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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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기와 립장이 같아지기 시작한 김천길의 심리흐름을 그의 눈빛에서 포착한 류경두는 전자수산기의 《+》를 누른 다음 수자단추 《1》을 또 눌렀다. 문자판에 수자 《2》가 나왔다.
《나혼자의 생각이라면 군단장동지가 계속 고집할수 있어도 동무와 립장이 같다는것을 알면 고려할수도 있지 않을가?》
《그럼 그렇게 해봅시다.》
마침내 이렇게 타협이 이루어져 류경두는 두번다시 론의해볼수도 있다는 여지 속에 가산률을 35프로로 보고 세운 제명산통과훈련과 관련된 세부계획을 안고 군단장의 천막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장대식은 손에 색연필을 쥐고 하나하나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뜯어보았다.
마침내 장대식의 눈이 군용지도에서 떨어지며 자기를 마주보는 순간 류경두는 가슴이 선뜩했다.
(이크! 가산률이 끝내 말썽을…)
그는 자기를 찌르는듯 한 그 눈길을 슬그머니 피해버렸다.
《의견을 주었으면 심중히 생각해보고 즉시에 집행해야지 이건 뭐요? 전투에서 승리는 시간이 가져다준다는것을 부군단장동무도 모르지는 않을텐데… 15프로를 더 가산하면 대략적으로 1시간 15분이나 늦어지는 결과가 빚어지오. 시간을 한초라도 당겨야지 늦추어서야 되겠소?》
막부득한 정황을 미리 예견하고있던 류경두는 그 방어를 위해 준비한 말마디를 골랐다.
《군단장동지! 훈련에서…》
류경두는 자기의 의도를 설명하려다 장대식과 시선이 다시 부딪치자 입에 마비라도 온듯 혀가 굳어져버렸다.
장대식은 곧 앞에 놓인 송수화기를 들고 부부장 김천길에게 당장 오라고 지시했다.
숨이 컥컥 막히는것만 같은 침묵은 김천길이 천막안에 들어서서야 깨졌다.
《훈련계획을 다시 세워야겠소. 가산률을 무조건 20프로로 보시오.》
《우린》 류경두는 어딘가 모르게 격해진듯싶은 감정을 억제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의 주어진 조건을 깊이 고려해보았습니다. 군단장동지! 그렇게 했다가는 결전진입을 제시간에 보장하기 힘듭니다. 1시간 15분이 그렇게 쉽게 나옵니까?》
장대식은 인차 끓어오르는 흥분을 눅잦히였다.
《부군단장동무! 왜 자꾸 그러오. 물론 나는 동무의 과학적인 타산에 늘 탄복하군 했고 사업상방조도 어려울 때마다 많이 받았소. 때로는 나의 우격다짐이 동무의 정확한 타산앞에 물거품이 된적도 더러 있었지. 나는 과학성을 무시하자는것이 아니요. 그러나 여느 훈련때보다 별로 앞당기지 못한 시간을 놓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훈련기풍을 따라배우라고 말할수 있겠소? 그날 인민군관하에서 숱한 지휘관, 정치일군들이 우리의 훈련모습을 보러오는데 망신하는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요.
《군단장동지가 이렇게 내밀 땐 정말 진땀이 납니다.》
《이 사람 말하는것 보라, 여느땐 베아링처럼 뱅뱅 잘 돌아가던 머리가 지금은 왜 이 모양이요? 녹이라도 쓸었는가? 참, 답답하구만.》
《나도 안타깝습니다.》
《피차일반이요.》
분분초초를 다투며 빨리 결심채택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이 시각 장대식의 눈앞에는
이제부터는 그에게 의거하여 일해나가야겠는데 배짱이 맞겠는지… 첫인상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강창운과 처음 만나던 일이 떠올랐다.
《군단장동지, 앞으로 내가 어딜 가거나 갔다와서 군단장동지를 먼저 찾아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면 제때에 볼기를 쳐주십시오.》
인사말이 오고가고 여담적인 이야기가 끝나갈무렵 강창운이 불쑥 이런 이야기로 넘어갔다.
《허, 그건 어떤 의미에서 하는 말이요?》
《나도 귀동냥한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앞으로 군단장동지가 가지고있는 그 좋은 기풍을 우리 둘사이에 생활화합시다.
협의해야 할 일이 제기될 때마다 호상 먼저 찾아가군 하는 격식없는 태도가 사업과 생활에서 얼마나 좋습니까?》
장대식은 빙그레 웃었다.
《내가 전 정치위원이 있을 때 어디 가거나 갔다오자마자 먼저 그를 찾아가군 했다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하기때문이였소.》
《그러나 그것을 생활화한다는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장대식은 그때 일을 생각해보며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부군단장동무! 우리 이럴것없이 정치위원동무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심합시다.》
마치 이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천막깃이 들리며 강창운이 불쑥 들어서더니 팽팽해진 분위기를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녹였다.
《제명산통과시간이 매우 심각한 모양같군요?》
장대식은 앉아있던 접이식철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걸 벌써 어떻게 알았소?》
《목소리들이 높으니 천막옆을 지나다가… 허허허…》
장대식은 강창운의 너그러운 인상을 보자 저도모르게 대범해졌다.
《다 들었다니 더 설명하진 맙시다.
정치위원동무! 어쨌든 나는 1시간 15분을 무조건 앞당겼으면 하오. 결전진입을 하게 되는 그날 전군의 지휘관, 정치일군들이 우리를 지켜보게 되질 않소. 무슨 방도가 없겠소?》
장대식의 속은 달아오르다못해 부글부글 끓어넘는것 같았다.
강창운은 단마디로 대답했다.
《나는 군단장동지의 결심을 지지합니다.》
《예?》
세사람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강창운이 힘을 주어 말했다.
《이것이 훈련이 아니라 전투환경이라면 그리고 무조건 그 시간을 보장해야 적들과 싸워이길수 있다면 그때엔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정치부도 합세하겠으니 높이 설정한 목표에서 절대로 뒤걸음치지 맙시다.》
장대식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배짱이 맞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졌다.
류경두가 심호흡을 한번 하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전투환경을 생각하자는데는 반대가 없지만… 정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세가지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어서 제기하오.》
《첫째, 그 통과가 간단치 않은 이상 통신지휘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웠으면 합니다.
둘째, 군의보장대책을 배가해야 합니다.
셋째, 후방사업에도 각별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행군과 관련된 준비가 어떻게 되여있는가 매 전사들에게 이르기까지…》
《알겠소.》
류경두와 김천길이 천막안에서 나가자 장대식은 흡족해서 강창운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시오, 정치위원동무도 방금 느꼈겠지만 부군단장동무한텐 사업에서 매우 치밀하고 구체적인데가 있소. 나의 오른팔이나 같은 동무요. 그가 내옆에 없었더라면 난 벌써 몇번이나 큰 과오를 범했을거요. 지금도 같소. 내 사업에서 빈구석을 발견하고 그걸 메꾸어주자고 아글타글하는데 난 오히려 큰소리만 탕탕 치고있소. 그러느라면 내가 요구하는 방향에서 더러 방도가 나질 때도 있으니까, 허허허…》
다치면 터질것만 같던 천막안의 분위기는 어느덧 흥그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