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17
(2)
…그날 김연금은 제대명령을 받고 중대로 돌아왔다.
마음속 깊이에 고이 안고있던 뜻을 이루지 못한채 군복을 벗게 된 섭섭한 마음을 금할수 없어서인지 눈가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가랑가랑 고였다.
(아! 어쩌면 좋아. 아버지가 무척 섭섭해하실텐데…)
그에게는 중대정치지도원으로 사업하는 전기간 늘 가지고다니면서 보군 하던 손바닥만한 수첩이 있었다. 이 수첩속엔 중대 병사, 사관들의 이름, 나이, 고향, 취미, 식성, 풀어줄 문제, 지어 개별적병사들의 소원과 마음속생각까지 다 적혀있었다. 여러해동안 리용하다나니 수첩표지와 모서리는 다스러졌어도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는 수첩이였다. 못 잊을 추억을 불러오는 수첩을 한페지두페지 넘기던 그는 《병사 리하경》에 이어 《분대장 정영숙》이라는 이름에서 시선이 굳어져버렸다. 과연 이들의 소원만이 아닌 중대병사들의 모든 소원을 다 풀어주지 못하고 중대를 어떻게 떠날수 있단말인가. 시작을 떼놓고 아직 채 매듭짓지 못한 일들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다. 남동생의 입대문제로 하여 남모르는 고민을 안고있는 정영숙분대장, 동생이 신체검사에서 불합격되여 군대에 입대하지 못한것이 너무도 안타까와서 그 심정을 써보낸 편지를 받은 후부터 늘 웃음만이 차넘치던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무겁게 실렸다.
언제인가는 연금이를 찾아와서 이렇게 호소했다.
《정치지도원동지,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 충혁인 늘 일당백고향에 와서 군사복무를 하고싶다고 했는데… 그 소원을 풀어줄 방도는 없습니까?》
연금은 정영숙분대장의 말이 너무도 절절하여 출장길에 우정 온천땅에 들렸었다. 분대장의 남동생이 쓴 편지를 들고 군인민병원에 찾아가 청년의 조국보위념원을 풀어주자고 간절히 부탁했다. 정영숙분대장은 지금 초조한 심정으로 동생이 입대하게 될 그날을 손꼽아기다리고있다. 제일 안타까운것은 병사들이 낮이나 밤이나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정치지도원동지, 사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 앞으로 대학에 가려고 입학시험공부까지 다 했댔습니다. 어느날 한 동창생동무의 집에 갔는데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이 벽에 여러상이나 모셔져있지 않겠습니까. 부러운 마음으로 눈길을 떼지 못하다가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 집엔
어머니는 어딘가 난감해하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날 정말 생각이 많았습니다. 온 가정이 식사를 하고 텔레비죤앞에 모여앉았을 때였습니다. 최전연초소를 찾으신 우리
저는 이렇게 되여 군대에 나왔습니다.
연금의 생각은 깊었다. 리하경병사의 소원이자 중대 전체 병사들의 소원, 아버지의 소원이였던것이다. 정영숙분대장의 남동생 입대문제를 내놓고도 아직 맏언니심정으로 풀어주어야 할일, 채 마무리하지 못한 일, 벌려놓은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새로 임명되여온 정치지도원이 맡아안고 해나가겠지만 언제 중대병사들을 다 파악하고 감정에 맞는 사업을 전개해나가겠는가. 중대는 인민군대의 기층조직이며 세포다. 중대가 일당백이 되여야 전군이 일당백으로 준비될수 있다.
아, 훈련도중에 몸을 상하여 군사복무가 불가능하게 될수도 있는 은하동무문제는 또 어떻게 할가? 아버지의 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하게 제기되였을 때
《기분상태가 왜 그렇소?》
김광훈은 연금이의 반짝이는 눈가에 어려있는 감정을 첫눈에 알아보고 물었다.
《오늘 제대명령을 받았습니다.》
연금이가 제대될 날을 속으로 은근히 기다려온 김광훈은 흔연스레 말했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각오해야 할 일이요. 자, 저기로 가자구.》
그들은 대대지휘부뒤산의 잣나무밑에 소복이 자란 잔디밭으로 조용히 걸어가 나란히 앉았다. 찬바람에 하느적거리는 마른풀대를 꺾어들고 만지작거리던 연금은 호- 하고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만약 내가
그는 손에 들었던 풀대를 똑똑 끊기 시작했다. 그러느라니
《광훈동지!》 어조는 어리광에 가까와졌다. 《전 군사복무를 1년쯤 더 했으면 합니다.》
《엉?》
김광훈은 리해가 안된다는듯이 연금이의 얼굴을 의아스럽게 마주보았다. 처녀는 예쁘장한 두눈을 살며시 올리떴다.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제대배낭을 지고 집문턱을 넘어설것 같지 못해서 그럽니다.》
김광훈의 낯빛은 점점 심중해졌다.
《아버지의 소원이라는건 뭐요?》
《이제 다 말하겠습니다.》
연금은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서로가 군사복무에 열중하느라 언제 한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슴속 이야기를 나누어볼새도 없었던 그들이였다. 그러나 이제야 제대명령을 받았으니 가슴의 문을 활 열어놓고 이야기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연금은 광훈이에게 하고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그러지 않아도 난 연금동무의 아버지에 대하여 알고싶은것이 많았소. 하지만 늘 서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이야기를 나눌새도 별로 없었지. 언제인가 우리 아버지가 동무 아버지에 대하여 묻길래 그저 영예군인이라는것밖에는 모른다고 대답했소. 그랬더니 아버지가 하는 말이 〈연금이의 아버지가 영예군인이라는거야 이미 말하지 않았니. 내가 말하자는건 장차 네 가시아버지가 될분인데 어떤 부대에서 어떻게 복무하다 영예군인이 됐는가 하는것쯤이야 알아야 하지 않겠니.〉 이러질 않겠소. 그래, 아버지가 어느 부대에서 군사복무를 했소?》
김연금은 달리는 살수 없는 자기의 심정을 절절히 터놓기 시작했다.
《광훈동지,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어요. 철이 없던 그 시절 저는 어머니를 도와준다면서 혼자 식료상점에 갔다가 그만 얼굴뜨거운 일을 저지른적이 있었어요.…
그날 아버지는 이렇게 꾸짖었어요.
난 남들이 감탄할만한 그 어떤 위훈을 세워서가 아니라 군사과업수행도중에 몸을 상하여 영예군인이 되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당에서는 큰 위훈도 없는 나를 시대앞에 높이 내세워주고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그래서 나는 늘 송구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데 넌 오히려 이 아버지를 턱대고 그런 못난 행동을 했다니 얼굴뜨겁기 그지없구나, 넌 영예군인집 딸 재세를 할것이 아니라 나라앞에 별로 한 일도 없는 이 아버지를 보살펴주고 내세워주는 당의 은덕에 대하여 항상 먼저 생각하고 그 보답의 위치에 서야 한다라고 말이예요.
그날부터 저는 많은 생각을 했어요.
광훈동지! 그날 저의 아버지가 말한 그 보답의 위치가 과연 어디겠어요? 사실 우리 아버진…》
연금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김광훈이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어딘가 모르게 초조해하는 느낌을 받았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