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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 회

21

(1)


봄빛이 짙어가는 창밖에서는 저녁해가 마지막잔광을 뿌려주고있었다.

인민무력부 회의실에서 진행된 훈련총화에 참가했다가 방금 돌아온 김하규는 사무실 한쪽벽에 놓인 쏘파에 까딱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단단한 체구, 의지가 굳세보이는 턱, 우묵한 눈에서는 자책의 아픈 빛이 력력히 내비치고있었다.

그는 쏘파팔걸이에 왼팔굽을 박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고인채 자기를 심각히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오늘 회의에 참가하여 여러 측면에서 강한 충격을 받은 그였다.

훈련총화이자 곧 전투총화로 되게 하라는것이 장군님의 의도였다. 때문에 회의에서는 당이 제시한 군사강국건설사상을 높이 받들고 이번에 진행한 타격훈련 전과정과 지난 시기 총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싸움준비에서 이룩된 성과와 경험, 결함들이 동시에 신랄히 분석총화되였다. 물론 포병싸움준비에서 거둔 성과들도 높이 평가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류성-2》호라고 찍어서 밝히지는 않았어도 포병싸움준비부문에서 당이 제시한 최첨단요구를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한 결함이 지적될 때 그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숨이 막혀서 머리를 들수 없었다.

김하규는 후- 하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류성-2》호의 기술적개조를 둘러싸고 자기와 리주명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한동안 관하부대들의 포병싸움준비에서 제기되는 문제때문에 자리를 떴다가 청사로 돌아온 김하규는 정치부장 김성민과 만나 인사말도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에 착수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연방 전화가 걸려왔던것이다.

장대식의 기질이 땅크와도 같은 내밀성과 드센 손탁이라면 김하규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분산이라는것을 모르고 모든 정력을 한곬에 쏟아붓는 말하자면 탐조등불줄기와도 같은 강한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지휘관의 사색은 하나, 자기 부문의 싸움준비완성이다! 그는 이런 의지가 매우 굳었다. 누군가는 시작을 믿지 말고 결과를 믿으라고 했다. 포병무력의 최첨단 현대화를 더욱 다그칠 무거운 중임을 맡고있는 그는 《류성-2》호의 기술적개조만이 아니라 포병부문의 전반적싸움준비를 맡아안고 사색하고 작전하고 추동하고 지휘해야 하였다. 그러자니 제기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류성-2》호의 만단의 전투준비완료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송수화기를 들고 교환수에게 지시했다.

《기술혁신조에 나가있는 연구소 소장동무를 찾으시오.》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정치부장 김성민이 조용히 들어섰다.

《항상 바쁘니 최근에는 한번 허리띠를 늦추어놓고 마주앉을 시간이 없군요.》

어딘가 섭섭한 감정이 깔려있는 김성민의 목소리다.

《어쩌겠소. 요즘엔 몸이 둘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요.》

김성민은 작전탁과 마주한 맞은켠의자에 앉으며 손에 들고들어온 협의문건을 그앞에 내밀었다. 그때 교환수의 목소리가 귀가에 울렸다.

《연구소 소장동지가 나왔습니다.》

《〈류성-2〉호의 기술적개조를 위한 설계가 어떻게 됐소?》

전화를 걸면서 김성민이 내민 문건을 읽어본 김하규는 얼른 수표를 하며 물었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총설계를 맡은 리주명동무가 ㄴ방안이라는것을 새롭게 들고나오는통에 문제가 좀 복잡해졌습니다.》

《ㄴ방안?》

《총설계를 맡은 실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나오니…》

소장은 리주명에 대한 의견을 은근히 암시하고있었다.

《내 오늘중으로 거기에 가겠으니 기다리시오.》

그는 어딘가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송수화기를 놓았다.

김성민의 낯색은 심중했다.

《어제 전화를 받았는데》하고난 김성민은 기술혁신조에서 견해가 일치하지 못한 실태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하고 그의 의견을 물었다.

《내 생각엔 먼저 현지에 나가서 구체적으로 알아본 다음에 론의해보자는거요.》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날 연구소에 내려간 김하규는 먼저 소장을 만나 제기된 문제를 초보적으로 료해한데 기초하여 리주명연구사를 만났다.

총명한 두뇌를 가진 리주명은 40대에 벌써 군사과학분야에서 적지 않은 일을 해놓은 재능있는 연구사이고 한 연구실을 책임진 실장이였다. 그는 연구사의 량심을 가지고 《류성-2》호의 기술적개조를 위한 연구사업을 계속 심화시켜나갔다. 그 과정에 ㄴ방안이라는것을 새로 착상하게 되였다. 그는 즉시 모형설계를 해가지고 소장을 찾아갔다. 소장은 그 모형설계를 한참 뜯어보고나서 수고했다고는 하면서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금이 많이 들어야 하는 설계안이였던것이다.

《내 생각엔 좀 곤난한것 같소. 이 방향으로 나가자면 많은 자재와 자금이 들어야 하지 않소. 이것을 생각해보았소?》

《…》

《자금이 긴장한 이때 우에서도 승인할것 같지 않소.》

《그렇다고 해서…》

《됐소, 됐소. 하여간 우에다 제기는 해봅시다.》

일장일단이 있는 문제를 놓고 두사람사이에는 좋지 않은 감정까지 야기되였다.…

리주명의 말까지 다 듣고난 김하규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일단 제기된 문제인만큼 긴급협의회를 열고 토론해봅시다. 혹시 좋은 타결책이 나올수도 있지 않소.》

한시간후, 김하규대장이 군사과학분야의 권위있는 로박사와 함께 회의실집행석에 들어와앉자 분위기는 기타줄마냥 팽팽해졌다. 모든 협의회참가자들이 사전에 ㄴ방안에 대한 충분한 연구단계를 거쳤다. 리주명은 초빙되여온 로박사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로박사는 리주명에게 있어서 초면손님이 아니였던것이다.

김하규는 우묵한 두눈을 가늘게 쪼프리며 위엄있게 협의회시작을 선포했다. 먼저 리주명의 변론이 시작되였다. 자기가 생각하는 ㄴ방안의 합리성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긴장으로 하여 도간도간 끊기고 약간 떨렸다.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지… 참가자들의 시선이 한쪽벽면에 걸어놓은 모형설계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회의장안의 고요를 깨며 소장이 먼저 일어났다.

《우리에게는 석달이라는 기간밖에 없습니다. 기간을 이렇게 설정해놓고 의견들을 말해봅시다.》

리주명이 다시 일어났다.

《저…》

《앉소, 앉소. 동무의 주장을 몰라서가 아니요. 대중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봅시다.》

김하규는 손짓으로 그를 앉히며 장내를 둘러보았다.

시간이 흘렀다.

소장이 력점을 박은 날자에 목이 걸려서인지 아니면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는 자재와 자금때문인지 일어서는 연구사가 없었다. 마침 로박사가 일어서며 따분한 공간을 메꾸었다.

《리주명동무가 생각하는 시도는 좋지만 그 실용가치는 아직 두고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석달동안에는 도저히 해결하기 바쁩니다. 보다는 많은 자재와 자금이 들어야 하는데 그 해결방도가 당장은 없지 않습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서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있습니다.》

큰 기대를 가졌던 권위있는 로박사까지 이렇게 나오자 김하규는 속으로 은근히 초조해졌다. 혹시나 하여 연구사들을 둘러보았으나 모두가 많은 사람들이 죽도 제대로 못 먹는다는 그 가슴아픈 현실을 생각하는지 어느 누구도 론쟁에 뛰여들 자세가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설계를 우리 식으로 추진시키는것도 기일이 걸리지만 그것을 실물로 만들자고 해도 결론적으로는 자재와 자금에 모든것이 귀착된다. 로박사의 방조속에 리주명이 착상한 방안실현에 들어갈 자금액수를 초보적으로 계산해본 김하규의 심중은 착잡해졌다. 매우 엄청난 액수였던것이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는 나라의 긴장한 자금문제를 두고 그리도 마음을 쓰시던 김정일동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인가 장군님을 모시고 《류성-2》호의 생산과 관련된 협의회를 할 때였다. 그이께서는 여기에 돌려야 할 자금지출과 관련된 문건에 수표를 하시려다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이 시각도 쌀이 없어 밥주걱을 쥐고 눈물을 지을 이 나라 녀인들을 생각하면서 이 문건에 수표를 하자니 정말 가슴이 아풉니다.》

이날 장군님의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절절히 느낀 김하규였기에 그후 《류성-2》호가 생산되여나오고 그것의 기동과 관련한 기술적측면에서 남이 못 보는 빈틈을 발견하자 나라앞에 손을 내밀지 않고 자력갱생의 힘으로 해보자고 나섰던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엄청난 자금을 국가앞에 요구한다면… 안된다, 그렇게는 할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 힘으로 《류성-2》호의 기술적개조에 당장 필요한 그 많은 자금을 해결할 방도도 없지 않는가.

《10분후에 다시 모여앉읍시다.》

정적(정치적적수)인 이 순간, 휴회를 선포한 그는 자기 결심의 지지를 받기 위해 연구소 소장방에 가서 김성민을 전화로 찾았다. 사무실이 비였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직일관을 통해 알아보니 한시간전에 총정치국에서 진행하는 강습에 참가하기 위해 떠났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것이였다.

속이 탔다. 정치부장동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수도 없었다.

갑자기 그는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감이 나면서 몸이 나른해짐을 느꼈다. 그는 바삐 군복안주머니에 넣고다니던 약을 꺼냈다. 보온병의 물을 따르는 그의 심중속에는 남은 생에 대한 우려와 조바심이 전신을 압박했다. 혹시 이러다가 영영 쓰러지기라도 하면 《류성-2》호의 기술적개조의 결말을 보지 못할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니다, 무조건 내손으로 끝내야 한다. 이미 설계한대로 내밀면 국가앞에 별로 손을 내밀 일도 없다. 그러나 ㄴ방안은 시작에 불과한것은 물론 자금 또한 많이 들어야 하지 않는가. 주저하지 말자. 초기계획대로 내밀자. ㄴ방안은 연구를 더 심화시키였다가 앞으로 나라형편이 좀 풀리는것을 봐가면서 해도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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