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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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국대장과 야조브, 통역이 탄 승용차는 대덕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대덕산은 근엄한 표정속에 조용히 솟아있었다. 야조브가 말했다.

《대장동지, 난 얼마전에 김일성동지께서 한 병사와 함께 찍으신 사진을 보게 되였습니다. 그 병사가 자라 대덕산부대에서 련대장을 한다니 이번 기회에 꼭 만나보았으면 합니다. 그의 안해도 말입니다. 석장의 사진에 깃든 그 사연은 실로 감동적입니다.》

현진국은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어느덧 승용차는 대덕산가까이에 이르렀다.

《저기 바라보이는것이 대덕산입니다. 그리고 저 앞쪽은 적들이 차지하고있는 고지입니다.》

현진국대장이 적 《헌병》초소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야조브는 머리를 돌렸다. 적아간의 공격과 방어에서 대덕산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탱점이라는것을 첫눈에 판단했다. 이어서 돌연 긴장해졌다. 적들이 차지하고있는 고지에서 자기가 타고가는 차를 향해 금방이라도 총탄이 날아올것만 같은 위구심이 들었던것이다.

《이리도 위험한 구간으로 김정일동지께서 차를 타고가셨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병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여기보다 더 위험한 곳에도 다 찾아가시군 합니다.》

현진국이 351고지에 김정일동지를 모시고 갔던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야조브는 더우기 놀랐다.

《수령님의 유훈관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사선의 길도 헤쳐나가시는 그이의 걸음을 우린… 어쩌지 못합니다.》

《실로 충격적입니다.》

승용차는 대덕산으로 올라가는 도로에 들어섰다. 굽이길이 연방 나타날 때마다 야조브는 차손잡이를 으스러지게 틀어잡군 했다. 등골이 서늘해났던것이다. 너무도 긴장하다나니 30여굽이를 돌아 《일당백》의 구호바위앞에 승용차가 이르렀을 때는 이마며 얼굴이 온통 땀에 푹 젖어있었다.

차에서 내린 야조브는 한 병사가 《일당백》구호바위를 깨끗한 수건으로 닦고있는것을 보았다. 당돌하게 생긴 병사는 야조브와 현진국을 보자 차렷자세를 취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리성이였다. 휴식일이지만 스스로 이렇게 구호바위로 나와 정성사업을 하다가 손님들과 맞다들린것이다.

야조브는 대덕산에 도착한 첫 순간에 리성이가 하는 일을 보며 형언하기 어려운 사색속에 잠겨들었다.

현진국 역시 병사의 이름을 알게 되자 저으기 기분이 좋아졌다. 증강한 보병련대의 전술연습때 높은 희생정신을 발휘한 병사, 현진국은 야조브에게 리성이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말해주었다.

《원수동지, 이 병사가 바로 동지들을 위해 높은 희생성을 발휘하고 우리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병사입니다. 산고지로 오르다 바위돌이 굴러내리자 그걸 몸으로 막아 동지들을 위험에서 구원했습니다.》

《아! 역시 대덕산부대 병사답습니다. 지금 하고있는 일은 또 얼마나 훌륭합니까?》

야조브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회주의의 붕괴후 쓰딸린의 동상을 내리우다못해 시신까지 불태우고 외투에 달린 금단추를 바꾸어다는 추태까지 벌어진 일을 생각하자 눈이 감겼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수령영생위업의 세계적인 본보기를 창조한것은 물론 수령의 령도업적을 빛내이는 일에 저 병사처럼 모두가 스스로 떨쳐나서고있으니 얼마나 돋보이는 나라인가.

생각에 잠겨있는 야조브곁으로 장대식이 다가왔다.

《이게 얼마만입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야조브는 반갑게 웃으면서 장대식을 부둥켜안았다.

군사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이전 쏘련에 갔을 때 장대식은 원동군관구를 방문한적이 있었다. 이날 야조브는 장대식을 비롯한 군사대표단을 위해 연회를 차렸다. 그 자리에는 야조브의 안해도 있었다. 나라마다 오가는 사람은 많아도 가정적인 분위기속에서 손님을 맞는 례는 극히 드물다. 그것은 곧 그 나라, 그 민족에 대한 최대의 존중으로 되기때문이다.

야조브가 조선군사대표단을 귀빈으로 존대한것은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야조브는 로씨야민요에 이어 안해와 함께 이런 노래를 불렀다.


어깨에 푸른 그 수건

흘러내리던 밤에

우리의 사랑 잊지를 말자

그대는 말하였지

우리 서로 헤여지던 그밤이여


사랑, 사랑의 감정은 늙지 않는 법이다. 그 감정이 늙었다고 인정되면 그땐 벌써 생의 마감을 의미한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삶의 희열에 넘쳐있던 야조브였다. 그 이후에 겪은 파란많은 인생곡절을 말해주듯 야조브의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로 변했다.

야조브는 장대식의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했다.

《그사이에 퍼그나 더 젊어진것 같습니다. 그러나 난 보다싶이 이렇게 늙었습니다.》

이들은 감회깊은 추억에 젖어 구호바위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야조브는 바위에 새겨진 세글자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장대식으로부터 이 구호가 나오게 된 1960년대 조선의 시대적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자못 표정이 심각해졌다. 조선에서는 총대를 강화하기 위해 일찌기 《일당백》구호를 들었다. 그러나 흐루쑈브는 검으로 보습을 만들어야 한다고 떠벌이였다. 불쾌한 조각이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흐루쑈브가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았던 시기 쏘련에서는 《전쟁이 없고 군대와 무기가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천재적인 작품》으로 떠받들어올린 조각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검을 다시 벼려 보습을 만들자》였다. 야조브는 이 조각을 찍은 사진을 어느한 화보에서 보았다. 그것을 볼 때 의심은 많았어도 혹시 군사력에 돌렸던 힘을 경제에 집중하는것이 쏘련을 잘살게 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하는 기대도 가졌던 그였다. 그것이 완전한 오판이였다는것을 말없이 일깨워주는 저 구호바위… 총대의 힘을 강하게 키워야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 생존권도 지킬수 있다는것을 말없이 일깨워주는 저 구호바위야말로 진짜 천재적인 걸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하나의 의문이 문득 솟구쳐오른다.

김정일동지께서 두번에 걸쳐 대덕산을 찾으신 의도를 알고싶습니다.》

현진국이 인상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이의 의도는 여러가지여도 한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유전학으로 해결할수 없는것이 사람의 혁명성이라고 가르쳐주셨답니다. 사상은 저절로 유전되지 않기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계정치계를 둘러보면 후배가 선배를 비방중상하면서 자기의 령도적권위를 세우기 위해 반기를 들고 못된짓을 한 례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령도업적의 하나인 〈일당백〉구호를 혁명의 대를 이은 새 세대 군인들이 항구적으로 들고나가도록 하기 위해 이 대덕산을 또다시 찾으시였습니다.》

야조브는 머리를 끄덕였다. 현지지도사적비앞에 이르자 장대식이 거기에 씌여진 내용을 알기 쉽게 해설하여주었다.

그 내용을 리해할수록 생각은 더더욱 깊어져갔다. 조선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연구할 때 알게 된 사실들이 그의 느낌을 받쳐주며 얼핏얼핏 머리를 스친다. 조선에서는 정전협정후 전쟁이 여러번 일어날번 하였다. 그때마다 미제는 먼저 큰소리를 쳐가며 세계를 부산스럽게 들볶았지만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때 하나만을 두고보자. 조선동해인 원산앞바다에 항공모함을 끌어다놓고 비행기를 띄운다. 무력을 움직인다 하며 《푸에블로》호와 그 선원들을 내놓고 사죄하지 않으면 당장 보복하겠다고 제편에서 으름장을 놓았다. 그랬어도 조선이 꿈쩍하지 않자 이전 쏘련의 지도부에 《푸에블로》호와 그 선원들을 놓아주도록 조선에 압력을 가해달라고 청탁했다.

그때 초대국의 존엄도 위신도 다 잃고 그 요구를 덥석 받아문 우리 지도부가 조선주재 쏘련대사를 통하여 그것을 실현해보려던 일이 어떻게 끝났던가. 이와 비슷한 양상인 까리브해위기가 조성되였을 때는 또 어떠했는가. 당시 미국이 쏘련을 견제할 목적으로 쏘련국경가까이에 있는 뛰르끼예에 핵미싸일을 먼저 배비한 조건에서 그에 대응하여 중거리미싸일을 꾸바에 전개한만큼 흐루쑈브의 립장과 의지만 강경했어도 능히 국제사회계의 지지와 리해를 받을수도 있었다. 승패는 흐루쑈브 대 케네디와의 대결에서 누가 더 의지가 강한가 하는데 달려있었다. 이 대결은 곧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와의 신념과 의지의 대결이기도 했다. 하늘도 웃을 일이 곧 벌어졌다.

《조선에서 〈일당백〉구호가 나올 당시 나는 꾸바에 여러해동안 가있으면서 그 나라의 혁명을 도와주었습니다.》

《꾸바에 가있던 때의 얘기를 들려주지 않겠습니까. 사탕수수와 함께 열대지방의 독특한 과일인 파이내풀과 바나나가 유명하다던데…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습니까?》

장대식은 어딘가 딱딱해진듯싶은 대화의 분위기에 약간의 기름을 발랐다.

《반미감정이 매우 강합니다.》

《당시 쏘련에 대한 꾸바사람들의 감정은 어떠했습니까?》

야조브는 그 시기의 직접적인 목격자이고 체험자이다나니 누구보다도 그때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알고있었다. 그때에는 얼굴이 뜨거워서 속에 묻어두고있었지만 오늘에 와서야 왜 숨기겠는가. 흐루쑈브의 배신행위에 분격한 피델 까스뜨로는 아까운 기름을 썩이면서 배로 미싸일을 실어갈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모스크바까지 미싸일을 쏘아주겠다고까지 했다. 도움을 받은 나라는 도움을 준 나라에 대한 고마운 감정을 품는것이 응당할것이다. 하지만 꾸바에서는 고마움이 얼음장으로 변해버렸다. 용감하게 들어왔다 비겁하게 물러갈바에야 오긴 왜 왔는가. 한마디로 이 립장이였다. 꾸바정부는 꾸바에 배비하였던 로케트부대들의 철수와 기간문제를 놓고 쏘미량국대표가 회담에서 토의한 내용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담이 있은 후 미군비행기는 꾸바땅에 있는 쏘련군의 배치지와 훈련지대를 하루에 2번씩 순회하였다. 쏘련군대에게서 기관포기술을 배우던 꾸바군인들이 자기 나라 령공에 침입한 미군비행기를 증오스럽게 쏘아보던 끝에 격추할 잡도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바빠맞은 야조브는 쏘미량국대표들이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알려주며 이를 제지시켰다. 꾸바군인들은 격분했다.

《누구와 합의했단 말입니까? 꾸바는 합의한게 없습니다.》

야조브는 할말이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야조브는 꾸바군사령부의 한 건물에 갔다가 벽에 걸려있는 사회주의나라들의 국기를 보고 속이 울컥했다. 맨우에 걸려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쏘련국기가 맨아래에 맥없이 드리워있었던것이다. 산설고 물설고 기후도 몸에 잘 맞지 않는 꾸바땅에 와서 땀을 흘리며 여러 부문의 군사기술을 애써 배워주는 쏘련을 이렇게 하대하다니… 야조브는 옆에 있는 꾸바군관에게 쏘련국기를 가리키며 불만스럽게 왜 이렇게 국기순서를 정했는가고 물었다. 야조브의 두눈은 번열로 번뜩였지만 꾸바군관은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자모순으로 내려하다나니 그렇게 되였습니다.》

자세히 뜯어보니 그런것도 아니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기발이 우에서 펄펄 날리고있으니 이걸 어떻게 리해하여야 하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제의 반꾸바침략책동을 세계면전에서 격렬히 단죄하도록 하시는 한편 꾸바인민들에게 물심량면으로 국제주의적원조를 주게 하시였다. 이 내막을 그때의 야조브는 알수 없었지만 오늘의 위치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순서였다. 령도자의 의지가 나약하니 나라가 아무리 커도 세계앞에 겁쟁이나라로 인정되고말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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