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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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 되였다. 회의실에는 긴급협의회에 참가했던 성원들이 다시 모여앉았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의자에서 일어선 그는 자기의 결심을 이렇게 선포했다.

《동무들! 나는 긴장해질대로 긴장해진 나라의 자금사정을 알면서 아직은 미지의 길이라고밖에 볼수 없는 ㄴ방안을 채택할수 없습니다. 더 론하지 말고 처음방안대로 나갑시다.》

회의실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리주명동무! 어떻게 생각하오?》

몹시 실망한 리주명은 어깨가 축 처져가지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여 처음방안대로 시제품이 생산되였던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였던가?


이 나라의 마음어진 녀인들이여 물어보자

아직은 낟알이 넉넉치 못한 이 땅에서

배고파 우는 아기를 우리 달래본적은 있어도

피젖은 파편에 사지가 찢기고

창자가 쏟아져나온 어린것들을 붙안고

기절해버린 어머니가 있었던가 말해보라


낟알이 없으면 사람이 죽는다 했다

하지만 무쇠주먹이 없으면

민족이 멸족되고 나라가 통채로 없어져도

하소할 곳 없는 이 세상!


그때문에 허리띠를 조여맨 인민앞에서

돌을 씹으시듯 아픔을 깨물면서도

나라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정의의 핵을

기어이 안겨주신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


만약 김하규가 오늘까지 살아있으면서 세상사람들을 감동시킨 한 시인의 이 웨침을 들었더라면 생각이 얼마나 깊어졌겠는가.

조국에 대한 가장 뜨거운 사랑과 총대에 대한 사랑을 하나로 결합시켜 이 세상 그 어떤 원쑤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강국으로 키워주신 바로 이것이 후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밝혀주신 김정일애국주의의 진수의 하나라는것을 이때까지만 해도 다는 알수 없었던 그였다.

따르릉! 하고 울리는 전화종소리가 그의 번뇌를 깨웠다.

김하규는 황급히 송수화기를 손에 가져갔다.

《김하규 전화받습니다.》

《아직도 퇴근하지 않고있구만. 내 이럴줄 알았소. 지금 뭘하고있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목소리를 들으니 현진국이였다.

김하규는 입술이 굳어져버렸다.

《저…》

《김하규답지 못해, 주눅이 들어가지고… 대덕산에서 장대식동무와 싸움준비를 놓고 겨루던 젊은 시절의 그 결패는 다 어디로 사라졌소? 일을 하느라면 비판을 받을수도 있는거요.

지휘관의 실력과 능력은 싸움준비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장군님의 의도에 맞게 가장 빨리,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심채택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데서 발휘된다고 나는 생각하오. 그 과정이 매우 힘들기때문에 정치일군과 협의하고 의거하라는것이 아니겠소. 생각해보오. 설사 자기가 아무리 명석하다 해도 독단, 주관, 소총명을 부려서 잘되는 일이 어디에 있소? 바로 그렇기때문에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천하지대본인 일심단결에 군정배합까지 잘되면 싸움준비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원만히 수행할수 있다고 가르쳐주신거요.

물론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류성-2〉호의 기술적개조를 위한 ㄴ방안이 제기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동무에게 집중되였다고 하오. 결정적인 그 시각, 물론 함께 의논할 정치부장이 없기는 하였지만 동무가 우리 장군님의 조국에 대한 사랑, 그 무한대의 폭과 깊이를 다 몰랐다는데 문제가 있는거요.》

징- 하는 전류흐름소리가 울려왔다.

《이쯤하고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겠소.》하고난 현진국은 장군님께서 광훈이와 연금이에게 돌려주신 친아버지와도 같은 각별한 관심, 그 과정에 김하규가 오랜 세월 잊지 못해하던 김경국의 행처를 찾아낸 사실, 그의 딸이 다름아닌 연금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김하규는 목이 컥 메여올라 송수화기를 꽉 부둥켜안고 뜨거운것을 쏟고야말았다.

김하규는 자정이 퍼그나 넘어서야 집에 들어섰다.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안해 로은숙은 남편의 컴컴해진 얼굴을 이상스레 여겨보았다.

김하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 방에 들어와 탁상콤퓨터가 놓여있는 책상앞의자에 앉아 담배를 붙여물었다. 우묵한 두눈, 짙은 눈섭, 넓은 미간에는 번뇌의 감정이 무겁게 슴배여있었다.

김하규가 찾지 않았지만 안해가 어서 약을 들라는듯 따뜻한 물사발을 들고 방에 들어섰다. 약을 먹고나자 이번에는 밥상을 차려놓고 그의 등뒤로 다가와 조용히 알렸다.

《어서 식사하세요, 시장하실텐데…》

그는 또 한번 긴숨을 내쉬였다. 담배연기가 비자루모양으로 길게 뿜어 나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니예요?》

로은숙이 거듭 물어서야 김하규는 괴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 배은망덕했소.》

《예?》

《장군님의 의도를 제때에, 제대로 받들지 못했단 말이요.》

로은숙은 금시에 울상이 되였다.

《어쩜… 그럴수 있어요? 어쩜…》

녀인은 억이 막혀 더 말을 못했다. 김하규는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자나깨나 자기의 사업을 성심성의로 받들어온 안해에게도 죄스럽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예요?》

로은숙의 눈가엔 눈물까지 가랑가랑 맺혔다.

《아무래도 내 의지가 약해졌나보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앞을 내다 못보는 청맹과니가 되였단 말이요.》

《그럼 이젠 어떻게 해야 해요?》

《이제부터라도 의지를 강하게 가다듬어야지. 정말 내가 왜 이렇게까지 물렁팥죽이 되였는지 알수 없구만.》

이날 밤 그는 잠을 자지 못하고 모대기였다. 어느 사이엔가 담배재털이에는 꽁초가 수북이 쌓였다.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김하규는 창가로 눈길을 보냈다. 아침노을이 불타오르는 저산 우측 남쪽 저 멀리에 솟아있을 대덕산이 눈앞으로 바투 다가오는것 같았다.

문득 장군님의 목소리가 심장의 흉벽을 쾅쾅 울린다.

그렇다, 나는 대덕산을 잊고 살았다. 지리적으로뿐아니라 마음속으로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내가 몹쓸병에 걸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시작되였을 때부터 별로 초조해졌고… 그 과정에 의지도 물러졌다.

내려가자, 내 한생을 억세게 버틸수 있는 사상과 의지의 지지점인 대덕산으로! 바로 이것이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집행하는데서 나서는 나의 첫번째 선택이다.

새로운 결심의 선택은 목표가 정확한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법이다.

뜬눈으로 새날을 맞은 그가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김성민이 바삐 들어섰다.

김성민은 놀라운 표정으로 김하규의 충혈진 눈을 의아스럽게 마주 보았다.

《난 어제밤 뜬눈으로 지새웠소.》

《그러니 장군님께서 벌써 다 내다보시고…》

《예?》

김하규는 어리둥절해졌다.

김성민은 격정에 겨워 말을 이었다.

《장군님께서 어제밤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그이께서는 김하규동무가 회의에서 비판을 받고 생각이 좀 깊어질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량심을 믿는다, 걱정스러운것은 김하규동무가 너무 일에만 몰두하며 건강을 돌보지 않다나니 몸이 매우 약해진것이다, 그러니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게 한 다음 당분간 료양을 가게 하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김하규의 얼굴에는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일렁거렸다.

《정치부장동무! 세상에 우리 장군님같이 뜨거운 덕망을 지닌분이 또 어디에 있겠소. 장군님의 그 하해같은 믿음을 생각할수록 정말 죄스럽기 그지없소. 나는 료양소가 아니라 대덕산으로 내려가겠소.》

《갑자기 대덕산이라는건 뭡니까?》

《그렇소. 난 정신적인 치료부터 먼저 받아야 할 몸이요.

지금 대덕산전구에서는 장군님께서 새로 지펴올리신 총대강화의 불길이 거세차게 타오르고있소. 난 배낭을 지고 들끓는 그 현실속에 들어가 배우기도 하고 단련도 하고 포를 직접 다루는 지휘관들과 병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도 하면서 나자신을 정신적으로 먼저 단련하는것으로부터 〈류성-2〉호의 기술적개조의 새로운 불길을 지펴올리자고 하오.》

김성민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오른손주먹을 왼손바닥에 철썩하고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좋습니다. 내 이럴줄 알았습니다. 무엇이든 시작을 떼면 오분열도식이 아니라 끝장을 보고야마는 그 불같은 성미를 막고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되 병원에는 먼저 들렸다 가야겠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아무렴, 가야지요.》

김하규는 정말 병원에 갔다. 그러나 구강치료만을 받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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