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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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가 급하고 어성이 높은 서국보는 손짓을 해가며 《토벌》당하던 광경을 방불하게 설명하였다. 때로는 울분에 차서 커다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잔디판을 북북 긁으며 왜놈들에 대해 이를 부득부득 갈기도 하였다. 그는 자기도 안해와 아이 둘을 잃었다고 하였다.
《눈물은 내려가고 숟갈은 올라간다는 옛말 옳은줄을 인제야 알았시다. 어이구, 목숨이 모질지요.》
땅을 치는 서국보를 이윽히 바라보시던
《고정하십시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 정신을 똑똑히 가지구 살아야 합니다. 제 목숨 아까와서가 아니지요. 산 사람은 죽은 사람들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살아야 하며 그리고…》
《저 의지가지없이 된 어린것들의 장래를 위하여 어떤 곤난이 있더라도 살아야 하며 싸워야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며칠전에 마을로 돌아온 리광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리광동무가 여기 일행에 같이 있습니까?》
서국보는
《리광동지는 마을사람들을 데리구 마반산줄기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구 국보아버님과 저한테 아이들과 먼길을 갈수 없는 늙은이들을 데리구 가까운 화련땅에 넘어가 조직을 찾아 보호를 받으라고 길을 대주었습니다. 자리를 잡으면 다시 기별을 보내 데려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그 리광동무네 집에서들은 어떻게 되였습니까? 어머니와 어린 동생이 있을텐데…》
《철남이는 왜놈들이 쏘아죽이구, 철남이 엄마는 불에 태워죽였습니다!》
바지괴춤을 쥔채 웨쳐대는 첫째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드르르 굴러떨어졌다.
《그게 정말이냐?》
《정말이지요. 모든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의 리성을 가지고는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현실이지요.》
불쑥 격한 어성으로 이렇게 끼여든것은 언덕에 앉아서 계집애의 머리를 땋아주던 중년사나이였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백주에 무고한 사람을 닥치는대로 학살했습니다. 동서고금에 이런 이야기는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습니다. 아! 분통이 터집니다. 저는 큰골사람이 아니고 돈화로 가던도중 객주집에 들었던 길손입니다. 저 계집애가 제 딸애입니다. 난 저애를 데리고 객주집에 들어있었습니다. 총소리가 나길래 밖으로 뛰여나갔지요. 순식간에 마을은 피에 물들었습니다. 시체가 길가와 골목에 널리고 불더미에서 아이들이 타죽었습니다. 아! 조선은 아주 이렇게 숨지고마는것인가요? 예?》
그 사람은 부르쥔 두주먹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역시 여태 목격한 참상을 누구에게 하소할데가 없어 울분을 눌러오던터이였다. 그는 상대편이 누구이든 관계없었다. 조선사람으로서 응당한 동정을 불러일으킬 그럴 대상이면 며칠을 두고라도 이렇게 통탄하고 울고싶었다.
혼자 참아내기에는 너무나 벅찬 설음이며 분노였다. 그는 저도 놀랄 정도로 크게 흥분된 목소리를 내였다.
《늙은이들, 아낙네들이 불에 타면서 무어라고 웨쳤는지 아십니까? 원쑤를 갚아달라던 그 애절한 웨침소리가 아직도 저의 귀에 쟁쟁히 울립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잔인할수 있습니까? 설사 그것이 제국주의자들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은 너무 격해서 가슴을 그러잡고 꺽꺽 기침을 하였다.
때와 장소가 이렇지 않았던들
마침 노랑저고리를 입은 열살되나마나한 계집애가 쟁개비와 밥사발을 들고 울분을 터뜨리던 그 사람쪽으로 걸어왔다.
《숙이야, 다 가셨느냐?》
《네!》
계집애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사발을 들어보이더니 보따리에 찔러넣는다.
《아버지, 빨리 가!》
《오냐, 가자.》
그는 또 대통에 담배를 붙여물고 보따리의 멜빵을 손질하면서 해짐작을 해보는것이였다.
강변을 다 돌아보고나신
불이 달렸던 팔소매를 흔들며 포동포동한 손으로 내밀던 민들레꽃, 한짝만 신고있던 계집애의 고무신, 불에 그슬린 어린애의 머리, 그 애들은 그래도 방글방글 웃고있었다. 너무나 천진한 그 웃음은 제국주의를 치라는 인류의 피맺힌 부르짖음이 아닌가.
철남이를 안고 불속에 끌려들어갔다는 어머니의 그 부르짖음 역시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국주의와의 결사전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피타는 절규가 아닌가. 현대에 와서 제국주의자들에게 강점당한 나라는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악착한 원쑤에게 이렇게도 참혹하게 짓밟힌 실례를 다시 찾아보기는 어려울것이다. 일제의 살인만행에 의하여 아버님을 잃으시고 두 삼촌이 원쑤의 철창속에 갇혀있으며 놈들의 야수적인 탄압으로 이루 말할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겪으신
그러나 아무리 모진 시련도, 아픈 희생도 꿋꿋이 맞받아 싸워오신
《우리를 살려주어요. 우리는 불쌍한 조선아이들이예요.》
그것은 원쑤를 치고 조국을 구원해달라는 인민의 애절한 호소이다. 또한 그것은 제국주의를 영영 지구우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는 력사의 준엄한 고발이다.
질퍽히 고인 물우를 마구 밟으며 걸으시였다. 발이 젖어오르는것도 느끼지 못하시였다. 줄곧 앞을 쏘아보시던
전령병에게서 련락을 받은 전광식이 달려왔다
《전동무, 우리 인민은 지금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있습니다. 조국은 피바다에 잠겼습니다.》
처절한 감정이 그대로 뿜겨나오는듯 한
《우리 인민은 지금 피흘리며 쓰러지고있습니다. 그러나 두고보시오. 전동무, 이 땅에서 무엇이 일어날것인가? 력사는 무엇을 이제 보게 될것인가? 우리 인민은 일어날것입니다. 제국주의침략자들을 때려엎고 반드시 자유와 해방을 찾을것입니다.》
《우리를 그 누구도 정복해내지 못합니다. 압박받는 인민이 피로 물들인 자기 조국땅을 디디고 일어설 때 그 어떤 침략자들도 배겨내지 못합니다.》
《전동무, 소사하에 도착하는것이 며칠 늦어지더라도 우리는 예정을 바꾸어야 될것 같습니다.》
《예.…》
《저 사람들을 가까운 가재골에 데려다줍시다. 리광동무가 가라고 했다는 거기에 가려면 아직 이틀길을 걸어야 하겠는데 저 아이들이 어떻게 이틀길을 걷겠습니까. 어린것들을 어서 따뜻한 구들에 재우고 옷과 신발을 구해주어야지 이대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말씀에는 다 표현하시지 않는
《자 얘들아, 아저씨하구 함께 가자. 가서 밥도 먹고 옷도 갈아입어야지, 응?》
아이들은 좋아라고
전광식은 뜨거워지는 눈굽으로 한참동안 그 정경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뒤따라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