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17
(1)
《대대장동지! 60사단 기관총중대 정치지도원 김연금동무가 찾아왔습니다.》
천막안에서 종합훈련장에 림시 머무르는 동안에 진행할 훈련계획을 작성하던 김광훈은 직일관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섬찍했다. 연금이가 찾아왔다는 그자체는 반가우면서도 의문이 연방 꼬리를 물었다. 제대명령을 받은 연금동무가 여기에 왜 나타났을가? 나를 만나려고? 그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가?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가? 몇시간전에
《난 지금 몹시 바쁘오. 그러니 그 동무에게 잘 말해주시오. 시간이 있을 때 만나잔다고 말이요.》
그 시각, 김연금은 가슴을 조이며 직일관을 기다리고있었다. 마침 어둠속에서 발자욱소리가 나더니 직일관이 나타났다.
직일관은 어딘가 초조해진 눈으로 자기를 마주보는 연금이의 시선을 피하며 따분한 어조로 말했다.
《대대장동진 지금 몹시 바쁘답니다.》
(그러니 날 두번다시 만나지 않겠다는거로구나.)
연금은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이런 랭대나 받자고 이 먼길을 찾아왔던가. 분했다. 하다면 광훈동지가 나에게 그리도 열정에 넘쳐 그 많은 편지를 쓴것은 한갖 놀음에 불과했는가?
중대천막으로 돌아온 그는 밥도 안 먹고 맨옆에 누워 밤새도록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결심했다. 그가 그러겠으면 그러라지, 내가 갈길은 내가 개척해야 해.
날이 밝기 전, 연금은 중대장을 만나본 후 길을 떠났다. 어제 저녁도 아침도 점심도 굶은채 걷고 또 걸었다. 점점 두다리가 하사분해나면서 허기증이 오기 시작했다. 광훈이와 언쟁이 있은 날부터 입맛을 잃기 시작한 그는 계속 굶다싶이했다. 여기에 강한 정신적타격까지 받았다.
그래서인지 길이 가끔 두개로 보이더니 가로수가 거꾸로 서고 눈앞에서 수만개의 동그라미가 사물거리며 하늘땅이 휙 뒤바뀌였다.
《어머니!-》
처녀는 자기를 더 지탱하지 못하고 도로 한가운데 푹 꼬꾸라졌다. 바람이 안고온 먼지가 처녀의 함치르르한 머리우에 내려앉았다.
이때 길을 가던 한 녀인이 그를 발견하고 성급히 달려왔다.…
연금은 피곤에 몰렸다가 실컷 자고 일어나는 기분으로 두눈을 떴다. 아늑한감이 느껴져서 둘러보니 따뜻한 방에 누워있었다.
(여기가 어딜가?)
이불을 제끼고 조심스럽게 일어나앉아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깨끗한 살림방이였다.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벽에
《깨여났군요.》
연금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앉아요, 앉아있으라니까요.》
동그스름한 얼굴, 눈은 좀 작으나 매우 예쁘게 생긴 녀인이 그의 옆에 다정히 다가앉았다.
《아직도 빈혈이 와요?》
《괜찮아요. 그런데 이 집은?》
연금의 얼굴에 어린 의아함을 느낀 녀인이 가볍게 웃었다.
《저 사진을 보면 모르겠어요?》
연금의 눈은 다시 사진들이 모셔져있는 벽면에 가닿았다.
연금의 두눈은 경탄으로 빛났다.
《그럼 아주머니가 박창걸련대장동지의…》
녀인은 대답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그러니
《그래요. 내가 그 사진을 받은 녀자예요. 저 사진이 바로 처녀때 박창걸동지한테서 받은 사진이구요.》
《어쩌면…》
연금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일으켜 그 사진앞으로 다가갔다. 보면볼수록 경탄의 감정이 끓어오른다. 얼마나 행복한 녀성인가. 별빛같이 빛나는 처녀의 눈은 벽에 모셔진 사진들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청춘시절 처녀총각들이 서로 정이 흐르기 시작하면 제일먼저 주고받는것이 사진이다. 총각은 처녀의 사진을, 처녀는 총각의 사진을… 선을 볼 때에도 왔다갔다하는것이 사진이다.
연금의 자그마한 수첩갈피속에도 김광훈대대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찍은 독사진이 있었다. 언제인가 광훈이 자기의 사진을 달라고 할 때 《광훈동지의 사진을 주기 전에는 저도 안주겠어요.》 하며 값을 올렸더니 대대장으로 임명된 날을 기념으로 하여 찍은 사진이라고 하면서 슬그머니 손에 쥐여준 사진이였다. 그는 이 사진을 수첩갈피에 정히 끼워가지고 다니면서 그가 생각날 때마다 남몰래 꺼내보군 했다. 그러면 심장이 갑작스레 쿵쿵 뛰군 했다. 청춘남녀들이 서로 고이 간직하고있는 사진이야말로 사랑의 증표이기도 한것이다.
언제인가 연금은 《인민들속에서》를 학습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과연 어떤 처녀가
《이름이 뭐지요?》
《김연금이예요.》
《연금동문 정말 아름답군요. 저 눈 좀 보지.… 정말 정기가 차넘쳐요. 물론 사랑하는 총각이 있겠지?》
연금의 얼굴빛은 금시에 어두워졌다. 녀인의 물음이 마치 도화선이 되여 맺혀있던 감정의 폭발을 일으킨듯 얼굴을 싸쥐였다.
가슴속에 쌓이고쌓였던 설분이 터진것이다.
연금은 김순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몹시 당황해난 김순희는 처녀의 어깨를 부여안았다.
《내가 괜한 말을 했군요.》
그냥 흐느껴우는 연금이의 어깨를 쓰다듬는 김순희의 생각은 복잡해졌다. 이미 예감한것은 있었으나 그것이 애인문제와 련관되여있을줄이야 어이 알았던가.
과연 어떤 총각이 이리도 곱게 생긴 처녀의 얼굴을 눈물로 얼룩지게 만들었을가. 누군가는 남자의 인격의 높이는 녀성일반을 대하는데서 나타난다고도 했다. 김순희는 같은 녀성으로서 연금이를 도와주고싶었다.
연금이가 진정하자 어찌된 일인가고 물었다. 김연금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손수건으로 가끔 닦으며 가슴속사연을 터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