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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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에 위치하고있는 갈산영예군인철제일용품공장은 겉보기에 그닥 커보이지 않았다. 나라안의 적지 않은 공장, 기업소들에서 전기, 자재, 원료때문에 생산활동이 멎었어도 여기서는 기계의 동음소리가 힘차게 울려나오고있었다. 역경을 맞받아가며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가고있는 영예군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안고 접수구에 다가간 김광훈은 경비원아바이에게 말을 건넸다.

《김경국영예군인동지를 만나자고 왔습니다.》

아바이의 주글주글한 얼굴에 난감한 빛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얼마전에 병원에 입원했다우.》

일순 손맥이 탁 풀렸다. 군단장동지는 꼭 김경국이를 만나 훈련기재를 만들어가지고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고 하여 그냥 돌아갈수도 없었다. 담배를 례절있게 권하며 물었다.

《아바이, 김경국동지에 대하여 잘 압니까?》

《알다마다요. 이 공장에서 30년가까이 일해왔지요. 참, 그 사람의 안해를 만나보는것이 어떻소?》

어쨌든 그의 안해라도 빨리 만날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마음이 이상스레 설렁거렸다. 그 김경국이가 틀림없이 연금이네와 그 어떤 련계가 있을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연금이네 집이 바로 여기 갈산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군단장동지가 꼭 김경국이를 만나보라고 한것도 어딘가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기도 했다. 혹시 연금이의 아버지가 김경국이 아닐가? 이런 생각이 뇌리를 쳤다. 연금이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미처 물어보지 못한 후회가 뒤따랐다.

10분쯤 지나서 경비원아바이의 련락을 받은 중년의 녀인이 정문을 거쳐 나왔다. 녀인은 그를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대뜸 《광훈이가 아닌가? 맞구만. 내가 연금이 어머니야.》 하고 반색을 하며 그의 두팔을 부여잡았다.

《예?》

광훈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기 추측이 틀림없었다는 확신과 함께 갑자기 몸건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망결에 거수경례를 하면서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이렇게 제발로 찾아오는걸 눈이 새까매서 기다렸구만. 마침 잘 왔네. 오늘 연금이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한다네.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집에까지 차로 모셔갈테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네. 정말 좋은 세상, 좋은 사람들이지…》

사위감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말하는 녀인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 고였다.

김광훈은 연금의 어머니와 함께 한 아빠트앞에 이르렀다.

《당에서는 영예군인이라고 이 좋은 살림집을 선참으로 배정해주었다네. 참, 우리 연금이 소식을 모르나?》

광훈은 급해맞아 《일이… 바쁘다나니 만나본지 오래서…》 하며 얼버무려넘겼다.

김광훈은 녀인의 알뜰한 손길이 느껴지는 살림집에 들어섰다.

연금이네 집은 모든것이 소박하고 깨끗했다.

김광훈은 연금이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하여오기 전까지 연금이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 군사복무를 더 하고싶어하는 연금이의 심정을 광훈이가 깊이 리해하지 못하고있다는것을 느낀 녀인은 은근히 바빠하는 기색이더니 《연금이 아버진 참… 오해가 생기기 전에 미리 말해주었어야 하는건데…》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웃방으로 올라가 색이 바랜 두툼한 책 한권을 가지고 내려왔다.

《이걸 읽어보라구. 연금이 아버지가 이따금 자기 생각을 적어놓군 하는 일기장이라네.》

김광훈은 일기장을 받아들었다.


1963년 ×월 ×일

오늘 병원에 입원한 나를 찾아 다른 부대로 소환되게 된 김하규소대장동지가 왔다. 나를 지켜보는 소대장동지의 얼굴은 매우 침중했고 눈굽은 젖어있었다.…


순간 광훈은 와뜰 놀랐다. 이게 뭔가. 그럼 연금이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구원해준 그 생명의 은인이란 말인가. 김광훈은 자기도 모르게 연금이의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연금의 어머니는 어딘가 대견해하는 눈매로 자기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약간 끄덕여보인다. 광훈은 가슴에 불덩이같은것이 뚝 떨어져 들어와앉는감을 느꼈다.

서둘러 일기장의 글줄을 다시 타고 읽어내려갔다.


…그는 겉보기엔 무뚝뚝해도 속은 매우 뜨거운 인간이다. 수첩에 자기 집주소를 적어주며 절절히 부탁했다. 제대되면 내 위치를 편지로 꼭 알려야 한다고… 나는 소대장동지의 그 심정을 잘 안다. 나를 어떻게든 도와주고싶어서일것이다. 그것을 느끼게 될수록 새로운 초소에 가서 누구보다 바삐 뛰여야 할 소대장동지에게 사소한 부담이라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대덕산, 대덕산! 어버이수령님의 현지교시를 끝까지 관철하지 못하고 중대를 떠나게 된것이 정녕 안타깝다.

(어버이수령님! 전사는 초소를 떠나가지만 이 가슴속에 대덕산의 넋을 안고가겠습니다.)


×월 ×일

오늘은 나의 한생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날이다.

일요일이라고 하여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수 없었다. 그래서 고로쇠나무로 인민군부대에 보내줄 무기소제도구를 깎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 누군가 문밖에서 주인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지팽이로 문을 열자 깜장치마에 하얀 옥양목저고리를 입은 소박한 처녀가 방에 들어와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누군지요?》

처녀는 살며시 웃으며 품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꺼냈다.

《저… 오빠의 편지를 가지고왔습니다.》

감처럼 익은 처녀의 얼굴은 동그스름했고 쌍겹진 두눈은 반짝거렸다.

한마디로 복스럽게 생긴 처녀였다.

《오빠가 누굽니까?》

《곽명철이라고… 경국동지와 한포에서 복무했다고 했습니다.》

《아! 탄약수!》

처녀는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편지와 함께 공민증을 내밀었다.

(공민증은 웬걸가?)

이런 의문속에 편지를 펼쳤다.


《경국동지! 해를 넘기며 소식 한장 없었던 이 탄약수를 욕많이 했으리라고 봅니다. 실은 전우구실을 하느라고… 오늘 내 누이동생 후연이가 경국동지와 일생을 같이하기로 결심하고 결혼등록부터 먼저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누이동생과 함께 법적으로 결혼이 승인되고 공인된 공민증도 함께 보내니 부디 행복하여 대덕산병사의 넋을 끝까지 이어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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