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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 회

27


겉볼안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신입병사훈련련대의 련대장 박창걸이한테만은 이 말이 잘 맞지 않는것 같았다. 겉보기엔 매우 무뚝뚝해도 속은 불같이 뜨겁기때문이다. 요즘 그는 밤낮으로 눈코뜰새없이 돌아갔다.

인민군대의 싸움준비에서 첫 출발선이나 같은 신입병사훈련교육의 질을 김정일동지의 의도에 맞게 높이자니 해야 할 일이 많았던것이다. 그는 오늘 평양에 갔다올 계획을 했다.

출발을 앞두고 사무실을 정리하는데 똑! 똑! 하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량볼붉은 한 병사가 들어섰다.

《련대장동지, 전사 정충혁 만날수 있습니까?》

《왜 그러오?》

병사는 품속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우리 누나네 중대정치지도원동지가 우리 집에 왔던 날 써주고간 편집니다.》

(누나네 정치지도원?)

편지를 받아든 박창걸은 뚝한 성미그대로 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속지를 꺼냈다.


《생활의 갈림길에서 새 출발을 한 김연금이 출장지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인차 련대장동지앞에 나타나게 될 정충혁병사는 우리 중대의 분대장 정영숙동무의 남동생입니다. 그는 일당백의 고향인 대덕산부대에 가서 군사복무를 하고싶어합니다.

신입병사교육기간에 누구보다도 엄격히 키워 첫 신발을 단단히 신겨주기를 바랍니다.》

박창걸은 병사가 더없이 갸륵하게 생각되였다.

《어떻게 되여 동무가 이 편지를 가지고 내앞에 나타나게 되였소?》

정충혁은 김연금이 자기를 찾아왔던 일을 눈물에 젖어 이야기했다.

(김연금… 정말 중대녀병사들의 뜨거운 맏언니로구나.)

박창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집에서 하루밤 묵고 떠난 김연금의 그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이 헤아려졌던것이다. 그의 부탁대로 정충혁병사를 군사복무의 첫시작부터 신발을 단단히 신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느라니 지난해 포병중대에 배치된 송위용이와 대덕산중대로 떠나보낸 리성이가 피뜩 떠올랐다. 그때도 바로 지금과 같이 처음보는 신입병사가 사무실로 찾아들어왔었다.

《련대장동지, 제가 바로 련대장동지와 병사생활을 함께 했다는 송철수의 아들입니다.》

《뭐, 동무가?》

박창걸은 놀랐다. 옛 병사시절의 직속상관을 어떻게 잊을수 있단 말인가. 언제인가는 출장길에서 송철수를 만난적도 있다.

그때 말하던 아들이 바로 저 병사란 말인가?

《그래 어떻게 찾아왔소?》

그는 반갑게 웃으며 옛 직속상관의 아들을 마주보았다.

《우리 아버지가 련대장동지를 찾아가서 대덕산중대에 가고싶어하는 심정을 이야기하면 꼭 풀어줄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나라없던 그 시절 대덕산에서 있은 할아버지의 피맺힌 사연을 알게 된 다음부터 어떻게 해서든지 대덕산중대에 가서 군사복무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품게 되였습니다.》

박창걸은 병사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도 옛 직속상관을 통하여 그 피맺힌 사연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동문 아주 훌륭한 생각을 품고있구만. 그러나 대덕산중대에는 학습, 훈련, 문화수준 등 모든 면에서 모범인 병사만이 갈수 있소. 전군이 바라보는 본보기중대가 아니요. 그렇다고 하여 특별한 병사만이 갈수 있다는 원칙도 없소. 배치를 앞두고 군단지휘부에서 해당 부문의 지휘관이 직접 나와서 엄선하게 되오. 그 시험에서 합격돼야만이 갈수 있다고도 볼수 있소. 그래, 자신있소?》

그러자 송위용은 당돌한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길고짧은거야 대보아야 알지 않습니까?》

《허허… 어디 두고보기요.》

드디여 그날은 왔다. 송위용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훈련을 끝낸 신입병사들은 다 모이라는 지시가 있은데 이어 군단지휘부에서 내려온 대좌와 중좌가 대오앞에 나타났던것이다.

위엄있어보이는 대좌는 먼저 병사들을 단숨에 쭉 둘러보다가 차례차례 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신입병사훈련기간에 배운 정형을 깐깐히 물어보고나서 《학교다닐 때 뭘 잘했소? 특기가 뭐요?》하고는 《동문 저쪽에 따로 서시오.》, 《동문 이쪽에 서시오.》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의 가슴은 더더욱 안달아올랐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가. 나도 《동문 저쪽에 따로 서시오.》 하는 말을 들어야겠는데…

같은 시각, 같은 생각을 하고있던 리성이 역시 바싹 긴장되여 그 대좌와 눈초점을 맞추기 위해 목을 빼들었다.

대좌가 먼저 리성이앞에 다가간다.

정치, 군사규정, 기타 여러 준비상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해보고 끝으로 《동문 특기가 뭐요?》하고 물어본다.

《노래를 잘하는 특기가 있습니다. 한번 불러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그는 배를 쑥 내밀며 여느때없던 노죽을 부린다.

《이 동무 걸작이로구만. 좋소, 여기에 있는 신입병사들이 다 듣게 한번 불러보오.》

《그럼 인민군대에 입대해서 배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당돌한 리성이는 인차 노래가락을 뽑기 시작한다.


금잔디 밟으며 첫걸음 떼고

애국가 들으며 꿈을 키운 곳

내 자란 조국이 하도 소중해

가슴에 총안고 전호에 섰네

아 정다운 나의 조국아


《잘 부르누만. 잘해!》

류창하게 넘기는 리성이의 노래가 끝나자 대좌는 입을 딱 벌리며 뒤에 따라다니는 중좌에게 물었다.

《군중문화지도원동무! 어떻소?》

《노래는 잘하는데 키가 좀 작습니다.》

리성이가 군중문화지도원앞에 다가선다.

《중좌동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키는 다 큽니다. 유전의 법칙이야 갈데 있습니까.》

하하하… 온 운동장이 웃음바다가 되여 설레인다.

송위용은 긴장해졌다. 따로따로 서있는 동무들을 갈마보았다. 어느쪽이 대덕산중대로 가는 동무들일가. 아무래도 서너명밖에 안되는 리성이쪽이 맞을것 같았다. 송위용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드디여 송위용이의 차례가 되였다. 다른 병사들과 같이 이것저것 선택적으로 료해하고난 대좌는 마지막에 이렇게 물었다.

《동문 뭘 잘하오?》

그에게는 리성이와 같은 용감성과 결패가 없었다. 그러나 리성이의 본새를 따서 없는 용기를 냈다.

《대좌동지! 전 수학을 잘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계산수감을 고르던참인데 마침이요. 포병부대에 배치해주지. 동문 이쪽에 가서 서시오.》

대좌의 이 단마디결론에 송위용은 그만 억이 막혀 더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말았다. 계산수라니… 대덕산중대가 아니로구나. 손맥이 풀렸다. 이렇게 되여 신입병사훈련기간에 남달리 가까운 전우의 우정을 맺은 리성이는 대덕산중대로, 송위용은 포병대대로 배치되게 되였다.

자기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송위용은 가슴속에 의견을 잔뜩 품고 박창걸을 찾아갔다.

《련대장동지, 대좌동진 너무합니다. 제 말은 다 들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눈물을 뚝뚝 떨구는 병사를 지켜보며 박창걸은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동문 찍어놓은 포병감이요. 동문 보병이 아니라 포병이 되여야 〈일당백〉구호를 더 잘 관철할수 있소. 그 길이 할아버지의 원쑤를 갚는 길이기도 하오.》

그때처럼 신입병사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어 돌려보낸 박창걸은 인차 집으로 향하였다. 아담한 군인사택앞마당가에 있는 꽃밭한가운데서 안해인 김순희가 그우에 씌웠던 비닐박막을 벗겨놓고 활짝 핀 꽃을 한송이두송이 쓰다듬고있었다. 계절을 앞당겨서 피우려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노력한 보람이 있어 천수국과 만수국이 여기저기에 만발히 피여났다.

《꽃아! 우리의 심정을 알아주어 고맙구나.》

김순희는 한쪽손에 든 가위로 천수국 한송이를 살짝 자르며 꽃과 다정히 속삭이였다.

박창걸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안해를 지켜보았다. 동그스름한 얼굴, 좀 작을사 하나 매력있게 생긴 눈에서 향긋한 웃음이 차넘친다. 사랑과 향기는 건사해둘수 없다는 말이 있다. 김순희가 바로 그러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그가 다정한 눈빛언어로 가정의 화기를 조성하고 두 아들을 남보다 뒤지지 않게 참답게 키우지 않았더라면 박창걸이 어떻게 마음을 놓고 부대일을 잘할수 있었겠는가. 박창걸의 기름한 얼굴에 갑자기 그늘이 어렸다. 안해의 목에 감긴 붕대를 보자 걱정이 가슴을 쳤던것이다. 제발 다른 일이 없었으면…

련대지휘부뒤에는 넓은 부지의 남새밭이 있었다. 이 밭을 련대지휘부가족들로 조직된 남새반에서 가꾸었다. 사업에서 주도세밀한 련대정치위원은 병사들을 남달리 사랑하는 김순희를 남새반의 반장으로 추천했다. 이 추천이 박창걸의 반대에 부딪쳤는데 내막적으로 놓고보면 남편앞에서 김순희가 자기는 못하겠다고 했기때문이였다.

《난 반장이 아니라 선동원이 되겠어요.》

《혹시 반장우에 군림하겠다는건 아니요?》

박창걸은 평시에는 성격상 온순하고 군말이 없지만 일단 불의를 보면 칼날이 된다.

《내가 선동원이 되겠다는건… 뭐라고 할가요. 가장 평범한 반원의 위치에서 그 누구보다도 일을 잘하자는거예요. 일로써 선동하자는거예요. 반대없지요?》

실지로 김순희는 늘 호미를 먼저 들고 앞장에서는것으로 반장의 사업을 적극 떠밀어주고 남새반을 화목한 가정으로 가꾸는 말없는 선동원이 되였다.

명절날, 특히 날씨가 몹시 추운 밤이면 그는 더운 음식을 해가지고 교환대의 녀병사들, 남달리 수고하는 초소의 군인들을 찾아가군 했다. 병사들을 위해 너무 무리해서인지 녀인의 건강상태는 그닥 시원치 못했다. 어느날 보초소의 병사들에게 불들을 깔아주려 밤길을 걷던 김순희는 아차 실수하여 넘어지며 목부위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모두들 걱정했어도 간호원출신인 그는 별일없다고 하면서 제손으로 치료를 하며 남새밭에 계속 나갔다.

《명성이 어머닌 몸도 불편한데 제발 일은 그만두세요.》

시력장애까지 와서 애먹는 그를 보다못해 련대정치위원의 안해가 이렇게 만류했다.

《고양이손도 빌려써야 할 이때 밭머리에 앉아만 있을바에야 뭘하러 나오겠어요. 남편들이 싸움준비를 위해 밤낮으로 뛰는데 우리 오이모 한포기라도 더 잘 가꾸어서 병사들의 식탁을 푸짐하게 해주자요.》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어제저녁 박창걸은 안해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보! 내가 래일 평양으로 올라가는데 이렇게 하기요. 적십자종합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봅시다. 당신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닌것 같아서 그러오.》

김순희는 쌍겹진 작은 눈가에 그윽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별치 않은 병을 가지고 평양에 간다 어쩐다하는것이 량심상 허락치 않아요.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갔다오세요.》

바로 이런 일로 하여 꽃밭속의 안해를 지켜보는 박창걸의 얼굴에 근심의 그림자가 비낀것이다. 인기척을 느낀 김순희가 남편을 마주보며 꽃과 함께 웃었다. 《곱구만!》하는 남편의 말에 김순희는 손에 들고있던 꽃을 내려다보았다.

《꽃이니까 곱지요.》

《꽃도 곱지만 그 꽃을 가꾼 당신은 더 곱소.》

《어쩜… 그런 롱을 다하고… 모란봉우에서 저에게 사진을 주던 날의 그 인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당신이 막 미워요.》

《또 또…》

《호호…》

김순희는 가볍게 웃으며 정성껏 가꾼 몇송이의 꽃을 꽃병에 꽂아서 남편에게 내밀었다.

《정말 몸이 일없겠소?》

《남자가 집걱정을 너무 하면 큰일을 못한댔어요.》

김순희는 남편의 등을 떠밀었다.

승용차는 곧 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평양을 목적지로 하여 떠날 때마다 그의 가슴속엔 못잊을 그리움이 가득차군 한다. 박창걸은 수령님께서 서거하셨다는 비보를 접한 그날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앉는것만 같았다. 안해와 함께 온밤 수령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울고 또 울었다.

평양으로, 만수대언덕으로… 그날부터 오늘까지 그는 사업상용무로 평양으로 갈 때마다 집에서 정성껏 심어가꾼 꽃을 가지고 만수대언덕우에 모셔진 김일성동지의 동상에 찾아가는것을 어길수 없는 일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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