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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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총정치국을 통하여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딸과 사위의 문제가 복잡해졌다지? 사위가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소?》
《그렇습니다.》
김순희의 아버지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제가 딸교양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단단히…》
《대덕산을 지켜선 장대식사단장의 반영에 의하면 일당백의 고향에는 박창걸이와 같은 그런 지휘관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하면서 꼭 보내달라는거요. 어떻게 하겠소? 딸과 잘 의논해보고 결심을 나에게 알려주시오.》
이날 집에 들어온 김순희의 아버지는
《얼마나 다심하신
밤, 침대, 고독… 김순희는 모대겼다. 리성의 목소리가 그의 량심의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순희야, 이 세상천지를 둘러보렴. 나라일로 바쁜 한 나라의
남편이 생각났다.
그날에야
가자! 박창걸동지의 뒤를 따라 대덕산으로 가자. 어제날 나도 군복을 입은 군인이 아니였던가. 군복을 벗었다고 하여 행복에만 취해있을수 없다. 남편과 함께 일당백고향의 넋을 꽃피우자.
날이 밝자 김순희는 아버지앞에 다가앉았다.
《아버지, 나도 대덕산부대에 가서 뿌리를 내리겠어요.》
아버지는 딸의 어깨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순희야, 장하다.》
이렇게 되여 그는 남편을 따라 대덕산부대에 인생의 새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생활이란 마음을 돌려먹었다고 하여 흐르는 물처럼 쉽게 흘러가는것은 아니였다.
최전연 대덕산의 어느 한 초소장이 된 박창걸은 살림살이를 편지 이틀이 되여 집을 나가서 보름이 가까와오도록 돌아올줄 몰랐다. 평양의 화려한 도시에서 살다 산설고 물설은 최전연의 군관사택마을에 온 순희는 밤마다 고향생각, 아버지, 어머니생각, 무서움으로 하여 잠들지 못했다. 몸은 최전연에 와있어도 마음은 평양에 가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집에 들어올줄 모르는 남편… 기다리는 마음이 원망으로 뒤바뀌였다. 한달만에 남편이 들어왔다. 기다림으로 지친 순희의 눈초리는 곱지 못했다.
《그동안 힘들었지?》
《…》
그는 앵돌아져서 대답도 안했다.
《남편에게 식사하고 들어왔는가고 물어보는 례절도 모르오?》
《…》
박창걸의 표정이 점차 사나와지기 시작했다.
《왜 그러오?》
《누가 뭐랬어요?》
비로소 내쏘듯이 한마디 했다.
《동무 왜 그래?》
《…》
《내 보기엔 초소에도 나한테도 정이 붙지 않아 그러는것 같은데 싫으면 가오.》
가라는 말에 그는 발끈하여 머리를 돌렸다.
《정말 가란 말이예요?》
《여기가 싫으면 가란 말이요. 이런 곳을 싫어하는 녀자를 우리 병사들이 좋아하지 않소!》
순희는 분하고 억울했다. 내가 가라는 말이나 듣자고 수도를 떠나 여기로 왔던가. 신경이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그는 더이상 자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좋아요. 가라면 못갈줄 알아요.》
순희는 부산을 피우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뚝박새같은 남편은 아무말도 안하고 책상앞 걸상에 앉아 담배만 뻐금뻐금 빨았다. 옷을 다 입고 트렁크까지 들었을 때 《내 잘못했소.》하며 자기의 손목을 잡아끌며 어깨를 주저앉힐줄로 믿었다. 오산이였다. 바위돌같이 앉은 남편은 가겠으면 어서 가라 하는 배짱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순희는 정말 갈것처럼 문을 벌컥 열었다. 캄캄한 밤, 휘몰아치는 바람, 쏟아지기 시작한 소낙비…
그래도 남편은 꿈쩍도 안한다.
순희는 입술을 깨물며 문을 쾅 닫았다.
(박창걸! 내 간다. 가라면 못갈줄 알아?)
몹시 흥분된 김순희는 방향없이 걸었다. 바람소리, 숲이 설레이는 소리, 적방송나발, 눈앞을 확 밝혔다가 스치는 적탐조등불줄기…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애통이 터져서 집문밖을 나설 땐 천리도 갈 기세였는데 녀자의 나약성이 그를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앞에서 가겠다고 큰소리를 친 지금에 와서 어떻게 되돌아서겠는가. 사택마을에서 렬차가 다니는 역까지는 백여리…
《섯! 누구야!》
갑자기앞에서 울리는 맵짠 보초병의 구령소리… 그제서야 순희는 날이 어둡다나니 접근해서는 안될 위치에까지 왔다는것을 알았다.
보초병이 전지불을 비쳤다.
깜짝 놀란 그의 손에서 트렁크가 떨어졌다.
《여기로 왜 나옵니까?》
《평양으로… 가려고 …》
엉겁결에 이런 말이 나왔다.
《평양은 뒤로 가야 합니다. 지금방향은 남쪽입니다.》
남쪽이란 말에 혼비백산한 그는 바삐 돌아서려고 했다.
《섯! 움직이지 마시오.》
《저… 날 몰라요?》
가까스로 말했다.
《알아도 못갑니다. 초소장동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초소장이란 바로 남편이였다. 보초병이 뭐라뭐라고 전화를 거는 소리가 나더니 한참후에 보초장이 나왔다.
《아주머니를 체포하라는 초소장동지의 지십니다.》
(뭐, 체포? 제 안해를 체포하게 한단 말이야?)
반발심이 솟구쳤다.
《내가 체포당해야 할 리유가 뭐예요?》
《자기가 향한 방향을 생각했어야지요. 초소장동지와 한지붕아래 살아도 사상이 다르면야…》
(그럼 내가?)
보초장의 웃음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하하… 됐습니다. 아주머니! 길을 잘못든것 같은데 뒤로 돌아서서 곧추 가면 집이 있습니다.》
순희는 그제서야 흙탕속에 구겨박힌 트렁크를 찾아들고 돌아섰다.
어디로 갈것인가? 집? 집엔 못가. 그럼 평양? 평양으로 가는 렬차를 타자고 해도 비내리는 캄캄한 야밤, 무시무시한 백여리 전선길로 어떻게 혼자 걸어서 역까지 간단 말인가. 그렇다고 아직 낯도 채 익히지 못한 이웃들의 집에 들어가 잔다는것도 대단히 창피한 일이다. 이를 어쩌나, 어디로 가야 하나. 집을 내놓고는 갈곳이 없었다. 뚝쟁이남편앞에 다시 나설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뜩해났다. 걸었다. 마음과는 달리 걸음은 집쪽을 향하고있었다. 문앞에까지 이르러서는 정녕 들어갈수가 없어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날 가라고 내쫓으면 어딜 가라는거야. 박창걸! 뚝쟁이야.)
눈물은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누군가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누구야, 감히?)
깜짝 놀라서 일어서니 남편이 아닌가!
박창걸은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다시금 흐느껴우는 안해의 얼굴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순희! 사랑은 바치는거야. 그런데 순희는 받으려고만 하거던. 그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초소병사들을 사랑할수 있겠소?》
《…》
《생각해보오. 나도 오늘은 병사라고 하시며 이 박창걸이를 품에 안고 사진도 함께 찍으시고 동무에게 줄 사진까지 찍어주신
김순희는 도리질을 했다. 비물에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난 못가요.》
녀강사의 말이 끝났다.
《정말 대덕산과 함께 꽃펴난 아름다운 생활, 아름다운 부부입니다. 그들을 꼭 만나보고싶습니다. 》
야조브는 그들부부를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앞으로 대덕산을 참관하는 기회가 있으면 그들과 상봉할수 있을것입니다. 현재 박창걸동진 그곳의 어느 한 부대에서 련대장으로 사업하고있습니다.》
(병사로부터 련대장이라…)
야조브는 마냥 대덕산으로, 아름다운 부부에게로 줄달음치는 마음을 누를수 없었다. 동시에 대덕산에 대한 호기심이 더더욱 커졌다.
(최전연이라지? 여기서 거리가 매우 멀다지?… 아무리 멀어도 조선을 깊이 알자면 가보아야 한다.)