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1
동지도 지나고 세밑추위가 들이닥칠무렵 옥천휴양소가 자리잡고있는 골짜기에는 기상천외하게도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가 멎으며 뭉게구름이 들리더니 서산에 진 해가 갑자기 피빛노을을 화염처럼 뿜어올렸다.
잠시후 노을은 사라지고 사위는 다시 어두워졌다. 컴컴한 먼 공간에서 우뢰소리가 둔중하게 들려왔다. 온 나라 인민이 피눈물을 뿌렸던 7월이후로 자주 보게 되는 자연의 이상현상이였다.
국상을 치른지도 100일이 넘었건만 자연은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호곡하고있었다.
대련합부대 참모장인 심철범장령은 야전용승용차의 앞자리에 앉아서 차창에 이마를 바투대고 때아닌 폭우에 후줄근해진 수림을 내다보고있었다. 골짜기 량옆을 덮고있던 흰눈이 폭우에 녹아내려서 거밋거밋한 땅이 험상한 상처처럼 드러나보였다. 옥천휴양소의 푸릿한 정원등을 바라보는 장령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였다.
인민무력부장의 호출을 받고 평양에서 출발한 그 순간부터 장령의 머리를 꽉 채운것은 오직 한가지 생각- 치료휴양을 하고있는 무력부장이 왜 찾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도 무력부장이 중병을 앓고있으며 일체 집무를 금지당하고있다는것쯤은 알고있었다.
그러나 정원등을 바라보는 지금 장령의 눈앞에는 지난 4월의 봄밤이 떠올랐다. 그때 저 외등밑에서
휴양소마당에서 오진우원수가 심철범을 기다리고있었다.
《내 방에 들어가 기다리시오.》
차에서 내려 다가오는 심철범을 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인사를 받으며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심철범은 우뚝 선채로 굳어져버렸다. 수백리길을 가슴을 조이며 달려온 사람에게 하는 말치고는 너무도 간단하고 딱딱했다.
오진우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꼿꼿이 앞만 바라보면서 정원을 거닐고있었다. 온몸을 두툼한 군용털외투로 감쌌지만 강마른 체구와 목우로
앙상하게 솟아오른 두 어깨가 알렸다. 늙은
오진우가 거처하는 방으로 먼저 들어온 심철범은 그가 몹시 측은하게 생각되였다. 불과 반년밖에 지나지 않은 그 봄밤만 해도
오진우는
얼마나 원기가 왕성했던가.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수 있는가.
7월이후 몇달사이에 정정하던
심철범은 무력부장에 대하여 별반 아는것이 없었다. 오진우가
어디에 그런 눈물이 있었던가. 처음보는 정경앞에서 가족들조차 놀랐었다.
오진우는 식음을 전페했다. 물 한모금, 밥 한숟가락 들지 않고 입을 앙다물고있는 그를 부인과 막내인 외동딸이 겨우 돌려세웠다. 그러고보면 그는 눈물이 많아도 아주 많은 사람이였다.
알려지지 않은 한가지 일화가 있다. 아들 4형제를 연거퍼 둔 그는 딸을 무척 그리워했는데 늘그막에 딸 하나를 보았다. 그 딸이 너무도 귀해서 젖 떨어지자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애지중지하였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어떤 때에는 자기 사무실 책상우에까지 앉혀두고 보았다는것이다.
심철범이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중년의 녀성이 차를 들고 들어와 권하고 나갔는데 그가 바로 그 딸이였다. 치료휴양기간에도 오진우는 전문간호원들을 다 물리치고 딸의 간호를 받고있었다.
딸인들 아버지의 건강때문에 얼마나 상심하고있겠는가. 하지만 누구누구해도 오진우의 건강을 두고 제일 마음을 쓰시는분은
심철범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런데 오진우가 저 상태이니
큰 방 한가운데 널다란 침대가 놓여있었다. 미색 비단벽지를 바른 방안은 촉수높은 백색등에 조명되여 푸른 하늘밑에 있는듯한 감을 주었다.
심철범은 무거워지는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오진우가 불치의 병에 걸렸으며 거기에 대해서는 가족들은 물론 그의 서기나
부관도 모르며 이 세상에서 오직 의료일군들과
밖에서 가벼운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나더니 이어 발동소리가 가까와왔다.
심철범은 그 소리를 들으며 오진우에게 자기 말고 다른 손님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는 쏘파에서 움쭉 일어섰다. 그때에야 비로소 평양을 떠나면서 머리를 지배했던 의문이 새삼스러워지며 더 커졌다. 무력부장이 왜 호출했을가?
《응접실로 오시랍니다.》
오진우의 딸이 들어와 심철범에게 알리였다. 그는 방안의 벽지와 같은 색갈의 미색주단을 깐 복도를 거쳐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문앞으로 심철범을 안내하였다.
《중장동지, 들어가십시오.》
그 방에는 외투를 벗어놓아서 수척한 몸이 그대로 드러난 오진우와
심철범은 오진우에게 관자노리에 손을 붙여 인사를 한 다음 그사람에게도 같은 동작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가 누구인지는 인차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사람이 바로 이전 쏘련국방상이였던 드미뜨리 야조브원수임을 알아본것은 다음순간이였다. 심철범은 무력부장이 자기를 부른 용건과 이 외국손님의 출현이 무슨 련관이 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인차 머리를 저었다. 자기는 야조브원수와 그 어떤 사업상련관도 없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을가? 중병을 앓고있는 오진우를 방문하는 손님은 극히 제한되였다.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뒤에는 더욱 제한하였다.
간혹 총참모장이라든가
심철범은 저으기 긴장한 심정으로 오진우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야조브쪽으로 시선을 돌리군 하였다.
쏘련이 해체된 후 이전 쏘련의 정계, 군계, 사회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우리 나라를 자주 방문하고있었다.
야조브와 관련하여 오진우에게 사전통보된 내용은 쏘련의 해체를 인정하지 않는 그가 한 나라 국방상의 자격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부장의 병문안을 열렬히 희망한다는것, 이 희망이
10년전 뜻밖의 사고로 중태에 빠진 오진우는 쏘련국방성의
오진우가 흥분된 심정으로 그를 기다리고있을 때
이러한 경위를 알길없는 심철범은 여전히 긴장한 마음으로 오진우를 지켜보고있었다. 그를 한참 마주보던 오진우가 천천히 시선을 야조브에게로 돌리고 호흡기질환환자들에게서 흔히 듣게 되는 쌕쌕하는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심철범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군인의 례법대로 힘차게 보고했다.
《조선인민군 중장 심철범.》
심철범은 자기를 소개한 후에도 그냥 자리에 서있었다. 자기가 외국손님에게 왜 소개됐는지 또 어떤 과업을 받게 되겠는지 알아야 했던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은 그를 더는 쳐다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서로 안부를 물었으며 간단간단히 회포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에야 오진우는 심철범을 바라보며 여전히 쌕쌕하는 숨소리가 섞였으나 매우 명료한 어조로 말했다.
《심철범동무,
《알았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오진우는 그의 대답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홱 내저으며 말했다.
《동무는 나의 명령이 아니라
심철범은 선 자리에서 몸을 꼿꼿이 펴며 바지혼솔에 손을 대고 차렷자세로 오진우를 바라보았다.
자기에게 이 뜻밖의 과업을 주신
그러나 오진우도 그것을 알수 없었다.
방안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2
(1)
심철범은 중키인데 앙바틈한 목과 쩍 벌어진 어깨는 그를 실지보다 더 작아보이게 하였다. 몹시 과묵한 그는 언제봐도 입을 꽉 다물고 다니였다. 그러나 이따금 그 입이 열리면 호랑이와도 같은 무서운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를 심갈범이라고도 했다. 칼날같은 규률과 무조건적인 실천만을 요구해야 하는 참모장으로서는 제격인셈이였다. 그가 직무에 어울리지 않게 외국인 의례사업에 동원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의아해하였다.
사흘동안 야조브를 안내하여 평양시안의 명승고적들과 기념비적창조물들을 돌아본 그는 지방참관을 떠나려고 아침 일찌기 야조브를 찾아갔다. 야조브는 현관앞에 나와서 심철범을 기다리고있다가 그를 덥석 끌어안으며 몹시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방금
현관문이 다급히 열리고 호리호리하고 깨끗하게 생긴 대위령장을 단 군인이 뛰여나왔다. 인민무력부 외사국의 통역이였다. 대위가 류창한 어조로 서둘러 야조브의 말을 우리 말로 옮겨놓기 시작하였다.
그날 오후, 그들을 태운 승용차는 룡성교외도로로 해서 평양중심거리를 향해 달리였다.
승용차의 앞자리 운전사곁에는 대위가 앉고 뒤좌석에 심철범이 야조브와 함께 앉아있었다. 옥천휴양소를 떠나 평양으로 달려오는동안 심철범의 철색이 도는 얼굴은 눈에 알리게 상기되여있었다. 그는 줄곧 흥분하고있었다.
지금까지 심철범은
당중앙위원회 기발대에는 일년열두달 하루도 빠짐없이 낫과 마치와 붓을 새긴 당기가 날리고있었다.
시내중심을 통해 출근하게 되는 사람들은 일부러 남산재를 거쳐가면서 당중앙위원회 청사쪽을 보군
하였다. 당중앙위원회를 향해가면서 이제 불과 몇분후
수도의 거리들은 물론 지방도시들과 공장, 기업소안의 구호들과 선전차들은 《결사옹위》, 《결사관철》을 호소하고있었으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당의 이 호소에 호응하는 준엄한 맹세의 빛이 어리고있었다.
거리들에서 점차 화려한 옷차림들이 사라지고 그대신 보위색으로 지은 작업복과 적위대복차림이 많아졌으며 군용배낭을 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렬을 지어서 어디론가 부지런히 움직여가고있었다. 거의 집집마다에서 그 누군가가 군대로, 이동작업으로 떠나갔다. 가족중에서 누가 퇴근해오지 않으면 저녁식사를 들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저마끔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른 새벽에 서로 얼굴을 못보고 뿔뿔이 일터로 흩어져갔다.
신문들과 방송들에는 《봉쇄》, 《고립》, 《질식》이라는 낱말들이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긴장시키였다. 신문과 방송들은 《사회주의의 보루》를 지키자고 호소하고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러한 정세의 예후는 벌써
우리 식 사회주의의 위력과 그 불패성에 대한 조선인민들의 믿음은
심철범은
그렇다.
심철범은 지난 사흘동안 외국손님을 안내하면서 뜻밖의 체험을 하였다.
드미뜨리 야조브의 우리 나라 방문목적이 참관에 있지 않다는것을 심철범은 알고있었다.
해당 부서에서는 사전에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던것이다. 참관이 기본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그 전화를 받고 심철범은 자기가 이번 일에 동원되면서 가지게 되였던 의혹을 다시 가지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야조브가
실지 야조브는 숙소에서 밤마다 음악을 듣고있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로씨야고전음악을 수록한 록음테프를 가지고다니였다. 차안에서도 그 음악을 듣고 식사할 때나 오락장에서 휴식할 때도 들었다.
그는 출생지인 쏘련의 옴스크주 오꼬네슈니꼬브구역 야꼬브촌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가 17살이였다. 그는 파쑈도이췰란드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전쟁에 뛰여들었다. 만일 전쟁만 아니였더라면 그는 자기가 희망하던 고리끼문학대학으로 갔을것이며 대학을 졸업하고는 작가로 되였을것이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참관할 때 그는 시 한수를 읊었다.
내 청동의 모습으로
영생은 못해도
대돌이 되여 너를 받들리
내 너를 위해
죽을수만 있다면
서슴없이 대돌이 되리
사랑하는 뻬뜨로
뻬뜨로(레닌그라드)여!
어느 시인이 지은 시인지 아니면 자작시인지는 몰라도 매우 비조가 짙었다.
심철범은 그를 데리고 주체사상탑 전망대에도 올라갔다. 평양을 한눈으로 부감할수 있는 그리로 올라가면 그의 무거운 마음이 확 트일가 해서였다. 그러나 거기서도 구름이 꽉 낀 그의 얼굴은 좀체로 밝아지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전망대의 원형란간을 한바퀴 돌고나더니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1941년 가을에 모스크바의 하늘에도 포연은 없었지…》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심철범은 통역에게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야조브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대위가 앞자리에서 뒤돌아보며 로어로 몇마디하자 야조브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심철범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