로 천천히 입을 벌렸다.
《유격대는 일제와 무장투쟁을 하기 위해 태여났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총으로써 일본제국주의를 쓸어눕히고야말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대체 무엇에 근거해서 혁명의 앞길을 규정해야 하오?》
진일만이가 또다시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여 웨쳤다.
《한흥권동무, 우리모두는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고 계급적원쑤를 미워하는 나머지 혁명에 참가했소. 인민의 불행과 참상이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혁명의 열정은 어데서 오는거요? 죠르지 쌍드가 말한바와 같이 싸움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냐, 피어린 투쟁이냐, 그렇지 않으면 멸망이냐 이와 같이 문제는 무자비하게 제기될뿐이요.》
《어쨌든 나는 동무의 의견에 찬성할수 없소.》
한흥권이가 한마디 툭 던지고 앉자 뜻밖에 침묵이 찾아왔다. 격렬하던 론쟁은 팽팽히 켕겼던 활줄이 끊어지듯 툭 끊어지고 그늘진 뒤울안 풀밭에서 찌르레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안에서는 담배연기가 타래치듯 꾸역꾸역 새여나왔다.
차광수가 천천히 일어나서 마당안을 거닐었다. 때아닌 때에 찾아온 이 정적에 뚜벅뚜벅 울리는 그의 무거운 발자국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에 이 사태가 얼마나 중대한것인가를 다시한번 강조해주는듯 하였다. 웬만한 문제라면 차광수는 벌써 자기 의견을 내놓았을것이다.
《나는 진동무처럼 명제도 리론도 내놓을것이 없지만 한가지만은 내놓을것이 있소, 자…》
동무들의 눈길이 얼굴을 붉히며 웨치고있는 최진동에게로 쏠리였다. 최진동은 옆구리를 더듬더니 권총갑을 덜컹 열어젖히고 번들거리는 권총을 꺼내였다.
《이것이 뭣이요? 동무들!》
그는 벌써부터 숨이 차서 헐떡거리였다.
《말을 해보시오. 이것이 무엇이요?》
잘 닦아진 새까만 강철총구가 눈부시게 해빛을 반사하였다.
최진동은 권총을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이 사람, 저 사람 앞으로 내밀었다.
《그래 대답해보오. 이게 총이 아닌가? 이 총은 무엇을 하자는건가? 응, 이 사람아, 왜놈들이 우리 사람들을 쏘아죽이고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이는데 왜 나는 이 총을 쏠수 없단 말인가? 또 자네는 왜 총을 쏠수 없단 말인가? 그게 대체 무슨 놈의 리론인가?》
리광은 벌떡 일어났다. 움켜쥔 주먹이 후들후들 떨렸다. 가느다란 피발이 건너간 유순한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이 핑 어리더니 그속에서 분노의 빛이 이글거리며 내뻗쳤다.
《최동무!》
리광은 목을 비틀리우는 사람처럼 괴롭게 울부짖었다.
《우리가 이 혁명을, 이 혁명을 어떻게 키워왔는가를 생각해보게…》
《뭐요? 에끼, 못난이같은…》
최진동은 권총을 든 손을 움켜쥐고 삑 돌아섰다.
《최진동동무!》
차광수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마당 한복판에 우뚝 멈추어선 차광수의 눈도 번쩍거렸다. 일상 조용하고 침착하고 넓은 이마에 리성의 빛을 언제나 잃지 않고있던 그가 이렇게 흥분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였다.
《내 한마디 하겠는데 이 문제는 우리 인민의 피어린 투쟁속에서 태여난 반일인민유격대의 장차 운명과 직접 관련되여있습니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진일만동무는 고전을 끌어다가 야유조로 반박했는데 앞으로 이따위 목적에 고전을 인용하는 버릇은 없애야겠습니다. 그리고 설사 고전에서 뭐라고 했든 우리는 우리 혁명의 운명과 관련된 문제인것만큼 신중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그는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계속하였다.
《내 리광동무의 당부도 있고 해서 여태 말 안했지만 큰골〈토벌〉에서 아들의 시체를 안고 불더미속으로 끌려들어간것은 바로 다름아닌 리광동무의 어머니였습니다. 》
차광수의 말은 폭탄선언이였다. 일시에 분위기가 뒤집히고말았다. 리광은 원망스럽게 차광수를 한번 치떠보더니 다시 장작모태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모습은 그대로 복수전에로 나가자는 강렬한 웨침같았다. 그러나 그자신은 피멍이 들었을 가슴을 움켜안고 완강하게 침묵을 지키고있는것이다.
진일만이가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조용히 리광의 두손을 더듬어서 꼭 감싸쥐였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한 얼굴을 들어 담을 향해 돌아선 차광수를 바라보았다.
《참모장동무, 내가 경솔하게 발언했습니다. 고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총반격에로 나서야 한다는 길외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리하여 거의 온종일 벌어졌던 론쟁은 이렇다할 결말이 없이 중단되고말았다. 한사람, 두사람 담배를 붙여물고 감자밭머리로 바람을 쏘이러 나갔다.
1932년.
닻을 거두고 항구를 나서자마자 사나운 폭풍우속에 휩싸인 청소한 반일인민유격대가 뚫고나갈 진로는 과연 어디에 있는것인가?
침묵한채 마당을 거닐고있는 동무들의 뒤모습을 바라보고 선 차광수의 가슴은 저으기 무겁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