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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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다기슭에 감시병의 야멸찬 구령소리가 울렸다.

《〈적〉구축함 발견!》

훈련정황을 알리는 감시병의 보고에 뒤따르는 비상소집구령소리… 중대가 끓기 시작했다. 전투준비를 날쌔게 하고 바다가로 총알같이 내달리는 녀병사들, 각기 포진지로 바람처럼 스며든다. 《엿싸!》, 《엿싸!》하며 힘을 모아 포를 밀어내는 녀병사들의 웨침소리에 이어 포신들이 쑥쑥 머리를 내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급한 정황에 따라 날쌔게 전투행동으로 넘어가는 녀병사들의 동작들을 대견스레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시선이 한 녀병사의 홍조어린 얼굴에 닿은 찰나였다. 불원간 안색이 흐려지셨다. 녀병사의 뺨이 해풍에 터갈라진것을 발견하셨던것이다. 그옆에 있는 녀병사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고운 얼굴들이 텄구나! 그이의 안색은 가슴아픔으로 하여 흐려지시였다. 한창 맵시를 부리며 미모에 각별히 왼심을 쓰는 꽃나이처녀시절, 어서 오라 부르는 곳 많아도 조국이 더없이 소중하기에 군복을 입고 대포를 다루는 딸들의 얼굴들이 거친 바다바람에 터갈라졌으니 가슴이 저리시여 더 보실수 없으시였다.

화력복무훈련이 끝났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쁜숨을 몰아쉬는 녀병사들가까이로 다가가시여 다정히 물으시였다.

《대포를 다루기가 힘들지 않소?》

《힘들지 않습니다.》

《왜 힘들지 않겠소.》 갈라터진 녀병사들의 얼굴에 다시 시선이 가자 가슴은 더더욱 쓰리시였다.

포진지에서 병영까지는 한참길이다. 그이께서는 아픈 마음을 지그시 누르시며 바다기슭으로 구불구불난 길을 따라 걸으시였다. 사나운 기세로 밀려온 파도는 바위들을 물속에 잠그기도 하고 기슭의 방파제에 부딪치며 공중높이 솟아올라 물보라가 되여 흩어지기도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대마당을 지나 녀성군인들이 생활하는 침실에 들어서시였다. 한쪽옆에 있는 사물함앞으로 다가가셨다. 사물함우에 세면비누, 치약, 치솔, 크림통이 놓여있었다. 크림통을 손에 잡으시였다.

《이 크림을 발랐는데도 녀병사들의 얼굴이 텄소?》

《그렇습니다.》

그이의 옆에 서있던 녀성중대장이 대답올렸다.

《중대장의 얼굴도 텄구만, 응? 바다바람이 거칠긴 거칠어, 허. 바람이 아무리 거칠어도 우리 녀병사들의 고운 얼굴이 터서야 안되지. 고향의 어머니들이 보면 얼마나 가슴아프겠소.》

그이의 세심한 시선이 침실안의 이곳저곳을 세세히 더듬고있었다. 잠자리, 침실바닥, 창문… 쏴-처절썩! 귀가에 들려오는 파도소리, 바람소리… 파도, 바람, 창문, 잠자리의 호상련관속에 무엇인가 가늠해보시던 그이의 시선이 다시 창문에 닿았다. 여러개의 큰 창문이 한시선속에 들어왔다. 불쑥 이런 의문이 드셨다. 창문이 왜 이렇게 많은가? 병실안을 밝게 하기 위해서? 물론 병실이 밝은건 좋으나 큰 창문이 여러개면 그대신 찬바람이 스며드는데가 많아 온도는 떨어지지 않는가. 침실온도를 가늠해보셨다. 군인들이 생활해야 할 침실치고는 약간 추울것 같았다. 창문수를 결정적으로 줄여야 방안온도가 올라간다. 창문크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2중창, 3중창을 한다 해도 창문이 큰것과 작은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뭐니뭐니해도 겨울에는 병사들의 잠자리가 뜨뜻해야 한다. 중대가 병사들의 정든 집으로, 일당백의 총폭탄용사들을 키워내는 요람으로 되게 하자면 지휘관, 정치일군의 맏형, 맏누이다운 사랑과 아담한 병실, 따뜻한 잠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결정적으로 창문수를 줄이고 창문규격을 작게 해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드디여 창문가에서 돌아서시였다. 손은 창문을 가리키고 눈길은 일군들쪽으로 향하시였다.

《온도를 높이는데서 침실창문규격이 큰게 문제요. 창문수가 많은것도 마찬가지요. 한번 만들어놓으면 고정격식화로 굳어지는것도 건설부문에 남아있는 하나의 틀인것 같소. 내 생각에는 창문을 처마밑에 환기창형식으로 작게 내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거요. 먼저 시범적으로 해서 실지 온도가 얼마나 더 올라가는가 하는것을 정확히 측정해보고 실리가 있으면 전군적으로 도입합시다. 창문을 작게 하고 그 수를 줄이면 싸움준비측면에서도 아주 좋다고 보오.》

창문개조와 관련하여 곧 진행하여야 할 보여주기사업, 그에 뒤따르는 모든 대책까지 구체적으로 세워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침실을 나서시여 병영주변을 둘러보시였다. 아담한 병영, 한쪽엔 교양실과 련결된 중대사무실, 또 한쪽엔 중대식당과 취사장, 세목장, 그뒤엔 축사와 부업밭… 보면 볼수록 정이 드는 중대였다. 병실, 식당앞과 뒤뜰, 사적비둘레에는 가지를 무성하게 친 감나무들, 키높은 회령백살구나무들이 촘촘히 서있었다. 잎은 떨어졌어도 다감한 고향집정서를 풍겨주는 감나무, 백살구나무들… 녀병사들이 저 나무들에 감과 살구가 열리면 얼마나 좋아하랴. 양력설날 찾아갔던 중대에는 다박솔이 많은게 특징이라면 여기는 감나무가 많은것이 유별나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감나무를 가리켜 문, 무, 충, 효, 절이 다 있는 나무라고 했다. 감나무의 열매, 잎, 껍질은 약재로 된다. 무더위때는 시원한 그늘을 주고 벌레도 생기지 않는 나무, 가을에는 맛좋은 열매를 주고 락엽은 거름으로 되는 감나무를 가리켜 사람들은 일곱가지의 덕을 갖춘 나무라고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중대를 감나무중대라고 이름을 달아주자. 그러면 인민군대의 매 중대들에서 자기 지방의 특기를 살릴수 있는 과일나무들을 많이 심는것은 물론 그 과정에 애국심도 더 높이 발휘될게 아닌가.

얼마후 중대에는 장군님의 사랑이 어린 약크림이 도착했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찍은 사진첩까지 받아안는 영광이 이어졌다.…

중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급비닐레자로 뚜껑을 씌운 파란색의 두툼한 중대사진첩에 이어 자그마한 개인사진첩을 한장한장 련이어 번지는 야조브의 입에서는 시종 감탄사가 줄을 달았다.

《중대장동무, 이것은 웬 공백입니까? 보기 싫지 않습니까?》

《그건… 저…》

처녀중대장은 왜서인지 입을 가리우며 수집어했다.

현진국이 곁에 서있다가 《원수동지, 이 개인사진첩에도…》 하더니 그 사연을 설명했다.

《사진첩견본을 보아주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맨 앞장을 펼치시였습니다.

〈이 장에는 사진을 붙이지 말고 공백으로 남겨둡시다.〉

총정치국 부국장이 영문을 알수 없어 머리를 기웃거리자 그이께서는 사진첩을 가볍게 다독이셨습니다.

〈부국장동무의 가정에도 사진첩이 있겠지?〉

〈있습니다.〉

〈그 첫장에다 어느 사진을 붙였소?〉

부국장은 〈저… 우리 집사람이 사진배렬을 한걸 보니까 결혼식때 찍은 사진을…〉 하고는 좀 어색했는지 말끝을 얼버무렸습니다.

〈그것 보란 말이요. 이 녀병사들도 군사복무가 끝나고 고향에 돌아가면 애인이 생기고 결혼식도 하겠는데… 여기다 결혼사진을 척 붙이면 얼마나 좋겠소. 결혼은 인륜대사이고 결혼사진은 가정의 가보중의 가보가 아니겠소.〉

부국장의 얼굴은 수수떡처럼 붉어졌습니다. 제집 사진첩은 그렇게 하면서도 딸과 같은 녀병사들의 앞날까지 내다 못본 자책감때문이였습니다.》

야조브는 눈굽이 확 달아오르고 가슴이 격동되였다.

바다바람에 튼 처녀병사들의 얼굴과 약크림, 작아진 창문과 줄어든 창문수, 중대사진첩과 개인사진첩의 빈공백, 다박솔중대라는 이름에 련이어 생겨난 감나무중대… 물론 세부의 일단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것을 군인들을 일당백으로 준비시키는데서 놓쳐서는 안될 필수적요구로 제기하시고 총대강화의 첫 포성을 사랑으로 울리신 그 메아리는 얼마나 충격적인가.

백사장을 치는 파도소리가 바다의 노래마냥 정답게 들려왔다.

(대덕산! 그 처녀병사가 말하던 대덕산은 과연 얼마나 높고 군사적으로는 어떻게 중요한가? 조선에서는 어떻게 되여 대덕산, 대덕산 하는가?)

군사가인 야조브의 촉각은 더더욱 대덕산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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