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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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살같이 달렸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길옆의 가로수들이 휙휙 뒤로 나자빠지는것 같다. 김연금은 달아오른 속을 식히려고 운전칸의 유리를 반쯤 내리웠다. 세찬 바람이 귀가를 스친다. 윤기어린 머리칼이 세차게 나붓긴다. 연금은 두눈을 살며시 감고 심호흡을 한껏 했다. 힘차게 솟구친 앞가슴이 한껏 불어났다가 가라앉았다.
(영숙분대장이 남동생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가. 그 예쁘게 생긴 깜장눈에 가랑가랑 고이군 하던 안타까움의 눈물이 이젠 기쁨으로 반짝이게 됐어.)
시간도 있고 하여 그는 이번에 정영숙분대장의 남동생입대문제를 풀기 위해 출장을 갔다오는 길이였다.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것 같았다. 군인민병원 원장은 중대군인의 남동생때문에 두번째 걸음을 하는 연금이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정치지도원동무! 정영숙분대장의 남동생이 이젠 거의나 회복단계에 들어갔소. 마음놓고 돌아가도 되겠소. 자, 마침 대덕산방향으로 가는 차가 있으니 어서 떠나오.》
이제는 정영숙분대장의 남동생문제도 기본적으로는 해결된셈이다.
자동차는 기세좋게 달렸다. 눈앞으로 가로수가 흐른다. 가로수뒤로는 산발이 흐른다. 산발우의 하늘가에는 목화솜같은 흰구름이 떠있다. 흰구름너머 멀리에는 평양의 하늘이 있다. 평양의 하늘을 우러르느라니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버지는 이 딸에게 늘 가르쳐주셨지요. 이 세상에 녀성들은 많아도 총과 인연을 맺은 처녀들처럼 아름다운 녀성은 없다고 말이예요. 아버지는 이 딸이 부대에 남아 중대정치지도원으로서 못다한 일을 계속하자고 하는데 찬성하시지요?
자동차에서 내린 그가 산비탈밑으로 난 길을 에돌아 중대마당가에 들어섰을 때였다. 낯선 장령이 중대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교양실에서 나오고있었다.
《군단정치위원동지, 저 동무가 바로 김연금동무입니다.》
김연금은 어딘가 긴장해진 눈으로 허리가 약간 구부정하면서도 눈매에 인정미가 넘치는 장령을 마주보며 거수경례를 했다.
《김연금동무! 먼길을 갔다올래기 수고했소.》
강창운은 대덕산쪽을 향해 돌아섰다.
《중대장동무! 김연금동무! 오늘 병사들을 만나 담화해보니 거 누구더라? 귀엽게 생겼고 글을 아주 잘 쓴다는 병사…》
《리하경동무 말입니까?》
《옳소, 그 병사는 날보고 말하기를
《정치위원동지! 저의 복대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김연금은 안타까움에 젖은 눈으로 강창운을 쳐다보았다.
《너무 성급해하지 마시오.》
강창운은 빙긋이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때 《정치지도원동지!》하는 부름소리와 함께 훈련장에 나갔다 돌아오던 수십명의 병사들이 달려오다가 강창운이를 보고 주밋거렸다.
강창운은 연금이에게 어서 가서 병사들을 만나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연금이 그들에게로 몇걸음 다가가자 《정치지도원동지!》하고 병사들이 와 달려와 연금을 에워쌌다. 저저마다 연금의 손이면 손, 어깨면 어깨, 목이면 목에 마구 매달리며 기뻐 어쩔줄을 몰라한다.
강창운은 병사들과 한덩어리가 된 연금이의 모습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만약 병사들을 위해 기울인 사랑이 없고 바친 땀이 없다면 출장갔다온 정치지도원을 저리도 반갑게 맞지는 않을것이다.
여러 병사들을 비집으며 유별스레 눈이 작고 새까만 한 녀성군인이 연금이의 손을 꼭 잡는다. 《우리 남동생때문에…》 하더니 연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며웃는다.
《영숙동무! 충혁이가 멀지 않아 인민군대에 입대하게 될거예요.》
그러자 영숙이 만세를 부르듯 두손을 번쩍 쳐들고 소리쳤다.
《동무들! 내 동생 충혁이가 군복을 입게 된대요.》
박수소리가 울렸다.
강창운은 김연금과 병사들의 뜨거운 감정세계를 깨고싶지 않아 슬그머니 돌아서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