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회)
37
병사 송위용은 모포를 턱밑에까지 덮고 눈을 감았지만 정신은 또릿또릿해졌다. 충격적인 일이 있을 때마다 잠자리에 누워 어머니에게 《마음속의 편지》를 쓰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번지지 않는 일과였다.
…어머니! 잠들수 없는 밤입니다. 이야기의 순서를 어떻게 정할가요? 대덕산과 제명산을 련결하는 첫 행군훈련에 참가하던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그날 김광훈대대장동지가 나를 찾았습니다.
《위용동무! 오늘 대대는 대덕산으로 가게 되오.》
처음에는 언제인가 대덕산에 빨리 가보고싶다고 한 나의 제기를 받은 대대장동지가 드디여 그 소망을 풀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대덕산답사를 간다는겁니까?》 내가 이렇게 묻자 대대장은 인상좋은 얼굴에 빙긋이 웃음을 피웠습니다.
대덕산에 하루빨리 가보고싶었던 그 열망을 강렬히 표시한것으로 하여 대대장동지의 관심에는 들었지만 지휘관들은 신입병사들의 준비정도를 가늠해보고있었습니다.
무조건 가야 한다는 각오는 높았어도 정작 행동에 옮기자니 헐치 않았습니다.
어머니! 얼마전에 어떤 일이 있은줄 압니까?
《히야, 멋있구나!》 저저마다 감탄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치료받는 차라누만.》, 《허, 그러니 오늘은 우리 병사들이 대통령대우를 받게 되는 날이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간호원이 물었습니다.
《송위용동지가 누굽니까?》
나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위생복에 위생모를 쓴 간호원을 멍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함께 온 군관동지가 나의 등을 치며 어서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대답소리를 들은 간호원은 방긋이 웃으며 먼저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은 멀리에 있어도
어머니! 제 어찌
《분대장동지! 난 제명산을 넘을
《욕망만 가지고는 안되오. 제명산이 동물 쉽게 통과시키지 않는단 말이요.》
《두고보십시오. 끝까지 넘는걸…》
이렇게 되여 내 이름이 행군훈련명단에 들어가게 되였습니다. 행군준비는 참으로 깐깐히 해야 했습니다. 출발을 앞두고 대대가 운동장에 정렬했습니다. 지휘관동지들이 매 병사들의 행군준비상태를 매우 구체적으로 검열하였습니다. 중대장동진 내가 제일 안심치 않았는지 신발을 벗으라고 하더니 발싸개를 규정대로 감았는가 하는것을 검열해보았습니다.
행군훈련준비를 끝낸 중대는 대덕산밑에 이르렀습니다. 가슴이 막 울렁거렸습니다. 한굽이 또 한굽이… 잡관목이 우거진 속으로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구호바위앞에 이르니 방송원의 선동연설이 시작되였습니다.
《지휘관, 정치일군동지들! 병사동지들!
저 바위에 새겨진 구호를 무심히 보지 마십시오.
이 대덕산에 무심히 오르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군대가 생겨 수수천년, 우리들처럼 혁명의 주력군의 지위에 높이 올라서서 조국보위와 사회주의건설까지도 통채로 맡아안고 주도하는 그런 믿음을 받아안은 군대가 과연 있었습니까? 덕중의 덕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잊지 말라고 끝없이 속삭여주는 대덕산입니다.
그 은덕에 일당백의 싸움준비로 보답해야 한다는것을 소리없이 일깨워주는 구호바위입니다.》
선동연설속에 대기하고있던 군인가족들이 달려와 꽃목걸이를 안겨준다, 음식을 손에 쥐여준다 하며 제명산을 향해 출발하는 우리들을 고무해주었습니다. 뒤따라 예술선전대원들이 부르는 힘찬 군가가 울렸습니다.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
힘찬 고동구호소리, 화답소리, 장중한 군가, 군인가족녀인들의 따뜻한 부탁의 목소리… 드디여 통과훈련이 시작되였습니다.
지금까지 찾아볼수 없었던 훈련의 첫시작이였습니다.
어둠속에 솟아있는 험악한 제명산이 어디 덤벼들테면 덤벼들라! 하고 떡 버티고 막아섰습니다. 입을 앙다물고 바위산경사지에 다가붙었습니다. 한치한치…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또 새로운 봉우리가 나타나고 정황도 계속 생겼습니다. 갈수록 산세는 험하고 바위들은 미끄러웠으며 경사는 급해졌습니다. 게다가 소낙비까지 쫙쫙 쏟아져내렸습니다.
하지만 대덕산에서 받아안은 강렬한 정신력이 나로 하여금 신입병사라는 생각을 아예 잊게 했습니다.…
행군총화를 할 때 대대장동진 대오앞에서 말했습니다.
《동무들! 우리 대대는 전번에 비해 행군시간을 무려 40분이나 앞당겼소. 40분! 이건 대단히 큰 성과요.》
우리 대대뿐이 아니랍니다. 대덕산을 거쳐서 제명산을 통과한 모든 부대들의 행군속도가 전반적으로 앞당겨졌답니다.…
어느날 22시 정각, 포병부군단장과 작전부장이 60사단 포병련대 1대대지휘부에 도착했다.
작전부장이 전투가방에서 봉인된 봉투를 꺼내여 김광훈대대장에게 내밀었다. 봉인을 떼자 총참모부명령서가 나왔다. 이동전개명령이 떨어졌던것이다. 김광훈은 즉시에 참모장을 찾아 대대비상소집을 시켰다.
이제 새롭게 전개해야 할 포진지들이며 특히 대대병영위치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 사랑의 깊이를 아직 모르는 광훈이였다. 영원히 모를수도 있었다. 하긴 알고 받는 사랑보다 모르고 받는 사랑이 더 많은 그들이였다.
밤, 어둠…
포들이 은밀한 기동을 시작했다.
김광훈은 맨 앞차의 운전칸에 앉아갔다.
골안을 벗어난 차가 벼랑을 옆에 낀 도로에 들어서려는 참이였다.
전조등이 내비치는 먼발치에서 두 녀성군인이 도로에 굴러내린 큰돌을 굴리는 뒤모습이 내다보였다. 거리가 가까와지자 길을 가던중 벼랑에서 굴러내린 돌을 발견하고 치운다는것을 알아보았다.
갑자기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녀병사의 곁에서 함께 돌을 굴리는 녀성군관의 뒤모습이 신통히도 연금이로 보였던것이다. 하긴 이 세상에 엇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오죽이나 많은가, 하면서도 행여나 하여 끈덕진 눈길로 뒤모습을 파고드는데 마침 녀성군관이 자동차를 향해 돌아서며 손을 든다.
《차를 세우세요.》
전조등빛이 녀성군관의 얼굴을 비쳤다.
순간 광훈은 동공이 금시에 튀여나올듯이 놀랐다.
정말 연금이였던것이다. 류달리 반짝이는 눈동자, 바람에 흩날리는 탐스러운 머리칼, 목깃의
중대정치지도원으로 재임명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날아가서라도 축하해주고싶었던 광훈이였다. 그에게로 달려가는 광훈의 마음이 세찬 파도라면 그 기슭은 연금이였다. 하건만 그는
한데 그리도 보고싶던 연금이가 지금 가야 할 앞길을 가로막은 무거운 돌을 치워주고있지 않는가.
자동차를 세우게 한 광훈은 운전실에서 바람같이 뛰여내렸다.
《연금동무!》
《어쩌면!》
놀람, 반가움, 고마움이 한데 엉킨 두사람의 목소리…
타는듯한 두 시선이 말없이 부딪쳤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서로가 새롭게 재인식하게 되는 순간이였다.
《동무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소?》
《새땅을 일쿨 곳에 갔다오는 길이예요.》
이어 그들은 구령이라도 받은듯 무거운 돌에 함께 달라붙었다. 힘도 마음도 하나가 되여 그 돌을 벼랑아래로 단숨에 굴려버렸다. 이윽하여 그들은 어둠속에서 마주섰다.
《고맙소, 연금동무! 그리고 복대를 축하하오.》
《시간이 없겠지요?》
간절함에 불타는, 무엇인가 강렬히 호소하는듯한 연금이의 뜨거운 눈길이 광훈이의 심장속으로 전류처럼 흘러들었다.
《그렇소. 동무가 종합훈련장에 찾아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정말 시간이 없소. 어디까지 가야 하오?》
《다 왔으니 걱정마세요.》
《그럼 난… 가봐야겠소.》
《몸조심하세요.》
《잘 가오.》
경례!
답례!
자동차는 인차 출발했다.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는 밤이다. 김광훈의 축하를 받은 처녀의 눈가에서는 뜨거운것이 조용히 흘러내리고있었다.
얼마나 좋은 밤인가.
얼마나 행복한 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