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24

(1)


《잘 만들었소. 아주 현대적이란 말이요.》

김광훈이 만들어가지고온 훈련기재를 조종해보며 마음이 흐뭇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던 류경두는 전화종소리에 송수화기를 들었다. 장대식이였다.

《부군단장동무! 부부장 김천길동무와 함께 내 사무실로 좀 오시오.》

송수화기를 놓은 그는 김천길과 함께 군단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콤퓨터에 마주앉아 마우스를 쥐고 무엇인가 조종해보고있던 장대식이 여느때와 달리 그들을 친절하게 맞아주며 둥그런 얼굴에 여유있는 웃음을 담았다.

《콤퓨터로써 계산해낼수 없는 비밀은 현지를 밟아봐야만 밝혀낼수 있소. 10분내로 야전전투규정의 요구대로 전투장구류를 착용하고 여기로 오시오. 물통이 비여서는 안되오.》

그들은 어리둥절해졌다. 류경두는 더우기 영문을 알수 없었다.

10분후 장대식의 사무실에 들어선 두사람은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병사복차림에 자동보총, 배낭, 총창주머니, 탄창주머니, 방독면, 보병삽, 물통까지 휴대한 장대식이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어떻소? 병사복을 입으니까?》

《한 10년은 젊어보입니다.》

제일 큰 호수의 군복을 입은것 같은데도 군복바지가랭이가 쑥 올라가고 목단추를 채우지 못했다. 장대식은 작전탁우에 놓여있는 군용지도를 펼쳤다. 여러가지 색갈이 조화된 군용지도의 등고선우에 붉은 선으로 쭉 그어진것이 두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어도 그것이 이제 걷게 될 행군로정도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군용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류경두는 속으로 어지간히 긴장되였다. 제명산? 장대식은 여유작작한 몸가짐으로 군용지도를 가리켰다.

《늦게나마 동무들과 함께 제명산을 넘어보면서 있을수 있는 위험성, 훈련준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 위험구간, 시간 등 여러가지를 과학적으로 측정해보자는거요. 자, 떠나기요. 앞으로 전군단이 넘어야 할 산인데… 우리가 너무 늦었거던.…》

제명산은 밑에서 올려다보면 바람벽이 마주선듯 올리경사가 급하고 등성이에 올라서면 높고낮은 뾰족고지들이 왕톱날처럼 줄지어 늘어섰다.

높고 험하고 온통 바위투성이로 이루어진 제명산밑에 이르러 그우를 올려다보느라니 장대식의 생각은 많아졌다. 저리도 험한 산을 1시간 15분이나 당겨서 넘자니 병사들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아찔하게 올려다보이는 산마루, 발을 붙이기조차 힘든 산경사면… 장대식은 앞장에 섰다. 잡관목가지들을 휘여잡아당기며 한치한치 톺아올랐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기세가 좋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자 마음만 앞설뿐 몸은 올라가지 않았다. 제명산은 오를수록 험했다. 아직 날씨가 산산했어도 뒤잔등은 소낙비라도 맞은듯 인차 땀에 화락하니 젖어버렸다. 산정점을 향해 한참 올라가던 그는 피끗 뒤를 돌아보았다. 김천길과 류경두가 머리를 뒤로 제끼고 물통의 물을 마시는것이 보였다. 장대식은 목에서 단내가 났지만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자, 계속 앞으로! 힘들을 내오! 하지만 물은 아껴야겠소.》

오를수록 경사는 점점 급해졌다. 바위, 잡초, 잡관목, 그어간에 소나무며 오리나무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산발은 무엇이든 휘여잡고 몸을 끌어당기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었다. 갑자기 앞쪽에서 푸드득 하고 꿩이 날아올랐다. 헉-헉- 모두숨을 쉬며 계속 앞장에서 오르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몇메터의 사이를 두고 김천길이 따라왔다.

열댓메터 떨어진 류경두는 손수건으로 연방 이마를 문댄다. 물을 또 마신다. 허, 저러다가는 안되겠는데… 그 역시 목구멍에 불이라도 달린듯 입안이 타들었어도 소금 몇알을 입에 넣는것으로 이겨냈다. 아슬아슬한 바위짬으로 몸을 빼던 그는 발이 미끄러지면서 쭈르르 내리밀렸다. 나무가지를 잡고 가까스로 몸을 멈추고보니 손바닥이며 무르팍이 벗겨져서 몹시 쓰려났다. 김천길이 헉헉거리며 다가와 그를 일으켰다.

《군단장동지, 다치지 않았습니까?》

그는 도리머리를 했다.

《아니, 아무일도 없소.》

장대식은 힘겨움을 이겨내며 다시 앞장에 서서 산발을 톺아올랐다.

뒤로 바투 다가온 김천길이 보기가 딱했던지 한마디 했다.

《우리가 가겠으니… 돌아가십시오. 숨가빠서 어디 보겠습니까?》

《도중에 돌아설 길이야 떠나지부터 말았어야지.》

장대식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수건으로 연방 문지르며 퉁명스레 말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여 릉선에 올라선 장대식은 손목시계를 보고 놀랐다. 지도상거리를 놓고 계산해보니 10분이나 시간이 더 걸렸던것이다. 잠간 쉬고 또 걸음을 옮겼다. 한 고개를 가까스로 넘어서니 또 막아서는 바위고개, 바위고개…

따라서기 몹시 힘들어하는 두사람을 뒤에 달고 제명산릉선의 중간쯤에 이른 장대식은 기기묘묘하게 생긴 너럭바위잔등우에 주저앉아 휴식을 선포했다. 비지땀을 씻으며 군용지도를 펼쳤다. 현위치를 판정한 다음 손목시계를 보고나서 입을 쩝쩝 다셨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퍽 늦어지였다. 허참! 이런줄도 모르고… 제명산을 통과할수 있는 병사들의 행군능력을 뒤늦게야 판단하게 된 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모진 자책에 한동안 잠겨있었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장대식은 두사람을 돌아보았다.

《자, 여기서 점심밥을 해먹고 가기요. 각자는 자기의 밥통을 리용해야겠소. 시간은 30분!》

류경두와 김천길은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물통의 물을 다 마셔버렸던것이다. 그들은 쭈밋거리며 장대식의 눈치를 살폈다. 장대식은 그들을 못 본체 하고 배낭속에서 밥통을 꺼냈다. 이미 씻어서 말린 쌀을 그안에 넣었다. 메고있던 물통의 마개를 열었다. 그들이 보라는듯 밥통에 물을 콸콸 쏟아부었다. 오는동안 몇모금밖에 마시지 않았으니 밥물을 붓고도 어느 정도는 남았다. 물통을 그들앞에서 흔들어보았다. 물소리, 물소리, 산릉선을 울리는 물소리… 갈증으로 하여 목젖이 달아있던 류경두는 장대식의 물통에서 나는 물소릴 듣자 입을 다시며 군침을 삼켰다.

그렇지만 마시자는 말을 입밖에 내지 못했다.

《밥은 짓지 않고 왜들 가만히 앉아있소?》

김천길의 얼굴엔 몹시 급해하는 기색이 력연했다.

《물이 없어서…》

《물? 다 마셨소? 난관극복정신이 영 없구만! 난 물생각이 날 때마다 소금을 몇알씩 입에 넣군 했소.》

《저… 미안한대로 물이 남은게 있으면 좀 꿔주십시오.》

김천길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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