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5 회)
이야기를 마감하며…
(4)
야조브와 그의 안해가 오찬회장소에 들어섰을 때였다.
《수술결과가 좋다니 나도 기쁩니다.》
오찬회에는 조명록, 현진국을 비롯한
야조브는 반색을 하며
《저 녀병사가 바로 제가 감나무중대에 찾아갔던 날 미국놈들은 제 생명부터 먼저 생각하는 비겁쟁이, 정신적거지들이기때문에 일당백은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조선인민군은 정신적갑부들이라는것입니다.》
《정신적거지와 정신적갑부라? 허허허… 정말 그럴듯한 비유입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나는 저런 병사들을 혁명의 가장 주되는 힘으로 보고 전위에 세웠던것입니다. 내가 가장 믿는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바로 저런 병사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조선의 힘이기때문입니다.》
따뜻한 해빛이 흘러드는 창밖에서는 무성한 나무잎들이 가볍게 설레이고있었다. 새들의 우짖음소리가 방안에까지 즐겁게 들려왔다.
《
그것은 사랑이라고, 그것은 바로 당신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조선을 떠나기에 앞서 저의 안해와 함께 노래 한곡 불러드리고싶습니다.》
야조브는 예브게니예브나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그리고는
숙소의 밤은 깊어갔다. 푸르른 솔숲 어디선가 접동새의 노래소리가 자장가마냥 들려온다.
열정에 넘친 야조브의 사색도 밤과 함께 끝없이 깊어갔다.
래일 그는 안해와 함께 정이 들대로 든 사랑하는 조선땅을 떠나야 한다. 이미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본 그는 어딘가 미흡하게 느껴져서 다시 사색에 잠겼다. 그러자 조선에 와서 알게 된 인상깊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으로 줄지어 흐른다.
현진국, 김하규, 대덕산부대의 장대식 그리고 김광훈과 김연금, 박창걸과 그의 안해 김순희, 송위용, 리성병사들, 감나무중대의 이름 모르는 녀병사, 군수공장의 한 녀성…
사색의 세찬 파도가 일어난다. 로씨야의 유명한 작가 체호브는 글, 이는 곧 함축하는 기술이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짧은 글속에 많은 뜻을 담을수 있겠는가. 깊은 명상속에 잠겼던 야조브는 책상에 마주앉아 사색의 파도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50여년간 군복을 입고 살아왔다.
군사복무는 내 생활의 전부라고도 말할수 있다. 파시즘을 반대하는 전세계민주주의력량의 해방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군복을 입고 70고령이 될 때까지 반세기동안 군사복무를 한 나는 전쟁에 대하여, 뛰여난 세계정치가들과
현세기의
나는 정치가 군사적대결의 양상까지 좌우지하는 오늘의 시대에는 무전이승의
현대로부터 근대와 중세, 고대를 거슬러보아도 동방과 서방을 둘러보아도 불과 불,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전장을 떠난
만일 력사가 나에게 현시대의 가장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이 글에서 조선의
류례없는 식량난, 전력난, 연료난, 동력난이 최절정을 이루었던 그 시기 나는 조선인민들과 함께 있었다.
세계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민족의 대국상후 미제는 조선이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자 그 명이 짧아서 석달, 길어서 삼년안팎에 끝장날것으로 보았다.
바로 그 어려운 나날에
첫째; 조선의 오늘의 기계공업경제를 상징하는 CNC 즉 현대화의 거세찬 박동이 뛰게 하신것.
둘째; 1996년 3월 18일 단 한번의 대덕산시찰로 일당백의 정신력을 군대를 비롯한 온 나라에 다시한번 심어주시여 미제의 《5월위기설》을 타파하신것.
셋째; 1996년 6월 10일 세계굴지의 안변청년발전소 제1계단 조기조업을 끝내고 혁명적군인정신을 창조하시여 온 나라를 일떠세우신것.
넷째; 업적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이 시기에
그리하여 일당백의 사상을 군사뿐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나라의 모든 분야에 구현하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