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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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을, 감빛저녁노을이 하늘가에 황홀경을 이루었다. 온 하늘에 널린 저녁노을을 바라보시며 걷는
《이번 훈련에 참가하게 된 구분대들을 여기에 전개시키는 과정에 제기되는 문제는 없었소?》
《병사들이 텔레비죤련속소설의 다음부가 어떻게 되겠는지 몹시 궁금하다고 하면서 저녁시간을 리용하여 시청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더러 제기되였습니다.》
종합훈련장에 나온 병사들이 텔레비죤을 보고싶어한다? 그렇다고 훈련길에 나선 병사들이 텔레비죤을 등에 지고다닐수도 없지 않는가.… 하다면 정치사업에서 중요고리의 하나인 훈련장에서의 텔레비죤시청문제를 풀어줄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가?
구분대들의 천막은 운동장맞은켠 산밑에 전개되여있었다. 그 주변을 둘러보시였다. 잎새 푸른 바늘잎나무들과 넓은잎나무들이 혼성림을 이룬 산발, 한창 자라는 나무를 찍은 그루터기들이
찬바람이 골바닥에서 휘이익 불어올라오며 바늘잎나무들이며 잡관목을 세차게 잡아흔들었다.
《여기로 오기 전에 김하규동무가 있는 곳에 들려보았소. 거기서는 아예 야전식당을 고정적으로 전개해놓고 리용하고있었소. 내보기엔 실리가 있는것 같은데 연구해보시오.》
장대식은
《하하하…》
갑자기 천막이 터져나갈듯 한 웃음소리가 울려나왔다.
《자, 이번엔 2중대 차례요.》
귀를 강구던 장대식이 바삐 천막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이어 천막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전혀 예견치 못했던 영광의 시각을 맞이한 대대장 김광훈은
이윽하여
아마도 다른 천막에서도 모여와 무슨 모임을 하던것 같았다.
《대대장동무,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오지 않소?》
《습기를 막기 위해 락엽을 두툼히 깔고 그우에 천막을 폈습니다.》
《무슨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하댔소?》
《고향자랑모임을 하던중입니다.》
《고향자랑모임이라… 계속하오.》
밝고 부드러운
한 병사가 달아오른 가슴을 들먹거리면서 자기의 고향인 청산리자랑을 하고 앉았다.
다음엔 얼굴이 갸름한 병사가 일어섰다.
《동무들! 나의 고향은 희천입니다. 그러나 원래 우리 가정은 대대로 판문군(당시) 대덕산리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전 다른 동무들과 좀 달리 우리 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나라없던 그 세월 땅 한뙈기조차 부칠수 없게 된 할아버지네는 대덕산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참나무로 숯을 구워 개성에 내다팔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숯쟁이신세였다고 합니다.
태고적부터 대덕산에는 참나무가 울창했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대덕산골안에서 품을 놓아 구운 숯마대를 손수레에 가득히 싣고 40리나 되는 개성장마당에 팔러 갔습니다. 마침 장마당입구에서 칼을 차고 거들먹거리던 왜놈순사가 숯을 사겠으니 제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놈의 집마당에 숯을 부린 다음 왜놈순사가 물었답니다.
〈값이 얼마인가?〉
〈1원 50전입니다.〉
〈1원 50전? 뭐가 그리 비싼가? 자, 받아라.〉
왜놈순사가 내주는 돈을 보니 숯을 굽는데 들인 공수에 비하면 너무도 적더랍니다. 가정의 명줄이 숯을 판 돈에 달렸는데 그 돈으로는 좁쌀 한되도 살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사정해도 그놈은 더이상 줄수 없다고 하더랍니다. 할수없이 할아버지는 그렇다면 안 팔겠다고, 다른 집에 팔겠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눈찌를 갈기며 할아버지를 흘겨보던 왜놈순사는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두마리의 군견을 동시에 풀어놓았습니다. 할아버지와 두마리의 짐승사이에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군견에게 물리우고 뜯기운 할아버지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비명소리를 듣고 주변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왜놈순사는 조선숯쟁이가 도적질을 하다가 잡혔다는 얼토당토않은 생트집을 걸었습니다. 겨우 살아돌아온 할아버지는 대덕산숯구이막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답니다. 대덕산기슭에 할아버지를 묻던 날 할머니는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대덕산아… 네 이름 분명 대덕산일진대 네속에서 나온 숯이 덕은 고사하고 왜 불행만을 주느냐? 넌 대덕산이 아니라 원한산이다. 원한산!〉
살길이 막막해진 할머니는 철부지였던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원한서린 고향땅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군복을 입고 초소로 떠나기 전날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꼭 일당백병사가 되여 나라를 지키고 할아버지의 원쑤도 갚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힘차게 울리던 박수소리가 멎었다.
《이름이 뭐요?》
병사가 기운차게 대답올렸다.
《옛, 전사 송위용입니다.》
《앉으시오. 방금 송위용동무가 아주 훌륭한 말을 했소.
나는 어느 한 반당반혁명분자가 〈일당백〉구호를 없애려고 했을 때 그것을 고수한 대덕산중대의 옛 로병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소.》
《하루는 자기의 정체를 가리고있던 반당반혁명분자가 대덕산에 올라왔소. 그때까지만 해도 〈일당백〉구호는 지금처럼 정대로 바위에 새기지 않고 빨간색으로만 씌여져있었다고 하오. 그자는 〈일당백〉이라고 빨간 글로 쓴 바위앞에 승용차를 멈춰세웠소. 그리고는 모자를 푹 내리쓰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니꼬운 눈초리로 구호바위를 흘겨보다가 이렇게 뇌까렸소.
〈일당백이라… 물론 사상이야 좋지. 그러나 우리가 일당백이라고 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비웃소. 혼자서 어떻게 백명을 당한다는거요. 뿐만아니라 유사시엔 방조도 주지 않소. 손자병법에도 일당백이란 말은 없단 말이요. 그러니 저 글자들을 당장 지우시오.〉
높은 직위에 있는자의 지시였으나 대덕산중대의 로병들은 그자의 권력앞에 눌리우지 않았소.
〈어림도 없다. 우리가 언제 남의 나라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외세의 힘을 믿고 혁명을 했는가.
동무들, 이것이 바로 60년대 대덕산부대 로병들의 신념이였소. 그후 대덕산중대의 로병들은 이 신념대로 그 누가 지시하지 않았지만 〈일당백〉구호를 천연바위에다 정으로 쪼아박아 새겨놓고 그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더욱 깊이 간직하였소.
지나온 력사가 보여주다싶이 총대의 강화도, 총대의 붕괴도 다 사상으로부터 시작되였소. 바로 그렇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