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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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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실은 매우 조용했다.

삣 쪼르릉! 삣 쪼르릉! 창밖에서 새들의 지저귐소리가 정답게 들려왔다. 세계적으로 명성높은 이 병원에서 종합진단을 받고난 김하규는 헤여나오기 힘든 고민에 빠져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눈가에는 진한 괴로움이 어려있었다.

자기 생명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사실때문이 아니였다. 아니, 그때문이였다. 이제는 장군님을 받들 날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안타까움때문이였다. 환자가 이 나라 말의 방언까지도 능통하고있는줄을 전혀 알수 없었던 병원의사들과 간호원들은 김하규앞에서 별로 주의할것도 없다는듯이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대화를 통하여 예견했던대로 자기가 현대의학이 도달한 높이로써는 도저히 고칠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것과 이 병을 고치라고 당에서 막대한 액수의 자금을 돌려주었다는것을 안 그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말았다. 국방공업에 돌릴 자금이 부족하여,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인민들이 가슴에 걸려 그리도 마음을 쓰시던 장군님의 모습이 가슴뜨겁게 안겨왔기때문이였다. 아! 아직은 나라의 안전을 위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한 이때 내가 뭐라고 그리도 많은 자금을 돌려주신단 말인가?

그는 결심했다. 하루라도 빨리 장군님곁으로 돌아가자. 단호하게 일어나서 입원실의 비상호출단추를 눌렀다. 간호원이 나타나자 박사인 담당의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통역도 없이 자기 나라 말을 류창하게 번지는 김하규앞에서 담당의사는 덴겁을 했다.

《오래 살고싶은 생각이 없습니까?》

박사는 어떻게든 그를 눌러앉힐 잡도리로 나왔다. 김하규는 안경알속에서 번뜩이는 박사의 심리를 순간에 꿰뚫어보았다.

《물론 오래 살고싶습니다. 나도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하루라도 빨리 조국으로 가서 일을 해야 합니다.》

박사는 알수 없다는듯이 그를 한참 쳐다보았다.

《치료를 거부하고 돌아가야 할 리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야 생명이지요.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는것이 없습니다. 죽으면 다 아닙니까. 억만재부가 무용지물로 되지요.》

김하규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조국입니다. 지금 우리 조국은 미제의 경제봉쇄와 제재로 하여 매우 힘들게 살고있습니다. 내가 오래 살수 없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라의 귀중한 자금을 그렇게 망탕 써서야 되겠습니까? 그건 죄악입니다. 한푼의 돈이라도 나라를 위한데 돌리고싶은것이 내 심정입니다.》

박사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놀랍습니다. 한 생명을 위해 그처럼 많은 자금을 돌려주셨다는 령도자의 인간풍모가 놀랍기 그지없고 제 한목숨보다 조국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는 당신 역시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조국에 돌아온 그는 출근하자바람으로 김성민을 찾아갔다.

《난 내 생명의 나머지를 침대우에서 보낼수 없다고 생각하오. 최후의 돌격전을 각오한 나의 결심을 지지해주시오.》

김성민은 한참 망설이다가 이런 대답을 주었다.

《그럼 건강에 맞게 일하십시오. 그러되 매일 치료는 어김없이 받아야 합니다.》

《고맙소, 고맙소.》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 김하규는 최전연에 있는 아들 다섯형제와 며느리들이 한방 가득히 모여앉아있는것을 보았다.

두눈을 엄하게 부릅떴다.

《정신들이 있느냐? 지휘관들이 자기 위치를 비우고 무엇때문에 우르르 모여들었느냐? 명절날도 아닌데…》

침착한 맏이가 여느때와 다른 감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그런것이 아니예요. 장군님께서 우리모두가 집에 와보도록 하라는 말씀이 계셨답니다.》

김하규의 우묵한 눈언저리가 가볍게 떨렸다. 방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는 저녁식사가 끝나자 아들, 며느리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모두의 눈길이 김하규의 얼굴로 집중되였다.

표정은 여느때없이 심각했다.

《얘들아, 이제 와서 뭘 숨기겠니. 난 얼마 살지 못한다.》

김하규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가 짙게 떠돌았다.

《그래서 말이다. 이미전부터 생각은 하면서도 결심을 못했던 문제를 너희들이 다 모인 기회에 토론해보자는거다. 그것은 우리 가정의 마음을 담아 장군님께 편지를 올리자는것이다.》

《좋습니다. 아버지, 어서 장군님께 올리는 편지를 쓰자요.》

모두가 적극 지지해나섰다. …


며칠후였다.

한번… 또 한번… 김정일동지께서는 바쁜 문서들을 한쪽에 밀어놓으시고 김하규가 올린 편지를 읽고계시였다.

《장군님! 외람된 생각인줄 알면서도 장군님께 걱정을 드릴것만 같아 편지로 보고드립니다.

받아안은 사랑, 넘쳐나는 신임에 다 보답하기에는 남은 생이 너무 짧아 모대기고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각에 아들, 며느리들이 다 집에 온것을 본 저는 이 기회에 일편단심 장군님만을 받들 마음을 담아 편지를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

《이걸 읽어보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딘가 심중한 표정으로 앞에 앉아있는 조명록에게 편지를 내미시였다. 글줄을 타고나가는 조명록의 낯색이 점점 긴장해졌다.

김정일동지의 음성이 그의 귀가에 울렸다.

《난 김하규동무의 편지를 보면서 그가 당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도 많이 생각했다는것을 느꼈습니다. 김하규동무는 그 누구보다도 량심이 깨끗한 인간입니다.》

젖은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시고 김하규를 찾으시였다.


그이의 부르심을 받은 김하규가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 한쪽옆에 있는 쏘파에 김하규와 다정히 앉으시여 그의 치료상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동무의 편지를 받고 생각이 깊었댔소.》

김하규는 고개를 숙였다.

《장군님! 많은 생각끝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불시에 목이 탁 갈리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아오. 내가 왜 동무의 그 심정을 모르겠소. 자신만이 아니라 온 가정까지도 조성된 난국을 놓고 걱정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가지 일이라도 더 해서 내 어깨에 실린 짐을 덜어주려는 동무의 그 진심을 더 깊이 알았소.》

김하규는 자신을 더 억제하지 못하고 김정일동지의 품에 와락 안겼다.

《장군님!》

그이께서는 뜨거운것을 삼키는 김하규의 등을 쓰다듬으시며 갈린 음성으로 안타깝게 뇌이시였다.

《못된 병에는 왜 걸려가지고 내 속을 이리도 태우오?》

진정 안타까우시여 더 다른 말씀을 못하시였다.

어떻게든 그를 살리고싶으시여 불치의 병에 걸린 그를 외국병원에까지 보냈는데 치료를 거부하고 돌아오다니. …

누구에게나 생에 대한 애착은 다 있다. 자기가 살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것을 알면서도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것이 곧 인간이다. 그러나 김하규는 죽음을 앞에 놓고 얼마나 굳센가. 공로로 보아도 그 누구에게도 짝지지 않은 그가… 진정 그 대가를 모르는 참인간이다.

《동문 정말 너무하오. 받으라는 치료는 받지 않고 돌아오긴 왜 돌아오는가 말이요.》

《장군님, 이 세상에 저만큼…》

《그만하오. 내 속을 더이상 태우지 말고 치료를 계속 받소. 내 이미 병원에 과업을 주었소.》

김정일동지께서 그리도 엄하게 요구하셨지만 김하규는 다음날부터 《류성-2》호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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