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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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국의 전화를 받고난 장대식은 널뛰듯 하는 심장을 도저히 진정시킬수가 없어서 사무실안을 괜히 오락가락했다.

김하규가 대덕산에 내려오니 전우답게 인간적으로 그의 사업을 잘 보장해주라는 지시였던것이다.

《김하규동무가 대덕산에 왜 내려온다는겁니까?》

그는 영문을 알수 없어서 현진국의 전화를 받다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

《동무도 전번에 진행한 훈련총화에 참가하여 그가 비판받는걸 보지 못했소?…

아침에 떠났으니 인차 군단지휘부에 도착할거요.》

전화가 끝난지 10분도 못되여 과연 얼굴색이 거멓게 죽은 김하규가 그의 사무실에 불쑥 들어섰다.

장대식의 두눈가에는 반가운 웃음이 실려있었지만 김하규의 표정에는 감출수 없는 괴로움이 무겁게 실려있었다.

그들은 긴쏘파우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붙여물었다.

《옛 대대장동지의 전화를 받았소.…

그런데 몸이 왜 그렇게 홀쭉해졌소?》

김하규는 애써 웃어보이며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아무래도 대덕산바람을 맞아야 머리도 맑아지고 몸도 날것 같구만. 허허… 사실대로 말하면 기발을 날리며 앞장서 나아가는 동무한테 배우자고 왔소.》

《뭘 배울게 있다고 그러는거요?》

《배우자고 내려온 사람한테 자꾸 이러면 내 립장이 딱하지 않소. 그러지 말고 정치위원동무와 마음을 맞추어나가는 과정에 얻은 경험을 들려주오. 난 그걸 듣자고 여기까지 찾아왔다고도 볼수 있소.》

김하규의 스스럼없는 물음에 장대식은 손을 내저으며 몹시 바빠했다.

《이러지 말라니까. 그 칭찬은 나로서도 천만뜻밖이요.》

《갑자기 뜻밖이라는건 또 뭐요?》

《실은 장군님께서 좋은 정치일군을 보내주신 덕에 이룩된 성과인데 나까지 똑같은 칭찬을 받고보니 부끄러워서 그러오.》

《허, 경험을 듣자고 찾아온 전우앞에서 그런 식으로 자물쇠를 채우는 법이 어데 있소. 심보가 고약하군그래.》

끈덕지게 매달리는 김하규의 진지한 자세를 보고서야 장대식은 인상좋은 얼굴에 유한 웃음을 담았다.

《정 알고싶으면 경험까지는 못되지만 들어보오. 내 경우엔 극히 단순한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두가지를 놓치지 않으면 일이 더잘 되더구만.》

장대식은 이렇게 서두를 떼고나서 사업과 생활에서 실수, 과오, 의견상이, 오해는 큰 사람들의 경우에도 극히 작고 소소한 문제로부터 시작되기가 일쑤다, 때문에 나는 작든크든 모든 일을 항상 정치위원과 협의하군 한다, 여기에 자존심을 세울 필요는 없다, 먼저 존중해주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첫번째다.

두번째는 뭔가? 어디 갈 때와 갔다와서도 정치위원부터 먼저 만나는것이다, 그러니 사업에서 빈틈이 없어 참 좋다, 나는 사업과 생활에서 이 두가지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지 않는가, 경험이라고까지는 말할수 없지만 정치일군과 당조직에 의거하면 모든 일이 더 잘된다.

장대식은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김하규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어떻소? 듣고나니 누구나 다 아는 가장 일반적인 문제를 새삼스럽게 강조한감이 나지 않소? 허허…》

《아니요. 결코 그런게 아니요. 동무말을 듣고보니 내가 확실히 당조직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자책이 더 커지오. 동시에 자식들도 나와 같은 전철을 두번다시 밟지 않게 키워야겠다는 자각도 높아지고…》

김하규는 쏘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청사앞마당가에서 키높이 자라는 잣나무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 곧음, 그 푸름, 그 억셈을 느끼자 광훈이와 연금이가 절로 생각났다. 장군님 아니시라면 내가 모르는사이에 그들의 문제가 어찌될번 했던가!

격정에 휩싸여있는 김하규의 등뒤로 장대식이 다가왔다.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오?》

《대지에 뿌리를 든든히 박고 푸르싱싱히 자라는 저 잣나무들을 보니 우리 광훈이의 달라진 모습이 생각나서 그러오.》

김하규의 시선은 다시금 지심깊이 뿌리를 박고 서있는 잣나무들에 멎었다. 광훈이와 연금이는 내 아들, 내 며느리감이기 전에 우리 군대의 래일이다. 미래다.

《광훈이를 만나봐야 하지 않겠소?》

《천천히 만나보지. 지금 당장은 일부터 시작해야겠소.》

《어떻게 행동할 계획이요?》

《먼저 대덕산에 갔다가 포실탄사격훈련장에 나가 장거리포를 다루는 포병들을 만나보았으면 하오.》

《그럼 37포려단에 배낭을 풀어놓소. 내 그에 맞는 조직사업을 해주겠소.》

 

다음날 김하규가 포실탄사격훈련장을 돌아보고있을 때였다.

중키에 이마가 벗어지고 두눈이 어글어글한 젊은 중좌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씩씩하게 보고했다.

《장령동지, 56포련대 후방부련대장 림철수 만날수 있습니까?》

김하규는 머리를 끄덕이며 어떻게 찾아왔는가고 물었다.

젊은 중좌는 포실탄사격훈련장구역안에서 쑥대가 바람에 설레이는 개활지대를 가리켰다.

《저기 저 땅이 놀고먹는것이 너무 아까와서 찾아왔습니다.》

《?》

《장군님께서는 대덕산에 오르시여 우리 군단이 콩농사에서 전군의 본보기가 될데 대한 믿음을 안겨주시지 않았습니까?

그후부터 저의 눈에는 저 쑥대밭 10정보가 수십t의 콩산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저 땅을 콩만이 아니라 땔감, 고기 등 뭐나 다 나오는 지대로 전변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말하자면 꿩 먹고 알 먹고 둥지털어 불 때는 격이라고 해야 할지… 그러자니 장령동지의 지원포사격이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김하규는 남달리 큰 포부와 계획을 안고 찾아온 중좌를 미덥게 바라보며 무랍없이 물었다.

《정말 동무의 눈엔 저 쑥대밭이 콩폭포가 쏟아지는 콩산으로 보인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김하규는 두눈을 슴벅이였다.

(아, 바로 저런 모습, 저런 숨결, 저런 목소리를 보고 느끼고 들으라고 장군님께서 나를 대덕산부대로 떠밀어보내주신것이 아니겠는가!)

김하규는 일욕심많은 중좌의 정열에 북받치는 눈길에 자기의 시선을 맞추었다.

《어떤 지원포사격이 동무에게 필요되오?》

《무엇이든 새로 개척하자면 길부터 내야 하지 않습니까? 저 쑥대밭으로 들어가는 길을 내는 일만 도와주면 1년후 장령동지앞에 콩산을 높이 쌓아놓겠습니다.》

김하규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내앞이 아니라 병사들앞에 쌓아놓아야지.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된다면 우리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소.

알겠소. 그런 지원포사격이야 못해주겠소. 내 여기에 내려와있는동안 힘껏 돕겠소.》

젊은 중좌와 헤여진 그는 마음이 흐뭇해져서 산비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포사격을 하기 위하여 나온 어느한 포의 포수들이 휴식하고있는것이 보였던것이다. 그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포장이 그를 발견하고 《차렷!》구령을 쳤다.

《쉬엿하시오.》 하고난 그는 병사들옆에 다가가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산판이 들썩하게들 웃는가고 물었다. 얼굴이 거뭇거뭇하고 몸집이 포신처럼 단단한 포장이 반죽좋게 말했다.

《꿈이야기를 하던중입니다. 》

《꿈이야기라… 어떤 꿈이요?》

김하규는 병사들과 함께 산비탈잔디밭에 앉았다.

포장은 익살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장령동지, 제가 외교관이 돼서 백악관의 클린톤과 척 마주앉아 담판을 하는 꿈입니다.》

《허허…》

김하규는 통쾌하게 웃었다.

《왜 웃습니까? 제가 나길 못났습니까, 지식이 모자랍니까, 말을 못합니까?》

《옳소, 옳소. 미래의 외교관동무! 계속하오.》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저는 클린톤보고 물었습니다.

〈당신 조선에 대덕산이라는 산이 있다는걸 아는가?〉 클린톤이 기가 죽어가는 소리로 〈압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언제 알았는가?〉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 대덕산을 시찰하신 후에 알았습니다.〉

〈귀는 막고 살지 않았구만. 내가 바로 그 대덕산부대에서 복무한 포병출신의 외교관이요. 쌤아저씨들은 너무도 철면피하오. 당신네는 핵무기요, 대륙간탄도미싸일이요, 뭐요 하는것을 제 마음대로 만들면서도 우릴 보고는 왜 핵의혹이요 뭐요 하면서 시끄럽게 노는거요?〉

그러자 클린톤이 허리를 90°각으로 꺾으면서 〈만민평등〉을 부르짖길래 책상을 탕! 하고 내리치며 〈닥쳐라!〉하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때 그만 기상구령이 울렸습니다.》

《하하하…》

병사들의 흐무진 웃음판이 터졌다.

《장령동지!》 포장은 계속했다. 《핵에 대한 말이 난김에 한가지 제기하겠습니다. 이자 방금 꿈이야기에서도 나왔지만 우리 병사들은 핵문제가 세계무대에서 론의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자존심이 상합니다. 핵무기나 대륙간탄도미싸일을 미제만이 가지고있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동무말이 옳소. 미제가 국제〈헌병〉노릇을 하며 조선을 향해 전쟁마차를 계속 몰아오는 한 우리도 가만있을수 없소.》

김하규는 생각했다.

(내가 사무실에 앉아있었다면 병사들의 이런 배심을 느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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