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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회 )

 

첫 머리이야기(1)

 

1993년 3월 15일

그날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고사령부작전대앞에서 한밤을 보내고계시였다. 총참모장 최광과 작전국장을 비롯한 여러 장령들이 그이의 맞은편에 꼿꼿한 자세로 서있었다.

전쟁이 터질 시각이 박두해오고있었다. 우리의 있지도 않는 핵문제를 구실로 적들이 모험적으로 벌려놓은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이 절정단계에 이르렀던것이다. 지금 적들의 모든 공격무력이 군사분계선일대에 집결되여있다. 1, 000여대의 비행기, 250여척의 함선집단, 거기에 전술적핵무기를 실은 미해군기동분함대까지 증파되였다. 그 모든것들이 대형작전도에 갖가지 부호들과 수자들, 화살표들로 표시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변화된 적정을 료해하시며 작전국장에게 물으시였다.

《괌도는 어떻소?》

최고사령관동지!》 작전국장이 기다리고있은듯 재빨리 말씀드렸다. 《어제 다섯번째로 〈F117-A〉스텔스전투폭격기 3개 편대가 기습공격연습을 위해 출동하였습니다. 비행시간은 3시간 24분…》

숨도 쉬지 않고 보고드리던 작전국장은 그이께서 머리를 끄덕이시자 돌연 입을 다물고 미처 쏟지 못한 흥분을 마른 침처럼 꿀꺽 삼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금 작전국장이 말한 그 스텔스전투폭격기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괌도에서 날아올라 3시간 24분이라는 긴 시간 비행을 계속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없다. 그 스텔스전투폭격기들은 우리의 녕변지구를 선제타격할 특수임무를 받고 괌도의 앤더슨비행장에서 벌써 며칠째 리륙하고있다. 리륙하여서는 북상하여 곧추 군사분계선 대밑까지 날아들다가는 급기야 기수를 돌리군 한다.

이제 그것들이 분계선상공을 넘어 녕변지구에 미싸일을 발사하는 순간이면 전쟁이 터진다. 그것도 일찌기 인류가 체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처절한 현대전이, 생사결단의 판가리격전이 터지게 될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우에 두팔을 겯고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다섯번째로 날아올랐단 말이지. 다섯번째라…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 우리에 대한 위협공갈인가 아니면 실제로 선제타격의 효률을 높이기 위해 연습을 반복하는것인가?…》

그이께서 최광에게 묻는듯 한 눈길을 옮기시자 고통스럽게 입귀를 실룩거리고있던 그는 천천히 말씀드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제 생각엔… 우리를 심히 자극하고 놀래워보려는 시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됩니다.》

《근거는 무엇입니까?》

《근거는…》 여전히 최광은 서둘지 않고 또박또박 찍어가듯 했다. 《기습공격이란 은밀히, 불의에 진행하는것인데 지금 놈들은 다섯번이나 그것을 반복하고있습니다.》

그이께서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옳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적들은 우리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였지 또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벼락성명을 내쏘는 바람에 기절초풍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우리의 기를 꺾어보려고 미쳐날뛰지만… 안될것입니다. 우리가 놈들의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맞선다는것을, 타격의 선택권은 우리에게도 있다는것을 보여줍시다. 오만한 적들에게 버릇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자, 그럼…》

김정일동지께서는 재빨리 몸을 돌려 대형작전도앞으로 다가서시였다. 단숨에 적아쌍방의 무력배치상태와 기동로정을 쭉 훑고나서 힘주어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의 타격이 얼마나 위력하며 무자비한것인가를 보여줄 때가 왔습니다. 먼저 전선서부에서 타격집단의 기동작전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기동작전의 초기임무와 최종임무에 대하여 먼저 밝혀주시였다.

한순간 번개의 섬광이 사람들의 눈을 때린듯 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어 그들자신이 준비해온 기동작전이였지만 그이께서는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작전방향을 밝혀주셨던것이다.

최광은 저도모르게 안경을 벗어들었는데 두두룩한 앞가슴이 벅찬 흥분으로 오르내리고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경련이 인듯 두 눈을 슴벅거렸다. 누군가는 숨결이 가빠난듯 신음소리처럼 흐느끼였다. 저력있게 울리는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가 불길처럼 뿜어나는듯싶었다. 무심한 통신기재들까지 록색불빛을 파르르 떨며 무엇인가를 웨쳐댔다.

통신기재들곁에 서있던 장령이 미끄러지듯 다가와 그이께 보고자료를 올린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재빨리 보고자료를 훑어보시였다. 한순간 그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럴수밖에, 음ㅡ 자, 보시오. 끝내 그들이 굽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한곳에 모여졌다. 흥분과 긴장으로 팽팽해졌던 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여났다. 총참모장 최광이 먼저 안경을 또 벗어들었다. 입김을 불며 손수건을 꺼낼념도 잊고 팔소매로 문지르는데 잔주름이 가득한 그의 얼굴이 소리없는 웃음으로 번져졌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놈들이 궁지에 빠져서, 우리가 무서워서 끝내 이런 결정을 내린게 아닙니까?》

《예, 옳습니다.》 누군가 웨치듯 했다 . 《우리가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저 미소를 그리고계실뿐이였다. 그러자 그 어떤 경우에도 흥분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 작전국장이 끼여들었다.

《놈들이 이렇게 하는것은 우릴 좀 진정시켜보려는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다시금 보고자료를 여겨보시였다.

그것은 남조선당국이 판문점련락사무소를 통해 보내온 전화통지문내용이였다.

《…오늘, 3월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있은 비상국무회의결정을 귀측에 알려드립니다.

래일, 16일중으로 리인모문제와 관련한 남북련락원들의 접촉을 가지고 합의되는데 따라 아무런 부대조건없이 리인모를 돌려보내려 하오니 귀측에서 상응한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쯤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리인모!… 그이께서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불러주신 불굴의 투사 리인모가 돌아오게 된다. 한생의 거의 전부를 철창속에서 온갖 악형을 당하면서도 변함없이 신념과 의리를 지켜온 영웅전사ㅡ 그가 처음 알려진것은 34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1988년 10월 청주보안감호소에서 나와 경기도 양주군의 한 양로원에 있으면서 자기의 한생에 대한 수기를 써서 잡지 《말》에 1989년 말부터 다음해 초까지 네번에 걸쳐 발표한 그때부터였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수기를 적구에서 당중앙에 보내온 전사의 보고로 접하시였다. 하여 불굴의 영웅전사를 데려오기 위한 투쟁을 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문제를 정치화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인도주의적문제로, 전쟁포로송환문제로 제기하게 하시고 우리 적십자회가 리인모의 부인과 딸로 하여금 국제적십자사와 국제법률가협회, 유엔인권위원회와 같은 인도주의단체, 민주단체들에 편지를 보내여 세계적인 여론을 광범히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 남조선당국에 압력을 가하도록 이끄시였다.

제5차 북남고위급회담때부터는 리인모를 데려오는 문제를 긴급의제로 제기하고 그후 여러 갈래의 회담들에서 중요의제로 내놓고 강력히 다불러대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남측은 지난해 9월 제8차 평양회담때 《수석대표》의 이름으로 《리인모의 송환문제》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 합의는 곧 류산되였다. 《안기부》가 《총리》의 약속마저 차버리고 빗장을 질러놓았던것이다. 그들은 《세계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하고있는 이때 사회주의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전향을 거부한 리인모를 돌려보내면 북의 승리로 되고 사회주의리념의 승리로 된다》는것, 《김일성주석의 삼촌 김형권의 조선혁명군무장소조의 파발리습격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생존해있는 증견자이므로 북을 돕는 리적행위》로 된다는것 그리고 《앞으로 북에서 제2, 제3의 리인모를 계속 내라고 할것이므로 그 단련에 녹아날수 있다》는것, 때문에 아예 그런 전례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완강히 뻗대였다. 그리하여 남조선당국은 리인모를 절대 돌려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이른바 《정책결정》까지 내렸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인모를 데려오기 위한 사업을 잠시도 중단함이 없이 적극 내밀도록 하시였다. 일단 결심하신 문제는 끝장을 보고야마는 그이이시였다.

또다시 유엔에도 제소하고 세계각국의 법률가단체들, 인권단체들과 남조선의 여러 민주단체들에도 호소하면서 드센 공세로 남측을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전쟁의 시한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처한 우리의 준전시상태선포,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결정이 미국과 그 추종세력을 향해 포화처럼, 벽력처럼 터져갔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남조선당국은 매일 김영삼의 방에 모여 《안보관계장관회의》며 《통일관계장관전략회의》를 벌리고 《대응책》을 협의하면서 《더이상 북을 자극해선 안된다》, 《핵특별사찰문제도 민족내부문제로서 남북사이에 풀수 있다고 본다》, 《리인모를 정치적부대조건없이 넘겨주는것이 바람직한 일이다.》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3월 12일 드디여 남조선당국은 《리인모로인의 방북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라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여왔다.

그날도 김정일동지께서는 바로 여기 엄숙한 정적이 깃든 최고사령부작전실에서 그것을 보고받으시였다. 리인모의 귀환을 위해 그처럼 마음 써오신 그이이시였으므로 일군들은 무등 기뻐하시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화통지문을 받아드신 그이께서는 분노에 찬 음성으로 단호히 언명하시였다.

《그럴수 없소. 〈방북〉이라니,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다 바쳤는데 자기 조국, 자기 집을 방문하게 한단 말인가?… 안되오. 되게 다불러대시오. 되게!…》

또다시 남측은 불에 덴듯 했다.

다음날 3월 13일 《통일원차관》이 나섰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방북기간을 3년까지 할수 있으나 본인이 요구하면 더 줄수도 있다.》고 아양을 떨었다.

3월 14일엔 《통일원대변인》이 나서서 《리인모에게는 방북기간을 정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이 의연 《방북》이라는 말로 오그랑수를 쓰고있는 조건에서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뿐이였다.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나라의 전체 무장력이 진지를 차지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있었다. 모든 전파탐지기들이 조국의 령공을 눈밝혀 살피고 공군추격기 비행사들은 낮에 밤을 이어 교대로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다에서는 어뢰정을 비롯한 함정들이 파도를 헤가르고…

우리는 구차스러운 말장난, 말싸움이 질색이다. 조선의 대답은 오직 총대에서만 나온다. 어제도 그랬거니와 오늘도 래일도 그것은 변함없다.

적들도 그것을 무서운 공포속에서 숙고하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다. 끝내 《아무런 부대조건없이 리인모를 넘겨주겠다》고 통지해온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손을 허리에 짚고 다시금 대형작전도앞으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복잡하게 새겨진 갖가지 전술부호들과 화살표들이 더욱 붉게, 진하게 살아숨쉬며 커지는듯 여겨지시였다.

《자, 그럼 타격집단의 기동작전에로 다시 돌아갑시다.》

최고사령부작전지휘조성원들이 일시에 몸을 돌리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여전히 전쟁의 폭음이 머리우에서 커지고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야말로 한순간도 전쟁과 떼여놓고 자신을 생각할수 없는 사람들이였다.

최고사령부작전모임은 밤이 깊을 때까지 계속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작전모임이 끝나자 당중앙위원회 권형일비서를 찾아 판문점실무접촉을 잘하여 이번에는 리인모를 무조건 데려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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