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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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을 벗어난 야전차들은 드넓은 벌의 한가운데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달리고있었다. 도로좌우 논밭에서는 농장원들이 두엄을 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깊은 눈길로 지게로 두엄을 져나르거나 걸이대로 논판에 두엄을 힝힝 뿌려던지는 농장원들을 여겨보시였다. 논옆길우에는 거름을 실어나르는 소달구지들만이 보일뿐이다. 나라의 긴장한 연유사정때문에 뜨락또르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농장원들은 올해농사차비로 들끓고있다. 어떻게 하나 농사에 필요한 연유, 비료, 비닐박막 등을 제때에 보장해주어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해결대책을 하나하나 따져보시였다. 야전차들은 어느새 둔덕길에 들어섰다. 길옆의 밭들은 지나가고 산봉우리들이 줄줄이 잇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험준한 산발을 타고넘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린다.

《그래 대덕산군단에서 그사이 무슨 좋은 방도가 제기된게 없소?》

곁에 긴장해서 앉아있던 현진국이 얼른 말씀드렸다.

《있습니다. 첫 발동이 걸렸습니다.》

《어떤거요?》

《두가지 혁신안이 나왔습니다.》

현진국은 새로운 높이에서 착상된 통과훈련계획과 새 종합훈련장을 꾸리는 문제가 제기된데 대하여 간단히 보고드렸다.

《그 잡도리가 마음에 드오. 최첨단설비를 갖춘 공장에서 시대의 요구에 맞는 제품이 생산되여나오는 원리라고 할가. 군사사업도 마찬가지요. 정치사상사업에서도 훈련내용, 훈련방법, 훈련장설비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혁신이 일어나야 수령님의 유훈인 〈일당백〉구호관철에서도 전진이 일어날수 있소. 소중한 싹이요. 잘 가꾸어주어 열매가 주렁지게 합시다.》

《알았습니다.》

야전차는 서산에 걸터앉았던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황혼이 깃들무렵에야 대덕산군단종합훈련장이 먼발치에 보이는 골안에 들어섰다.

어느 한 굽인돌이를 돌아섰을 때였다. 웬 녀성군관이 묵직한 배낭을 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뒤모습이 보였다. 무슨 생각에 그리도 옴했는지 등뒤로 야전차가 가까이 다가오는줄도 모르고 머리를 다소곳이 떨군채 발걸음만 재게 놀렸다.

《무거운 배낭을 졌구만.》

녀성군관이 등에 지고가는 팽팽한 배낭에서 줄곧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에게 나직이 이르시였다.

《어데까지 가는지 알아보고 태워다줍시다.》

야전차가 속도를 늦추며 열댓메터 뒤쪽에 이르자 녀성군관은 그제서야 발동소리를 들었는지 길옆으로 비켜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찰나 녀성군관의 갸름한 얼굴에서 류달리 정기도는 두눈이 일순 커졌다. 본능적으로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야전차가 서서히 멎었다. 뒤좌석에 앉았던 현진국대장이 차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동무!》

《넷! 중위 김연금!》

처녀는 허리를 펴며 차렷자세를 취했다.

《어디까지 가오?》

《군단종합훈련장까지 갑니다.》

처녀의 맑고 영민한 눈동자에 일순 놀라움이 비꼈다.

《어서 타오.》

《다 왔습니다.》

녀성군관은 아직 김정일동지께서 차안에 앉아계신줄을 모르고있었다.

《어서 타라니까.》

현진국이 독촉하자 급해맞은 처녀는 손을 내흔들었다.

《일없습니다.》

《이 동무 고집이 세다.》

그사이 김정일동지께서는 처녀의 모습을 지켜보시였다. 김연금이라는 이름을 들으시는 순간 피뜩 김하규부부를 접견해주었던 날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녀성군관이 아닐가 하는 예감을 받으셨던것이다. 무용수마냥 허리와 다리가 쭉 빠지고 륜곽이 뚜렷한 날씬한 몸매, 크고 정기넘치는 두눈… 흠잡을데가 별로 없는 처녀였다.

《소속이 어디요?》

마침 현진국이 물었다.

《60사단 녀성기관총중대 정치지도원으로 복무…》

왜서인지 처녀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김정일동지의 안색이 대뜸 밝아지셨다.

《맞구만! 김하규동무가 언제인가 말한 그 녀성군관이요.》

차문을 여시고 천천히 내리시였다. 꿈에서도 상상할수 없었던 인생의 가장 충격적인 행복과 불시에 맞다든 김연금의 까만 눈동자에는 놀라움과 아울러 이름할수 없는 격정이 확 피여올랐다. 두손을 앞가슴우에 모아잡고 어쩔줄을 몰라하더니 《장군님!》하고는 선자리에 굳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처녀의 량쪽어깨를 파고드는 배낭끈에 시선을 멈추시였다.

《배낭이 무겁겠소. 어서 벗소.》

《일없습니다. 이젠 다 왔습니다.》

그가 더 만류할새도 없이 뒤따라내린 현진국이 배낭을 벗겼다.

《배낭안에 귀한 보물이 잔뜩 들어있는 모양이요.》

그이께서 롱말을 건네시자 처녀는 급기야 배낭안의 비밀을 공개했다.

《보물이 아니라 콩입니다.》

《음, 그러니 훈련장에 나온 병사들에게 콩음식을 해먹이자는거겠소?》

《예.》

《중대에서 농사지은거요?》

《아닙니다. 사실은…》 연금이는 갑자르다가 얼굴을 붉히며 겨우 대답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병사들한테 빈손으로 갈수가 없어서 생각다못해… 친척집에서…》

그이께서는 나직한 어조로 물으셨다.

《지난해 중대에서 군인 한명당 하루 콩공급량이 얼마였소?》

《50그람이나 겨우…》

《콩을 많이 심지 못했구만.》

《콩을 심을만 한 밭이…》

연금의 목소리는 점점 기여들어갔다.

《음!》

그이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어서 차에 오르라고 하시며 처녀의 등을 가볍게 떠미시였다. 야전차는 곧 출발했다.

그이께서는 연금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으시였다.

《김광훈대대장과 가까운 사이라지?》

《예? 어마나! 그걸 장군님께서 어떻게…》

처녀는 눈이 올롱해졌다. 장군님과 김하규부부사이에 자기를 두고 오고간 이야기를 전혀 알수 없는 연금이에게 있어서 그이의 물으심은 실로 뜻밖이 아닐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내가 아는게 놀라운 모양이지? 허허허… 그래 김광훈대대장과 자주 만나오?》

연금은 가슴이 너무도 두근거려서 숨이 막히는것만같아 《저… 사실은…》 하고는 더 다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야전차는 종합훈련장가까이에 이르렀다. 연금은 점점 불안해지는 감정을 다잡지 못하다가 곁에 앉아가는 현진국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대장동지, 이젠 다 왔습니다. 내리겠습니다.》

연금이가 무척 바빠하며 서두르는양을 지켜보던 현진국이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장군님! 이 동무가 내리겠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연금이가 차에서 내려 거수경례를 올리는 모습을 보시며 의미깊이 말씀하시였다.

《김하규동무가 셋째며느리감을 아주 잘 고른것 같소.》

《제 보기에도 처녀가 인물 잘나고 마음씨 또한 곱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요, 그 처녀한테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게 없소?》

《?》

《내 보기에 처녀의 심리상태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보여서 그러오.》


김정일동지를 모신 야전차행렬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가 지금 꿈속에서 헤맨건 아닐가?)

김연금은 눈을 비벼보았다. 꿈은 아니다. 가슴이 세차게 들먹거렸다. 아, 이를 어쩌나. 그는 두손을 가슴우에 모두어쥔채 장군님께서 타신 야전차가 사라진쪽을 보고 또 보며 그 자리에 한동안 서있었다. 장군님께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 변변히 올리지 못하다니… 눈물이 샘솟듯 하고 가슴이 더욱 끓어번졌다. 살갗 맑은 얼굴은 흥분으로 하여 뜨겁게 달아올랐다. 인간의 한생에서 오늘과 같은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바람같이 흘러간 영광의 그 시각을 정지시켜놓고 자신의 행동거지에 수정을 가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는 도로옆 시내가 바위우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돌돌돌… 바위짬으로 흘러내리는 정가로운 시내물소리가 유정히 들려온다. 시내가옆에는 아직 채 녹지 않은 얼음이 붙어있었다. 그러나 봄소식을 알리듯 통통 불어난 버들개지가 물흐름에 실려 하느적거린다.

맑은 시내물소리, 가벼운 바람소리…

(광훈동지, 어쩌면 좋습니까? 장군님께서 우리 둘사이의 관계를 알고계시는데…)

처녀의 눈가에는 안타까움으로 젖은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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