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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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군단이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면 얼마나 많은 량이 되겠는가. 아직은 혼자 생각이라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세번째로 제명산을 넘는 날 자기가 먼저 해보기로 계획했다.
행군출발을 앞두고 그는 비닐주머니에 모래를 가득 채웠다. 아무도 모르게 배낭안에 넣었다.
행군대오가 제명산중턱에 올라섰을 때였다.
장대식이 위험구간의 바위틈에 서서 병사들을 한명한명 끌어올려주고있었다.
그는 좀 긴장해졌다.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추궁을 받을것 같아서였다.
그의 차례가 되였다.
《아, 리성이! 꽤 이겨낼만 하오?》
장대식이 그의 손목을 잡아끌며 반갑게 물었다.
《배낭에 넣은게 뭐요?》
《새 종합훈련장건설에 쓸 모랩니다.》
《모래? 그 한배낭을 지고가서 누구 코에 바르겠소?》
《병사 한명이 지고가는 모래 한배낭은 작지만 저 골안으로 여러 사단이 통과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장대식은 병사의 생각이 참으로 기특했다.
《동문 정말 기발한 생각을 했소.》
장대식은 건설장에 도착하자마자 리성이가 지고온 모래를 저울에 달아보게 했다.
정확히 10kg이였다.
이 사실이 하루사이에 정치부와 참모부를 통하여 전군단에 알려졌다.
어느 누구도 조직사업을 하지 않았지만 네번째로 어느 한 부대가 제명산을 통과한 날 건설장에는 군인들이 자각적으로 지고온 모래가 작은 산을 이루었다.
주도성의 가슴은 찌르르해났다.
병사들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가.
그는 온몸에 새힘이 쭉쭉 뻗치는듯한감을 느끼며 현장지휘부천막에 들어섰다.
류경두가 콤퓨터앞에 마주앉아 무슨 도면을 연구하고있었다. 인사말이 끝나자 책상우에 펴놓은채로 있는 도면을 내려다보며 무엇을 하는가고 물었다.
《훈련관의 내부시설을 놓고 연구해보던중입니다.》
설명을 더 듣지 않아도 이미 내용적으로 알고있는것이였다.
《부군단장동무!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봅시다. 동무생각엔 어떻소? 새 종합훈련장방안이
《100% 다 맞는다고 확신할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콤퓨터와 마주앉아 도면을 보고있지 않습니까?》
주도성은 지금에 와서 그 시비를 가른다기보다 현실을 한시라도 빨리 알고싶은 마음에서 이렇게 물었다.
《100% 확신할수 없다고 하면서도 왜 공사를 시작했소?》
이것은 아직도 그의 속에 맺혀 내려가지 않는 문제이기도 했다. 바로 여기에는
사람들이 전자수산기같이 정확하다고 하는 류경두는 정황처리의 능수이기도 한것 같았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에서 결론하지 않은 방안은 자의로 시작할수 없었습니다. 날자가 귀중하기에 결론이 떨어진 다음에 해야 할 일과 선행시켜야 할 일거리를 갈라놓고 전투를 시작했을따름입니다.
다시말하면 전면공격이 아니라 부분적인 공격으로 승리의 기초를 마련하면서 총공격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 말입니다.》
포착력이 빠른 그는 여기에 도착한 첫 순간에 그것을 이미 느꼈지만 모든 내막을 보다 정확히 알고싶어서 류경두의 속을 두드려본것이다. 그는 저도모르게 세모진 두눈을 한점에 모은채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아래단위의 돌격준비가 어느 정도로 완료되였는가 하는것을 너무도 몰랐다는 자책때문이였다. 사무실에 앉아 밑에서 올라오는 문건이나 보고 전화나 받아가지고서는 현실태와 함께 매 지휘성원들의 심장속까지 들여다볼수 없는것이다.
만약 대덕산군단에서 결론을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지시를 그대로 받아물고 부분적인 공격을 미리 선행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좀 봅시다.》
주도성은 뼈아픈 자책을 하며 콤퓨터에 마주앉았다.
콤퓨터에 입력시킨 모든 설계문건들을 하나하나 검토해나갔다. 이 과정에 미흡한 점과 그 해결책도 동시에 찾아냈다.
마지막설계문건까지 다 검토하고난 그는 마우스를 다독이였다. 수확도 큰 수확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늦게 내려와서 정말 미안합니다. 전번에 전화를 할 때에는 내가 너무했던것 같습니다.》
주도성은 어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대식의 둥그런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피였다.
《됐소. 뭘 그런 말을 다하오. 아직은 지각생이라고 볼수 없는데… 공격이 멎을가 하는 찰나에 이렇게 현지에 내려와서 도와주지 않소.》
《그 정황을 제때에 판단하신분은
《그러니 새 종합훈련장방안 전체를 지지한다 이거요?》
《내가 지지하는것이 아니라
그는
주도성은 생각깊은 어조로 계속했다.
《군단장동지, 병사시절과 대대장때 내 별호가 뭔지 압니까? 빨리병사, 빨리대대장이였습니다. 그 빨리가 일을 친 다음에는 천천히로 변했댔습니다. 남보기엔 마치 모든 사업을 침착하게 전개해나가는것으로 보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것이 자기 보신이였습니다. 그 천천히가 다시 빨리로 돌아왔는데 그 맥박을 우리
《나도 같은 느낌입니다.》
류경두가 콤퓨터의 도면을 들여다보다가 이들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종합훈련장을 건설하는 골짜기를 떠나 대덕산에 오른 주도성은 저으기 놀라운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우에서 새 삭도줄을 늘이는 공사가 한창이고 산아래쪽에서는 물탕크공사가 동시에 추진되고있었던것이다.
삭도줄을 늘이는 현장에 이르니 그 아름찬 일을 병사들이 아니라 군관들이 진행하고있었다.
《동무들은 누구요?》
그는 작업을 하는 군관들을 둘러보았다.
《상좌 방철성!》
《중좌 오경택!》
《상위 조성우!》
주도성은 의아해서 물었다.
《어디서들 왔소?》
《군단지휘부에서 왔습니다. 우리도 대덕산중대를 도와서 뭘 좀 해야 할게 아닙니까?》
《삭도줄은 왜 다시 늘이오?》
《오랜 세월 리용하다나니 줄이 삭았기에…》
주도성은 가슴이 뜨끔해났다.
대덕산중대에 걸린것이 무엇인가 하는것을 알아볼데 대한
거기서도 군관들이 일하고있었다.
《물탕크공사는 왜 다시 하오?》
그의 뒤를 따라온 방철성이 대답했다.
《물탕크를 건설한지 너무 오래다나니 지각운동에 의해 밑에 금이 가서 물이 좀 샙니다. 그래서 아예 새로 든든히 건설해주기로 했습니다.》
방철성의 말에 주도성의 가슴은 또다시 예리한 비수에라도 찔리운듯 아팠다. 수박겉핥기식으로 중대를 돌아보고 대덕산초소에는 아무것도 걸린것이 없다고
한데 그 빈틈을 다름아닌 군단지휘부 군관들이 찾아내여 메꾸어주고있다.
주도성은 그들이 정말 고마왔다.
때마침 중대장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그는 세모진 눈을 흡뜨며 중대장을 엄하게 마주보았다.
《내가 왔을 때 왜 거짓말을 했소?》
《중장동지, 미안합니다. 중대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는것도 있어야지 계속 방조만 받겠습니까? 실은 우리가 하자고 했는데 저렇게… 중장동지가 종자를 가져온다는 전화련락을 받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주도성의 입언저리는 가볍게 떨렸다.
《중대장동무, 그 인사는
대덕산의 참나무림이 가볍게 설레인다.
주도성은 이어 김연금이가 있는 녀성기관총중대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